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적경-3390-678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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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고 관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른 소견으로 불·법·승을 보는 것이니, 그것이 삿된 소견[邪見]이면 뒤바뀜을 여의지 못하느니라.
만일 모든 소견에서 생각하는 바가 없이 으뜸가고 묘하고 중간(中間:中道)이면 이것을 바른 소견이라 하느니라. 왜냐 하면 그것들과 같이 관찰한다면 곧 삿됨이 없기 때문이다. 무엇으로 소견을 삼는가 하면 그가 보는 것에서는 마땅히 평등하게 보아야 하느니라.
범부의 법은 비천하다 여기고 배워야 할 법은 높다고 여기면서 이와 같이 보게 되면 곧 삿된 소견이요, 범부의 법은 더러운 행이 아직 사라지지 못하였고 보살의 법은 번뇌가 없다고 여기면서 이와 같이 보게 되면 곧 삿된 소견이며, 범부의 법은 유루(有漏)라고 여기고, 배울 것이 없는 법은 무루(無漏)라고 여기면서 이와 같이 보게 되면 곧 삿된 소견이요, 범부의 법에서는 옷과 밥을 구함이 있고 연각의 법에서는 공양을 바라지 않는다고 이와 같이 보게 되면 곧 삿된 소견이 되느니라. 또 소인(小人)들의 뜻에는 바라는 것이 있거니와 보살의 뜻에는 바라는 것이 없다고 여기면서 보게 되면 곧 삿된 소견이요, 범부의 법에서는 방일하다 여기고 보살의 법에서는 욕심이 없다고 여기면서 보게 되면 곧 삿된 소견이며, 범부의 법은 모두가 유위(有爲)의 일이고 부처님의 바른 법은 바로 무위(無爲)의 도(道)라고 여기면서 보게 되면 곧 삿된 소견이 되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이가 범부의 법을 관찰하면서 '온갖 법은 모두 본래부터 깨끗하고 그 배우는 법[學法]도 역시 본래부터 깨끗하다'라고 하여 모든 법은 모두가 스스로 그러하다[自然]고 관찰해야 비로소 바른 소견이 되느니라. 범부의 법이나 배우는 법도 역시 공하므로 배우는 법이 공임을 분명히 알아야 비로소 바른 소견이 되느니라.
범부의 법은 인연(因緣)에 있어서 평등하다 여기고 이와 같은 연각(緣覺)의 법도 역시 인연에 있어서 평등하다고 깨달아 알아야 비로소 바른 소견이 되느니라. 범부의 법은 고요하면서 잠잠하고 보살의 법도 역시 욕심이 없으면서 깨끗하다고 알아야 비로소 바른 소견이 되느니라. 범부의 법은 성취된 바가 없고 모든 부처님의 법도 역시 마지막[究竟]이 없다고 알아야 비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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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소견이 되느니라.
그 바른 소견이란 마음에 둘을 받아들이지 않고 둘이라고 보지도 않으며 사람 또한 둘이 없고 나도 보지 않으면 곧 바른 소견이니라. 약간(若干)의 보는 것도 없고 약간 다르게도 보지 않으면 평등하게 관찰하는 것이므로 곧 온갖 모든 법에 상·중·하가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온갖 법에 대하여 생각할 것도 없다고 보게 되나니, 이 때에야 비로소 바른 소견이 되느니라.
그 바른 소견이란 약간의 보는 것도 없고 볼 것도 없으며 또한 보게 되는 이도 없어야 비로소 바른 소견이 되느니라.
족성자야, 이것이 온갖 법을 관찰하면서 이와 같이 깨달아 아는 사람이라야 비로소 법과 계율을 차례대로 펴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이 말씀을 하실 때에 5백의 비구들이 번뇌가 다하면서 뜻이 풀렸다.
부처님께서 보계(寶髻)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이른바 바른 생각[正念]이라 함은, 모든 생각과 생각하지 않음을 다 함께 없애고 한군데로 모아 고요히 하여 지혜와 덕을 관찰하여 담박(澹泊)한 법에 이르게 하며 관찰하는 바를 분명히 알면서 모든 법을 보는 것이니라. 생각할 바를 믿는 이는 '무엇을 법이라 하고 무엇을 법이 아니라고 할까' 하여 모든 법은 각각 다르고 차이가 있음을 알면서 서로 친근하지도 않나니, 이렇게 분명히 알게 되면 평등함조차도 생각하지 않거든 하물며 삿되고 아직 있지도 않은 것을 믿겠느냐. 온갖 생각에서 생각하거나 생각하지 않는 것도 없고 다시 생각할 것도 없으며 응(應)하거나 응하지 않음도 없으면 이것을 바른 생각이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무엇을 바른 말[正言]이라 하는가 하면 그가 말한 말에서 자기 자신을 보지도 않고 다른 사람도 보지 않으면서 나와 남에 집착하지 않으며 자기 몸을 위태롭게 하지도 않고 다른 이도 위태롭게 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을 바른 말이라 하느니라. 또 바른 말이라 함은, 모든 법을 평등하게 알고, 온갖 법은 없어져 다한 것임을 알며, 온갖 법은 성현의 법과 해탈에 귀착한다 함을 알면서 하는 말이니 이것을 바른 말이라 하나니, 인자한 마음을 받들어 행하고 거듭 더 가엾이 여기며 친한 이나 원수에 구별이 없고 바른 말도 역시 공하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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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모든 법을 평등하게 연설하며 모양도 없고 원하지도 않으면서 모두 지을 바가 없으며 생기지도 않고 일으키지도 않으며 모든 법의 말은 평등하고 모든 법은 덧없고 괴롭고 공하고 몸이 아니라는 가르침이기 때문이니라. 그 바른 말이라 함은, 온갖 모든 법에는 사람도 수명도 없으므로 모든 법을 평등하게 연설하고 뜻의 연[意緣]으로부터 일어남은 마치 그 심은 종자대로 그 열매를 얻는 것과 같은 지라 보살은 중생에게 평등하게 보이면서 그 경법(經法)을 연설하여 부처님 도를 행하게 하는 것이니, 그 바른 말이 깨끗하면 모든 시방의 부처님이 옹호를 받게 되느니라. 이것을 바른 말이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이른바 바른 행위[正業]라 함은 모든 지을 행위를 녹여 없애고 다시는 그 원인이 될 근원을 짓지 않으며, 닦는 행위로는 뭇 고뇌를 없애고 모든 통상 하는 일도 모두 헛된 일로 알게 하며 삿된 행위를 일으키지 않고 번뇌를 여의어 더럽고 흐림이 없어야 하는 것이니, 이것을 바른 행위라 하느니라. 만일 어떤 보살이 이 행위와 모든 법을 분명히 알면서 모든 선의 근본[善本]에서도 짓는 바가 없이 덕행을 닦으면 이것을 말하여 짓는 바 없이 곧 행을 지음이라 하며 허망하고 긴요함도 없는 공허(空虛)한 집[宅]을 짓는 것이다. 이것을 말하여 보살은 으뜸가고 높은 도를 행하는 바른 행위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이른바 바른 생활[正命]이라 함은, 나가 있다고 헤아리지 않고 남이 있다고도 헤아리지 않는 것이니, 이것을 바른 생활이라 하느니라. 그 바른 생활이라 함은 역시 온갖 번뇌를 쌓지도 않느니라. 보살의 바른 생활은 곧 중생이 부처 되려는 뜻과 성품[志性]을 깨끗하게 닦으며 이미 그 뜻과 성품이 깨끗해지면 스스로 몸을 헤아리지도 않고 또한 수명 등도 없으며 그와 나와 그리고 법을 위하기 때문에 깨끗한 이치를 수행하니, 이것을 바른 생활이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이른바 바른 방편[正便]이라 함은, 해서는 안되고 법이 아닌 일에 대하여는 마음에 덕(德)을 버리지 않고 지을 방편에 편안하면서 겁을 내지 않으며 바른 행을 맑고 깨끗이 닦으면서 거기에 가까이 하는 것이니, 이것을 바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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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편이라 하느니라. 그 바른 방편이라 함은, 삿된 방편을 쓰지 않고 지을 방편에서도 그 말대로 하며 모든 법의 같음과 같지 않음을 헤아리지 않고 짓거나 짓지 않는 것도 없으며 모든 법이 머무르는 그대로 그 행할 바를 따르면서 방편을 베푸는 것이니라. 그리고 마치 이 법에서와 같이 모두 부처님의 법을 헤아림도 역시 그와 같나니, 저 고요한[寂然] 그대로의 일을 방편으로 삼으면 모든 법은 평등하여 차이가 없고 행할 바도 역시 평등할 것이므로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삿된 방편을 제거하면서 모든 신통과 지혜를 돕고 권하는 것이니라. 이것이 보살로서 행해야 할 바른 방편이니라.”
부처님께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이른바 바른 뜻[正意]이라 함은 부처님 도를 기억하면서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와 자(慈)·비(悲)·희(喜)·호(護)를 생각하는 것이니, 이것을 바른 뜻이라 하느니라. 생각할 때는 은근하게 하면서 온갖 번뇌[塵勞]의 더러움을 듣지 않고 악마의 틈[便]을 따르지 않나니, 그 생각할 삿된 것은 마음을 기울여 내되 삿된 소견[邪見]에 떨어지지 않고 그 뜻을 잘 부려서 그 생각할 바를 다스림은 마치 문을 지키는 이가 닫고 여는 일을 아는 것같이 하며 온갖 착하지 않은 생각을 없애버리고 생각하는 것도 없으며 삿된 생각을 허락하지도 않나니, 이것을 바른 뜻이라 하느니라. 보살은 이미 이 바른 뜻에 있으면서 이 안의 번뇌가 고요히 사라진 도[寂滅道]의 성품에서 깨달음의 과위를 증득하여 취하지 않나니, 이것이 보살의 바른 뜻에서의 깨끗한 행이니라.”
부처님께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이른바 보살의 바른 선정[正定]이라 함은 성현의 행을 따르면서 괴로움의 진리[苦諦]를 알고, 괴로움의 원인이라는 진리[集諦]의 종자를 끊으며, 사라짐의 진리[滅諦]의 종자를 증득하고, 도의 진리[道諦]의 종자를 받드는 것이니, 이것을 바른 선정이라 하느니라.
그가 만일 바르게 받아들이면[正受] 자기 몸을 평등하게 여기면서 모든 법도 또한 평등히 하며 자기 몸이 깨끗해지면서 모든 법도 역시 깨끗해지며 자기 몸이 공하니 모든 법도 역시 공하여지나니, 선정의 뜻으로 바르게 받아들여 곧 평등한 데로 들어가서 대하여 없어짐[滅盡]에 떨어지지 않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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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보살로서 바른 선정에서의 청정한 행이니라.
또 발심(發心)할 때 행하는 바가 평등하여 지혜와 온갖 거룩한 복을 두루 갖추면서 모든 법을 깨달아 환히 아나니, 이것이 보살로서 바른 선정에서의 깨끗한 행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바른 선정의 깨달음을 말씀하실 때에 천 6백의 하늘과 사람으로서 소승(小乘)을 좋아하여 이미 그 법에 들어가 행하고 있던 제자들이 그 법을 바꾸어서 최고의 바르고 참된 도의 뜻[無上正眞道意]을 내었다.
부처님께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무엇을 말하여 보살이 깨달음의 뜻[覺意]을 보호한다 하는가 하면 그 마음을 돕고 기르면서 일어나지 않게 하며 탐냄·성냄·어리석음을 제거해서 물질[色]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느낌[痛]·생각[想]·지어감[行]·의식[識]에서도 그 세 곳[三處]에 있으면서 집착함이 없으며, 삼계(三界)를 홀로 걸으면서 3해탈문(解脫門)을 지나가고 3달(達)의 지혜에 이르러 과거·미래·현재를 보되 거리낌이 없으며 중생을 교화하여 모든 더러운 때를 없앰이 마치 햇빛이 비추지 않는 곳이 없는 것 같이 하고 착한 방편과 지혜로 때를 따라서 다투어 보이며 3세에 노닐되 마치 물 속의 연꽃과 같이 하고 모두를 교화하여 도의 뜻을 일으키게 하나니, 이것을 보살이 도를 깨닫는 뜻을 보호하는 깨끗한 행이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보계에게 말씀하셨다.
“무엇을 보살이 성취한 신통(神通)의 깨끗한 행이라 하며, 또 다섯 가지 일로써 두루 갖추어 꿰뚫어 본다고 하는가 하면 다섯 가지 일이란 곧 광명을 체득하므로 천안(天眼)이라 하고 또 시방을 두루 비추어 어둠을 녹이면서 빛나게 하지 않음이 없고 모든 부처님이 교화하는 것과 많이 제도하시는 것을 보게 되기 때문에 천안이라 하며 또 멀리서 중생이 처음부터 끝까지 나아가는 것을 보고 그 뜻을 장엄하므로 천안이라 하느니라.
또 시방의 온갖 틀과 빛깔[形色]과 모습[像貌]과 종류(種類)와 고움과 미움[好醜], 길고 짧음[長短]을 모두 보나니 그 천안은 걸리는 것이 없고 뜻과 생각이 고요히 사라지며 그 모양은 함[爲]이 없고 모든 하늘·용·신·건달바와 성문·연각보다 뛰어나게 그 처음과 끝[本末]을 보되 통달하지 않...
-나무 관 세 음 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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