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신은 사멸하지만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이런 이야기가 있다. 옛날 사가라국(?伽羅國)에 한 고행승(苦行僧)이 있었다. 한여름 사정없이 퍼붓는 뙤약볕에 장작불을 피워 놓고 땀을 뻘뻘 흘리며 앉아 있었다. 때마침 한 비구니(比丘尼)가 지나가다 보고,
「실례지만 스님은 덥힐 것은 덥히지 않고 공연히 덥히지 않아도 될 것만 덥히고 있군요?”했다. 그 고행승은 펄쩍 화를 내면서 “무슨 바보 같은 소리를 하는가. 그럼 묻겠는데 스님이 덥혀야 한다는 그것은 도대체 무엇이오?」
비구니는 조용히 대답했다.
「꼭 덥혀야 할 것은 마음입니다. 예를 들어 소가 수레를 끌 때, 수레가 구르지 않으면 소를 채찍질하면 될 것을, 스님은 쓸데없이 수레만 때리고 있으니 말입니다. 아무리 수레를 때린들 별 수 없는 게 아닙니까. 우리들의 육신은 수레이며 마음은 소입니다. 그러므로 당신도 마음의 소를 채찍질할 것이지 육신의 수레를 공연히 괴롭힌들 아무 소용없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보는 바와 같이「나」는 곧「마음」이다. 육신은 비록 내 것이라 해도 그것은 의상(衣裳)처럼 잠시 빌려 입은 것이며「마음」이야말로 진정한「나」인 것이다.
나의 평생 과제는 오로지 이「마음」의 수련에 두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음이란 무엇인가?
다시 말해서 마음이란 물질도 허공도 아니며 선도 악도 아니며, 여성도 남성도 아니며, 지식도 사상도 신앙도 아니다. 그리고 이 아무 것도 아닌 것조차도 아닌 것이 마음이다.
그러므로「나」라는 이 마음은 불에 탈 수도 없는 것이고, 물에 젖을 수도 없는 것이고, 자살도 타살도 할 방법이 없다. 나라는「나」는 영원불멸의 것이요, 또한 절대자유의 것이다. 그래서「나」는 완전 무결한 실체(實體), 즉 우주 이전의 실체요, 차원(次元)이전의 것이므로 나를 앞서서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못한다.
우리가 보고 듣고 생각할 수 있는 그것은 모두가 다 내 이후의 것이다. 즉 모든 것은 이「마음」이 창조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마음이 창조하면 하나님도 있고, 부처님도 있고 태양도 있고 온 우주가 건설되는 것이다.
인류 5천 년의 문화가 다 이 마음의 건설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래서 다 이 나의 마음을 가리켜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存)이라 말한다. 오직 나만이 거룩한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육신(肉身)은 오로지 생겨난 것이기 때문에 사멸(死滅)이 있으나, 마음은 사멸이 없는 것이다. 사멸이 없으므로 이 육신이 떠난 후에도 다시 무엇인가가 되는 것이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삼생윤회(三生輪廻)라 한다.
다 같은 마음으로 태어난 인간이 빈부귀천(貧富貴賤) 등 한량없는 차별을 나타내는 것도 전생(前生)에 제가 지은 원인에서 그러한 결과를 받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또한 불교에서는 인과응보(因果應報)라 한다.
이런 까닭에 자아 완성(自我完成)의 목표는 불타의 지위에 올라서 생사를 자유로이 하며 전지 전능(全知全能)의 권력으로써 고해(苦海)에서 허덕이는 다른 중생을 건지고자 한다. 이것이 인생으로서의 궁극적 목표인 것이다.
출전 : 마음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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