ᄉ~ㅇ(시옷~이응)

유다수행(留多壽行)

근와(槿瓦) 2018. 11. 24. 03:01

유다수행(留多壽行)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留多命行이라고도 한다. 불타 및 俱解脫阿羅漢, 다른 有情을 이익하게 하고 또 敎法을 미래에 오래도록 머물게 하기 위해서, 衣鉢 등의 생활 필수품을 衆僧 등에 布施하고, 定力에 의해서 의 갚음을 받을 하여 壽命의 갚음을 받을 으로 하여, 이것에 의해서 스스로의 壽命을 늘리는 것. 이에 대해서 이 이상 살아가면서도 남을 이익하게 하거나, 또 질병의 괴로움에 핍박되기 때문에, 布施에 의해서 거꾸로 壽命의 갚음을 받을 하여 의 갚음을 받을 으로 하여, 이에 의해서 스스로의 壽命을 줄여서 滅度하는(죽음)것을 捨多壽行이라 하고, 합하여 留捨壽行이라 한다. 釋尊入滅에 임하여, (二十)定命을 줄여서 八十歲入滅하게 된 것은 捨多壽行이고, 入滅을 선언하고 난 다음 3개월의 壽命을 늘린 것은 留多壽行이다.

 

참고

불타(佛陀) : 범어 Buddha. 浮圖 · 浮屠 · 部陀 · 浮頭 · 勃䭾 · 母䭾 · 沒䭾라고도 음역. 意譯하면 깨달은 사람(覺者)이라 하고 줄여서 이라고 함. 우리 나라에서는 예로부터 부처라고 하여 왔다. 특히 불교인들의 완전한 용어로는부처님이다.

즉 불타께서는 B.C. 6세기경에 인도 카필라국에서 출생하시어 태자의 지위를 버리고 출가하여 일체의 번뇌를 끊고 우주의 참 진리를 깨달아 중생을 위해 설법하였던 석가세존을 존경하는 말이다. 그러나 불타는 깨달은 사람이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이, 불타 즉 부처는 석존 한 분에게만 국한된 절대적인 명칭은 아니다. 불타는 一切法, 즉 우주 만법의 참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고 알아서 더할 수 없는 진리를 체득한 大聖者를 의미하는 것이며, 그러한 대성자가 석존이시기 때문에 불타라고 한다. 이러한 부처의 이름은 여러 가지가 있어서 경전에 따라서는 60가지, 108가지, 또는 270가지나 있다. 그러나 佛陀觀은 시대와 종파에 따라 일정하지 않았다.

초기 석존의 시대에는 불타라 하면 석존을 가리켰고, 그 제자들에게 있어서 불타는 오직 석존 한 분 뿐이었다. 그러다가 후에 대승불교 시대에 이르는 동안 불타관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불타는 보통사람으로서는 얻을 수 없는 德相 즉 신체적 특징인 3280種好를 갖추고 정신적인 특수성으로서의 덕성인 十力 · 四無畏 · 三念住 · 十八不共法을 성취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불타는 生身 · 法身으로 나눌 수 있는데 부처의 肉身生身佛이라 하고, 그 부처가 얻은 그리고 그 부처의 본성인 진리()法身佛이라 하여, 2,500여 년 전에 80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신 역사적 불타인 석존은 생신(肉身)불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불타라고 할 때에는 보통 법신불을 말하는데, 이 법신불은 늙지도 병들지도 죽지도 않는 상주불멸의 존재라는 것이다.

이러한 佛身觀에 의하여 三身說(法身 · 報身 · 化身)이 나타났다. 실제에 있어서 불타로서 인류 역사상에 나타나기는 오직 석존 한 분 뿐이지만, 많은 불교성전에는 석존의 이전에 이미 毘婆尸佛 · 燃燈佛 등 과거의 부처와 미륵불 등 미래의 부처와 그리고 阿閦佛 · 阿彌陀佛 등 현재의 부처가 헤아릴 수 없이 많으시다. 이와 같이 많은 부처님들은 모두 역사상의 불타이신 석존을 기준으로 한 것으로서, 즉 과거의 여러 부처들은 석존이 因位에 있어서 수행을 쌓을 때 받들어 공양하고 또는 授記를 얻는 데에 관련이 되고, 또 장래의 부처인 미륵불을 비롯한 미래의 많은 부처들은 석존께서 이미 세상을 떠나셨으나 그 실제의 몸은 오히려 온 세계에 나타나서 교화를 쉬지 않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많은 부처가 출현하지만 이는 모두 하나의 큰 법신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아라한(阿羅漢) : 범어 arhan音譯. 이것은 男性, 主格, 單數이니, 原形arhat. 阿羅訶· 阿囉呵·阿盧漢·遏囉曷帝라고도 쓰고, 하여 羅漢·囉呵라고도 한다. 應供··殺賊·不生·無生·應眞·眞人이라고 번역한다. 보통 狹義로 풀이하여, 小乘불교에 있어서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이를 가리킨다고 하는데, 廣義로는 大乘·小乘을 통하여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應供이라 함은 供養을 받는데 응하는 이, 相應한 이, 공양을 받을 가치가 있는 이라는 의미인데,供養云云補足한 말로,은 확실히 이 말의 번역이다. 應供중에서 가장 훌륭한 것을 大應供이라 하고, 보통 佛陀異名이다. 殺賊이라 함은, 번뇌의 을 죽였다는 의미이며, 不生 또는 無生이라 함은, 영구히 열반의 깨달음에 들어가서 다시 미혹의 세계에 태어남을 받지 않는다는 의미인데, 이들 두 번역은 原語語義에 그대로 따른 것은 아니다. 이를 應供·殺賊·不生三義阿羅漢三義라고 한다.

如來十號의 하나. 이 경우는 佛陀異名.

四沙門果. 聲聞四果중에서는 최후의 자리. 여기에 다시 를 나눈다. 해서 수행하고 있는 사이가 阿羅漢向이고, 확실히 그 에 도달한 때가 阿羅漢果이다. 阿羅漢果聖者已達大德이라 한다. 이것은 최후의 理想세계로, 여기에 도달하면 모든 것을 다 배워서 다시 더 배워야 할 一法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無學 또는 無學果라 하고, 無學正見 내지 無學正定八聖道無學解脫·無學正智10종의 無漏法을 완성한다고 한다. 이것을 十無學支라고 한다.

俱舍論25에 의하면 아라한을 6종으로 분류해서, 6종 아라한을 세운다. ,

(1) 退法(또는 退相) 아라한(이미 얻은 아라한의 깨달음으로부터 退失하기 쉬운 사람).

(2) 思法(또는 死相) 아라한(退失이 두려워서 自害하려고 생각하는 사람).

(3) 護法(또는 守相) 아라한(退失하지 않으려고 防護하는 자).

(4) 安住法(또는 住相) 아라한(防護하지 않더라도 대개는 退失하지 않지만 또한 增進하기도 어려운 자).

(5) 堪達法(또는 可進相) 아라한(增進해서 빨리 다음의 不動法을 통달하는 자).

(6) 不動法(또는 不壞相) 아라한(전혀 退失하지 않는 자). 이들 중에서 앞의 5는 성품이 遲鈍한 자(鈍根)時解脫이라고도, 時愛心解脫이라고도 하고, 뒤의 1은 성품의 예리한 자(利根)不時解脫이라고도, 不動心解脫이라고도 한다. 또 아울러서 2羅漢이라고 한다. 時解脫은 좋은 이 있는 때를 기다려서 에 들어가 번뇌를 해탈하는 자, 不時解脫은 때를 기다리지 않고 入定하여 해탈하는 자, 時愛心解脫은 이미 얻은 아라한의 깨달음을 항상 애호해서 번뇌를 해탈하는 자, 不動心解脫은 번뇌 때문에 아라한의 깨달음에서 退失하지 않고 해탈하는 자를 의미한다. 不動法아라한 중에서, 본래 利根(예리한 성격자)不退()(또는 不退相) 아라한이라 하고, 수행의 힘에 의해서 不動法아라한에 나아간 자를 不動法아라한이라고 하여 둘로 나누고, 이것을 앞의 5에 더해서 7종 아라한이라고 하며, 不動法아라한을 不動아라한이라고도 한다. 여기에 다시 緣覺을 더하여 9종 아라한 또는 九無學이라고 한다.

成實論 , 中阿含經 十三에는, 緣覺·대신 慧解脫·俱解脫을 더한 또 다른 형의 9종 아라한(九無學)하고 있다. 그 중 慧解脫은 지혜의 힘에 의해 번뇌를 해탈한 아라한을 말하고, 俱解脫慧解脫人이 다시 滅盡定을 얻은 경우를 말한다. 이것을 俱解脫이라고 일컫는 것은, 滅盡定을 얻은 것이 心解脫을 의미하고 있고 따라서 마음과 ()해탈을 얻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慧解脫俱解脫2羅漢이라 하고, 여기에 無疑解脫을 더하여 3羅漢이라고 한다. 無疑解脫이라 함은, 俱解脫 중에서 일체의 文義에 통달하여, 四無礙解를 얻은 자를 말함.

天台宗에서는 아라한이 不淨觀을 닦는 경우 그 對境의 차이를 따라 壞法·不壞法2羅漢으로 나눈다.

 

() : 사물이 인연에 의하여 생기는 것을 이라 함.

 

구해탈(俱解脫) : 九無學의 하나. 에 대하는 두 개의 장애, 煩惱障解脫障을 함께 벗어나는 것. 滅盡定에 들기 위한 장애를 해탈한 것.

 

구무학(九無學) : 9종의 無學. 아라한에 9종이 있음을 말함. (1) 구사론의 설. 退法·思法·護法·安住法·堪達法·不動法·不退法·慧解脫·俱解脫. (2) 성실론의 설. 退相·守相·死相·住相·可進相·不壞相·不退相·慧解脫相·俱解脫相을 말함.

 

번뇌장(煩惱障) : 번뇌장은 惑障이라고도 하고 깨달음에 이르는 길, 聖道를 방해해서 열반을 얻지 못하게 하는 번뇌를 말함.

俱舍論 卷十七, 卷二十五에서는 자주 일어나는(數行의 것으로) 無漏가 생기는 것을 방해하여, 慧解脫을 얻지 못하게 하는 煩惱煩惱障이라고 하고, 煩惱障을 여의어 慧解脫을 얻어도 滅盡定을 얻는 것을 방해하여 俱解脫을 얻지 못하게 하는 장애를 解脫障(定障)이라고 한다. 前者染汚無知, 後者不染汚無知로 한다고 볼 수 있다. 大毘婆沙論 卷百四十一에서는, 煩惱障染汚無知, 所知障不染汚無知라고 하는 것처럼 각각 四正斷前二 · 後二로 끊어진다고 한다.

成唯識論 卷九에서는, 중생의 身心을 교란시켜 열반에 이르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煩惱煩惱障, 을 일으키어 三界(의 세계)에 나게 하는 작용이 없지만, 알아야 할 대상을 덮어서 正智가 생기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번뇌를 所知障(智障)이라고 한다. 二障은 어떤 것이나 薩迦耶見을 비롯해서 百二十八의 근본번뇌 및 二十隨煩惱로 한다. 그 가운데서실체의 사람, 실체의 중생이 있다고 하며 나를 집착하는 [我執] 면을 煩惱障이라고 하며,사물에는 실체가 있다고 하여 을 집착하는 [法執]면을 所知障이라 한 것으로서, 동일한 번뇌의 二面이다. 그러므로 煩惱障我執을 근본으로 하고, 所知障法執을 근본으로 한다고 한다. 그 작용의 특징에서 말하면 煩惱障은 열반을, 所知障菩提를 장애한다. 煩惱障은 열반을 장애하는 正障이며 所知障은 이 正障에 힘을 주어 장애시키는 兼障이기 때문에 所知障만으로는 열반을 장애하는 능력이 없다. 煩惱障肋緣으로 하여 分段生死를 받고, 所知障肋緣으로 하여 變易生死를 받는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二乘煩惱障만을 끊은 자리()理想果位로 하지만 보살은 二障을 다 같이 끊어서 佛果를 얻는 것을 理想으로 한다. 그것은 보살에 있어서는, 所知障三界果報를 이끄는 일은 없지만 곧잘 無漏業을 도와서 變易生死를 받게 하기 때문이다.

大乘義章卷五에서는 五住地에 대해서 前四煩惱障, 최후의 無明住地智障이라 한다 등의 세 주장을 들고 있다.

世親金剛般若波羅蜜經論卷上에는 見思煩惱障이라 하고, 이를 끊고 얻는 無諍三昧에 집착하는 것을 三昧障이라 했다.

 

해탈장(解脫障) : 二障의 하나. 또는 定障. 해탈 곧 滅盡定에 들어가는 것을 방해하는 일종의 不染汚無知를 일컫는다. 멸진정은 心念이 아주 없어져서 여러 가지 장애에서 벗어나므로 해탈이 에 들어가는 것을 장애하는 번뇌를 解脫障이라 한다.

 

멸진정(滅盡定) : 滅受相定이라고도 하고 滅盡三昧라고도 일컬을 때가 있다. 心不相應行法의 하나. 心所(마음의 작용)를 모두 단절한 으로서 無想定과 더불어 二無心定의 하나로 불리운다. 無所有處의 번뇌를 떠난 聖者가 그 의 경지를 無餘涅槃의 고요함에 견주어 無心寂靜境을 즐기기 위해 들어가는 이니, 을 닦음으로서 無色界第四天有頂天에 태어난다고 한다. 有部에서는 이 을 그 실체가 따로 있다고 주장하나 經部唯識宗에서는 假的인 것으로 본다. 唯識宗에서는 이 으로는 阿賴耶識은 끊을 수 없다고 하며, 分別論者할 수 있지만 細心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입멸(入滅) : 滅度에 들어가는 것. 滅度을 끊고 生死苦海를 건너가는 뜻. 證果에 들어간 사람의 죽음.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낼지니라.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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