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소성인(大小聖人)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대승의 聖人과 소승의 聖人을 통털어 일컫는 말. 見道이상의 경지에 이른 이로서, 大乘에서는 初地이상의 보살을 말하고 小乘에서는 初果 즉 須陀洹 이상을 말한다.
참고
대소이승(大小二乘) : 大小는 대승 · 소승을, 乘은 탈 것. 곧 수레를 가리킨다. 사람을 싣고 이상의 경지인 열반으로 운반하는 敎法을 수레에 비기어 한 말. 대승은 일체중생을 성불의 길로 이끄는 큰 수레라는 뜻이고, 소승은 자기의 깨달음만을 위주로 하므로 작은 수레 밖에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성인(聖人) : ① 범어 arya의 번역으로 聖者 · 聖이라고도 한다. 聖智를 깨달은 見道 이상의 사람. ② 불 · 보살 또는 權化人(거짓으로 사람의 모습을 한 聖德이 있는 사람).
견도(見道) : [修道] · [無學道] 修行의 한 階位. 합하여 三道라고 한다. 見道는 見諦道, 見諦라고도 말하고, 비로소 無漏道를 얻어 四諦(佛敎의 眞理)를 現觀하는(明了하게 본다) 位. 따라서 見道에 도달하기 이전은 凡夫(異生)이고, 見道에 들어간 뒤는 聖者이다. 修道는 見道 뒤에 다시 구체적인 事象에 대처하여 몇 번이고 되풀이 해서 修鍊 · 修習하는 位. 見道와 修道를 합하여 有學道라고 하며, 이에 대해 無學道는 無學位 · 無學果 · 無學地라고도 하고, 궁극적 최고의 깨달음에 들어가서, 이미 배울 것이 없는 位를 말한다. 小乘에서는 三賢 · 四善根 등의 준비적 修行(七方便)을 닦은 사람이 비로소 無漏智를 얻어 見道에 들어간다고 하며, 大乘에서는 初地 入見道라 하여 보살의 初地를 見道, 第二地 이상을 修道, 第十地와 佛果를 無學道라 하고, 密敎에서도 淨菩提心이 처음으로 생기는 자리를 見道라고 한다. 無漏智에서 道理를 명확히 가려내는 것(決斷簡擇한다)을 決擇이라 하며 見道는 決擇의 일부분이므로 決擇分이라 하고, 또 열반의 깨달음 혹은 그에 이르기 위한 聖道는 邪가 아니므로 正性이라고 하지만, 특히 見道를 正性이라 한다. 모든 聖道는 번뇌를 여의게 하므로 離生이라 하지만, 특히 見道는 異生(곧 凡夫)의 生을 여의게 하므로 離生이라 한다. 따라서 見道를 正性離生 · 正性決定(決定이란 반드시 열반으로 나아간다는 뜻)이라고도 한다. 見道에서 끊는 번뇌를 見道所斷(또는 見道斷, 見所斷)의 번뇌, 약하여 見惑이라고 하며, 修道에서 끊는 번뇌를 修道所斷(또는 修道斷, 修所斷)의 번뇌, 약하여 修惑이라 한다. ① 有部에서는, 見道에서 苦 · 集 · 滅 · 道의 四諦를 現觀하는 無漏智로써 틀림없이 見惑을 끊는다고 한다. 또, 無間道의 智(곧 忍)와 끊은 뒤에 四諦의 진리를 깨닫는 解脫道의 智가 있고, 이것을 觀察의 대상에 따라 八忍八智의 十六心이라 한다. 즉 欲界의 苦諦에 관한 無間道의 智를 苦法智忍, 欲界의 苦諦에 관한 解脫道의 智를 苦法智라 하고, 이와 같이 色界 · 無色界의 苦諦에 관한 忍과 智를 苦類智忍 · 苦類智, 마찬가지로 欲界에 대한 集法智忍 · 集法智, 上二界에 대해서는 集類智忍 · 集類智, 欲界에 있어서의 滅法智忍 · 滅類智, 欲界의 道法智忍 · 道法智, 上二界의 道類智忍 · 道類智를 세우고 이 十六心(刹那)의 觀法을 聖諦現觀이라 한다. 이 가운데 前十五心까지가 見道이고, 이 十五心을 見道十五心이라 한다. 道類智는 四諦의 眞理를 다 안 뒤의 지혜이므로 修道에 속한다고 한다. 修道는 三界 九地의 修惑의 각각에 대하여 上上品으로부터 下下품까지의 九品을 합한 八十一品의 修惑을 끊는 修道과정이다.
次第證의 편에서의 見道는 預流向이므로 第十六心(道類智)에 있어서 初果(預流果)를 깨닫지만, 이미 異生位(凡夫位)에서 世俗智에 의해 有漏의 六行觀을 닦는 修惑의 일부를 끊은 超越證은 第十六心에서 그 정도에 따라 初果 · 第二果(一來果) · 第三果(不還果)를 깨닫는다고 했고, 修道란 그 果로부터 각각 阿羅漢向까지를 말한다. 無學道는 阿羅漢果를 깨닫는 자리를 말하고, 여기에 능력 · 성질 등의 高下에 따라, 退法 내지 不退法의 七種阿羅漢에 獨覺 · 佛, 또는 慧解脫 · 俱解脫을 더한 九無學이 있다고 하며, 또 無學人은 無學正見 내지 無學正定의 八聖道와 및 無學解脫 · 無學正智의 열가지의 無漏法(十無學支)을 완성한다고 한다. 또, 鈍根은 見道에서 隨信行, 修道에서 信解, 無學道에서 時解脫을 얻는다고 하지만 利根은 차례로 각각 隨法行 · 見至 · 不時解脫을 얻는다고 한다.
② 經部나 成實論에서는 八忍八智의 十六心이 모두 見道에 속한다고 해서 十六心見道(十六心見諦)의 說을 취하고, 犢子部에서는 一諦에 대해 法智 · 法忍(有部의 說과는 별도) · 類智의 三心이 있다고 하여 十二心見道의 說을 취하고, 第十三心은 최후의 道類智가 앞의 刹那에 이어 다시 일어난다고 하고, 혹은 一刹那로써 四諦의 모두를 다시 觀한다고 하며, 第十三心부터가 修道位라고 한다. 또 大衆部에서는 頓現觀의 說을 주장하여 四諦의 모두를 한 찰나에 깨닫는다고 하고, 혹은 一時頓現觀의 說을 세워 먼저 총괄하여 觀하고 다음에 상세히 觀하므로 二刹那에 깨닫는다고도 한다. 이에 대해 有部의 說을 漸現觀이라 한다.
③ 唯識宗에서는 見道를 眞見道와 相見道로 나눈다. 전자는 根本(無分別)智를 일으켜 眞如의 이치를 깨닫고, 煩惱障 · 所知障의 분별의 隨眠을 끊는 자리이다. 이것은 一心眞見道의 說(頓證頓斷說)이다. 相見道는 眞見道를 얻은 뒤에 後得智를 일으켜 다시 眞如의 理를 觀하는 자리로, 이것은 더욱 더 三心相見道(첫째 자기의 육체를 觀察하여 我空 즉 有情으로서의 我體가 없음을 깨닫고, 둘째로 이와 같이 法空 곧 모든 것에는 實體가 없음을 깨달으며, 셋째로 自他의 모든 有情의 온갖 것을 觀察하여 我空과 法空을 깨닫는 것)와 十六心相見道(十六心으로 四諦를 觀한다)로 분류된다. 三心相見道를 眞見道에 포함시켜 三心眞見道의 說(漸證漸斷說)을 취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見道에 있어서 見惑을 끊어서 無分別智를 얻지만, 아직 餘障이 있기 때문에 修道를 하여 더욱 無分別智를 닦고 익혀 차례로 十重障을 끊고, 第十 金剛無間道에서 煩惱障과 所知障의 종자를 끊어 없애고 無學果를 깨닫는다. 이 三道를 五位에 비교하면, 見道는 通達位, 修道는 修習位, 無學道는 究竟位에 해당한다.
초지(初地) : 곧 歡喜地(淨心地. 慧遠의 大乘義章 卷十四에서 해석하고 있는 자리로서, 처음으로 聖者가 되어서 크게 기쁜 마음이 일어나는 자리임). 보살이 成佛하기까지 52位의 階位가 있는 가운데 제41位. 十地 중 첫째 階位.
보살(菩薩) : 菩提薩埵 · 菩提索多 · 冒地薩怛縛 · 扶薩이라고도 하며, 道衆生, 覺有情, 道心衆生 등이라고 번역한다. 또한 無上菩提를 구하여, 衆生을 이익케 하고, 모든 波羅蜜의 行을 닦아서 미래에 불타의 깨달음을 열려고 하는 사람. 三乘의 하나. 十界의 하나. 보살에게는, 깨달음의 지혜를 구하는 有情(心識을 가진 자. 衆生)이라고 하는 뜻이나, 혹은 菩提(구하는 목적인 깨달음)와 薩埵(敎化의 대상으로서의 중생)를 대상으로 하여 자기도 이롭고 다른 사람도 이롭게 하는 것, 菩提를 얻을려고 하는 용맹한 큰 마음 등의 뜻이 있어, 聲聞이나 緣覺도 각기 菩提(覺智)를 구하는 점에서는 보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므로, 특히 無上菩提를 구하는 大乘의 수행자를 摩訶薩埵(摩訶는 크다는 뜻) · 摩訶薩 또는 菩薩摩訶薩 · 菩提薩埵摩訶薩埵 · 摩訶菩提質帝薩埵 등이라고 하여, 二乘으로부터 구별하여 이것을 보살이라고 한다. 보살에는 開士(보리살타) · 大士(마하살타) · 尊人(제일살타) · 聖士(勝薩埵) · 初士(最勝薩埵) · 上人(上살타) · 無上(無上살타) · 力士(力살타) · 無雙(無等살타) · 無思議(不思議薩埵), 또 용맹 · 無上 · 佛子 · 佛持 · 大師 · 大聖 · 大商主 · 大名稱 · 大功德 · 大自在, 혹은 正士 · 始士 · 高士 · 大道心成衆生 · 法臣 · 法王子 등 많은 다른 이름이 있다. 보살에는, 在家와 出家, 鞞跋致(退轉)와 阿鞞跋致(不退), 生身(번뇌를 끊지 않은 자)과 法身(번뇌를 끊어서 六神通을 얻은 자), 生死肉身과 法性生身, 大力과 新發心, 頓悟와 漸悟, 智增과 悲增 등의 두 가지의 보살이 있다고 하고, 또 깨달아 아는 깊고 얕음에 의해서 五十二位 등의 階位를 세운다(보살의 階位). 智增 · 悲增의 說은 法相宗에서 說하는 바로 八地 이전의 보살에 관한 분류이며, 直往의 보살(頓悟의 보살에 대해서 말하면 初地에 있어서 俱生起의 번뇌障의 現行을 억누르기를 다하고 곧바로 變易身을 받는 것을 智增의 보살, 제 七地의 滿心까지 다 억누르지(항복) 못하고 分段身을 받아서 중생을 구할려고 하는 것을 悲增의 보살 혹은 大悲보살이라고 하며, 廻心의 보살(漸悟의 보살)에 대해서 말하면 不還과 阿羅漢에서 廻心한 이는 欲界의 번뇌를 끊고 있기 때문에 智增이며, 預流와 一來에서 廻心한 이는 智增 또는 悲增이라고 한다. 이 밖에 智悲평등의 보살이 있다고 한다. 또 十身位의 보살을 새로 발심한 보살, 住前信相의 보살, 假名의 보살 등이라고 한다. 보살의 닦는 행을 보살행, 보살이 해야 할 법칙양식을 보살의 法式, 佛果에 이르게 하는 敎를 보살승, 그 경전을 보살藏이라 하는데, 梵網經 등에는 보살이 지녀야 할 보살계를 說한다. 모든 경전에는 彌勒 · 文殊 · 觀世音 · 大勢至를 비롯 여러 보살의 이름을 들고 있다. 또 역사상의 인물로서는 龍樹 · 世親 등을 보살로 부르고 있다.
수다원(須陀洹) : 범어 srota-apanna. 성문 4果의 하나. 預流果의 梵名이며, 無漏道에 처음으로 참례하여 들어간 地位.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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