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아함경-530-106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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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문 구담께서 모든 제사법을 꾸짖고, 고행하는 모든 사람들을 더러운 자라고 욕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구담이시여, 만일 어떤 사람이 '사문 구담은 모든 제사법을 꾸짖고 고행하는 사람을 더러운 자라고 욕한다'고 하면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을 법다운 말을 하고 법 중의 법을 성취하였으며 사문 구담을 비방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가섭아, 그가 만일 '사문 구담은 모든 제사법을 꾸짖고 고행하는 사람을 더러운 자라고 욕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법다운 말도 아니요, 법의 법을 성취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나를 비방하기 위한 것으로서 성실한 말이 아니다. 무슨 까닭인가? 가섭아, 나는 저들 고행하는 사람 중에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 지옥에 떨어지는 자가 있는 것을 보았고, 또 고행하던 사람이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 하늘의 좋은 곳에 나는 것도 보았다. 혹은 고행하는 사람이 즐겁게 고행하다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 지옥에 나는 것도 보았고, 혹은 고행하는 사람이 즐겁게 고행하다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 하늘의 좋은 곳에 나는 것도 보았다. 가섭아, 나는 이 두 세계에서 받는 과보를 다 알고 다 보았다. 그런데 내 어찌 모든 고행자를 꾸짖어 더러운 자라고 하겠는가? 내가 옳다고 바르게 말하면 그들은 곧 그르다고 말하고, 내가 그르다고 바르게 말하면 그들은 곧 옳다고 말할 것이다. 가섭아, 나에게는 사문 바라문과 같은 법도 있고, 사문 바라문과 같지 않은 법도 있다. 가섭아, 같지 않은 법이면 나는 곧 그것을 내버려둔다. 왜냐 하면 이 법은 사문 바라문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바라문들의 논점이 여래의 논점과 일치하지 않을 경우 여래는 그 문제를 일단 제쳐두고 함께 논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가섭아, 저 지혜 있는 사람은 이렇게 관찰할 것이다. '사문 구담도 착하지 않은 법에 대하여 탁하고 어두워 성현의 법이 아닌 것을 대하고 있으며 저 외도들의 스승도 혼탁하고 어두워 현성의 법이 아닌 착하지 못한 법을 대하고 있다. 어느 편이 능히 이 법을 멸할 수 있을까?' 가섭아, 저 지혜 있는 자는 이렇게 관찰할 때 이렇게 알고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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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사문 구담만이 능히 이 법을 멸할 수 있다.' 가섭아, 저 지혜 있는 자가 이렇게 관찰하고 이렇게 추구(追求)하고 이렇게 의논할 때 나는 그 가운데서 곧 명예를 얻게 될 것이다. 또 가섭아, 저 지혜 있는 자는 이렇게 관찰할 것이다. '사문 구담의 제자도, 착하지 못한 법에 대하여 탁하고 어두워 성현의 법이 아닌 것을 대하고 있으며, 저 외도 스승의 제자도 착하지 못한 법에 대하여 혼탁하고 어두워 성현의 법이 아닌 것을 대하고 있다. 어느 편이 능히 이 법을 멸할 수 있을까?' 가섭아, 저 지혜 있는 자는 이렇게 관찰하고 이렇게 알고 볼 것이다. '오직 사문 구담의 제자만이 능히 이 법을 멸할 수 있다.' 가섭아, 저 지혜 있는 자가 이렇게 관찰하고 이렇게 추구하고 이렇게 의논할 때에 나의 제자는 곧 명예를 얻을 것이다.
다시 가섭아, 저 지혜 있는 자는 이렇게 관찰할 것이다. '사문 구담도 청백하고 미묘하여 현성의 법인 모든 착한 법을 대하고 있으며, 저 외도들 스승의 제자도 청백하고 미묘하여 성현의 법인 착한 법을 대하고 있다. 어느 편이 능히 늘리고 넓히며 수행할 수 있을까?' 가섭아, 저 지혜 있는 자는 이렇게 관찰하고 이렇게 알고 볼 것이다. '오직 사문 구담만이 이 법을 늘리고 넓히며 수행할 수 있다.' 가섭아, 저 지혜 있는 자가 이렇게 관찰하고 이렇게 추구하고 이렇게 의논할 때에 나는 거기서 곧 명예를 얻을 것이다. 가섭아, 저 지혜 있는 사람은 이렇게 관찰할 것이다. '사문 구담의 제자도 청백하고 미묘하여, 성현의 법인 착한 법을 대하고 있다. 어느 편이 능히 증장하고 수행할 수 있을까?' 가섭아, 저 지혜 있는 사람은 이렇게 관찰하고 이렇게 알고 볼 것이다. '사문 구담의 제자만이 능히 이 법을 증장하고 수행할 수 있다.' 가섭아, 저 지혜 있는 자가 이렇게 관찰하고 이렇게 추구하고 이렇게 의논할 때에 나의 제자는 거기서 곧 명예를 얻을 것이다.
가섭아, 이것이 도(道)이고, 이것이 자취이다. 비구가 그 가운데서 수행하면 곧 '사문 구담은 때를 알아 말하는 사람, 진실을 말하고 이치를 말하고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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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말하고 율(律)을 말하는 사람이다'라고 스스로 알고 스스로 보게 될 것이다. 가섭아, 어떤 것이 도이고 어떤 것이 자취이며, 비구가 그 가운데서 수행하면 '사문 구담은 때를 알아 말하고 진실을 말하고 이치를 말하고 법을 말하고 율을 말하는 사람이다'라고 스스로 알고 스스로 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가섭아, 이에 비구는 염각의(念覺意)를 닦을 때 지식(止息)을 의지하고 무욕(無欲)을 의지하며 출요(出要)를 의지한다. 법(法)ㆍ정진(精進)ㆍ희(喜)ㆍ의(猗)ㆍ정(定)ㆍ사(捨)의 각의(覺意)를 닦을 때에도 지식을 의지하고 무욕을 의지하며 출요를 의지한다. 가섭아, 이것을 도(道)라 하고 이것을 자취[迹]라 한다. 비구는 이 가운데서 수행하며 스스로 알고 스스로 보게 된다. '사문 구담은 때를 알아 말하는 사람이며, 진실을 말하고 이치를 말하고 법을 말하고 율을 말하는 사람이다'라고 스스로 알고 스스로 보게 된다.”
가섭이 말했다.
“구담이시여, 비구가 이에 따라 수행하여 '사문 구담은 때를 알고 말하는 사람이며, 진실을 말하고 이치를 말하고 법을 말하고 계율을 말하는 사람이다'라고 스스로 알고 스스로 보게 하는 것으로는 오직 이 도와 자취만이 있습니다. 다만 더러운 고행만 하고도 바라문의 이름을 얻은 자도 있고 사문의 이름을 얻은 자도 있습니다. 더러운 고행이기에 바라문의 이름을 얻은 자도 있고 사문의 이름을 얻은 자도 있습니까? 구담이시여, 옷을 벗은 나형은 손으로써 제 몸을 가리고, 밤에 주는 음식은 받지 않으며['불수야식(不受夜食)'으로 되어 있으나 원ㆍ명 두 본에는 '불수강식(不受瓨食:항아리에 담긴 음식을 받지 않고)'으로 되어 있다.] 상한 밥['후식(朽食:썩은 음식)'으로 되어 있으나 송ㆍ원ㆍ명 3본에는 그 '우식(杅食 : 물그릇에 담긴 음식)'으로 되어 있다.]을 받지 않으며, 두 벽 사이에 있는 음식을 받지 않고 두 사람 사이에 있는 음식을 받지 않으며, 두 칼 중간의 음식은 받지 않고 두 말뚝 사이의 음식을 받지 않으며, 함께 음식을 먹고 있는 집의 음식은 받지 않고 아이 밴 집의 음식을 받지 않으며, 개가 문 앞에 있는 집의 음식은 받지 않고 파리가 날리는 집의 음식을 받지 않으며, 초청하여 주는 음식[請食]은 받지 않고 다른 사람이 '먼저 아는 척하면 그 집의 음식은 받지 않으며, 생선을 먹지 않고 고기를 먹지 않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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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마시지 않고 두 그릇으로 먹지 않으며, 음식을 한 번 받아서 한 번에 먹되 일곱 번이 되면 그칩니다. 남이 보태 주는 음식을 받되 일곱 번을 넘기지 않고, 혹은 하루에 한 끼만 먹고 혹은 2일ㆍ3일ㆍ4일ㆍ5일ㆍ6일ㆍ7일에 한 끼만 먹으며, 혹은 과일을 먹거나 가라지를 먹으며, 혹은 밥물을 먹거나 참깨를 먹으며, 혹은 쭉정이를 먹거나 쇠똥을 먹으며, 혹은 사슴똥을 먹거나 나무 뿌리ㆍ나뭇가지ㆍ나뭇잎ㆍ꽃ㆍ열매를 먹으며 혹은 저절로 떨어진 과일을 먹습니다. 옷을 입되 혹은 잔디옷을 입거나 나무껍질을 입으며, 혹은 풀을 몸에 두르거나 사슴 가죽옷을 입습니다. 혹은 머리를 기르기도 하고 털로 짠 것을 몸에 두르기도 하며 혹은 무덤에 버려진 옷을 입기도 합니다. 혹은 항상 손을 들고 있는 자도 있고 혹은 항상 자리에 앉지 않는 이도 있으며 혹은 항상 쭈그리고 앉는 자도 있습니다. 혹은 머리는 깎고 수염은 기르는 자도 있고 혹은 가시덤불 위에 눕는 자도 있으며 혹은 열매나 씨앗 위에 눕는 자도 있으며 혹은 알몸으로 쇠똥 위에 눕는 자도 있습니다. 혹은 하루에 세 번 목욕하기도 하고 혹은 하룻밤에 세 번 목욕하기도 하면서 무수한 고통으로 그 몸을 괴롭힙니다. 구담이시여, 이것을 더러운 고행이라 하는데 이로 인하여 혹은 사문의 이름을 얻기도 하고 혹은 바라문의 이름을 얻기도 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가섭아, 옷을 벗은 나형들은 무수한 방편으로써 그 몸을 괴롭힌다. 그러나 그들은 계(戒)를 구족하지 못했고 견해[見]를 구족하지 못했다. 그러니 부지런히 수행하지 못하고 또한 널리 펴지도 못하는 것이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떤 것을 계(戒)의 구족이라 하며, 어떤 것을 견해[見]의 구족이라 합니까? 모든 고행을 뛰어넘어 제일 미묘한 것이라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해 기억하라. 마땅히 그대를 위하여 설명해 주리라.”
가섭이 대답했다.
“예. 구담이시여, 듣기를 원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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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여래ㆍ지진이 세상에 나오면 나아가 네 가지 선법[禪]을 닦아도 현세에서 쾌락을 얻게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부지런히 정진하고 생각을 한곳에 모으며 한적한 곳을 즐기고 방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섭아, 이것을 계율을 구족하고 견해를 구족한 것이라 하는데 모든 고행보다 월등하고 제일 미묘한 것이다.”
가섭이 아뢰었다.
“구담이시여, 비록 계율을 구족하고 견해를 구족하는 것이 모든 고행보다 월등하고 제일 미묘한 것이라고 말씀하시지만 사문의 법은 어렵고 바라문의 법도 어렵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가섭아, 이것이 바로 세간과는 같지 않은 법[世間不共法]이기에 이른바 '사문의 법과 바라문의 법은 어렵다'고 하는 것이다. 가섭아, 심지어 우바이도 또한 능히 이 법을 안다. 다만 옷을 벗은 나형의 고행자들은 결국 무수한 방편으로 그 몸을 괴롭히지만 그 마음이 성냄이 있는 마음인가, 성냄이 없는 마음인가, 원한이 있는 마음인가, 원한이 없는 마음인가, 해롭게 함이 있는 마음인가, 해롭게 함이 없는 마음인가를 모른다. 만일 이 마음을 안다면 '사문 바라문이 되기가 어렵다'고 말하지 않을 것인데,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문 바라문이 되기가 어렵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 때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떤 사람이 사문이고 어떤 사람이 바라문입니까? 계율을 구족하고 견해를 구족하여 훌륭하고 뛰어나며 제일 미묘한 사람은 어떤 자들입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 잘 생각하고 기억하라. 마땅히 그대를 위하여 말해주리라.”
가섭이 대답했다. “예. 구담이시여, 듣기를 원하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가섭아, 저 비구는 삼매(三昧)의 마음으로써 결국에는 3명(明)을 얻는다.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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