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가구감-3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그러나, 법에도 여러 가지 뜻이 있고, 사람에도 온갖 바탕이 있는 터이라, 여러 가지 방편을 벌이지 않을 수 없다.
주해(註解)
법(法)이란 것은 한 물건이요, 사람이란 것은 중생이다. 법에는 변하지 않는 것과 인연을 따르는 두 가지 이치가 있고, 사람에는 몰록 깨치는 이와 오래 닦아야 하는 두 가지 기틀이 있으므로, 문자나 말로써 가르치는 여러 가지 방편이 없을 수 없다. 이것이 옛말에 이른바 「공사(公事)에는 바늘 끝만큼이라도 용서할 수 없으나, 사정(私情)으로는 수레도 오고 가고 한다.」는 것이다. 중생이 아무리 본래부터 뚜렷이 이루어졌다고 하지마는, 천생으로 지혜의 눈이 없어서 윤회(輪廻)를 달게 받는 것이다. 만약 세상에서 뛰어나는 금칼이 아니라면, 뉘라서 무명(無明)의 두꺼운 껍질을 벗겨 주랴? 고생 바다를 건너서 즐거운 저 언덕에 오르는 것은 모두 부처님의 크게 어여삐 여기시는 은혜를 입는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량 없는 목숨을 바치더라도, 그 은혜의 만분의 하나를 갚을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새로 닦는 」이치를 널리 들어서 부처님과 조사들의 깊은 은혜를 감사하여야 할 것을 말한 바이다.
송(頌)
임금님이 나옵시니 王登寶殿에
백성들이 노래하네. 野老謳歌로다.
① 변하지…(不變隨緣) : 환경의 온갖 일이나 물질이 나에게 어떤 감촉(感觸)이나 무슨 교섭(交涉)이 있을 때에 그것을 연(緣)이라 하며, 이 연에 따라 동작(動作)이 일어나고 변천(變遷)이 생기는 것을 인연 따르는 것, 곧 수연(隨緣) 또는 씀(用)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순간마다 일어나는 연(緣)에 따라 작용은 천번이나 변하고, 만 가지로 고쳐진다(千變萬化)할지라도, 그 참이치의 당체(當體)는 늘 그대로 고요하고 움직이지 아니하여, 어디서나 어느 때나 변하지 않는 것이다. 이 원리를 진여(眞如)· 원적(圓寂)· 평등(平等)· 적멸(寂滅) 같은 말로써 표시하기도 하고, 주관적으로 말할 때에는 체성(體性)이라고 한다.
② 몰록 깨치는…(頓悟漸修) : 불도를 닦아 나아가는 데 그 사람의 바탕(機)을 따라 차츰차츰 여러 계단을 밟아 올라가서 나중에 대각(大覺)을 이루는 것을 「오래 닦음」곧「점수(漸修)」라 하고, 어떤 이는 대번에 크게 깨쳐서 한 뜀에 부처가 될 수 있는 것을「몰록 깨침」곧「돈오(頓悟)」라고 하는데, 이치는 비록 돈오하였더라도 오랫동안 익혀온 버릇 곧 다생(多生)의 습기(習氣)는 일시에 완전히 끊어 버릴 수가 없고, 현실의 사물처리(現實事物處理)에 자유 자재하기 어렵기 때문에, 오래오래 닦아 나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결국은 누구나「점수」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깨치지 않고는 옳게 닦을 수가 없는 것이므로, 조사 스님들은 닦는 것보다 깨치는 것을 주요하게 말하는 바이다.
③ 윤회(輪廻) : 세상의 온갖 물질과 모든 세력(勢力)은 어느 것이나 아주 없어져 버리는 것이 하나도 없다. 오직 인과의 법칙(因果法則)에 따라 서로 연쇄 관계(連鎖關係)를 지어 가면서 변하여 갈 뿐이다. 마치 물이 수증기가 되고, 구름이 되고, 비가 되어, 또 다시 물수증기가 되듯 모든 것은 돌아다니는 것이다. 우리의 업식(業識)도 육체가 분해될 때에 아주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모든 중생들은 온갖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므로, 쉴새 없이 번민과 고통 속에서 지내다가 육신이 죽으면 생전의 지은 업(業)을 따라 지옥· 천당· 축생· 귀신 또는 다시 인간으로 수레 바퀴 돌 듯 돌아다니게 된다. 그러나 성품을 깨쳐서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바가 없게 되면 윤회는 끊어지는 것이다.
④ 금칼[金鎞(비)] : 옛날 인도의 의사들이 안과(眼科) 수술할 때에 쓰는 금으로 만든 메스다.
⑤ 무명(無明) : 범어로 「아빋댜」인데 「어리석은 마음」「어두컴컴한 마음」을 이름이다. 〈기신론(起信論)〉에는 이것을 두 가지로 나누어 말하니, 법계(法界)의 참이치에 어둡게 된 맨 처음 한 생각을 「근본무명(根本無明)」이라 하고, 이 근본무명으로 인하여 가늘거나 거칠거나 한 온갖 망령된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지말무명(枝末無明)」이라 한다.
⑥ 새로 닦는(新熏) : 어떤 중생이나 다 저절로 뚜렷한 본래면목(本來面目)이 부처님과 털끝만큼이라도 다를 것 없다. 그것을 본각(本覺)이라 한다. 그러나 무명의 업장(業障)이 두터운 중생은 불 보살의 교화를 받아서 발심(發心)하고, 부지런히 닦아서 비로소 크게 깨치는(大覺) 부처의 열매(佛果)를 새로 맺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시각(始覺)이라 하는데 시각을 이루는 수단 방법이 새로 닦는 것, 곧 신훈(新熏)이다.
참고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낼지니라.
출전 : 선가구감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