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돈성불론(圓頓成佛論)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고려시대 조계종의 開祖 보조국사 지눌(1158~1210)이 화엄의 대의를 밝힌 책. 成佛論이라고도 한다. 1권 1책. 印本. 당시 불교계가 禪敎 兩宗으로 갈리어 서로 반목함을 개탄하여 선종에 대한 교종의 오해를 해명하기 위하여 이 책을 지었다고 한다. 화엄경, 특히 李通玄長者가 지은 화엄론에 입각하여 成佛의 도리를 밝힌 논저이다. 원돈이라 함은 원돈교의 준말로 圓이 곧 頓이라는 화엄경 교리에 의한 성불론이다. 이 원돈성불론도 지눌이 지은 看話決疑論가 함께 출간되지 못하고 묻혀있던 것을 1215년(고종 2) 5월에 그의 제자 혜심에 의해 비로소 간행되었다.
참고
조계종(曹溪宗) : 조계종은 한국 전통불교의 宗團이며 우리나라 禪宗의 총칭임. 서기 1200년경에 佛日普照國師가 송광산 吉祥寺에서 정혜사를 창설함. 희종이 즉위하여 송광산을 曹溪山, 절 이름을 修禪寺라 고친 다음부터 曹溪宗이란 명칭이 생김. 1212년 고려 강종왕이 조계산 수선사파를 조계종이라 하였으나, 어느 한 宗만이 독점한 것은 아니고, 禪宗을 범칭하였던 것이다. 그 이후부터 覺儼·太古·懶翁·幻庵·粲英·覺雲·無學 등 여러 고승들이 曹溪宗師·曹溪僧이라 하였으나, 항상 계속된 것은 아니었다. 1941년 북한산 태고사를 현재의 조계사 자리로 옮겨 짓고, 그때 조선불교 총본산을 만들면서, 禪敎兩宗이란 宗名을 고쳐 曹溪宗이라 하였다.
보조국사(普照國師) : (1158~1210) (의종 12~ 희종 6) 고려 중기의 고승. 속성 鄭. 이름은 知訥. 호 牧牛子. 시호 佛日보조국사. 탑호 甘露. 京西의 洞州에서 출생하였으며 8세에 출가하여 1182년(명종 12) 僧選에 뽑혀, 靑猿寺에 있었다. 85년 普門寺에서 대장경을 공부하고 98년에 지리산 上無住庵에서 수도하였다. 1200년 松廣山 吉祥寺로 옮겨 11년 동안 불도를 닦아 惺寂等持門 · 圓頓信解門 · 徑截門 등의 3宗을 세웠다. 1205년 희종이 즉위하자 송광산을 조계산, 길상사를 修禪寺로 개칭하고 滿繡袈裟를 하사하였다. 金君綏가 세운 보조국사의 비각은 후에 불타버렸으나 1678년에 栢菴스님이 다시 세웠다. 저서에는 定慧結社文 · 眞心直說 · 修心訣 · 誡初心學人文 등이 있다.
지눌(知訥) : (1158~1210) 고려 승려. 호는 牧牛子. 속성은 鄭씨. 황해도 서흥 사람. 8세에 宗暉에게 의지하였다가 출가하고 구족계를 받았으나 일정한 스승이 없이 도를 구하다. 1182년에 僧選에 뽑히고, 육조단경을 보다가 스스로 깨달은 바가 있었고, 1185년 보문사에서 대장경을 열람함. 得才의 청으로 팔공산 거조사에서 각 종파의 고승들을 맞아 몇해 동안 定慧를 익히다. 1198년 몇 사람의 道伴과 함께 지리산 상무주암에 들어가 있으면서 內觀에 힘써 현묘한 뜻에 계합하다. 1200년 송광산 길상사로 옮겨 11년 동안 학자들을 지도하고 법을 행하니, 僧 · 俗이 모여들어 총림을 이루다. 이들을 지도함에 금강경 · 육조단경 · 화엄론 大慧錄 등으로 의지를 삼고, 惺寂等持門 · 圓頓信解門 · 徑截門의 3종을 세워 수행하다. 1205년 희종이 즉위하여 송광산을 조계산으로, 길상사를 수선사로 고치고, 또 滿繡袈裟를 보내다. 희종 6년 법상에 올라 설법하다가 주장자를 잡고 그대로 입적하였다. 나이 53세, 법랍 36년. 시호는 佛日普照國師. 탑호는 甘露. 저서에 定慧結社文 · 眞心直說 · 修心訣 · 誡初心學人文 · 圓頓成佛論 · 看話決疑論 · 念佛要門 · 上堂錄 · 法集別行錄節要幷入私記 등이 있음.
화엄(華嚴) : ① 萬行과 萬德을 닦아서 德果를 장엄하게 함. ② 화엄경을 가리키는 경우와 이 經文에 의하여 세운 화엄종을 가리키는 경우와 또 그 敎義를 가리키는 경우가 있다.
대의(大義) : 마땅히 행해야 할 중대한 의리(사람으로서 지킬 바른 도리).(국어사전)
선종(禪宗) : 佛心宗이라고도 함. 달마대사가 인도로부터 와서 전한 것. 敎外別傳을 宗의 綱格으로 하고, 坐禪으로써 內觀外省하여 自性을 徹見하고, 自證三昧의 妙境을 요달함을 宗要로 하는 宗派. 또한 禪宗이란 부처님의 敎說을 所依로 삼는 宗派를 敎宗이라 함에 대하여 坐禪을 닦는 종지라는 뜻이다. 禪宗은 석존에게 正法을 유촉받은 迦葉尊者로부터 28祖 菩提達磨가 있고, 28祖인 菩提達磨가 중국에 건너와서 慧可(487~593)에게 法을 전함으로부터 東土의 제5祖인 弘忍(602~675)에 이르러 그 門下에서 慧能(638~713)을 제6祖로 하는 南宗과, 神秀(?~706)를 제6祖로 하는 北宗으로 나누어졌다. 그러나 神秀의 北宗은 오래지 않아 脈이 끊어지고 慧能의 南宗만이 5家 7宗으로 번성하였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新羅 선덕여왕 5년(784) 당나라의 西堂智藏師에게서 法을 받아온 道義禪師를 初祖로 하는 迦智山門을 비롯하여, 역시 智藏의 法을 받은 洪陟을 初祖로 하는 實相山門과 鹽官 齋安에게서 法을 받아온 梵日을 初祖로 하는 闍崛山門, 智藏에게서 法을 받은 惠哲을 初祖로 하는 桐裏山門, 麻谷 寶徹의 法을 받은 無染을 初祖로 하는 聖住山門, 南泉 普願의 法을 받은 首允을 初祖로 하는 師子山門, 禪宗慧隱의 法을 받은 道憲을 初祖로 하는 曦陽山門, 章敬 懷暉의 法을 받은 玄昱을 初祖로 하는 鳳林山門, 新羅 雲居 道膺의 法을 받은 利嚴을 初祖로 하는 須彌山門의, 九山門이 성립되어 번성하였다.
교종(敎宗) : 불교의 한 종파. 세종 6(1424)년 禮曹의 요청에 의하여 종래의 七宗을 禪敎兩宗으로 통합하였다. 敎宗은 華嚴 · 慈恩 · 中神 · 始興의 4종파를 통합한 것이다. 당시 불교는 여러 종파로 갈라져 난맥을 이루었으므로 이를 정리하여 36寺를 각각 禪敎兩敎에 절반씩 나누고, 토지도 넉넉히 배당하니, 교종에는 3,700結이 분배되었다. 僧錄司를 없애고 興天寺와 興德寺를 각각 都會所로 삼고, 僧錄司에 소속한 노비 384명을 兩宗에 분배하였다. 그 후 예종 때 兩宗은 3년마다 1회씩 시험을 실시하여, 교종은 <華嚴經> <十地論>에 의하여 30명씩 뽑았다. 합격자는 大選이라 하였고, 대선에서 中德 · 大德 · 大師의 순서로 승진케 하였다. 주지가 되는 사람은 兩宗에서 추천하여 禮曹에 아뢰고, 吏曹에 이첩하여 임명하게 하였다. 그러나 연산군 때에 이르러 僧科를 폐지하자 불교계는 계속 쇠퇴하였으나, 명종 때 文貞王后가 섭정하면서 불도를 크게 숭상하여 奉恩寺를 禪宗, 奉先寺를 敎宗으로 하여 명종 7(1552)년부터 僧科를 실시하여 度牒을 주었으며, 교종에서는 守眞을 判敎宗都大師奉先寺住持로 임명하였다. 문정왕후가 죽은 다음해인 명종 20(1565)년에 僧科는 폐지되었다. 선조 때 休靜(서산대사)이 禪敎兩宗의 판사를 지냈으며, <선가귀감>을 저술하여 불교계를 풍미하게 되자 禪敎兩宗의 구별은 없어지고 말았다.
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 이 經의 이름은「부처의 華嚴이라고 이름하는 大方廣의 經」으로 漢譯하여 大方廣佛華嚴經이다. 이 經의 이름 7자를 규봉스님의 문인되는 전오대사가 저술한 화엄경 관심석에 보면 다음과 같다. 大字는 마음이란 것이 비록 일체가 아니나 능히 一切가 되는 것이니 大字가 곧 心體를 가리킨 것이다. 心體가 갓이 없는 까닭으로 大字를 쓴 것이요, 方字는 마음의 모양인 心相을 가리킨 것이니 마음이 모든 德相을 갖춘 까닭이요, 廣은 마음의 쓰임(用)을 가리킨 것이니 마음이 宇宙本體에 칭합한 쓰임이 있는 까닭이요, 佛字는 마음의 果를 가리킨 것이니 마음이 해탈한 곳을 佛이라 이름하는 것이요, 華字는 마음의 因을 가리킨 것이니 마음의 행을 꽃에 비유한 것이요, 嚴字는 마음의 功을 가리켜 마음이 功德을 지어 꾸미는 것을 嚴이라 하고, 經字는 마음의 가르침인 敎이니 이름과 말(名言)을 일으켜서 이치를 설명하기 때문에 經이라 한 것이라고 하였다. 이 經은 東晋때에 불타발타라가 번역한 六十卷 화엄과 則天武后때에 우전국 삼장 실타난타가 번역한 八十卷 화엄이 있는데 내용은 동일하다. 또 숭복사에서 般若三藏이 일법계품만 번역한 四十卷 화엄이 있다.
華嚴經의 구성은 六十華嚴이 三十四章으로 되어 있고, 八十華嚴이 三十六章으로 되어 있어 八十華嚴에 비하여 六十華嚴은 二章이 적다. 이 經은 처음부터 이와 같이 완전하게 결집된 것이 아니고 각장이 독립된 경으로 따로이 성립된 것을 뒤에 집대성한 것이다. 經의 성립은 대략 四세기경으로, 결집된 장소는 중앙 아시아로 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各章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경전은 독립된 경으로 十地經에 해당하는 十地品이며 그 성립한 연대는 1세기에서 2세기경이라고 이야기 되고 있다. 산스크리트 原典이 남아 있는 부분은 이 십지품과 入法界品이다. 이 經은 부처님께서 成道한 깨달음의 내용을 그대로 표명한 경전이다.
육십화엄에 의하면 일곱 곳에서 여덟 번 집회하고 설한 내용이 三十四章으로 나뉘어 있다.
첫째 모임은 寂滅道場이며,
둘째는 普光法堂으로 이 모임은 地上에서의 모임이다.
세째 모임은 忉利天에서,
네째는 夜摩天宮에서,
다섯째는 兜率天宮에서,
여섯째는 他化自在天宮에서 이루어졌는데 모두가 天上의 모임이다. 설법이 진행함에 따라서 모임의 자리가 점차로 上昇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일곱째 모임은 다시 地上으로 내려와 普光法堂에서 이루어졌고,
여덟째도 역시 지상의 逝多林, 즉 祇園精舍에서 이루어졌다.
이와 같이 설법의 장소가 점차 상승했다가 다시 지상으로 내려오는 구성은 그 설법의 내용과 부처님의 교화의 뜻을 표징하고 있으며 특히 다시 지상으로 내려와서 歸結하는 구성은 불교의 목적이 지상의 오늘에 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그 구성자체가 깊은 의미를 지닌다.
첫째 모임에서는 부처님께서 摩竭陀國에서 깨달음을 얻은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이 經의 敎主인 毘盧遮那佛과 一體가 되어 있다. 그리하여 수많은 보살들은 한 사람 한 사람 일어나 부처님을 칭찬한다.
둘째 모임에서는 부처님께서는 첫째 모임의 자리를 普光法堂의 사자좌로 옮긴다. 이곳에서 문수보살은 네 가지 진리 즉 苦集滅道의 四諦를 설하고 열 사람의 보살이 각각 열가지 깊은 법을 설한다.
세째 모임에서는 설법의 장소가 天上으로 옮긴다. 이 모임에서는 十住의 법이 설해진다.
그리고 네째 모임에서는 十行이 설해지고,
다섯째는 十廻向이,
여섯째는 十地의 법이 설해지고 있다. 이 여섯째 모임에서 설해진 十地品은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범어 원전이 전해지고 있는데 경의 이름이「十地의 지배자라고 이름하는 大乘經典」이다. 이 十地는 보살의 수행을 열가지 단계로 나누어 단계적으로 설한 것이다. 이 부분은 화엄경 안에서 극히 중요한 부분이다.
그리고 다시 地上의 모임으로 돌아온 일곱째 모임에서는 지금까지 설한 것을 요약해서 설하고 있으며, 여덟째 모임에서는 入法界品을 설하고 있는데 산스크리트 원전은 이 경의 略經名인 화엄경이며, 略經名이 經을 전체적으로 대표하듯이 이 부분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이 品은 善財라고 하는 소년이 五十三人의 여러 가지 종류의 사람, 즉 예를 들면 보살과 비구와 비구니와 소년과 소녀와 醫師 · 長者 · 航海 · 師 · 神 · 仙人 · 外道 · 바라문 등을 만나 도를 구하는 상황이 문학적으로 설해지고 있으며 이러한 구성은 참다운 求道者 앞에는 계급도 종교도 초월해야 함을 시사할 뿐만 아니라 실로 大乘精神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六十華嚴의 註釋書로는 중국 法藏의 探玄記와 孔目章이 있고, 十地經에 대해서는 인도 世親의 十地經論이 있다. 화엄경을 네개의 과목으로 보면,
첫째, 果를 들어 樂을 전하여 信心을 내게 하는 것(擧果勸樂生信分)이며,
둘째, 因을 닦아 果에 합하게 하여 깨닫는 것(修因契果生解分)이며,
세째, 法을 알아 닦아 나아가 행을 이루는 것(托法進修成行分)이며,
네째, 사람에 의하여 증입하여 덕을 이루는 것(依人證入成德分)으로 되었으며, 이것은 믿고 알아서 닦아 깨쳐간다는 信解行證을 말한다.
성불(成佛) : 부처님이 되는 것. 菩薩이 自利 · 利他의 덕을 완성해서 究極的인 깨달음의 경지를 실현하는 것으로 作佛 · 得佛 · 成道· 得道 · 成正覺 · 成菩提 · 證菩提 · 現等覺이라고도 한다. 부처님이 되기까지 긴 세월에 걸쳐 여러가지 수행의 階位를 밟아야 되는데(이것을 歷劫成佛이라 함), 그 세월을 小乘에서는 三阿僧祗劫 및 百大劫(百大劫은 三十二相 · 八十種好를 얻기 위한 福業 곧 相好業을 수행하는 기간)이라 한다.
大乘에선 三 · 七 혹은 三十三의 阿僧祗劫의 수행기간을 말한다. 授決集 卷下에는, 藏敎(小乘敎)의 菩薩은 (1) 四弘誓願을 일으키고 (2) 三阿僧祗劫에 有相의 六波羅蜜을 닦고, (3) 百劫에 相好業을 수행하고 (4) 六波羅蜜을 완성하고 (5) 補處菩薩이 된다. (6) 兜率天에 태어난다. (7) 下生하여 成道한다고 하는 7階位를 거쳐 成佛한다고 했다. 이것을 藏敎菩薩 七階位成佛(七階成道)이라 한다. 소승은 물론이며 대승에서도 三乘敎는 五姓各別을 주장한다. 聲聞이나 緣覺은 成佛할 수 없다고 하는데 대해 一乘敎에서는 二乘作佛을 말하고 있으며, 또 謗法 · 闡提에 이르기까지 모든 중생이 성불한다고 한다. 女人(轉女成男)이나 非情(草木國土悉皆成佛)까지도 成佛한다고 한다. 또 小乘敎에서는 成佛은 오직 수행을 쌓아야 될 수 있다(修得)고 하는데 반해 大乘敎에서는 중생은 본래부터 成佛의 因을 갖추고 있다(性得)고 그 가능성을 주장한다.
① 占察經 卷下에는, 보살수행階位의 각 단계가 그대로 佛이라고 하여 十信의 滿位경지를 信滿成佛(화엄종에서 이를 주장), 十住의 滿位경지를 解滿成佛, 十地의 滿位로 보살수행이 완성된 경지를 行滿成佛, 완전히 佛果에 도달한 경지를 證滿成佛이라 하고 이 넷을 四滿成佛이라 했다.
② 天台宗, 別敎에서는 점진적으로 오랜 세월이 지나서 成佛한다고 하며 圓敎에서는 十住 중 初住位에서 成佛한다고도 했다.(法華玄義 卷五下)
③ 화엄종에서는 勝身 · 見聞 · 一時 · 一念 · 無念의 다섯가지에 따르는 五種疾得成佛說(孔目章 卷 四), 約位(十解 곧 十住의 初位에서 成佛하는 것. 信滿成佛과의 同異) · 約行(階位에 따르지 않고 하나하나의 행의 완성이 成佛이다) · 約理(理로서 모든 중생은 본래의 相이 佛이다)의 3종成佛說(화엄경 探玄記 권三), 見聞生(敎를 見聞하고 믿는 階位) · 解行生(智慧를 얻어 수행하는 階位) · 證入生(최고의 佛果를 믿는 階位)의 三生을 거쳐 成佛한다고 하는 三生成佛說(五敎章 권二)등이 있다.
④ 密敎에서는 3가지의 卽身成佛을 주장한다.
⑤ 禪宗에선 直指人心見性成佛이라 하여 坐禪에 의해, 현실의 자기 마음을 徹見함으로 깨달을 때 분명히 成佛한다고 한다.
⑥ 淨土宗에서는 往生成佛을 주장하며 阿彌陀佛의 淨土에 태어남으로 成佛한다고 한다.
도리(道理) : 다만 理라고도 한다. 옳은 도리. 사물이 존재하고 변화해 가는데 있어서 반드시 표준으로 삼는 법칙. 瑜伽論卷三十에는,
(1) 觀待道理(相對道理라고도 한다. 眞과 俗과 같이 상대적으로 생각되는 道理),
(2) 作用道理(因果의 관계에 있어서 존재하는 作用에 대한 道理),
(3) 證成道理(成就道理라고도 한다. 확인하는 방법에 대한 道理),
(4) 法爾道理(法然道理라고도 한다. 불이 가진 뜨거움과 같이, 있는 그대로의 不變의 本性을 완성하고 있는 道理), 이상 네 가지의 道理로 나누고 있다.
원돈(圓頓) : 圓滿頓足의 뜻. 곧 모든 事物을 원만히 결함없이 갖추어, 대번에 깨달음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諸宗에서, 그 究極으로 하는 敎나 行을 圓頓이라고 하는데, 예컨대 天台宗에서는 圓頓止觀이라 하고, 眞宗에서는 本願圓頓一乘이라고 하며, 圓頓一乘·圓頓戒 등으로 熟語함.
돈(頓) : 문득, 갑자기, 또는 단박이라는 뜻.
원돈교(圓頓敎) : (1) 圓即頓의 가르침. 天台圓敎의 별칭. 天台宗의 가르침. (2) 圓敎·頓敎라는 뜻. 천태종에서 華嚴經을 말할 때의 명칭. 그 敎相判釋인 化儀와 化法에 4교가 각각 있는데 化儀중의 頓敎, 化法중의 圓敎는 화엄의 교법이라 하여 圓頓敎라 한다.
간화결의론(看話決疑論) : 禪과 敎가 모두 하나의 實道에 돌아간다고 뜻을 가지고, 禪門의 열 가지 病과 그 밖에 여러 가지 의문점을 華嚴經과 圓覺經 등을 인용하여 高麗의 知訥이 지은 한 권의 책. 광해군 때에 順天 松廣寺에서 간행함.
혜심(慧諶) : (1178~1234) 고려 후기의 승려. 속성은 崔, 자는 永乙, 호는 無衣子, 시호는 眞覺國師. 和順縣 사람.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 漢學을 공부하여 1201년(신종 4) 司馬試에 합격, 太學에 입문하다. 그 뒤 어머니의 병환으로 집에 돌아가 있으면서 佛經을 공부하였다. 어머니가 돌아간 후 조계산에 들어가 보조국사 知訥 티에 출가함. 한 때 오산에 있을 때는 한 盤石 위에 앉아 밤낮으로 도를 닦는데 五更 새벽이면 시를 읊는 소리가 십리까지 들려 마을 사람들이 시간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하며, 지리산 금대암에 있을 때는 눈이 쌓인 속에서도 움직임이 없이 단정히 앉아 오직 참선에만 몰두하여 마침내 깊은 뜻을 깨달았다. 1208년(희종 4) 보조국사가 慧諶에게 자리를 물리려 하니 지리산으로 피하여 오래 숨어 지냈다. 보조국사가 입적한 후 왕명에 의해 修禪寺에 들어가 보조국사의 자리를 맡아 조계종의 二世가 되었다. 1219년(고종 6) 왕이 斷俗寺에 있게 하고 大禪師로 대우했으나 항시 조계산을 定住地로 생각했다. 또한 유교의 학문에도 통하여 儒·佛이 다를 바 없다고까지 했으며(知其實則儒佛無殊), 불교에서 도통에 이르는 방도를 말하기를「불법은 원래 思量分別로 해득할 바 아니니, 義路를 넓게 따지자면 萬論千經이 있지만 眞源을 찾으려면 오직 無心無思로 悟性을 직접 깨닫는 妙境에 들어가야 한다」고 하였다. 1234년(고종 21) 병으로 인하여 월등사에 옮겼다가 57세에 입적하다. 시호는 眞覺國師. 탑호는 圓炤. 지금 승주군 송광사에 비가 있다. 저서에 眞覺國師語錄心要, 禪門拈頌, 無衣子詩集 등이 있음.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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