ㅈ(지읒)~ㅊㅋㅌㅍᄒ(히읗)

혹득(惑得)

근와(槿瓦) 2019. 2. 15. 17:36

혹득(惑得)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所得의 법이며, 能得. 이 소득의 법으로 능득의 몸을 얻음에 일종의 實法이 있는 것을 惑得이라 이름한다. 마치 줄로 몸을 묶어 놓고 줄을 얻었다는 말과 같다. 을 끊었다 함은 惑體壞滅하는 것이 아니고 이 혹으로 얻은 줄을 끊어버린다는 뜻이며, 열반을 증득했다는 말은 열반으로 자신의 몸을 묶어서 줄을 얻은 것으로 離繫得이라 한다. 살아서 이 離繫得의 줄을 얻는 것을 열반의 이치를 증득했다고 말한다. 惑得을 해탈하면 無間道가 되고 살아서 離繫得은 해탈도가 된다.

 

참고

() : 깨달음을 장애하는 迷妄의 마음. 證悟와 반대되는 것. 곧 번뇌를 말한다. 번뇌는 우리의 마음을 의혹하는 것이므로, 이라 한다. 仁王經合疏 中이라 하는 것은 미망의 마음이다하였음. .....증오(證悟)올바른 지혜로 진리를 증득하여 깨달음. .....지혜(智慧)六波羅蜜의 하나. 일체의 諸法을 통달하여 得失邪正을 분별하는 마음의 작용. 智慧山, 智慧海 등에 비유함. ·두글자를 특히 구별하여 쓸 경우에는 解了(해료. 범어 prajanati. 이해, 통달, 요해. 지식에 의한 이해. 도리를 알게 되는 것.), 照見(비추어 보다. 비추다. 확인하다. 깨닫는다는 뜻.)의 뜻. .....진리(眞理)참된 이치. 참된 도리. 佛法을 말함. 만인에게 보편 타당하다고 인정되는 인식의 내용. .....(證得)바른 지혜로써 진리를 깨달아 얻는 것을 말함.

 

소득(所得) : 획득. 지각. 인식. 소견. 견해. 참선학도에 의해 얻은 불법의 요체(要諦)에 관한 소견. 사물을 2개로 나누어, 이것을 취하고 저것을 버리는 분별심.

 

능득(能得) : 지각(知覺)하는 것. 실체가 있다고 인정하는 것. .....실법(實法)잠깐 있는 존재를 假法이라 함에 대하여 항상하여 변함이 없는 법을 말한다.

 

사도(四道) : 번뇌를 끊고 진리를 體得하는 단계에 加行道無間道解脫道勝進道. .....체득(逮得)얻다. 다 얻음. .....체득(體得)몸소 체험하여 얻음.(국어사전) .....체득기리(逮得己利)자기의 목적을 이룩하고, 출가수행의 이상인 해탈에 도달한 것. .....()이라 함은 범어 prapti의 번역으로 有情이 그 자신이 얻은 것을 자기몸에 끌어당겨 지속시키려 하는 힘을, 非得이라 함은 범어 aprapti의 번역으로 나의 몸에서 그것이 떨어져 나가 멀어지게 하는 힘을 말한다.

俱舍論卷四에는 ·을 공히 十四心不相應行法의 하나로 간주하여 실체가 있는 것으로 보고, 에 의해서 얻어지는 것은 그 有情 자신의 身心에 속하는 것(自相續有情法) 無爲法중에서 擇滅非擇滅이라고 한다. 成就, 非得不獲不成就의 두가지가 있다.

이라 함은 아직 얻지 못한 것 혹은 이미 잃었던 것을 이제 얻는 것으로서, 未來生相位까지 와서 바야흐로 現在位에 들어간 뒤 활동을 실현하고자 할 때의 別名이고, 成就라 함은 이미 얻어서 아직까지도 잃지 않고 계속하여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서 現在位에 들어왔을 때의 別名이다. 不獲·不成就도 같은 의미의 말이다. 에 의해서 얻어진 것(所得)과의 시간적 전후의 관계에서, 法前得(의 쪽이 所得보다 앞선 경우를 말하므로, 소가 수레를 끄는 것에 비유해서 牛王引前得이라고도 한다), 法後得(은 후자의 경우를 말하고 송아지가 어미소를 따르는 것에 비유하여 犢子隨後得이라고 한다), 法俱得(두가지가 동시였을 경우를 말하며, 그림자가 물건에 따르는 것에 비유해서 如影隨形得이라고 한다), 非前後俱得(無爲法이 얻어지는 경우는 얻어지는 이 시간에 관계가 없기 때문에 이와 같이 말한다)의 네가지의 으로 나누어 특히 앞의 셋을 3종의 이라고 한다.

非得의 경우는 이 현재에 있을 때에는 반드시 法俱得이 일어나서 非得은 작용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非得이 동시에 있는 것은 아니므로 法俱非得은 없고 따라서 法前非得·法後非得·非前後非得의 세가지가 있다. 이 될 수 있는 有爲法을 얻게 하는 得得이라고 하며, 得得은 도리어 에 의해서 얻어진다고 한다. 得得小得 또는 隨得이라고 하는데 대해서, 大得이라고 한다.

成唯識論卷一에는 二十四 心不相應行法의 하나로 들어서, 이것을 거짓 존재라고 하고 種子成就·自在成就·現行成就의 세가지가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非得心不相應行法에 넣지 않는다.

 

가행도(加行道) : 四道의 하나. 또는 方便道. 俱舍論에서는 번뇌를 끊고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4단계의 길을 간다고 하여 加行道·無間道·解脫道·勝進道4를 든다. 그 중 올바르게 번뇌를 끊는 것을 無間道라고 하는데 대해서 加行道는 그 이전의 준비로서 수행하는 기간을 말한다. .....방편도(方便道)수단방법이라는 뜻. 지혜(般若)와 방편과는 본체는 하나이지만, 지혜가 금이라면 방편은 그 금으로 만들어진 각종의 금세공과 같은 관계에 있다고 일컬어짐.

 

무간도(無間道) : 無礙道라고도 한다. 번뇌를 나의 몸에 끌어당겨서 관계를 갖게 하는 힘. 곧 번뇌의 을 끊는데 간격이나 방해하는 것이 없고 또 解脫道를 얻는 因緣을 방해하거나 간격을 갖게 하는 同類가 없다는 뜻으로 無間·無礙라고 한다. 틀림없이 번뇌를 끊고 擇滅 곧 깨달음을 몸에 ()하는 단계이다. .....무애도(無礙道)무애(無礙)란 방해가 되는 일이 없는 번뇌 즉 보리, 생사 즉 열반(煩惱即菩提生死即涅槃)과 장애없이 증거하는 것이 무애도. .....택멸(擇滅)數滅·智緣滅이라고도 번역한다. 열반(깨달음)의 다른 이름으로 智慧力(簡擇力·바른 판단력)에 의해서 얻어진 이란 뜻. 여기서 말하는 은 생사(한 존재)한 마음, 안온한 깨달음의 경지를 말한다. 이것은 또 번뇌(특히 이외의 九結)를 끊으므로 斷界, 繫縛(束縛 특히 貪結)을 여의므로 離界, 생사(특히 번뇌와 密接不離의 관계에 있는 모든 事象 煩惱所·隨增事)를 없애므로 滅界라 일컬어지는데, 이 셋을 합하여 三界라 한다. 擇滅無爲法으로 三無爲 또는 六無爲의 하나다. 구사종에서는 擇滅有爲法의 수만큼 있다고 한다. 대개 번뇌에 의해서 모든 有爲法繫縛되어 있는데 그 번뇌를 끊고 離繫를 얻는 것이 擇滅이기 때문이다. 唯識宗에서는 煩惱障을 끊고서 얻는 滅縛得所知障 등을 끊고서 얻는 滅障得2종의 擇滅을 세운다.

 

해탈도(解脫道) : 이에 대해 無間道의 직후에 번뇌를 끊어버리고 번뇌의 장애로부터 해탈하여 틀림없이 擇滅을 깨달아서 離繫得을 현재에 성취하는 것을 해탈도라 한다. .....이계과(離繫果)5의 하나. 지혜를 얻어 번뇌의 繫縛을 끊고 擇滅無爲를 성취함. 곧 열반의 진리. 64에 의해서 생긴 는 아니지만 聖道智力으로 번뇌의 덮임을 여의고 얻은 . .....이계(離繫)범어 visamyoga. 離滅이라고 번역함. 繫縛에서 떠난다는 뜻으로 解脫과 같은 뜻으로 사용한다. .....()범어 grantha의 번역. 繫縛·繫屬의 뜻. 중생들을 迷惑의 세계에 묶어 속박하므로 자유롭지 못하게 한다는 뜻이니, 번뇌의 異名이다. 따라서, 離繫라고 하면 곧 涅槃의 깨달음을 가리킨다. 에도 의 작용이 있으므로 繫縛되는 것을 業繫라고 한다. 또한 三界의 번뇌가 세속적인 존재를 각각 三界繫縛하므로 三界繫屬되어 있는 것을 界繫 또는 三界繫이라고 한다. <雜集論卷七>에서는 貪欲身繫·瞋恚身繫·戒禁取繫·此實執身繫四繫를 들고 四身結·四結·四縛이라고도 한다고 했다. .....오과(五果)여기에 몇가지 해석이 있다. 性相門에서 因果을 분별하는 6종으로 나누고 5종으로 나누는 것. 異熟果·等流果·士用果·離繫果·增上果가 그것. 이것을 異熟等五果라 한다. 12인연을 3세에 나누는 가운데 현재의 五果. (胎內受生一念)·名色(心名身色)·六處(六根具足)·(出胎하여 객관의 外境觸對)·(苦樂의 분별)를 말함. 12인연 중 제3로부터 제7까지를 가리킨다. 無明2는 과거의 이고 이 5는 현재의 , 8로부터 ··3現在因. 11과 제12老死未來果라고 하는 가운데 現在五果가 그것. 小乘證果5종으로 나눈 것. 須陀洹果·斯陀含果·阿那含果·阿羅漢果·辟支佛果가 그것. 에서 말하는 5종 과실. 核果(사과·배 등)·膚果(오이·참외 등)·殼果(호도·석류 등)·角果(·팥 등)·檜果()가 그것.

 

해탈(解脫) : 毘木叉라고 음역. 풀려오다. 번뇌에 묶인 것에서 풀려 미혹의 에서 풀려서 나오는 것. 미혹의 세계를 넘는다는 뜻으로 度脫이라고도 한다.

본래는 열반과 같이 실천도의 究極境地를 나타내는 말이었다. 그러나 후세에 와서 여러 가지로 분류하여서 고찰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有爲解脫(아라한 곧 해탈한 자가 확실히 了解하여서 인정하는 마음의 작용. 勝解)無爲解脫(열반), 혹은 性淨해탈(중생이 본래의 모습에서 번뇌의 汚染에서 벗어나서 청정한 것) 障盡해탈(현실에서 번뇌때문에 그 본래의 청정이 오염되어 있어 그 번뇌를 끊고 해탈할 수 있는 것) 혹은 해탈(마음에 탐애를 여의는 것) 해탈(지혜에 의하여 무명 즉 無智에서 벗어나는 것혹은 해탈(아라한이나 아직도 滅盡定이 아닌 것)해탈(아라한이 滅盡定을 얻는 것) 혹은 해탈과 不時해탈로 둘로 나누어 이것을 해탈이라고 한다. 煩惱해탈·邪見해탈 등의 해탈을 열거하기도 한다

귀로 불법을 듣고 해탈하므로 귀를 기울이여 불법을 듣는다고도 한다. 해탈의 眞味解脫味라고 한다. 그러나 해탈의 경지는 평등하고 차별이 없으므로 一味라고도 한다. 소승에선 해탈하는 데 아주 빠르면 3년이 걸린다고 하며 3년 해탈이라고도 한다. 또 여래를 眞解脫(진실한 해탈)이라 일컫는 것은 아라한(소승의 해탈)은 일부분의 해탈로 진실한 해탈이 아니므로 이와 같이 해탈을 하여도 그것에 집착하여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하지 못하는 자는 해탈의 깊은 구렁에 떨어진 자라고 한다.

 

승진도(勝進道) : 4의 하나. 번뇌를 끊는데 四道를 세운 가운데 解脫道 뒤에 다시 나아가 열반을 구하여 향상하는 자리. 곧 앞의 三道를 제하고는 다른 를 모두 勝進道라 함. .....열반(涅槃) · 寂滅 · 滅度 · 이라 번역한다. 擇滅 · 離繫 · 解脫 등과 동의어로, 般涅槃(은 범어 pari의 음역으로, 완전의 뜻. 圓寂이라 번역한다), 大般涅槃(는 뛰어나다는 뜻, 大圓寂)이라고도 한다. 원래는 불어 끈다는 뜻, 불어 끈 상태, 곧 타오르는 번뇌의 불을 滅盡해서 깨달음의 지혜인 菩提를 완성한 경지를 말한다. 이것은 生死(의 세계)를 넘어선 깨달음의 세계로, 불교의 구극적인 실천목적이며, 그러므로 여기에 불교의 특징을 나타내는 旗印(法印)의 하나로서 涅槃寂靜을 세우게 된다. 불교 이외의 外道에서도 열반을 말하지만, 불교의 열반과는 다르다. 불교에서도 대승 · 소승에서 각기 그 해석에 異說이 많다.

部派(소승)불교에서 열반이라 함은 번뇌를 멸하여 없앤 상태라 하고, 여기에 有餘열반과 無餘열반의 2종열반을 세운다. 앞의 것은 번뇌를 끊었지만 육체(殘餘依身가 아직 있다는 의미로餘依또는라고 한다)는 아직 殘存하는 경우, 뒤의 것은 灰身滅智의 상태로, 모든 것이 滅無로 돌아간 경우를 가리킨다. 有部등에서는 열반을 하나의 본연의 자세인 실체적인 경지로 생각하고, 經量部등에서는 열반은 번뇌가 멸한 상태에 대한 假稱的인 명칭으로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대승에서는, 열반을 적극적인 것이라 생각하여· · · 四德을 갖추지 않은 소승의 열반을 有爲열반이라고 하는 데 대해서, 이 사덕을 갖춘 열반을 無爲열반이라 하여, 이것을 최상의 목표로 삼는다. 南本열반경 卷三에는· · · 淸淨 · 不老 · 不死 · 無垢 · 快樂8가 열반에는 갖추어 있다고 하여, 이것을 열반의 八味라고 한다· 은 항상· 快樂으로, 不老 · 不死, 淸淨 · 無垢對應하여 이것을 四德에 배속하는 수도 있다. 唯識宗에서는, 本來自性淸淨열반과 有餘依열반과 無餘依열반과 無住處열반의 4종열반으로 나눈다. 본래자성청정열반은 또 본래청정열반이라고도 性淨열반이라고도 하고 모든 것이 본래의 에 있어서는 眞如寂滅理體 그것이라고 하여 진여를 가리켜서 이와같이 말한다. 무주처열반이라 함은 지혜에 의해서 煩惱障所知障을 여의었기 때문에 생사(의 세계)에도 停滯하지 않고, 大悲를 가지고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의 세계중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열반의 경지에서도 머무르지 않는 것을 말하고, 대승불교의 열반의 특색을 잘 나타내고 있다. 地論宗이나 攝論宗에서는 性淨열반 · 方便淨열반(도를 닦음으로 인하여 번뇌의 더러움을 없애고 얻는 열반)열반, 천태종에서는 性淨열반 · 圓淨열반(지론종등의 방편정열반에 상당) · 方便淨열반(불타가 중생을 구하기 위해 잠정적으로 모습을 나타냈다가 이 다하여 들어가는 열반으로, 應化열반이라고도 한다)3열반을 세운다.

소승의 聲聞이나 緣覺이 무여열반에 들어가서 다시 마음을 바꿔서 대승의 轉向하는 것을 無餘還生이라고 한다. 또 열반은 모든 차별적인 모습(有爲)超離하여 있는데, 이것을 離相이라고 한다. 淨土敎에서는 불타의 정토를 涅槃之城 또는 無爲涅槃界라고도 한다.

이 세상에 사람으로서 나타난 불타(특히 釋尊)의 육체의 죽음을 涅槃 · 般涅槃 · 大般涅槃이라고 하고, 열반에 들어가는 것을 入涅槃 · 入滅 · 薪盡火滅(佛身 또는 機緣, 는 지혜 또는 佛身에 비유한다)이라고 한다. 대개 본래는 석존의 成道를 열반이라고 해야 할 것이나, 지금은 아마도 無餘依열반의 의미로 이와같이 말하는 것일 것이다. 석존의 入涅槃의 모습을 본뜬 畵像  影像涅槃像, 그날(215)에 석존을 追慕하여 진력하는 법회를 涅槃會 · 涅槃忌 · 常樂會등이라고 한다. 또 승려의 圓寂 · 歸寂 · 示寂 · 入寂등이라고 한다.

 

() : 범어 marga의 번역으로 末伽라고 음역하며 목적지에 이르게 하는 通路. 밟아 행해야 할 길(軌路)을 뜻하는 말이다. 俱舍論卷二十五에는, 라 함은 涅槃(깨달음)으로 가는 길이고 열반의 를 얻기 위해 마땅히 의지할 바라고 했다. 이와 같이 는 주로 불교의 궁극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행의 법칙을 의미한다. 또 널리 에 이르게 하는 通路의 뜻도 있다.

예컨대 智度論卷八十四에는, 人天 · 聲聞 · 연각 · 보살의 4종의 가 있다. 사람이나 하늘은 十善이나 布施로 하여 세간적인 福樂을 구하고, 二乘三十七道品로 하여 열반을 구하고, 보살은 삼십칠도품이나 六波羅蜜로 하여 佛果를 구한다고 했다.

이상과 같은 의미의 와는 달리 · · 三道라고도 하는데 이때의 , , 을 가져오는 通路로서,  三者는 서로 바퀴와 같이 돌아가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다. 三惡道 · 五道 · 六道라고 할 때의 善惡에 의해 지옥 등의 로 들어가는 통로가 되는 , 그것은 應報을 따라 각각 다르고 순환하는 인 것이다. 菩提(깨달음의 지혜)로 번역하는 수가 있기 때문에, 구별하여 菩提果道라 하며 그 이전의 因道라 부르기도 한다.

열반에 이르기 위하여 번뇌를 制伏하거나 혹은 이것을 끊는 가운데에 有漏道無漏道二道가 있다. 유루도는 世間道 · 世俗道라고도 하며, 앞에서의 人天도 이에 해당된다. 三界 · 九地 가운데 有頂地를 제외한 下八地修惑을 끊기 위한 見道加行位(加行道라고도 함)에서 유루지를 가지고 六行觀을 닦는 것도 이에 해당된다. 구사종에서는 이와 같이 유루도에 있어서도 번뇌를 끊을 수가 있다고(有漏斷)하여 유루도도 斷道라고도 하나, 유식종에서는 유루도는 번뇌의 現行을 조복하는 번뇌의 種子까지도 끊을 수 없다고 하며, 이것을 伏道(能伏道)라고 한다. 무루도는 出世間道 · 聖道라고도 하며 未至 · 中間 · 四根本 · 下三無色九地所依로 하여, 무루지에 의해서 번뇌를 끊는(無漏斷)로서, 유식종에서는 이것을 斷道에서도 伏道라고 한다. 여기 斷道能斷道의 뜻으로서 對治道 · 能治道라고도 한다. 이 유루 · 무루의  · · 無學三道配對하면, 見道無學道는 반드시 무루도로서, 修道에는 무루도도 유루도도 있다.

번뇌를 끊어서 해탈의 진리를 증득하는 과정을 구사종이나 유식종에서는 四道(四種道)로 나눈다.

(1) 加行道. 方便道라고도 하며, 번뇌를 끊기 위한 준비적 실천(가행위를 다시 가행도라고도 부르는 것과는 다르다).

(2) 無間道. 라고도 하며, 바로 번뇌를 끊는 로서 앞에 말한바와 같이 斷道란 것이다. 直後(無間)에 번뇌가 끊어졌으므로 無間隔의 의미로 無間이라 한다.

(3) 解脫道. 번뇌를 끊어서 해탈의 진리를 증득하는 .

(4) 勝進道. 勝道라고도 하며, 다시 나아가서 다른 이의 번뇌를 끊기 위하여(이 때는 승진도는 다음의 번뇌를 끊기 위한 가행도가 된다), 혹은 만족해서 이미 끊어진 것을 觀察하는

기타 敎道 · 證道, 難行道 · 易行道라고 하는 熟語가 있으나, 또한 聖道 또는 無上道(悟道)하는 것을 得道(得度)라 하고, 禪宗에서는 하는 뜻으로 참선해서 心眼을 여는 것을 라고 한다.

菩提의 번역이다.

 

보리(菩提) : 범어 bodhi의 음역· · · 라고 번역한다· 연각 · 성문이 각각 그 에 따라 얻는 깨달음의 지혜를 말한다. 이 세 가지 보리 가운데 佛陀의 보리가 더할나위 없는 최상최고의 궁극적인 것이므로 이것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부르며, 번역하여 無上正等正覺 · 無上菩提라고 한다.

智度論卷五十三에는 불타의 보리에 대해서,

(1) 보살이 깨달음을 구하기 위해 發心하는 것을 그 마음은 菩提에 이르는 이라는 뜻으로 發心菩提,

(2) 번뇌를 누르고 모든 波羅蜜을 행하는 것을 伏心菩提,

(3) 諸法實相을 깨달은 반야바라밀의 明心菩提,

(4) 반야바라밀에 의한 방편력을 얻었지만 반야바라밀에 잡히지 않고 번뇌를 끊어서 一切智에 이르는 것을 出道菩提,

(5) 佛果覺智無上菩提라고 한다. 이를 합해 五種菩提라 한다.

또 법화경論卷下에서는   · · 三身에 대해 法佛菩提(法身菩提) · 報佛菩提(報身菩提) · 應佛菩提(應身菩提)三種菩提를 주장하고 있다.

大乘義章十八에서는 無上菩提에는 方便菩提性淨菩提의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했다.

천태종에서는 十種菩提三法 가운데 하나로 三菩提를 들어,

(1) 實相를 깨달은 것을 眞性菩提(實相菩提 · 無上菩提).

(2) 에 계합한 지혜를 깨닫는 것을 實智菩提(淸淨菩提).

(3) 자유자재로 중생을 교화하는 기능을 깨닫는 것을 方便菩提(究竟菩提)라 하고, 이것은 법신 · 반야 · 해탈의 三德과 별개가 아니며, 三菩提가 곧 三軌라 했다.

淨土論에서는,

(1) 自我에 집착하여 (2) 온갖 중생을 안온하게 해 주려고 하지 않으며, (3) 자기에게만 봉사한다고 하는, 菩提에 위배되는 三種菩提門相違法을 멀리 여의는 것을 三遠離心 · 三種離菩提障, ,

(1) 자기만을 위한 을 구하지 않으며(無染淸淨心)

(2) 중생의 를 없애 안온하게 해 주고(安淸淨心)

(3) 중생을 깨달음으로 나아가도록 해서 영원한 을 준다(樂淸淨心)고 하는, 菩提를 따르는 三種隨順菩提門法三淸淨心이라 한다고 했다. 이것은 지혜 · 자비 · 방편의 三門에 의해 여의기도 하고 일어나기도 한다고 한다. 無上菩提를 구하는 중생을 菩提薩埵, 해서 보살, 無上菩提를 구하는 마음을 無上菩提心 · 無上道意 혹은 菩提心이라고 한다.

후세에는 祖上의 보리를 증진하는, 成佛되기를 빌고 명복을 비는 의식을 행하는 것을 增上菩提 또는 菩提哀悼한다고 하기도 했다. 菩提를 애도한다는 뜻에서 신도가 소속하는 절을 菩提寺 · 菩提所라고 하는 수도 있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 : 범어 anuttara-samyak-sambodhi音譯. 阿耨三菩提·阿耨菩提音略하고, 無上正等正覺·無上正眞道·無上正遍知라 번역한다. 혹은 후반만을 취해서 三藐三菩提라고 쓰기도 하고, 번역하여 正等覺이라고 한다. 불타가 불타다운 까닭인 지혜의 깨달음을 말하며, 이 위 없이 높고 바르고 평등·원만한 점에서 이와 같이 일컫는다. 또 이와 같은 깨달음을 얻으려고 하는 보살의 뜻을 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번역해서 無上正眞道意라고 한다.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범어 anuttara-sa=myak-sambodhi의 번역. 부처님의 最上의 깨달음. 범부·외도·성문·연각·보살에 대해서, 불타의 지혜는 가장 수승하고 더 위가 없고 진실하고 보편타당한 바른 절대의 진리를 깨달아 증득했으므로 이같이 말함.

 

불타(佛陀) : 범어 Buddha. 浮圖 · 浮屠 · 部陀 · 浮頭 · 勃䭾 · 母䭾 · 沒䭾라고도 음역. 意譯하면 깨달은 사람(覺者)이라 하고 줄여서 이라고 함. 우리 나라에서는 예로부터 부처라고 하여 왔다. 특히 불교인들의 완전한 용어로는부처님이다.

즉 불타는 B.C. 6세기경에 인도 카필라국에서 출생하여 태자의 지위를 버리고 출가하여 일체의 번뇌를 끊고 우주의 참 진리를 깨달아 중생을 위해 설법하였던 석가세존을 존경하는 말이다. 그러나 불타는 깨달은 사람이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이, 불타 즉 부처는 석존 한 분에게만 국한된 절대적인 명칭은 아니다. 불타는 一切法, 즉 우주 만법의 참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고 알아서 더할 수 없는 진리를 체득한 大聖者를 의미하는 것이며, 그러한 대성자가 석존이기 때문에 불타라고 한다. 이러한 부처의 이름은 여러 가지가 있어서 경전에 따라서는 60가지, 108가지, 또는 270가지나 있다. 그러나 佛陀觀은 시대와 종파에 따라 일정하지 않았다.

초기 석존의 시대에는 불타라 하면 석존을 가리켰고, 그 제자들에게 있어서 불타는 오직 석존 한 분 뿐이었다. 그러다가 후에 대승불교 시대에 이르는 동안 불타관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불타는 보통사람으로서는 얻을 수 없는 德相 즉 신체적 특징인 3280種好를 갖추고 정신적인 특수성으로서의 덕성인 十力 · 四無畏 · 三念住 · 十八不共法을 성취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불타는 生身 · 法身으로 나눌 수 있는데 부처의 肉身生身佛이라 하고, 그 부처가 얻은 그리고 그 부처의 본성인 진리()法身佛이라 하여, 2,500여 년 전에 80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난 역사적 불타인 석존은 생신(肉身)불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불타라고 할 때에는 보통 법신불을 말하는데, 이 법신불은 늙지도 병들지도 죽지도 않는 상주불멸의 존재라는 것이다. 이러한 佛身觀에 의하여 三身說(法身 · 報身 · 化身)이 나타났다. 실제에 있어서 불타로서 인류 역사상에 나타나기는 오직 석존 한 분 뿐이지만, 많은 불교성전에는 석존의 이전에 이미 毘婆尸佛 · 燃燈佛 등 과거의 부처와 미륵불 등 미래의 부처와 그리고 阿閦佛 · 阿彌陀佛 등 현재의 부처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와 같이 많은 부처들은 모두 역사상의 불타인 석존을 기준으로 한 것으로서, 즉 과거의 여러 부처들은 석존이 因位에 있어서 수행을 쌓을 때 받들어 공양하고 또는 授記를 얻는 데에 관련이 되고, 또 장래의 부처인 미륵불을 비롯한 미래의 많은 부처들은 석존이 이미 세상을 떠났으나 그 실제의 몸은 오히려 온 세계에 나타나서 교화를 쉬지 않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많은 부처가 출현하지만 이는 모두 하나의 큰 법신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불법(佛法) : 부처가 하신 佛法이라고 한다. 成實論卷一에는 여섯 가지 동의어를 들고 있다. 이것을 佛法六名이라고 한다. (1) 善說(있는대로 하기 때문). (2) 現報(現世에 있어서 果報를 얻게 하기 때문에) (3) 無時(吉凶이 때를 가리지 않고 따라오기 때문에) (4) 能將(正行으로써 중생을 잘 이끌어서 깨달음에 이르게 하기 때문에) (5) 來嘗(자신이 깨달아야 하기 때문에) (6) 智者自知(지혜있는 사람은 스스로 잘 信解하기 때문에

부처가 중생을 가르쳐 인도하는 敎法. 出世間의 법을 불법이라고 하는데, 국왕이 백성을 통치하기 위하여 만든 국법을 王法이라 한다. 眞宗에서는 王法爲本 · 仁義爲先이라고 해서, 일상생활에 있어서는 국법을 준수하고 윤리도덕을 실천해야 한다고 한다.

불타가 얻은 법(緣起道理法界의 진리 ). 부처가 알고 있는 법(一切法). 불타가 갖추고 계신 여러 가지 功德(十八不共法)을 불법이라 하는 수도 있다.

 

연기법(緣起法) : 연기(緣起)의 이치. 에 의하여 법이 생기는 것. .....인연법(因緣法)범어 pratitya-samutpada. 緣起와 같음. 인연의 도리. 십이인연의 가르침. .....십이인연(十二因緣)십이연기(十二緣起)를 말하며, 無明···名色·六處(六入)·······老死12. .....십이연기(十二緣起)凡夫로서의 有情生存12의 조건에 의해서 성립되어 있는 것. 또는 12支緣紀 · 12因緣 · 12因緣起 · 12因生 · 12緣生 · 12緣門이라고도 한다.

근본불교의 가장 기초적인 敎義로서, 원래 아함경전에 설해진 것. 12라 함은 無明 · · · 名色 · 六處(六入) · · · · · · · 老死이고, 이것들은 凡夫로서의 有情生存을 구성하는 12의 요소(十二有支)이며, 이것들이이것이 있을 때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김으로 하여 저것이 생기며, 이것이 없을 때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함으로 하여 저것이 멸한다라고 하는 相依相對的인 관계를 설하는 것이 12연기이다. 여기에 두 가지 면이 있는 것 같다.

곧 모든 것은 에 의해서 성립되어 있는 相依的인 것이기 때문에 無常 · · 無我라고 하는 면과, 또 하나는, 凡夫로서의 인간의 괴로운 생존은 어떻게 성립되었는가(流轉門), 또 어떻게 해서 그것을 否定하고 깨달음에 이르는가(還滅門)라고 하는 것을 하여, 有情生存의 가치와 意義를 문제로 하는 쪽이다. 阿含經典에서는, 12緣起說 외에, 10 · 9· 8· 7등의 緣起까지도 하는데, 넓은 의미에서는 이들도 12緣起에 수용해도 좋다. 雜阿含經 12에는, 연기의 법은 부처가 세상에 나오거나 나오지 않거나를 불구하고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로, 부처는 이것을 관하여 깨달음을 열고, 또 중생을 위하여 이 법을 開示한다고 하고 있다. 前述한 제2의 면에 있어서의 12緣起說의 원래의 의미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自覺的인 인간의 생존()은 정신의 주체인 의 활동에서 비롯되는 것이지만, 의 활동은 생활경험()이 되어서, 도리어 그 활동의 축적에 의한 의 내용이다. 그런데 의 활동이라 함은, 感覺器官(또는 그 기능)  · · · · · 6를 통하여 인식의 대상인 모든 이나 (名色)과 접촉()하여, 이것을 主觀上感受()하는데 의한다. 범부에 있어서는, 無明(불교진리에 대한 無自覺) 內相으로 하고, 渴愛(구하여 마지 않는 我欲) 外相으로 하는 것이어서, 객관적 대상에 작용하는 식의 根基的인 상은 이 渴愛에 불과하며, 渴愛는 발전하여 모든 것을 나의 것으로 하여 하려고 하는 執著()으로 된다. 그런 까닭에 이와 같은 染汚의 활동()에 의해서 내용지어진 , 그것에 相應하는  · 老死 등에 의해서 대표격이 된 人間苦, 無常苦를 경험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에 반하여 聖者에 있어서는, 無明 渴愛가 없어졌기 때문에 따라서 人間苦도 없어진다.

俱舍論 卷九에는 12緣起에 대해서 4종의 해석을 들고 있다.

(1) 刹那緣起라 함은, 1刹那중에 12지가 갖추어 있다고 하는 것으로, 예컨대 하는 마음으로 殺生하려고 하는 순간의 마음에 대해 말하면, 그 한 찰나의 마음 가운데 일어난 愚癡가 있는 것이 無明, 죽이려고 마음 먹은 것이 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며,

(2) 連縛緣起라 함은, 12가 간단 없이 연속해서 前因後果의 관계가 되는 것을 말하고

(3) 分位緣起라 함은, 三世兩重因果에 의한 胎生學的인 해석으로, 12支分有情生死流轉하는 과정에서의 각기의 位態를 가리키는 것이고

(4) 遠續緣起라 함은, 까마득하게 먼 하여 12가 계속해서 緣起하는 것을 말한다. 이 가운데 有部에서는 제3分位說을 쓴다. 無明은 과거로 번뇌를 일으키어 을 지었을 때의 有情分位 心身(五蘊)을 가리키고, 이 과거2에 의해서 心識이 비로소 母胎託生하는 1刹那有情分位, 託生의 제2刹那 이후 六根이 아직 갖추지 않은 有情分位名色, 胎內에서 6을 갖춘 分位6, 出胎한 뒤 다만 접촉감각만이 있는 2 · 3까지가 , 感受性이 빼어난 4 · 5에서 14 · 15까지가 , 이상 에서 까지를 現在世5라고 한다. 다음에 愛欲이 성한 16 · 17이후가 , 貪著의 마음이 뛰어난 30이후가 , 이렇게 하여 을 짓는 分位, 그 이후 에 이르기까지가 老死, 이들 둘을 未來世2라고 한다. 이와 같이 과거세 · 현재세 · 미래세의 三世에 걸쳐서, 二重因果를 세우기 때문에, 이것을 三世兩重因果라고 한다. 중에 · 을 포함하고, 는 곧 이기 때문에, 12緣起惑業苦三道에 거두어지고, 因果가 끝없이 계속하여 無始無終이라고 한다. 經部에서는 이 有部을 바르지 않다고 하여, 無明이라 함은 과거의 無智만을 가리키고 결코 五蘊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등으로 한다

成唯識論 卷八에서는, 無明에서 까지를  · 老死 하여, 1因果를 세우는데, 는 반드시 異世이고, 따라서 이것을 二世一重因果라 한다. 無明 · 二支에서 까지의 5를 당겨 일으키는 이기 때문에, 2能引支이고, 5所引支라고 하여 이 7牽引因이라고도 한다 · · 三支이 되어서 미래의 · 老死二支하기 때문에, 3能生支 또는 生起因이라 하고, 이에 대해서  · 老死所生支 또는 所引生이라 한다.

천태종에서는 思議生滅 · 思議不生不滅 · 不思議生滅 · 不思議不生不滅4종의 12因緣을 세워서, 이것을 化法四敎(· · · )에 배속시킨다. 최후의 圓敎에서는 12因緣佛性이라 일컫고 에 의해서 생긴 현상의 그대로가 中道와 다르지 않다고 한다.

12緣起하는 것은, 과 같이 중요한 觀法으로 되어, 석존은 이것을 하여 깨달음을 열었다고도 전한다. 雜集論 卷四에는 無明에 의해서 이 있다 등으로 차례로 生起하는 것을 雜染順觀, 老死 등의 각기에 苦集滅道를 세워서 老死에서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서 生起하는 것을 雜染逆觀, 無明이 없어지면 이 없어진다 등으로 現成을 차례로 하는 것을 淸淨順觀, 老死한다 등으로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서 깨달음의 現成하는 것을 淸淨逆觀이라고 하고, 婆沙論 卷24에는, 迷惑生起하는 流轉門에서는 無明 · 을 버린 10, 깨달음의 現成하는 還滅門에서는 12한다고 함(巴利文大品에 의하면, 流轉門順觀, 還滅門逆觀으로 불러야 하는데, 지금은 이 이 행해지고 있다). 또 천태종에서는 三世兩重 · 二世一重 · 刹那一念3종의 12因緣觀에 의해서 각기 차례로 斷見 常見 · 著我見 · 性實見3종의 잘못된 견해를 깨뜨린다고 한다.

 

십팔불공법(十八不共法) : 十八不共佛法의 준말. 佛陀10·4無所畏·3念住佛陀大悲를 합한 佛陀에게만 있는 18不共法을 일컫는다. , 身無失·口無失·意無失·無異想·無不定心·無不知捨心·欲無滅·精進無滅·念無滅·慧無滅·解脫無滅·解脫知見無滅·一切身業隨智慧行·一切口業隨智慧行·一切意業隨智慧行·智慧知見過去世無礙無障·智慧知見未來世無礙無障·智慧知見現在世無礙無障.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낼지니라.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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