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법념처경(7)-70쪽까지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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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하되, 하나의 인연이 아닌 것과 같다. 이와 같이 5근(根)이 일으키는 바를 처음이 없는 과거로부터 즐거이 반연하여 하나의 요소가 아니요, 서로의 요소를 파괴하고 요소의 뿌리를 파괴하는 것은 마치 소·말·낙타·나귀·돼지 등과 같다. 그 비구는 이와 같이 감각을 관찰하여 미세한 지혜를 얻는다. 그 비구는 그 지혜를 즐거이 닦아 많이 짓고 즐거운 감각을 관찰한 뒤에 차례로 감각을 관찰하고, 차례로 다 관찰한 뒤에는 이렇게 생각한다. 즉 내 이 감각은 눈·귀·코·혀·몸·뜻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이다. 생길 때에는 어디서 오며 사라져서는 어디로 가는가? 그 비구는 차례로 관찰하여 감각이 모두 사라진 것을 보고 도리를 생각한다. 이렇게 관찰한 뒤에는 눈의 감각이 생기기는 하였으나 오는 곳이 없고 사라졌으나 가는 곳이 없음을 안다. 내 이 눈의 감각은 본래는 없었는데 지금 있고, 이미 있다가 도로 없어졌다. 내 이 눈이란 온 곳이 없는 것은 마치 바다 가운데 물과 같고, 사라져도 간 곳이 없는 것은 마치 강물이 밑으로 흘러 내려 바다로 가는 것과 같다. 내 이 눈의 감각은 본래는 없었는데 지금 있고, 이미 있었다가 도로 없어졌다. 그것은 인연으로 생긴 것이다. 귀·코·혀·몸·뜻도 그렇다. 마치 옹기장이나 혹은 그 제자가 수레바퀴와 진흙덩이와 사람의 힘에 의해 물과 지팡이를 반연하여 병(甁)을 만드는 것과 같다. 즉 그 병은 생겨도 오는 곳이 없고, 없어져도 가는 곳이 없어서 인연으로 생긴 것처럼 그와 같이 눈이 빛깔과 밝음과 허공과 기억을 반연하여 눈의 감각이 생기는 것이니, 이른바 괴로움과 즐거움과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감각인 것이다. 또 마치 저 병이 훌륭한 인연을 만나면 훌륭한 병이 되고, 나쁜 인연을 만나면 나쁜 병이 되는 것처럼, 만일 훌륭한 인연을 만나면 훌륭한 눈의 감각이 생기는 것이니, 귀·코·혀·몸·뜻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다. 만일 훌륭한 감각을 합해 차례로 그 행에 순응하면 열반에 이르고, 만일 좋지 않은 인연으로 좋지 않은 눈의 감각이 생겨 탐욕·분노·우치를 반연하면 생사 가운데서 지옥·아귀·축생의 나쁜 길의 요소에 떨어질 것이다. 그 비구가 모든 훌륭한 행과 훌륭한 결과를 그대로 따라 잡념을 결박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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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감각을 관찰할 때에 그것은 의지하는 곳이 없고 지은 이도 없으며 인(因)이 있어서 일어난 것도 아니요, 인이 없어서 일어난 것도 아니며, 모인 것도 아니요 항상된 것도 아니며, 물질도 아니요, 생각하지 않는 생각도 아니요, 뒤바뀐 법도 아니다. 그 비구가 이 감각의 번뇌를 보면 그는 곧 생에 대한 애욕을 없애고 즐거움과 함께 생기는 더러운 애욕과 모든 생사를 다 덧없는 것이라 보고는 곧 거기서 나와 즐거이 도를 닦고 많이 지을 것이다. 그 비구는 이렇게 닦은 뒤에 모든 결박을 끊고 일체의 번뇌를 멀리 떠날 것이다. 그 결박이란 이른바 사랑의 결박·장애의 결박·무명의 결박·견해의 결박·생존의 결박·교만의 결박이니, 이런 결박을 다 끊는다. 그 번뇌란 이른바 탐욕의 번뇌·생존에 집착하는 번뇌·견해의 번뇌·장애의 번뇌·교만의 번뇌·무명의 번뇌이다. 생각의 결박·의심의 결박·시기의 결박·미움의 결박·의심의 번뇌 등 이런 인연으로써 세 가지 세계에 흘러 다니고 세 가지 땅에 돌아다니며, 세 갈레 나쁜 길에 돌아다니고 세 때로 따라다니며, 세 가지 종류 가운데서 세 가지 감각의 훈습을 따르고 세 가지 생을 따라 생사의 인연에 뒹구는 것이다. 또 수행하는 사람은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바른 법을 따라 법의 행을 관찰한다. 즉 그 비구는 어떻게 이런 눈의 인연을 깨달아 아는가? 그는 이렇게 눈이란 어떤 인연으로 생기는가를 관찰한다. 그는 보고 들어 알거나 혹은 하늘눈으로 본다. 즉 업이 눈의 인이 되고 눈은 업에 의해서 생겨서 이와 같이 계속한다. 그것은 마치 세상의 니거타(尼居陀)나무의 종자에서 니거타나무가 생기고, 그 나무에서 다시 종자가 생겨 인연이 서로 매여 결박하는 것처럼 이와 같이 중생도 업에 의해 나고 업으로 다시 바뀌어 난다. 그래서 세상에 나서는 늙음·죽음·근심·걱정·울음·고뇌가 있게 된다. 이와 같이 업의 인으로 애욕의 그물의 결박에 묶이는 것이니, 그리하여 모든 우치한 범부들은 생사의 바다에서 이렇게 돌아다니고 이 인연으로 모든 것을 사랑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업을 짓지 않으면 업이 없기 때문에 애욕이 없고 애욕이 없기 때문에 생을 받지 않는다. 그 인연이란 마치 심지와 화로와 기름과 불의 인연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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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면 등불의 불꽃이 계속 나는 것과 같다. 비구는 이와 같이 생의 인을 관찰하고 업의 인과 업의 법과 업의 힘이 모든 생을 낸다는 것을 자세히 관찰한다. 화로는 몸에 비유한 것이요, 기름은 감관에, 심지는 감각에, 탐욕·분노·우치는 불에, 계속해서 생기는 불꽃은 생각생각의 지혜에, 밝음은 지혜에 비유한 것이다. 그 수행하는 사람은 이와 같이 세 가지 세계의 생이 있음을 보고 안다. 마치 대장장이나 혹은 그 제자가 훌륭한 순금을 얻으면 묘한 장엄거리를 만드는 것과 같나니, 솜씨 훌륭한 대장장이는 수행하는 사람에 비유한 것이요, 그 순금은 훌륭한 반연에 비유한 것이다. 만일 선을 반연하면 선업이 있어서 열반의 도를 얻고 불선을 반연하면 불선의 업을 얻는다. "그 때에 세존께서 다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그 인과 연을 분명히 알고 미세한 그 이치를 결정해 알아 해탈의 흐름을 기뻐하고 즐기면 애욕도 그를 부리지 못하리라. 중생들은 그 업의 흐름을 따르나니 그러므로 모두 다 업 가운데 나서 업의 과보에 얽매인 뒤에 생존 속의 좁은 곳을 걸어 다닌다. 만일 좋지 않은 업을 떠나서 언제나 훌륭한 업을 즐기고 좋아하면 그러한 행을 닦는 사람은 마치 구름이 없는 달빛과 같다. 그는 능히 나쁜 업을 불사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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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불이 마른 풀을 태우듯이 하고 그는 삼계의 광명으로써 모든 나쁜 법에서 벗어나리라. 만일 누구나 해탈을 희망하여 마음으로 생사를 좋아하지 않으면 생사가 그를 결박하지 못하여 마치 새가 허공을 나는 것 같으리. 생이 오는 곳을 분명히 알고 또 그 생의 과보를 잘 알면 그는 곧 해탈을 얻어 3계를 분명히 알게 되리라. 괴로움과 즐거움에 흔들리지 않고 선이나 악을 마음에 두지 않고 이 세상을 불꽃처럼 보면 그런 수행하는 사람은 모든 것 사랑한다. 그 뜻은 언제나 그릇됨 없고 법다운 행을 항상 즐기며 비구의 법을 마음으로 좋아하면 그런 이야말로 비구라 하리. 친한 이라 자주 보기 즐기지 않고 착한 사람을 보기를 좋아하며 집을 떠나 가정의 번뇌 떠나면 그런 이야말로 비구라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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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감관이 아주 고요해 그 요소를 탐하여 집착 않고 다닐 때는 한 발[一尋]의 땅만 보는 이 그런 이야말로 비구라 하리. 남을 꾸짖는 집에 다니지 않고 사고 파는 일 전연 하지 않으며 네거리에 나가기 좋아하지 않으면 그런 이야말로 비구라 하리. 노래와 춤의 구경을 좋아하지 않고 사람이 많은 곳을 좋아하지 않으며 무덤 사이에서 살기를 좋아하면 그런 이야말로 비구라 하리. 다만 그날 그날의 음식만을 취하고 내일의 음식을 취하지 않으며 하루에 두 끼만 먹으면 그런 이야말로 비구라 하리. 아름답고 훌륭한 의복 버리고 먼지와 흙이 묻은 옷을 좋아해 음식과 수행에 서로 맞으면 그런 이야말로 비구라 하리. 세속의 사업을 경영하지 않고 세속 사업의 결과를 바라지 않고 필요한 것 구하려 애쓰지 않으면 그런 이야말로 비구라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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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과 성내는 마음에서 벗어나고 어리석은 마음의 진흙을 버리어 나쁜 법이 그를 더럽히지 못하면 그런 이야말로 비구라 하리. 이미 일체의 결박을 벗어나고 또 일체의 번뇌를 버려 일체의 결박에서 해탈한 사람 그런 이야말로 비구라 하리. 8정도(正道)에 놀면서 열반의 성을 향하여 나아가고 나쁜 뜻의 번뇌를 모두 떠나면 그런 이야말로 비구라 하리. 굳건한 뜻과 고요한 감관으로 탐욕의 진흙을 버리고 떠나 언제나 한 뜻에 바로 머물면 그런 이야말로 비구라 하리. 혹은 이미 지위의 지혜를 얻어 고요한 마음으로 분명히 보고 모든 지위의 선·악을 알면 그런 이야말로 비구라 하리. 유루의 법도 무루의 법도모두 인연으로 생기나니 일체 갖가지가 그런 줄 알면그런 이야말로 비구라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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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고 올곧게 범행을 닦고 고요한 마음으로 게으름을 버리며 일찍 일어나 깨끗이 예배하면 그런 이야말로 비구라 하리. 선정과 지혜를 즐기어 닦고 다시 네 가지 선정 즐기며 또한 비고 고요한 곳을 즐기면 그런 이야말로 비구라 하리. 마치 저 새가 허공을 날 때 그 그림자가 항상 따르는 것처럼 만일 그 뜻이 바른 법을 따르면 그런 이야말로 비구라 하리. 능히 모든 번뇌를 잘 죽이고 평등한 훌륭한 뜻으로 보며 드나드는 숨길을 잘 알면 그런 이야말로 비구라 하리. 만일 능히 차례를 알고 닦는 바의 법을 분명히 보며 도와 도 아님을 잘 알면 그런 이야말로 비구라 하리. 즐거움을 얻어도 즐거워하지 않고 괴로움을 만나도 걱정하지 않아서 근심과 기쁨에 마음이 평등하면 그런 이야말로 비구라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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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과 죽음을 분명히 알고 하늘과 아수라가 공경하고 예배하며 중생들의 선악을 잘 알면 그런 이야말로 비구라 하리. 가사와 발우에 만족할 줄을 알아 재물과 보배를 모으지 않고 욕심이 적어 범행을 행하면 그런 이야말로 비구라 하리. 한 번 먹으면서 번뇌를 떠나고 어떤 맛에도 탐착하지 않으며 능히 이양을 잘 버리면 그런 이야말로 비구라 하리. 평등하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 쓰고 질투의 나쁜 마음 버리고 떠나 일체의 허물을 능히 태우면 그런 이야말로 비구라 하리. 그 비구는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바른 법을 따라 이와 같이 감각을 관찰하고, 감각을 관찰한 뒤에는 미세한 지혜를 얻고는 다시 더 깊이 관찰한다. 눈의 접촉으로 감각이 생기면 그것을 반연하여 그대로 행하고, 이와 같이 눈의 제2의 반연을 관찰하면 그것들은 모두 멸하고, 그 눈의 접촉에서 생기는 감각과 반연이 모두 멸한다. 또 소리의 반연과 함께 그의 사랑하는 감각이 생기거나 혹은 사랑하지 않는 감각이 생기면 그것은 마음과 함께 멸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 비구는 근심하지 않는 노끈으로 그 마음을 묶어 반연의 기둥에 매어 두면 그 감각은 멸하고, 그 소리의 반연도 귀의 감각과 함께 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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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가 냄새를 반연하여 코의 감각이 생길 때, 그 비구는 코의 감각을 관찰하고 이렇게 생각한다. '내 코는 냄새와 함께 코의 감각을 내는데, 그것은 선이거나 불선(不善)이거나 혹은 유기(有記)거나 무기(無記)다. 내 이 코의 감각은 마음과 함께 멸하지 않는다. '그 비구가 만일 마음의 파괴됨을 관찰하면 그와 같은 반연을 자꾸 익혀 행하여 마음을 단련하고 선법에 마음을 훈습한다. 그리하여 그 때에 무루의 선법은 흔들리지 않는다. 또 혀가 맛을 반연하면 그 반연은 선이거나 불선이거나 혹은 유기거나 무기다. 그 비구가 반연을 깨달은 뒤에는 다시 감각을 관찰하는데, 그것은 괴로움이거나 즐거움이거나 혹은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것이다. 그는 이렇게 관찰하고는 다시 생각한다. '내 이 마음은 무너지는 것인가? 혹은 무너지지 않는 것인가?' 그는 또 관찰하기를, 저 맛의 반연으로 생기는 감각은 내 마음을 부수는가? 라고 한다. 이렇게 관찰하고는 근심하지 않는 노끈으로 그 마음을 묶어 반연의 기둥에 매어 두고 행답게 수행한다. 그리하여 마음이 그와 같이 되면 맛을 사랑하는 혀의 감각도 마음을 빼앗지 못한다. 또 그 비구는 몸의 접촉을 관찰하여 그 몸의 접촉을 그 접촉에서 생기는 감각과 함께 반연의 기둥에 매어 둘 때에, 그것은 선이거나 불선이거나 혹은 유기거나 무기다. 그 몸의 접촉에서 생기는 감각을 관찰하고, 만일 거기서 마음이 움직이면 다시 반연의 기둥에 매고 항복 받으면 그것은 다시는 마음을 부수지 못한다. 또 그 비구는 뜻을 관찰한다. 뜻을 결박하는 법의 감각은 선이거나 불선이거나 혹은 유기거나 무기다. 감각에 뜻이 부서지는 것을 보고는 그 비구는 근심하지 않는 노끈으로 그 마음을 묶어 반연의 기둥에 매어 두고 항복 받으면 마음은 부서지지 않는다. 그 비구는 여섯 요소가 몸에 들어오는 감각을 관찰한 뒤에 다섯 가지 감각을 분명히 알고는 다하지 않는 곳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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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지혜의 등불로 눈의 접촉에서 생기는 감각을 관찰하고 '무엇이 감각을 깨닫는가?'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그는 관찰한다. 즉 의식의 인연으로 이 감각이 생겨 뜻을 결박하고 마음을 빼앗는다. 세상의 모든 우치한 범부들은 분별하는 불로써 스스로를 태운다. 이 감각은 없는 것으로서 다만 업의 힘으로 생기고 업의 힘으로 멸하며 인연에 결박된다. 눈의 접촉에서 감각이 생기는 것을 그대로 관찰하고 그대로 행하면, 그 감각은 그 마음을 빼앗을 수 없고, 그 마음을 흔들 수도 없어서 그는 죽지도 않고 어지럽지도 않다. 그 비구는 또 귀의 감각을 관찰한다. 즉 귀의 감각이란 어떤 것인가, 무엇이 이 감각을 깨닫는가를 관찰한다. 즉 그것은 의식에 매여 있고 의식과 함께 결박되어 그 뜻에 의지해 머무른다. 그것은 지은 이도 없고 받는 이도 없어서 인연으로 생긴 것이다. 그 귀의 감각은 지은 이도 없고 받는 이도 없으며, 다만 업이 모인 인연의 힘으로 생기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그 비구는 또 코의 감각을 관찰하여 무엇이 이 감각을 깨닫는가 하고 그 감각을 관찰한다. 그것은 의식에 매인 것으로서 뜻을 반연하고 뜻을 의지해 머무르며, 그 인연에 의해 따라 생기는 것이다. 그리하여 오직 업의 힘이 있을 뿐으로서 지은 이도 없고 받는 이도 없으며, 계속해서 결박한다. 코의 감각을 이렇게 관찰하여 그는 감각이란 것을 떠난다. 그 비구는 또 혀의 감각을 관찰한다. 무엇이 이 감각을 깨닫는가 하고 그 감각을 관찰할 때에 그것은 의식에 매여 있는 것으로서 그 뜻을 의지해 머무르고 반연에 매여 있다. 그것은 인연으로 생기는 것으로서 지은 이도 없고 받는 이도 없으며 다시 딴 물건도 없고, 다만 업이 모인 인연의 힘으로 생긴다. 그 비구는 또 즉 무엇이 이 감각을 깨달으며 어떤 감각인가 하고 몸의 접촉에서 생기는 감각을 관찰한다. 이렇게 관찰할 때에 그것은 뜻에 매여 있는 것으로서 지은 이도 없고 받는 이도 없으며 다시 딴 물건도 없고, 오직 업이 모인 인연의 힘으로 계속된다. 그 비구는 무엇이 뜻의 감각을 깨닫는가 하고 뜻의 감각을 관찰한다. 그는 뜻의 감각을 관찰할 때에 뜻은 법을 반연하여 의식을 내고, 이 세 가지가 화합하여 접촉이 생기며, 접촉과 함께 감각이 생긴다. 그것은 마치 갖가지 한.....
-나무 관 세 음 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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