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문승십지(聲聞乘十地)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1) 수삼귀지(受三歸地). 처음에 三歸戒(삼귀계)를 받는 자리.
(2) 신지(信地). 信根이 성취하는 자리.
(3) 신법지(信法地). 四諦(사제)의 이치를 믿게 되는 자리.
(4) 내범부지(內凡夫地). 五停心觀(오정심관) 등을 닦는 자리.
(5) 학신계지(學信戒地). 戒·定·慧 三學을 성취하는 자리.
(6) 팔인지(八人地). 見道의 자리.
(7) 수다원지(須陀洹地). 預流果(예류과)의 자리.
(8) 사다함지(斯陀含地). 一來果의 자리.
(9) 아나함지(阿那含地). 不還果(불환과)를 말함.
(10) 아라한지(阿羅漢地). 無學果를 말함.
참고
삼귀계(三歸戒) : 삼귀의(三歸依)→三歸·三自歸·三歸戒라고도 말하고, 佛·法·僧 三寶에 歸投依憑하여 求護를 청함을 말한다. 歸依佛·歸依法·歸依僧의 셋을 말한다. 이로써 비로소 佛敎徒의 일원이 된 것을 나타내고, 그 의식으로 행해진다. 釋尊 成道후 아직 僧寶의 성립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동안은, 佛과 法과의 二歸戒를 받은 적도 있었다. (1) 飜邪의 三歸. 邪道를 버리고 正道에 들어왔을 때 받는 三歸. (2) 受戒의 三歸. 여기에 4종이 있다. 5戒의 三歸(五戒를 받고 在家의 신자가 되기 위해 우선 받는 三歸)·8戒의 三歸(八齋戒를 받기 위해 우선 받는 三歸)·10戒의 三歸(十戒를 받고 沙彌·沙彌尼가 되기 위해 우선 받는 三歸)·具足戒의 三歸(具足戒를 받고 비구·비구니가 되기 위해 우선 받는 三歸). 5종의 三歸라고 할 때에는 飜邪의 三歸를 1종으로 센다.
신근(信根) : 五根의 하나. 三寶와 四諦의 진리를 믿음.
사제(四諦) : ① 諦는 범어 satya, 파리어 sacca의 번역으로 진리란 뜻. 자세히는 四聖諦·四眞諦라 하며 4가지의 틀림없는 진리를 말한다. 四諦는 대체로 12緣起의 뜻을 교리적으로 조직화한 것으로 원시불교의 교리의 대강이 표시되어 있다. 이것은 ‘最勝法說’이라고도 불리워지는 석존 최초의 설법(곧 初轉法輪)에서 설한 것이라고 한다. 4가지 진리의 제1은 「迷惑의 이 세상은 다 苦이다」라고 한 가르침이며, 제2는 「苦의 因은 구하고 탐하여도 그치지 않는 執着이다」라고 한 가르침이다. 제3은 그 執着을 완전히 끊어 없애 버림으로 苦를 멸한 때가 궁극의 理想境이다」라고 한 가르침이며, 제4는 「이와 같이 苦가 없는 열반경에 도달하기 위하여 八正道의 옳은 修行의 길을 따라야 한다」고 하는 가르침이다. 이 4가지는 순서와 같이 苦聖諦·苦集聖諦·苦滅聖諦·苦滅道聖諦라고 불리운다. 이를 약하여 苦諦·集諦·滅諦·道諦라고도 한다. 이 苦·集·滅·道의 四諦 가운데 苦와 集은 迷妄의 세계의 因果를 나타내고, 滅과 道는 證悟의 세계의 인과를 나타낸다. 四諦의 이치가 三段階인데 여기에 각각 4가지의 行相을 붙여서 說할 때 이것을 三轉十二行相이라고 한다. 곧 三轉이란 제1轉 「이것은 苦諦(集·滅·道諦)이다」라고 하는 示轉, 제2轉은 「이 苦諦(集·滅·道)는 徧知(永斷·作證·修習)되어야 한다」라고 하는 勸轉, 제3轉은 「이 苦諦(내지 道諦)는 이미 徧知(내지 修習)되었다」고 하는 證轉이 그것이다. 12行相이란 이 三轉에 각각 眼·智·明·覺(옳은 智慧에 의한 이해를 뜻하는 4개의 同義語)의 四行相을 假設하고 각각의 諦에 12行相이 있다고 한 것. 그러나 다른 견해에 따르면 眼·智·明·覺을 고려하지 않고 一諦에 三轉이 있어 四諦全體로서 모두 12行相이 있다고도 해석한다.
② 有部敎學의 修證論에서는 우선 四善根位에서 4諦의 하나를 觀하는데 4種의 行相이 있으므로 합하여 十六行相을 가지고 四諦를 觀한다. 곧 苦諦에서 非常·苦·空·非我(恒存性이 없는 苦이며 假의 존재로 實體性이 없다)의 四行相, 集諦에서는 因·集·生·緣(執着을 苦의 원인으로 하여 苦를 모으고 생기게 하는 苦의 助緣이다)의 四行相, 滅諦는 滅·靜·妙·離(苦滅의 理想境은 繫縛을 끊고 번뇌를 가라앉혀서 殊妙의 境地에 이르러 災禍를 여읜다고 함)의 四行相, 道諦에는 道·如·行·出(苦滅의 聖道는 聖者實踐의 正道이고 正과 理가 합하여 迷의 生存을 超出하는 것이다)의 四行相이 그것이다. 이 四善根位의 다음에 見道에 들어 無漏의 眞智를 가지고 四諦를 現觀한다. 이 見道는 預流向에 속하는 일로서 預流果 이후로는 修道에 속하는데 이 預流向·預流果를 통하여 16心으로 四諦를 現觀한다. 이것을 聖諦現觀이라고 한다. 그 가운데 최후의 제16心만이 預流果에 속하고 앞의 제15心은 見道에 속한다. 먼저 欲界의 四諦를 觀하는 智를 法智라 하고 上2界(色界와 無色界)의 四諦를 觀하는 智를 類智라고 하는데 이 法智와 類智에 각각 忍과 智가 있다. 곧 無間道에서 忍을 가지고 煩惱를 끊고(斷惑) 解脫道에서는 智를 가지고 진리를 깨닫는(證理)다. 苦諦에는 苦法智忍(약하여 苦法忍이라고도 하며 이에 따라 欲界의 苦諦를 現觀함으로 苦諦에 迷惑되어 있는 煩惱를 끊는다)·苦法智(이것으로 欲界의 苦諦를 現觀함으로 苦諦의 이치를 깨닫는다)·苦類智忍(약하여 苦類忍이라고도 한다. 이것을 가지고 上2界의 苦諦를 現觀함으로 번뇌를 끊는다)·苦類智(이것으로 上2界의 苦諦를 現觀함으로 진리를 깨닫는다)의 四心을 가지고 苦諦를 現觀한다. 集·滅·道의 三諦에도 앞에서와 같이 集法(智)忍·集法智·集類(智)忍·集類智·滅法(智)忍·滅法智·滅類(智)忍·滅類智·道法(智)忍·道法智·道類(智)忍·道類智의 각각의 4心을 說하여 모두 16心이 된다. 이것을 八忍八智라고도 한다. 또 四諦를 觀하는 無漏淸淨의 智를 諦에 따라 나누면 苦智·集智·滅智·道智가 되어 法智ㆍ類智 등과 같이 10智로 된다.
③ 大乘佛敎에 따르면 顯揚星敎論 卷七에서는 四諦의 내용을 전개시켜 行苦諦·壞苦諦·苦苦諦·流轉諦(이상은 苦諦의 展開)·雜染諦(苦集 2諦에 해당)·流息諦(滅諦에 해당)·淸淨諦(滅道 2諦에 해당)·正方便諦(道諦에 해당)라고 하여 8諦를 들었다. 또 小乘의 四諦觀은 불완전하므로 有作四涕라 하여 낮추었으며 大乘四諦觀은 완전하므로 無作四諦라고 하고 이를 八諦라 했다. 또 天台宗에서는 제1의 生滅 四諦(四諦의 因果 그대로 生이 있고 滅이 있다고 觀하는 四諦觀)·제2의 無生四諦(또는 無生滅四諦라고도 한다. 四諦迷悟의 因果는 다같이 空無하여 生滅하는 일이 없다는 四諦觀)·제3의 無量四諦(一切의 現象은 無明에서 생기므로 無量의 차별이 있고 따라서 四諦에도 無量의 相이 있다고 하는 四諦觀)·제4의 無作四諦(迷와 悟와 같은 對立矛盾 상태 그대로가 矛盾이 아니라고 觀하는 四諦觀)등을 주장하여 이것을 四種의 四諦라고 하며, 이것을 또 藏·通·別·圓의 四敎에 배당한다. 法相宗에서는 四諦 가운데 滅諦에 自性滅·二取滅·本性滅의 三滅諦, 道諦에 徧知道·永斷道·作證道의 三道諦를 세우는데, 이것은 滅諦와 道諦에 각 三性(遍計所執性·依他起性·圓成實性)을 갖추고 있는 것에 연유한다(成唯識論 권8).
내범(內凡) : 佛道를 수행하는 이 중에서, 凡夫位에 있는 이를 구별하여 內凡과 外凡이라 한다. 凡은 聖에 대한 것으로, 아직 불교의 교리를 證得하지 못한 이를 말하고, 그 가운데서 약간의 智解를 가진 이를 內凡이라 하고, 그렇지 못한 이를 外凡이라 한다. 곧 內凡은 佛敎敎理 안의 凡夫이고, 外凡은 敎理 밖에 있는 凡夫를 말한다.
범부(凡夫) : 必栗託仡那라고 음역하고, 異生이라고 直譯한다. 또 婆羅必栗託仡那(小兒凡夫, 嬰兒凡夫, 愚異生)라고도 한다. 聖者(聖人, 聖)에 대해서, 어리석은 凡庸한 士夫(人間)란 뜻. 異生이란 말은 여러 가지 견해나 번뇌에 의해서 가지가지의 業을 일으켜 여러 가지 果를 받아서 갖가지 세계에 태어난다는 뜻. 수행의 階位上으로 말하면 見道(처음으로 無漏의 지혜가 열려서 四諦를 보는 位)에 이르기 이전이 범부인데, 구사종에서는 四善根位를 內凡, 三賢位를 外凡이라고 하며, 대승에서는 初地이전을 범부라고 하고, 十住·十行·十廻向(三賢)을 내범, 十信을 외범이라고 하고, 내범·외범을 아울러 二凡이라고 한다. 외범이 하는 아주 낮은 범부 곧 지옥의 有情 내지 하늘의 有情을 말한다.
외범(外凡) : 見道이전의 修行位를 일컬음. 곧 小乘에서는 5停心·別相念處·總相念處의 修行位이고, 大乘에서는 52位의 처음인 10信位.
오정심관(五停心觀) : 五度觀門 · 五門禪 · 五觀 · 五念이라고도 한다. 佛道修行의 최초의 位에서 5종의 허물을 그치게 하기 위해 닦는 5종의 觀法. 곧, 不淨觀(自他의 육체의 부정한 모습을 觀하여 貪欲을 그친다) · 慈悲觀(일체 중생에 대해 慈悲의 마음을 일으켜서 성냄을 그친다) · 因緣觀(緣起觀이라고도 한다. 諸法因緣生의 道理를 觀하여 어리석음을 그친다) · 界分別觀(界差別觀 · 界方便觀 · 分析觀이라고도 한다. 十八界의 諸法은 모두 地 · 水 · 火 · 風 · 空 · 識의 화합에 지나지 않는다고 觀하여 我見을 그친다) · 數息觀(呼吸을 세어 산란한 마음을 가지런히 한다)이다. 때로는 界分別觀 대신 念佛觀(불타를 念하여 가지가지의 번뇌를 그친다)을 한다. 이와 같은 五停心觀을 닦는 자리를 五停心位라 하고, 小乘에서는 이 자리에서 別相念住位를 지나서 總相念住位에 이르기까지를 총칭하여 三賢이라 한다.
삼학(三學) : ① 불교를 배워 도를 깨달으려는 이가 반드시 닦아야 할 세 가지 戒(增上戒) · 定(增上心) · 慧(增上慧)를 말함. 또는 三勝學 · 三增上學이라고도 한다. 戒는 身 · 口의 악을 그치고 非를 막는 계율. 定은 산란심을 막고 안정을 얻는 법. 즉 모든 禪定 · 三昧, 慧는 惑을 깨뜨리고 진리를 깨닫기 위한 四諦 · 十二因緣 또는 眞如 · 實相을 觀하는 것이다. 따라서 三學은 실천 방면에서도 불교의 모든 것을 포함하게 된다. 또는 불교경전을 삼학에 배당하여 經藏을 定學, 律藏을 戒學, 論藏을 慧學으로 분류하는 說도 있는데 이에는 다른 설이 있다. 혹은 五分法身 · 六度 · 七淨 · 八正道 등의 내용 설명에 三學이 사용된다. 불교의 삼학을 內의 삼학, 불교 외의 다른 학파의 설을 外의 삼학이라고 부를 때가 있다.
② 學 · 無學 · 非學非無學의 三. 이것은 불교를 공부하는 자의 수행단계의 세 구분이며 성문에 관하여 말하자면 學은 初果이상, 無學은 아라한과, 非學非無學은 見道 직전의 加行位의 사람에게 배당된다.
팔인지(八人地) : 通敎 十地의 제3位. 人은 忍이니, 達忍한다는 뜻. 삼계의 見惑은 본래 空하다고 깨달아 8忍을 구족하는 지위를 말하니, 見道 15心의 지위. 8忍이라 하고 8智라 하지 않는 것은, 15심 가운데는 道類智의 하나가 모자라므로 8智를 구족하지 못한 까닭.
견도(見道) : [修道] · [無學道] 修行의 한 階位. 합하여 三道라고 한다. 見道는 見諦道, 見諦라고도 말하고, 비로소 無漏道를 얻어 四諦(佛敎의 眞理)를 現觀하는(明了하게 본다) 位. 따라서 見道에 도달하기 이전은 凡夫(異生)이고, 見道에 들어간 뒤는 聖者이다. 修道는 見道 뒤에 다시 구체적인 事象에 대처하여 몇 번이고 되풀이 해서 修鍊 · 修習하는 位. 見道와 修道를 합하여 有學道라고 하며, 이에 대해 無學道는 無學位 · 無學果 · 無學地라고도 하고, 궁극적 최고의 깨달음에 들어가서, 이미 배울 것이 없는 位를 말한다. 小乘에서는 三賢 · 四善根 등의 준비적 修行(七方便)을 닦은 사람이 비로소 無漏智를 얻어 見道에 들어간다고 하며, 大乘에서는 初地 入見道라 하여 보살의 初地를 見道, 第二地 이상을 修道, 第十地와 佛果를 無學道라 하고, 密敎에서도 淨菩提心이 처음으로 생기는 자리를 見道라고 한다. 無漏智에서 道理를 명확히 가려내는 것(決斷簡擇한다)을 決擇이라 하며 見道는 決擇의 일부분이므로 決擇分이라 하고, 또 열반의 깨달음 혹은 그에 이르기 위한 聖道는 邪가 아니므로 正性이라고 하지만, 특히 見道를 正性이라 한다. 모든 聖道는 번뇌를 여의게 하므로 離生이라 하지만, 특히 見道는 異生(곧 凡夫)의 生을 여의게 하므로 離生이라 한다. 따라서 見道를 正性離生 · 正性決定(決定이란 반드시 열반으로 나아간다는 뜻)이라고도 한다. 見道에서 끊는 번뇌를 見道所斷(또는 見道斷, 見所斷)의 번뇌, 약하여 見惑이라고 하며, 修道에서 끊는 번뇌를 修道所斷(또는 修道斷, 修所斷)의 번뇌, 약하여 修惑이라 한다.
① 有部에서는, 見道에서 苦 · 集 · 滅 · 道의 四諦를 現觀하는 無漏智로써 틀림없이 見惑을 끊는다고 한다. 또, 無間道의 智(곧 忍)와 끊은 뒤에 四諦의 진리를 깨닫는 解脫道의 智가 있고, 이것을 觀察의 대상에 따라 八忍八智의 十六心이라 한다. 즉 欲界의 苦諦에 관한 無間道의 智를 苦法智忍, 欲界의 苦諦에 관한 解脫道의 智를 苦法智라 하고, 이와 같이 色界 · 無色界의 苦諦에 관한 忍과 智를 苦類智忍 · 苦類智, 마찬가지로 欲界에 대한 集法智忍 · 集法智, 上二界에 대해서는 集類智忍 · 集類智, 欲界에 있어서의 滅法智忍 · 滅類智, 欲界의 道法智忍 · 道法智, 上二界의 道類智忍 · 道類智를 세우고 이 十六心(刹那)의 觀法을 聖諦現觀이라 한다. 이 가운데 前十五心까지가 見道이고, 이 十五心을 見道十五心이라 한다. 道類智는 四諦의 眞理를 다 안 뒤의 지혜이므로 修道에 속한다고 한다. 修道는 三界 九地의 修惑의 각각에 대하여 上上品으로부터 下下품까지의 九品을 합한 八十一品의 修惑을 끊는 修道과정이다.
次第證의 편에서의 見道는 預流向이므로 第十六心(道類智)에 있어서 初果(預流果)를 깨닫지만, 이미 異生位(凡夫位)에서 世俗智에 의해 有漏의 六行觀을 닦는 修惑의 일부를 끊은 超越證은 第十六心에서 그 정도에 따라 初果 · 第二果(一來果) · 第三果(不還果)를 깨닫는다고 했고, 修道란 그 果로부터 각각 阿羅漢向까지를 말한다. 無學道는 阿羅漢果를 깨닫는 자리를 말하고, 여기에 능력 · 성질 등의 高下에 따라, 退法 내지 不退法의 七種阿羅漢에 獨覺 · 佛, 또는 慧解脫 · 俱解脫을 더한 九無學이 있다고 하며, 또 無學人은 無學正見 내지 無學正定의 八聖道와 및 無學解脫 · 無學正智의 열가지의 無漏法(十無學支)을 완성한다고 한다. 또, 鈍根은 見道에서 隨信行, 修道에서 信解, 無學道에서 時解脫을 얻는다고 하지만 利根은 차례로 각각 隨法行 · 見至 · 不時解脫을 얻는다고 한다.
② 經部나 成實論에서는 八忍八智의 十六心이 모두 見道에 속한다고 해서 十六心見道(十六心見諦)의 說을 취하고, 犢子部에서는 一諦에 대해 法智 · 法忍(有部의 說과는 별도) · 類智의 三心이 있다고 하여 十二心見道의 說을 취하고, 第十三心은 최후의 道類智가 앞의 刹那에 이어 다시 일어난다고 하고, 혹은 一刹那로써 四諦의 모두를 다시 觀한다고 하며, 第十三心부터가 修道位라고 한다. 또 大衆部에서는 頓現觀의 說을 주장하여 四諦의 모두를 한 찰나에 깨닫는다고 하고, 혹은 一時頓現觀의 說을 세워 먼저 총괄하여 觀하고 다음에 상세히 觀하므로 二刹那에 깨닫는다고도 한다. 이에 대해 有部의 說을 漸現觀이라 한다.
③ 唯識宗에서는 見道를 眞見道와 相見道로 나눈다. 전자는 根本(無分別)智를 일으켜 眞如의 이치를 깨닫고, 煩惱障 · 所知障의 분별의 隨眠을 끊는 자리이다. 이것은 一心眞見道의 說(頓證頓斷說)이다. 相見道는 眞見道를 얻은 뒤에 後得智를 일으켜 다시 眞如의 理를 觀하는 자리로, 이것은 더욱 더 三心相見道(첫째 자기의 육체를 觀察하여 我空 즉 有情으로서의 我體가 없음을 깨닫고, 둘째로 이와 같이 法空 곧 모든 것에는 實體가 없음을 깨달으며, 셋째로 自他의 모든 有情의 온갖 것을 觀察하여 我空과 法空을 깨닫는 것)와 十六心相見道(十六心으로 四諦를 觀한다)로 분류된다. 三心相見道를 眞見道에 포함시켜 三心眞見道의 說(漸證漸斷說)을 취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見道에 있어서 見惑을 끊어서 無分別智를 얻지만, 아직 餘障이 있기 때문에 修道를 하여 더욱 無分別智를 닦고 익혀 차례로 十重障을 끊고, 第十 金剛無間道에서 煩惱障과 所知障의 종자를 끊어 없애고 無學果를 깨닫는다. 이 三道를 五位에 비교하면, 見道는 通達位, 修道는 修習位, 無學道는 究竟位에 해당한다.
수다원(須陀洹) : 범어 srota-apanna. 성문 4果의 하나. 預流果의 梵名이며, 無漏道에 처음으로 참례하여 들어간 地位.
예류과(預流果) : 須陀洹이라 音譯함. 예류과는 初果라고도 하여 見道에서 3界의 見惑을 끊어 버려서 바로 無漏의 聖道에 들어간 자리.
사다함(斯陀含) : 범어 sakrdagamin의 音譯으로 성문 4果의 하나. 一來라 번역함. 다시 한 번만 환생하여 깨닫는 이. 一來란 한 번 오는 것. 하늘이나 인간 세상에 다시 환생하여 깨닫고, 그 이후는 더 이상 天界나 인간계에 출생하는 일이 없다. 이와 같이 반드시 한 번 천상과 인간계를 一往來하기 때문에 一往來果라고 한다. 소승 불교성자의 階位인 四向 또는 四果의 제2位를 말함.
일래과(一來果) : 斯陀含. 聲聞四果의 하나. 欲界修惑의 九品중, 上六品을 끊은 聖者를 말한다. 나머지 下三品의 惑은 人 · 天에 각각 一生을 感生함으로, 인간에 있으면서 이 果를 얻으면, 반드시 天上에 났다가 다시 인간에 다시 돌아와서 열반에 든다. 또 天上에 있어서 이 果를 얻으면, 우선 인간에 가서, 다시 天上에 돌아와서 열반에 든다. 이와 같이 한번 天과 인간을 一往來하는 까닭에, 一往來果라고 한다. 一來果는 그 略語이다.
아나함(阿那含) : 범어 anagamin 阿那伽彌·阿那伽迷라 音譯한다. 聲聞 제4果 중의 하나로, 줄여서 那含이라 하고, 不還·不來라 번역한다. 欲界에서 죽어 色界·無色界에 나고는 煩惱가 없어져서 다시 돌아오지 아니한다는 뜻이다.
불환과(不還果) : 阿那含이라 음역. 4果의 하나. 欲界의 9品 修惑을 다 끊고, 남은 것이 없으므로 다시 欲界에 돌아와서 나지 않는 地位에 도달한 聖者. 이 지위의 聖者에 대하여 다섯 가지 구별이 있다. (1) 中般 · 生般 · 有行般 · 無行般 · 上流般. (2) 앞의 5종에 現般. (3) 앞의 6종과 無色般. (4) 앞의 7종과 不定般. (5) 速般 · 不速般 · 經久般 · 生般 · 有行般 · 無行般 · 全超般 · 半超般 · 遍沒般.
아라한과(阿羅漢果) : 깨달은 자리를 果라고 한다. 수행의 원인에 대한 결과를 말함. 아라한은 소승의 최고의 깨달음.
무학과(無學果) : 小乘 4果의 하나로 아라한의 깨달은 地位를 말함.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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