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법념처경(10)-100쪽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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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옷을 만드는 것과 같다. 셋째 거치란, 두 물건이 상응하지 않고 상응하지 않게 생기는 것이니, 마치 부싯돌로 불을 일으킬 때 나무와 불이 상응하지 않게 보이는 것과 같다. 넷째 거치란, 묽은 물질에서 빡빡한 물질이 생기는 것이니, 마치 우유에서 타락이 생길 때 우유는 묽고 타락은 빡빡한 것과 같다. 이렇게 그 법은 서로 같지 않은 것이다. 이와 같이 서로 같지 않은 법이란, 이른바 눈의 알음알이나 같은 것이니, 그것은 다른 인과 다른 연으로 눈의 알음알이가 생기는 것이다." 그 때에 세존께서 다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만일 법을 깨달아 알기 즐기어 숲 속에 있으면서 선정을 닦아 진리의 모양을 바로 깨달아 알면 그는 곧 위없는 곳 얻게 되리라. 언제나 자비심을 즐겨 행하고 법의 요소에서 부지런히 힘써서 몸의 모양을 분명히 알면 그는 곧 참 비구라 할 수 있나니. 만일 누구나 바르게 관찰하여 탐욕과 분노가 부수지 못하면 그는 비구라 할 수 있지만 그와 다르면 비구 아니다. 모든 중생을 가엾이 여기고일체의 탐욕과 집착 버리어 모든 결박을 벗어 버리면 그는 곧 참 비구라 할 수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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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누구나 그 마음 제어하여 어떤 요소에도 부수어지지 않고 마치 티가 없기 순금 같으면 그는 만족을 아는 비구라 하리. 누구나 사랑하고 사랑하지 않음으로써 그 마음을 더럽히지 않으면 그는 훌륭한 행을 잘 행하여 일체의 허물을 버리고 떠나리. 모든 위의를 꺼리지 않고 법다운 행으로 감관을 다루며용맹스럽게 그 뜻을 깨끗이 하면 그런 이야말로 비구라 하리. 만일 누구나 모든 논(論) 가운데 있는 그 이치를 항상 즐기고 음식을 탐해 집착하지 않으면 그는 뜻이 고요한 비구라 하리. 숲으로 가면 거기는 아란야 무덤 사이에서 풀자리를 깔아도 그것으로써 즐거움을 삼으면 그런 이야말로 비구라 하리. 죄업의 허물을 분명히 알고 모든 업의 과보를 잘 통달하고 그 인(因)과 연(緣)을 자세히 알면 그는 악을 떠난 비구라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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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의 광야를 두드려 부수고 악을 깨뜨리고 모든 감관 다루고 또 그 벗을 잘 알아 가리면 그는 뜻이 고요한 비구라 하리. 칭찬을 들어도 기뻐하지 않고 비방을 받아도 근심하지 않아서 저 큰 바다처럼 그 마음 깊으면 그는 수행하는 비구이니라. 굳건한 뜻으로 남의 허물 숨기고 부드럽고 고운 말 탐하지 않으며 때를 알아 말하고 공경하면 그는 고요한 비구라 하리. 욕계의 업의 인(因)을 잘 알고 색계의 인도 잘 알며 무색계의 그것도 분명히 알면 그는 논(論)을 아는 비구이니라. 세속의 말을 좋아하지 않고 항상 온갖 허물을 끊기 즐기며 바깥 요소를 독약처럼 생각하면 부처님은 그를 비구라 한다. 누구나 탐욕을 진흙 같다 생각하여 마음으로 항상 그와 같이 행하면 지혜가 열린 그 마음과 뜻으로 생사의 결박을 벗어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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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참선하고 경전 외우는 업으로 게으름 피우기를 멀리 떠나고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면 그는 아란야의 비구라 하리. 만일 능히 질문에 잘 대답하는 변재가 있고 모든 감관 다루면 알아야 한다. 그런 법사는 저 초개(草芥) 따위와 같지 않나니, 만일 몸의 행이나 뜻의 행에서 피로하거나 게으르지 않으면 그는 승가의 모든 사업을 모두 능히 해낼 수 있으리. 그러면서 재물을 구하지 않고 부의 쾌락과 이름을 위하지 않으며 오직 스님들의 뜻을 이롭게 하면 일체의 결박을 벗어나리라. 계율을 가지되 하늘을 원치 않고 이름과 이익을 구하지 않으며 가지는 계율로 열반을 삼으면 그는 고요한 비구이니라. 언제나 온갖 악을 버려 떠나고 다만 선행을 행하기 즐기며 나쁜 친구를 친하지 않으면 그는 부처님 법의 비구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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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자비로 마음을 닦고 공경하고 순박하며 곧은 뜻으로 글귀를 배워 빠뜨리지 않으면 그는 열반에서 멀지 않나니. 늙음과 병과 죽음을 늘 두려워하고 세속의 일을 원하지 않으며 선정을 닦고 방일하지 않으면 그는 열반에서 멀지 않으리. 만일 사람으로 자기나 남이나 무상하고 공하고 나 없음으로써 선정을 닦아 최상의 지혜 얻으면 그는 열반에서 멀지 않으리. 또 수행하는 사람은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바른 법을 따라 법의 행을 관찰한다. 즉 저 비구는 어떻게 제5지를 얻고는 다시 제6지를 얻는가? 그는 보고 들어 알거나 혹은 하늘눈으로 본다. 즉 그 비구는 네 가지 거치(居致)를 안다. 그 법은 어떤 것인가? 서로 같은 인이 있어서 같은 결과를 얻는 것과, 같지 않은 인으로 같지 않은 결과를 얻는 것과, 인도 같지 않고 결과도 같지 않은 것과, 반은 같고 반은 같지 않은 것이다. 같은 인이 있어서 같은 결과를 얻는 것이란 어떤 것인가? 비유하면 벼의 종자에서 다시 벼가 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와 같이 안의 같음이란 훌륭한 업이 같아서 그것과 같은 결과를 얻는 것이니, 이른바 천상과 인간으로서 이것이 첫째 거치다. 같지 않은 인으로 같지 않은 결과를 얻는 것이란 어떤 것인가? 비유하면 단 우유에서 신 타락이라는 좋아할 수 없는 것이 생기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와 같이 같지 않은 것이란 이 세상에서 소리·촉감·맛·색·냄새 등을 사랑하고 집착하여 지옥의 좋아할 수 없는 결과와 신 타락과 같은 즐길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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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를 얻는 것으로서 이것이 둘째 거치다. 원인도 같지 않고 결과도 같지 않은 것이란 어떤 것인가? 비유하면 푸른 빛깔 따위의 여러 빛깔을 합해서 다른 빛깔이 생기어 그 빛깔이 같지 않은 것과 같은 것이다. 이와 같이 안의 같지 않은 것이란 업과 과보가 모두 같고 그 업의 결과가 아닌 것이니, 마치 저 삿된 소견을 가진 외도의 재(齋)를 지내는 법에 염소를 죽여 하늘에 나기를 바랐다가 지옥에 떨어지는 것과 같은 것으로서 이것이 셋째 거치다. 반은 같고 반은 같지 않은 것이란 어떤 것인가? 비유하면 흰 실로 흰 옷을 만들면 실은 가늘고 옷은 거칠어 같지 않은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안의 반은 같고 반은 같지 않음이란 조그만 좋지 않은 업으로 큰 지옥과 같은 좋지 않은 거친 과보를 얻는 것이니, 이것이 넷째 거치다. 또 비구는 생각하고 관찰하여 업의 과보를 취하지 않고, 다시 생각하여 다른 업의 과보를 관찰한다. 즉 중간의 행에 수레바퀴와 같이 도는 것이 있는 데, 거기도 네 가지 거치가 있다.어떤 업이 아직 이르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함께 지어 핍박하는 것으로서 이것이 첫째 거치요, 어떤 업이 이미 이르러 비로소 핍박하는 것으로서 이것이 둘째 거치며, 어떤 업이 이르렀거나 혹은 이르지 않았는데 능히 핍박하는 것으로서 이것이 셋째 거치요, 어떤 업이 이르지 않았고 또 이르지 않은 것도 아닌 것으로서 이것이 넷째 거치다. 어떤 업이 아직 이르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함께 지어 핍박하는 것이란, 이 세상 법으로는 요망한 별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더라도 온 나라가 재앙을 받는 것과 같은 것이다. 만일 세간을 뛰어난 법으로 말하면 눈의 알음알이가 아직 이르지 않았는데, 업의 바다가 핍박하는 것이니 이른바 욕심·근심·슬픔 따위가 핍박하는 것으로서 이것이 첫째 거치다. 어떤 업이 이미 이르러 비로소 핍박하는 것이란, 세상 법으로는 불이 일어나 비로소 타고 칼이 와서 비로소 베는 것과 같은 것이다. 만일 세간을 뛰어난 법으로 말하면 좋지 않은 업이 이르러 지옥·축생·아귀가 핍박하는 것으로서 이것이 둘째 거치다. 어떤 업이 이르렀거나 혹은 이르지 않았는데 능히 핍박함이란, 세상 법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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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는 주독(呪毒)의 힘은 이르렀거나 이르지 않았어도 능히 핍박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만일 세간을 뛰어난 법으로 말하면 사람이 죽으려 할 때에 아직 지옥에 이르지 않았는데 염려하는 모양이 나타나는 것으로서 이것이 셋째 거치다. 어떤 업이 이르지 않았고 이르지 않은 것도 아닌 것이란, 비유하면 세상의 약초 씨는 날 힘에 이르지 않았고 나기에 이르지 않은 것도 아닌 것과 같은 것이다. 세간을 뛰어난 법도 그와 같아서, 저 아라한 비구는 결정코 받을 업의 분량이 수미산과 같지마는, 그 아라한이 열반에 들거나 열반에 들지 못하거나 그 업은 그를 핍박하지 못하는 것으로서 이것이 넷째 거치다. 어떤 업은 현세에서 받고, 다음 생에 받는 것이 아니니 이것은 첫째 거치요, 어떤 업은 다음 생에 받고 현세에서 받는 것이 아니니 이것은 둘째 거치며, 어떤 업은 다음 생에도 받고 현세에서도 받는 것이니 이것은 셋째 거치요, 어떤 업은 현세에서도 받지 않고 다음 생에도 받지 않는 것이니 이것은 넷째 거치다. 어떤 업이 현세에서 받고 다음 생에도 받는 것이 아닌가? 세간으로는 왕의 법을 범하면 왕의 법은 벌을 주는 것과 같은 것이니, 이런 업은 현세에서 받고 다음 생에 받는 것이 아니다. 세간을 뛰어나서는 보시를 닦아 행하면 선한 사람의 칭찬을 받는 것이니, 이 업은 현세에서 받고 다른 세상에서 받는 것이 아닌 것으로서 이것이 첫째 거치다. 어떤 업이 다음 생에 받고 현세에서 받지 않는 것인가? 세간으로는 불에 들어가 하늘을 얻는 것이요, 세간을 뛰어나서는 이 세상에서 훌륭한 일이나 나쁜 일을 행하고 다른 세상에서 결과를 얻는 것으로서 이것은 현재 볼 수 있는 것이니, 이것이 둘째 거치다. 어떤 업이 다음 생에도 받고 현세에서도 받는 것인가? 세간으로는 이른바 현세에서도 받고 다음 생에도 받는 것이요, 세간을 뛰어나서도 또한 그와 같나니 이것이 셋째 거치다. 어떤 업이 현세에서도 받지 않고 다음 생에도 받지 않는 것인가? 세간으로는 계율을 말하지 않고 보시도 말하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다. 세간을 뛰어나서는 이른바 무기의 업이니, 현세에서도 받지 않고 다음 생에도 받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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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으로서 이것이 넷째 거치다. 그 비구는 한 행랑 자리에 앉아 이와 같이 한량없는 종류의 가지와 잎의 과보의 그물이 지옥·아귀·축생·인간·천상에 두루 가득 차 있는 것을 관찰한 뒤에 그 법의 행을 따라 행하였다. 또 수행하는 사람은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바른 법을 따라 법의 행을 관찰한다. 즉 비구는 어떻게 업의 과보를 아는가? 이른바 그 업을 알고 그 업의 과보를 알며 그것의 좋고 나쁜 것을 안다. 즉 그 중생이 몸의 악행을 짓고 업의 악행을 짓고 뜻의 악행을 지어 성현을 비방하면 그는 삿된 소견에 포섭된다. 그리하여 그 사람은 그 업의 인연으로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지옥에 떨어지기도 하고 축생에 떨어지기도 하며 혹은 아귀에 떨어지기도 한다. 혹 어떤 사람은 몸의 선행을 성취하고 입의 선행을 성취하고 뜻의 선행을 성취하여 성현을 찬탄하면 그는 바른 소견에 포섭된다. 그리하여 그 사람은 그 업의 인연으로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훌륭한 길인 천상 세계에 나는 줄을 안다.그 비구는 이와 같이 업보의 법을 관찰한 뒤에는 악마 세계의 중생들과는 같이 다니지 않고 끝내는 열반에 이른다. 그리하여 법의 행으로 번뇌를 떠나는 행을 닦고 훌륭한 도를 부지런히 행하여 마침내 생사를 없애고는, 다른 사람을 거두어 생사를 건너게 하고 스스로를 제도한 것처럼 여러 시주들을 제도한다. 그 비구는 업보의 법을 알고 지옥·아귀·축생·인간·천상 등 모든 세계의 업보의 법의 종류를 관찰한다. 비유하면 장엄하기 위하여 청정한 비유리의 구슬을 끈으로 꿰면, 그 끈의 빛깔의 푸르거나 누르거나 붉거나 희거나 자줏빛 등을 따라서 그 빛깔과 같이 보이는 것처럼 그와 같이 업의 구슬을 과보의 끈으로 꿰면, 그 비구는 그 업 가운데서 모두 보고 들어 알거나 혹은 하늘눈으로 깨끗하게 환히 본다. 또 그 비구가 보거나 들어서 업보의 법을 아는 것은 마치 저 구슬과 같다. 비유하면 어떤 구슬이 그 빛깔이 아주 희고 온통 맑아 티가 없고 청정하여 넉넉히 꿸 수 있고, 이미 잘 갈아 온 문이 특별하고 뛰어나서 모든 세상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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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칭찬을 받고, 왕들이 간직해 쓸 수 있는데, 그런 공덕에 상응하는 깨끗한 구슬은 오직 왕들이 그 공덕이 청정한 구슬의 값을 알고 그 구슬을 취하여 장식 위에 붙이는 것처럼, 저 비구의 열 가지 훌륭한 업의 도인 깨끗한 보배 구슬도 그와 같아서 온통 희고 좋고 깨끗하여 허물을 떠나 흠이 없고 청정하여 꿸 수 있으며, 다스려진 법에 큰 세력이 있어서 법의 질문에 잘 대답한다. 그는 곧 법사로서 법으로 뚫을 수 있고 잘 다스려졌으며, 그리하여 소원과 보시·계율·지혜가 있다. 그와 같이 잘 다스려진 열 가지 훌륭한 업의 도의 구슬은, 그 원을 따라 전륜성왕이나 천왕이나 마왕이나 혹은 범왕을 취하고, 무루의 선정을 닦아 삼매가 자재하다. 이와 같이 잘 다스려진 바른 법의 구슬은 이름을 보문(普門)이라 한다. 그 보문이란 이른바 천상과 인간의 문이요, 또 그 보문이라는 바른 법의 구슬은 세간의 성을 이미 나가 열반의 문으로 들어간다. 모든 세상 사람들의 칭찬을 받는다는 것은, 이른바 바른 소견을 가진 사람과 공부하는 사람의 칭찬을 받는다는 것이다. 왕들이 알맞게 쓸 수 있다는 것은 바른 법의 도에 들어가 그 마음이 왕에게 맞는다는 것이다. 만일 누구나 저 비유리의 구슬을 믿으면 모든 공덕을 두루 갖출 것이니, 그와 같은 보배 구슬은 바른 법의 구슬과 같고 서로 상대되는 것이다. 또 그 비구가 업보의 법을 관찰하는 것은 마치 구슬과 같다. 비유하면 어떤 구슬이 흠이 있어서 온통 청정하지도 않고 일체의 문이 아니며, 결백하지도 않고 뚫을 수도 없으며, 다스릴 수도 없으면, 사람들은 보아도 찬탄하지 않고 왕들도 간직했다가 알맞게 쓰지 않는 것처럼, 이와 같이 저 외도의 법은 비슷한 법으로서 마치 흠이 있는 구슬과 같다. 이른바 흠이란 소견의 흠, 계율과 의심의 흠으로서 그것은 일체의 문이 아니요, 오직 지옥·아귀·축생 등 세계의 문이니 그것은 훌륭한 법이 아니요 또 무루와 상응하지도 않으며, 뚫을 수도 없고 법의 질문에 대답할 수도 없다. 그리하여 그는 법의 끝에 뚫어진 법사도 아니요 왕들이 간직해 두었다가 알맞게 쓸 수도 없는 것이다. 중생들의 여덟 가지 바른 법의 도는 바로 마음의 왕이지마는 저 외도의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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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은 거기에 맞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런 따위의 법은 법이 아닌 흠이 있는 구슬과 같고 상대된다. 만일 사람의 목에 걸면 그런 사람은 저 비슷한 구슬을 목에 걸고는 지옥·아귀·축생에 떨어져 처음이 없는 과거로부터 생사에 흘러 다닐 것이다. 그 비구는 이와 같이 구슬과 비슷한 구슬을 관찰한다.비유하면 세상에 어떤 유리 구슬이 있어서 비유리 구슬과 비슷할 때에 어떤 사람이 그것을 보고 비유리 구슬이라 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범부도 또한 그와 같다. 그 비구가 이와 같이 법과 법 아닌 것을 관찰하고 제7지(第七地)를 얻으면, 그 땅의 야차는 그 비구가 청정하게 계율을 가지고 제7지를 얻은 것을 보고는 더욱 기뻐하여 허공의 야차에게 알리고, 허공의 야차는 사대왕에게 알리며, 사대왕은 사천왕에게 알리고, 사천왕은 삼십삼천에게 알리며, 삼십삼천은 다시 제석왕에게 말하고, 제석왕은 다시 염마천에게 말하며, 염마천은 계속해 도솔타천에게 알리고, 도솔타천은 미륵 세존께 알리며, 미륵 세존은 화응천에 고하고, 화응천은 다시 타화자재천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염부제 안의 어떤 선남자는…….'이와 같은 차례는 앞에서 말한 것과 같다. 또 수행하는 사람은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바른 법을 따라 법의 행을 관찰한다. 즉 비구는 어떻게 업보의 법을 관찰하는가? 즉 제11이란 이른바 무작(無作)이니, 그것은 색(色)에 포섭되는 것으로서 모든 법 가운데 있는 색과 상응하는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계율을 받고 한 번 계율을 일으킨 뒤에, 졸거나 고민하거나 정신을 잃고 미치더라도 그 훌륭한 법은 계속해 뻗어 나간다. 비유하면 강물이 흐를 때 항상 흘러 끊어지지 않는 것처럼, 그 사람이 졸거나 고민하거나 정신을 잃고 미치더라도 그 무작은 항상 흘러 끊어지지 않나니, 그 무작을 색이라 하며 볼 수가 없다.그것은 또 어떤 것인가? 색업(色業)에 포섭되는 것이니, 이 무작의 색은 곧 모든 선한 법의 기둥으로서 이 색에는 열한 가지가 있다."......
-나무 관 세 음 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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