정법념처경(正法念處經)

정법념처경(9)-90쪽

근와(槿瓦) 2015. 9. 30. 01:33

정법념처경(9)-90쪽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81 / 1802] 쪽

비구는 이와 같이 자세히 생각을 관찰하고, 자세히 생각을 관찰하고는 또 그것의 생멸을 자세히 안다.다시 자세히 관찰할 때에 그것은 마치 강물이 사납게 흐르는 것처럼 생각도 그와 같아서, 훌륭한 생각이 생겼다가도 다른 인연의 힘으로 좋지 않은 생각으로 변하고, 좋지 않은 생각이 생겼다가도 다른 인연의 힘으로 훌륭한 생각으로 변한다. 그리하여 그 마음의 원숭이는 처음으로 파괴되어 무기가 유기로 변한다. 그는 즐거운 생각을 관찰하여도 탐욕을 내지 않고 무루의 즐거움에서 즐겁다는 생각을 내며 즐거운 가운데서도 괴롭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그는 이렇게 즐거움을 안다. 그는 어떻게 보는가? 훌륭한 음·계·입이 생기거나 멸하거나, 그 감각을 좋아하지 않고 생각이 멸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으며 생각이 멸하는 것을 취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 다음에 행이 생기지마는 붙들어 두려고도 하지 않고 없애려고도 하지 않으며, 또 마음으로 의식이 생기거나 머무르거나 사라지기를 바라지도 않는다.그 비구는 이와 같이 5음을 분명히 알므로 악마의 요소에 머무르지 않고 탐욕·분노·우치도 그를 결박하지 못하며 상(常)·낙(樂)·아(我)·정(淨) 등의 소견도 없고, 무명도 그를 생사 가운데 들게 하지 못하며, 빛·소리·냄새·맛·촉감 등의 사랑의 그물에 얽매여도 그는 기억을 잃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는 기억이 생기면 모든 번뇌를 다하고 열반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그 때에 세존께서 다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만일 그 어떤 비구로서 게으른 사람을 가까이하고 항상 부지런히 정진하지 않으면 그런 사람은 비구가 아니요, 평상이나 침구를 좋아하지 않으면

 

                                                                                 [82 / 1802] 쪽

부처님은 그를 비구라 한다. 만일 마음으로 게으름을 좋아하면 그는 훌륭한 법에 맞지 않나니 번뇌의 뿌리는 오직 하나라 이른바 그것은 게으름이다. 만일 한결같이 게으르기만 하면 그런 사람은 법을 얻지 못하리니다만 법복만 입었다 하여 그를 비구라 부를 수 없다. 경전을 읽고 외울 마음이 없고 선정이 없고 번뇌도 다하지 못하면 오직 비구의 형상만 있으리니 그런 사람은 비구 아니다. 다만 숲 속에 노닐기 좋아하고 도의 요소는 좋아하지 않으며 탐하는 마음으로 주색(酒色) 즐기면 그런 사람은 비구가 아니다. 만일 능히 악마의 결박을 끊고 다시 나쁜 업을 능히 끊으면 부처님은 그 비구에게 말씀하시리라. 망령되이 승가의 음식 먹지 않는다고 차라리 저 뱀의 독이나 구리쇠 녹인 물을 마실지언정 마침내 계율을 깨뜨리면서

 

                                                                                 [83 / 1802] 쪽

승가의 음식은 먹지 않으리. 먹지 않아야 할 음식 먹으면 그것은 도리에 맞지 않나니 만일 번뇌를 먹는 사람이라면 그는 바로 지옥의 사람이니라. 만일 누구나 번뇌를 버리기를 독사의 굴 속에서 나오듯 하면그 비구는 공양 받기에 맞고 또 여자 보기를 좋아하지 않으리. 자기의 몸을 전당물로 삼아 마음으로 나쁜 일 행하기 좋아하면 그는 승가의 보배를 더럽히거니 어떻게 그를 비구라 하랴. 만일 이양(利養)을 탐하여 사랑하고 바깥 요소를 좋아하고 즐기며 여자를 보고 탐하는 마음 내면 그 사람은 도인도 속인도 아니다. 만일 번뇌를 잘 사르기 불이 나무를 사르듯 하면 훌륭한 바라문이라 이름하리니 그는 음식을 탐하지 않으리라. 항상 마을에 다니기 좋아하고 자주 의복 빨래하기 좋아하면

 

                                                                                [84 / 1802] 쪽

어리석어서 저와 남을 속이리니 그는 도의 법에 아는 것 없다. 고요한 마음으로 비고 한가한 곳에서 항상 선정을 닦아 버리지 않으면 그는 바라문이란 이름을 얻고 훌륭한 도의 요소에 들어가리라. 저 훌륭한 곳 아란야는 보통 사람이 머무를 곳 아니다. 탐욕을 떠난 이가 살 곳으로서 탐욕을 즐기는 이 살 곳 아니다. 만일 많이 말하기를 좋아하고 바깥 요소를 사랑하고 즐기어 열반의 성으로 향하지 않으면 죽지 않는 곳에 나지 못하리. 왕을 가까이해 맛난 음식을 먹고 항상 술 마시고 성내기 좋아하면 그는 다만 이름만의 비구이거니 거짓을 말해 시주를 속이리라. 만일 거짓으로 방편을 말하면서 왕의 문전으로 자주 다니며 다른 속인들을 괴롭게 하면 그는 아란야를 파괴하는 자이다. 만일 누구나 그 처자를 버리고

 

                                                                                [85 / 1802] 쪽

고요한 숲을 의지해 살면서도 그래도 연연하는 마음 있으면 토했다가 그 음식 도로 먹는 것 같네. 그 비구는 이 고요한 요소를 지나 모든 음(陰)을 자세히 관찰하고 여실히 밝게 보고는 부지런히 닦아 해탈한다. 어른에게 물어 도와 도 아닌 것을 분명히 알고 보기 때문에 8분성도(分聖道 : 八聖道)로써 해탈의 성을 구하고, 항상 부지런히 도를 행하여 평등하게 바로 보아 마음에 더러움이 없으며, 그 마음이 고요하여 행하는 도를 즐겨 닦고 많이 행한다. 그 비구는 이와 같이 훌륭한 법과 무루의 업을 화합시켜 수행하여 악마의 무리를 줄이고 바른 법의 벗을 늘렸다. 그 땅의 야차는 이런 줄을 알고는 다시 위로 허공의 야차에게 알리고, 허공의 야차는 사대왕을 향해 말하고, 그 사대왕으로부터 내지 염마천·도솔타천의 미륵 세존에게 알리는 것은 앞에서 말한 것과 같다. 도솔타천의 어떤 보살은 매우 기뻐하여 화응천(化應天)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염부제 안의 어떤 선남자는 머리와 수염을 깎고 법의를 입고……(앞에서 말한 것과 같다.) '그 응화천은 더욱 기뻐하여……(앞에서 말한 것과 같다.) 또 수행하는 사람은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바른 법을 따라 법의 행을 관찰한다. 즉 어떻게 저 비구는 제5지를 얻는가? 그는 보고 들어 알거나 혹은 하늘눈으로 본다. 즉 그 비구는 10입(入)을 관찰한다. 열 가지란, 이른바 안입(眼入)·색입(色入)·이입(耳入)·성입(聲入)·비입(鼻入)·향입(香入)·설입(舌入)·미입(味入)·신입(身入)·촉입(觸入)이다. 어떻게 이 10입을 관찰하는가? '안입의 인연과 색입의 인연으로 내 이 생각이 생긴다. '그는 또 이렇게 관찰한다. 눈의 인연과 색의 인연으로 눈의 알음알이가 생기고, 그 세 가지가 화합하여 촉이 생기며, 그 촉과 함께 수(受)·상(想)·사(思)가 모두 생긴다.

 

                                                                                 [86 / 1802] 쪽

그 비구는 '수는 수를 알고 사는 사를 알며 상은 상을 안다. 이런 색은 길고 이런 색은 짧다. 이 색은 사랑할 만하고 이 색은 사랑할 만하지 않다. 이 색은 볼 수 있고 이 색은 볼 수 없다. 이 색은 장애가 있고 이 색은 장애가 없다. 이와 같이 내지 의명색(意名色)에 열한 가지가 있다'고 분별한다. 그 세 가지가 화합하여 촉이 생기고 촉과 함께 수·상·사 등이 모두 생길 때 그 눈의 촉에서 수·상·사가 생긴다는 그 이치는 어떠한가? 깨달아 아는 것을 수라 하고 수의 시절을 아는 것을 상의 이치라 하며 또 이것을 의전(意轉)이라 한다. 이런 법이 생길 때에는 각각 다른 모양이 있고 각각 다른 자체가 있으며, 다른 이치가 있기 때문에 저 열 가지 대지법(大地法)과 같이, 이것은 다른 모양이요 이것은 각각 다른 모양이라 하여, 염(念)·혜(慧)·해탈(解脫)·수(受)·상(想)·사(思)·촉(觸)·욕(欲)·진(進)·삼매(三昧)로서, 이 하나의 반연에 각각 다른 모양이 있다. 이러한 수와 상과 이러한 상과 모양은 각기 달라서 하나가 아니다. 그것은 마치 일광이 하나로서 다른 물체를 반연하는 것처럼, 이것도 그와 같아서 다른 자체의 수와 다른 자체의 상이 있다. 눈의 촉에서 수·상·사가 생기는 것을 분명히 알고 그가 바로 관찰할 때에, 눈은 바로 빈 것으로서 아무 것도 없는 것이요, 견고한 것이 아니다. 비구가 이와 같이 진실로 그 눈을 보고 도를 분명히 알아 삿된 소견을 멀리 떠나면 바로 소견이 앞에 나타난다. 그는 이러한 우치와 함께 있는 탁한 행인 깨끗하지 않은 눈이라는 생각과 진실하지 않은 생각을 버리고 이 눈을 자세히 관찰할 때에, 그것은 다만 살덩이·지방·고름·피·눈물 등의 깨끗하지 못한 물건이 모인 것임을 알고는 거기에 대한 탐욕을 끊는다. 그는 이 눈의 무상을 알고는 곧 무상을 보고 이 눈은 다만 살덩이로서 뼈 그릇에 담겨 있는 것임을 알고는 탐욕을 떠나며, 또 이 눈은 힘줄에 얽매여 있는 것임을 알고는 이 안입은 자타가 서로 상응하지 않고 견고하지 않아서 모든 것은 나가 없는 것임을 안다. 요점을 들어 말한다면, 이 눈은 괴로운 물건이라고 관해 안 뒤에는, 안입

 

                                                                                 [87 / 1802] 쪽

에 대한 욕심을 떠나고, 안입을 관찰하여 그런 줄 알고는 다시 색을 관찰한다. 즉 이 색이란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을 것이 있고, 그것은 무기의 법인데도 진실하게 분별하지 못한다. 거기에 무슨 견고한 것이 있으며, 무엇이 깨끗하며 무엇이 항상되며, 무엇이 나며 무엇이 즐거운가? 이와 같이 색을 관찰하고 생각하여 그것을 알고는, 일체의 색은 다 견고하지 않은 것인데, 오직 분별이 있을 뿐임을 안다. 이와 같이 이 색은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을 것이 있지마는 그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을 그 본체는 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사랑하거나 미워하는 분별에 속하고, 사랑스럽다, 밉다고 기억할 것뿐이다.그 비구는 이와 같이 안입과 색입을 관찰하고는 다시 이입과 성입을 관찰한다. 그는 소리를 관찰한다. 즉 그것은 어떻게 생기는가? 감관과 대상이 서로 접촉하여 소리가 생긴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관찰한다. 귀의 인연과 생각[念]의 인연으로 귀의 알음알이가 생기고, 그 세 가지가 화합하여 촉이 생기며, 그 촉과 함께 수·상·사 등이 모두 생긴다. 촉과 함께 수·상·사가 생기는 줄을 알고, 혹은 촉과 함께 사가 생기는 줄을 앎으로써 사와 상을 깨달아 안다. 이른바 길고 먼 인연으로 그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두텁고 거칠고 가는 업으로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는다. 그 비구는 이런 소리를 알고는 사를 알고 상을 알고 낱낱이 생각하여 의식으로써 알고 사를 알고 수를 알고 기억하고 생각하며, 그리하여 그 이입과 성입을 생각하고 골라낸 뒤에 깨달아 알되, 이 소리는 자체가 없어서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을 것이 없지마는 오직 분별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 소리는 이와 같이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을 것이 있다. 이 소리란, 자체가 없는 것으로서 항상된 것이 아니요, 물건이 아니며 견고하지 않아 부서지는 것이요, 즐거움도 없고 나도 없는 것이며, 또 내 것도 없는 것이다. 다만 탐욕·분노·우치로써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는 소리가 있을 뿐이다. 이와 같이 성입과 이입을 바로 관찰하면 혹 소리를 듣더라도 거기에 미혹

 

                                                                                 [88 / 1802] 쪽

하지 않아 좋아하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으며 견고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이렇게 이입과 성입을 관찰하고는 귀의 알음알이를 좋아하지 않고 귀의 알음알이에 대한 욕심을 떠난다. 그리하여 귀의 알음알이는 나가 아니요, 나도 귀의 알음알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촉·수·상·사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다. 또 그 비구는 비입과 향입을 관찰한다. 즉 코의 인연과 냄새의 인연과 생각의 인연으로 코의 알음알이가 생긴다. 가깝거나 멀거나, 사랑스럽거나 사랑스럽지 않거나, 향기롭거나 냄새나거나, 그것은 바람과 화합하여 오고 바람에 의해 코에 냄새가 난다. 코를 내입(內入)이라 하고 냄새를 외입(外入)이라 하는데, 세 가지가 화합하여 촉이 생기고, 촉과 함께 수·상·사 등이 모두 생긴다. 이런 모양을 알고는 비입과 향입의 모양을 관찰하고, 내촉(內觸)의 모양을 알고는 곧 촉의 모양을 알며 사의 모양도 다 같이 안다. 이런 법에 있어서 하나의 모양에 반연할 때에는 다른 인연을 쓴다. 다름이란, 이른바 각각 다른 모양이 있고 각각 다른 자체가 있다. 다른 모양이란 곧 열 가지 대지법(大地法)과 같은 것이니,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이 일체 법의 이러한 다른 모양은 하나의 모양이나 하나의 인연으로 된 것이 아니다. 그 비구는 이와 같이 비입과 향입을 밝게 알고는 다시 더 자세히 추구한다. 즉 이런 물건에는 무슨 견고한 것이 있고 무슨 항상된 것이 있으며, 무슨 부서지지 않는 것이 있는가? 이 입(入)들은 덧없는 것이요, 괴로운 것이며, 공한 것이요, 나가 없는 것이다. 그는 이와 같이 비입과 향입은 모두 나가 아니요 내 것도 아님을 알고, 오직 분별이 있을 뿐임을 바로 안다. 그러므로 그 비입과 향입은 오직 우치한 범부와 지혜롭지 않은 이를 결박할 뿐이다. 이 비구는 이와 같이 이 한 가지를 관찰한다. 그 비구는 또 설입과 미입을 관찰한다. 그것은 저 생각 등의 인연으로 혀의 알음알이가 생기고, 그 세 가지가 화합하여 촉이 생기며, 촉과 함께 수·상·사 등이 모두 생긴다. 그것을 그대로 따라 깨달아 아는 것을 수의 모양이라 하고, 그것을 아는 것을 상의 모양이라 하며, 그것을 대하는 것을 촉의 모양이라 하고, 생각하

 

                                                                                [89 / 1802] 쪽

는 것은 바로 사의 모양으로서 상은 모양을 반연한다. 이런 법은 각각 제 모양이요 또 평등한 모양으로서 다른 인연으로 생기는 것이다. 이와 같이 모든 것이 모여 하나의 일을 이루는 것이니, 그것은 마치 통과 집게와 겨와 돌과 독과 대장장이의 인연이 모여 하나의 가락지를 만들거나 혹은 팔찌를 만들어서 그런 물건은 한 모양으로 되지 않는 것처럼, 이 설입과 미입도 또한 그와 같다. 그 비구가 이와 같이 설입과 미입을 자세히 관찰할 때에 거기에는 항상됨이나 즐거움이나 나나 깨끗함이 조금도 없다. 모든 것을 아무리 깊이 생각해 보아도 그 어느 한 법도 얻을 수가 없다. 이와 같이 한결같은 모양에 상응하므로 그는 그 설입과 미입에 대해서 집착을 떠난다. 그런데 중생들은 그 바다에 빠져 맛의 바다를 좋아하므로 서로 방해한다. 그러므로 다시 인간·천상·지옥·축생·아귀 등 다섯 길의 큰 바다에 이렇게 얽매여 있다. 그리하여 비구는 그 설입과 미입에 대한 욕심을 떠나 해탈하려 할 때, 즉 그 설입은 나가 아니요 나는 설입이 아니다. 그것은 항상이 아니요 물건이 아니며 흔들리지 않는 것도 아니요 부서지지 않는 것도 아니며 미입도 설입도 아니었다. 이리하여 비구는 집착하는 욕심을 떠난다. 그 비구는 또 신입과 촉입을 관찰한다. 즉 신입과 촉입의 인연으로 몸의 알음알이가 생기고, 그 세 가지가 화합하여 촉이 생기며, 촉과 함께 수·상·사 등이 모두 생기는데,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안입 등과 이 신입과 촉입도 이렇게 알아야 한다. 또 수행하는 사람은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바른 법을 따라 법의 행을 관찰한다. 즉 비구는 어떻게 이와 같이 열 가지 색입을 관찰한 뒤에 다시 법입을 관찰하는가?그는 보고 들어 알거나 혹은 하늘눈으로 본다. 즉 그 법입에는 세 가지 법을 껴잡고 있으니, 이른바 수연멸(數緣滅)과 비수연멸(非數緣滅)과 허공소유무법(虛空所有無法)으로서 이들은 다 법입에 포섭된다. 이렇게 관찰할 때에는 저 허공도 또한 바로 법입이다. 수연멸이란,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한량없이 갖가지로 깨닫고는 수연을 그대로 따라 행하고 지은 뒤에 번뇌를 깨달아 끊음으로써, 그 번뇌를 다 없

 

                                                                                 [90 / 1802] 쪽

애고 부수어 모두가 무루로 되는 것이다. 비수연이란, 그 비수연도 지혜를 말하지마는 그것은 감각도 아니요 앎도 아니며 깨달음도 아니요 또 의심도 아니다. 많은 사람의 알음알이에 백천 가지로 생기지마는 그것을 모두 잃어버린다. 그리하여 눈·귀·코·몸·뜻 등의 알음알이가 모두 부수어져 다시는 생기지 않는 것이니, 그것을 비수연멸이라 하며, 또 이 비수연멸은 제3의 허공이다.이 세 가지 법은 나는 것이 아니요 바로 항상된 것으로서 3세(世)에 포섭되지 않는다. 즉 그것은 현재도 아니요 과거도 아니며 또 미래도 아니다. 또 그 비구는 두 가지의 법입을 각각 분별하는데, 이른바 색(色)과 무색(無色)이다. 이른바 색이란 열 가지 색입을 말한다. 눈의 알음알이는 보는 것도 아니요 상대하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상대를 보며 색을 보는가? 그와 같이 귀의 알음알이는 보는 것도 아니요 상대하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소리를 듣는가? 그와 같이 코의 알음은 보는 것도 아니요 상대하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냄새를 맡는가? 그와 같이 혀의 알음알이는 보는 것도 아니요 상대하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맛을 보는가? 그와 같이 몸의 알음알이는 보는 것도 아니요 상대하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닿임을 느끼는가? 이와 같이 저 바깥의 5입(入)과 이 안의 5입은 보는 것도 아니요 상대하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저 보이는 것과 상대하는 것과 더불어 서로 관계할 수 있는가? 그 비구는 다시 이렇게 관찰한다. 즉 눈의 알음알이가 생길 때에는 두 가지를 반연하고, 내지 뜻의 알음알이도 두 가지를 반연하여 알음알이가 생기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어떤 물건에 도장을 찍을 때에 그 물건은 도장과 같지 않으므로, 도장이 무르고 물건이 단단하면 도장이 찍히지 않지마는 도장이 단단하고 물건이 무르면 도장이 찍혀 무늬가 나는 것처럼, 이와 같이 알음알이는, 보는 것이나 상대하는 것이 아니지마는 모든 법 가운데서 보이고 상대하는 것을 반연하고 취하여 제3의 도장이 생기는 것이다. 이와 같이 모든 법은 같지 않은 물건으로서 같지 않게 생기는 것이니, 이것을 첫째의 거치(居致)라 한다. 둘째 거치란, 두 가지 법이 같고 다시 같게 생기는 것이니, 이른바 흰 실로.....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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