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가구감

선가구감(52)

근와(槿瓦) 2013. 10. 21. 01:30

 

선가구감(52)

 

염불이란 것은 입으로 하는 것은 송불이요, 마음으로 하는 것이 염불이다. 입으로만 부르고 마음으로 생각지 아니하면 도를 닦는 데 소용이 없다.

 

주해

「나무 아미타불」의 여섯 자 법문은 윤회를 결정코 벗어나는 지름길이다. 마음으로는 부처님의 세계를 생각하여 잊지 말고, 입으로는 부처님의 명호(名號)를 똑똑히 불러서 헛갈리지 말아야 한다. 이처럼 마음과 입이 서로 합치되는 것이 염불이니라.

 

평석

오조(五祖)스님이 이르기를

「자비의 참 마음을 지키는 것이 시방(十方)의 모든 부처님을 생각하는 것보다 낫다.」하였으며, 육조 스님은「딴 부처님만 생각하여서는 생사를 면하지 못할 것이요, 자기의 본심을 지키면 곧 저 언덕(彼岸)에 이른다.」하였고 또한

「부처는 제 성품 속에서 지을 것이요, 몸 밖에서 구하지 말라.」고도 하시고

「모든 사람은 염불하여 극락 세계에 나기를 원하지마는 깨친 사람은 그 마음을 절로 깨끗이 할 뿐이다.」「중생은 마음을 깨쳐서 절로 건지는 것이요, 부처님이 중생을 건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위에 말씀한 여러 어른들은 근본 마음을 똑바로 가르치시고, 딴 방편이 없었다. 이치대로 말하자면 참으로 그러하거니와 현실에 있어서는 극락(極樂)세계가 확실히 있는 것이고, 아미타불의 48원(四十八願)이 분명히 있었으므로, 누구나 열 번만 염불(念佛)하는 이는 그 원의 힘을 받아서 연꽃태(胎) 속에 가서 나며 쉽사리 윤회를 벗어난다는 것을 삼세(三世)의 모든 부처님이 다 같이 말씀하시고, 시방의 온갖 보살들도 모두 그 곳에 태어나기를 원하는 것이다. 하물며 옛날이나 지금이나 극락 세계에 가서 난 사람들의 사적이 분명하게 전하여 있으니, 공부하는 이들은 아예 그릇 알지 말라. 부디부디.

 

범어의「아미타」는 우리 말로 하면「끝 없는 목숨」또는「끝 없는 빛」이란 뜻이니, 시방과 삼세에 첫째 되시는 부처님의 명호이시다. 그 닦을 때의 이름은 법장(法藏) 비구이었는데 세자재왕(世自在王) 부처님 앞에서 48원(四十八願)을 세우고, 말씀하기를

「내가 성불할 때에 시방의 한량 없는 많은 세계의 모든 하늘 사람과  인간 사람들은 물론이요, 작은 벌레들까지라도 나의 이름을 열 번만 부르는 이는 반드시 나의 세계에 와서 날 것이다. 만약 이 원이 실현되지 못한다면 나는 성불(成佛)하지 않겠노라.」하였다. 옛 어른이 말씀하기를

「염불 한 마디에 악마들의 가슴이 떨리고, 그 이름이 저승 문서에서 지워지고, 연꽃이 금못에 나온다.」하였으며, 또한 참법(懺法)에 이르기를

「제 힘과 남의 힘이 하나는 더디고, 하나는 빠르다. 바다를 건너 가려는 사람이 나무를 심어서 배를 만들려면 더딜 것이니, 그것은 제 힘에 비유(比喩)한 것이요, 남의 배를 빌어서 바다를 건넌다면 빠를 것이니, 그것은 부처님의 힘에 비유한 것이다.」또한

「어린 아이가 물이나 불에 쫓기어 큰 소리로 부르짖게 되면 그 부모가 듣고 급히 달려 와서 구원하는 것과 같이 사람이 임종에 큰 소리로 염불한즉 부처님은 신통을 가지시므로 반드시 오셔서 맞아 가리라. 그것은 부처님의 자비는 세속의 부모보다도 더 깊으시고, 중생의 나고 죽는 고생은 물이나 불보다도 더 참혹한 까닭이다.」라고 하였다.

 

어떤 이가 말하기를

「제 마음이 정토(淨土)인데 새삼스럽게 정토에 가서 날 것이 없고, 제 성품이 아미타불인즉 따로 아미타불을 보려고 애쓸 것이 있으랴?」한다. 이 말이 옳은 듯하면서도 그른 것이다. 저 부처님은 탐하거나 성내는 일이 없는데 나도 탐욕이 없고 성내지도 않는가? 저 부처님은 지옥을 변하여 연꽃 세계로 만들기를 손바닥 젖히듯 하는데, 나는 죄업의 힘 때문에 늘 지옥에 떨어질까 겁만 나거든, 하물며 그것을 변하여 연꽃 세계가 되게 할 터이냐? 저 부처님은 한량 없는 세계(無量數世界) 보시기를 눈앞에 놓은 듯하거늘 우리는 담 밖 일도 모르지 않느냐? 그러기에, 사람마다 성품인즉 비록 부처지마는 실지 행동인즉 중생이므로 그 이치와 현실을 말한다면 하늘과 땅같이 떨어진 것이다.

 

규봉 선사(圭峰禪師)가 이르기를

「가령 몰록 깨쳤다 하더라도 결국은 점차로 닦아 가야 한다.」하였으니, 참으로 이 말이 옳다. 그러기에 제 성품이 아미타불이라는 사람에게 말해 보자. 어찌 천생으로 된 석가여래가, 자연히 생긴 아미타불이 있으랴? 각기 헤아려 보면 저절로 알게 될 것이다. 임종을 당하여 숨 끊어지는 마지막 큰 고통이 일어날 때에 꼭이 자유자재하게 될 성싶으냐? 만약 그렇지 못할 터이면 한때에 배짱을 부리다가 깊이 악도에 떨어지지 말아라. 또한 마명(馬鳴) 보살이나 용수(龍樹) 보살이 다 조사 스님이시지마는 분명히 말씀하셔서 극락 가는 길 닦기를 간절히 전하셨거늘 나는 어떤 사람이기에 극락 길을 마다하랴?

 

부처님이 친히 말씀하시기를

「서방 정토가 예서 멀다. 십만 팔천(十萬八千) 국토를 지나가야 한다.」하신 것은 둔한 사람들을 위하여 현실만을 말씀하신 것이요, 어떤 때에는「정토가 멀지 않다.」또는「마음(衆生)이 곧 부처(아미타불)라.」고도 하신 것은 영원한 사람들을 위하여 성품을 가르치신 것이다. 

 

교문(敎門)에는 권도와 실상이 있고, 말씀에는 드러남과 비밀이 있다.

만약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서로 합치(合致)한 이는 머나 가까우나, 갖추 통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조사의 문하에도 혜원(慧遠)과 같이 아미타불을 부른 이가 있었고, 서암(瑞巖)과 같이 주인공을 부른 이도 있었다.

 

출전 : 선가구감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석가모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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