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적경(大寶積經)

대보적경-3005-601

근와(槿瓦) 2018. 6. 4. 00:58

대보적경-3005-601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3001 / 3476]

머무르면 일체의 보리를 돕는 갈래의 법[助菩提分法]이 타나나고 더욱 자라므로 성취라는 이름을 붙이게 됩니다. 천자여, 이것이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모든 부처님·세존과 모든 성문이 받는 바른 계율인 것이며, 이른바 저 3해탈문에 들어가서 온갖 쓸모 없는 이론과 언어가 소멸하는 곳입니다. 천자여, 알아야 합니다. 만일 이와 같이 구족계를 능히 받는다면 이것은 바르게 받은 것으로서 바르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그 때 문수사리가 다시 선주의 천자에게 말하였다.
천자여, 나는 이제 다시 이와 같이 출가하고 이와 같이 구족계를 받은 이에게 이렇게 가르치리니, '선남자들아, 그대들이 만일 금계(禁戒)를 지니지 않는다면 이러한 것을 가리켜 곧 진실하게 지닌다고 하리라'고 할 것입니다.”
선주의가 말하였다.
대사여, 무슨 이치 때문에 그렇게 말씀을 하십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천자여, 온갖 일체 법은 모두 취할 것이 없나니, 그 때문에 지닐 수가 없거늘 어떻게 이 계율만을 유독 지님이 있겠습니까?
천자여, 계율을 지닐 수 있다면 곧 삼계(三界) 동안을 지닐 것입니다.
천자여, 그대의 뜻에서는 무엇으로 계율을 삼습니까?“
 

선주의가 말하였다.
대사여, 만일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를 두루 갖추면 이것을 계율이라 합니다.”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천자여, 어떤 것을 바라제목차라 합니까?”
선주의가 말하였다.
대사여, 이른바 몸과 입과 뜻을 지니면서 3()을 두루 갖추면 이것을 곧 바라제목차라 합니다.”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천자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바로 현재 어느 곳에 이 몸의 업[身業]으로서 지을 만한 것이 있습니까? 그처럼 과거나 미래에도 역시 지을 것이 없으므로 그는 일체의 짓는 것도 없고 모양조차 없는데도 혹은 청색이다


                                                                            [3002 / 3476]

황색이다, 적색이다, 백색이다, 그리고 파리색(頗梨色)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선주의가 말하였다.
말할 수 없습니다, 대사여.”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천자여, 그 이름은 어떤 것이며, 어떻게 설명됩니까?”
선주의가 말하였다.
그 이름은 무위(無爲)여서 실로 말로는 설명할 수 없으며 이와 같아서 뜻으로 짓는 것도 역시 그러합니다.”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천자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저 무위가 유위(有爲)를 지을 수 있습니까?”
선주의가 말하였다.
그럴 수 없습니다, 대사여.”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천자여, 그런 이치 때문에 나는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가 만일 지니지 않으면 참으로 계율을 지닌다 합니다. 천자여, 만일 증상 계학(增上戒學)과 증상 심학(增上心學)과 증상 혜학(增上慧學)을 말한다면 배움의 실제(實際)를 위하여 '지니는 것이 없기 때문에 증상의 계학이라 하고,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증상의 심학이라 하며, 보는 것이 없기 때문에 증상의 혜학이라 한다', 이와 같이 알아야 합니다. 이와 같이 마음으로 분별하지 않기 때문, 기억하지 않기 때문에,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최상의 심학[最上心學]이라 하나니, 심학에서처럼 계학과 혜학도 역시 그러합니다. 천자여, 만일 마음을 얻지 못하면 곧 계율을 기억하지 못하고, 계율을 기억하지 못하면 지혜를 생각하지 못하며, 지혜를 생각하지 못하면 다시는 온갖 의혹을 일으킴이 없습니다. 이미 의혹이 없다면 곧 계율을 지니지 않는 것이요, 만일 계율을 지니지 않는다면 이것을 곧 참으로 계율을 지니는 것이라 합니다. 천자, 알아야 합니다. 그가 계율을 지닌다면 하고자 하는 것이 없고, 하고자 하는 것이 없는 까닭에 물러남이 없으며, 물러남이 없는 까닭에


                                                                            [3003 / 3476]

그는 곧 청정하고, 그는 청정한 까닭에 곧 해탈하게 되며, 그는 해탈한 까닭에 곧 정진을 얻고, 그가 정진한 까닭에 곧 번뇌[]가 없으며 그는 번뇌가 없는 까닭에 곧 바른 행에 머무르고, 바른 행에 머무르는 까닭에 곧 모양이 없으며, 모양이 없는 까닭에 그것은 곧 허공과 같나니 저 허공은 형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천자여, 만일 어떤 사람이 이와 같이 배우면 곧 배우지 않는 것이 되고 그는 배움이 없는 까닭에 곧 진실한 배움이 되는 것입니다. 어느 곳에서 배우느냐 하면 처소가 없는[無處] 곳에서 배웁니다. 어떤 것을 처소가 없다는 것인가 하면 공이요, 평등입니다. 천자여, 만일 공하고 평등한 데에 바르게 머무르면 이것을 진실로 계학(戒學)에 머무른다 합니다.”
그 때 문수사리가 다시 선주의 천자에게 말하였다.
천자여, 만일 어떤 사람이 이와 같이 출가하고 이와 같이 구족계를 받으면 나는 다시 그에게 이런 말을 하여 주리니, '선남자들아, 그대들이 이제 만일 저 온갖 삼천대천세계의 믿음이 돈독한 시주자[檀越]에게서 공양과 뭇 살림 기구를 받으면서도 그것에 대하여 분별을 일으키지 않고 은혜를 갚겠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이것을 가리켜 계율을 청정하게 지닌다고 한다'고 할 것입니다.”
선주의가 말하였다.
대사여, 무슨 이치 때문에 그렇게 말씀을 하십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천자여, 이른바 만일 어떤 사람이 저 보시하는 이와 받는 이와 재물 이 세 가지를 취하면 이것은 은혜를 갚는 것이 됩니다. 또 만일 그것을 보면 이것도 은혜를 갚는 것이 되고, 또 그것을 생각하면 이것도 은혜를 갚는 것이 되며, 또 그것을 분별하면 이것도 은혜를 갚는 것이 됩니다. 천자여, 만일 그것을 보지도 않고 취하지도 않고 생각하지도 않고 분별하지도 않는다면 갚을 만한 그 무엇이 있겠습니까? 왜냐 하면 본래부터 마지막까지 청정한 것이 갚음이기 때문입니다. 천자여, 그가 만일 취하고 보고 생각하고 분별하고 그리고 갚겠다는 생각을 하면 이 사람은 범부로서 아라한이 아닙니다. 그 까닭은 모든 범부는 언제나 항상 집착하고 헤아리고 분별하면서 여기서는 받고 저기


                                                                            [3004 / 3476]

서는 주었으며 그것은 더럽고 이것은 깨끗하다고 하기 때문이니, 이런 분별 때문에 은혜를 갚는 것입니다. 은혜를 갚는 까닭은, 모든 범부는 나고 죽는 존재[]여서 후생의 몸을 취하는 것이므로 이 때문에 그에게 은혜를 갚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천자여, 모든 아라한은 다음 생을 받지 않는지라 끝내 보지도 않고 헤아리지도 않고 분별하지도 않고 이것과 저것이 없으며 다시는 몸을 받지 않거늘 어디에 은혜를 갚겠습니까? 천자여, 만일 그의 보시를 받는다면 마땅히 세 가지 청정함[]을 행한 연후에 받아야 합니다. 세 가지 청정함이란 첫째는 자기의 몸을 보지 않으니 곧 보시하는 이가 없는 것이요, 둘째는 다른 사람을 보지 않으니 곧 받는 이가 없는 것이며, 셋째는 재물을 보지 않으니 곧 보시하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세 가지의 청정이 최고의 청정함이니 이렇게 청정하거늘 다시 무엇으로 갚겠습니까? 천자여, 이런 이치 때문에 나는 '만일 삼천대천세계의 믿음이 돈독한 시주자의 온갖 공양거리를 받으면서도 분별하지 않고 은혜를 갚겠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그것을 가리켜 세간의 진실하고 수승한 복전(福田)이라 하고, 그것을 가리켜 진실한 출가라 하며, 그것을 가리켜 청정하게 지니는 계율이라 한다'고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 때 문수사리가 다시 선주의 천자에게 말하였다.
천자여, 나는 그 사람이 이와 같이 출가하여 계를 받고 나면 다시 가르치나니, '선남자들아, 그대들은 이제 고요한 곳[阿蘭拏]에 가지도 않고 마을에 있지도 않으며, 가까운 데에 살지도 않고, 먼 데에 머무르지도 않으며 혼자 앉아 있지도 않고, 대중 속에 있지도 않으며, 말이 많지도 않고, 잠자코 있지도 않으며, 걸식하지도 않고, 청을 받지도 않으며, 누더기를 입지도 않고 다른 이에게서 옷과 발우를 받지도 않으며, 많이 먹지도 않고, 욕심이 적지도 않으며, 많이 구하지도 않고, 만족할 줄 모르며, 나무 아래에 앉지도 않고, 한 데에 있지도 않으며, 썩어 문드러진 약을 먹지도 않고, 고기와 소()도 받지 않아야 한다. 선남자들아, 그대들이 만일 온갖 두타(頭陀)에 대하여 분별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수행하면 곧 구족하게 두타를 행한다고 하나니 그 까닭은 기억하고 생각하고 분별하면서 행하면 곧 그것은 거만한 마음으로 모든 모양을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고 할 것입니다. 천자여, 만일 이렇게 행한


                                                                            [3005 / 3476]

다면 곧 이런 생각을 하리니, '나는 누더기를 받았고 나는 걸식을 한다. 나는 나무 아래에 머무르고 나는 거리에 앉아 있다. 나는 고요한 곳에 가고 나는 썩어 문드러진 약을 먹는다. 나는 욕심이 적고 나는 만족할 줄을 알며 나는 두타를 행하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천자여, 만일 바르게 행하는 이면 이런 생각을 하지 않나니 그 까닭은 그것을 행하면서도 온갖 분별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때 나조차도 보지 않거늘 하물며 두타의 공덕이 있다고 헤아리겠습니까? 만일 있다고 본다면 옳지 못합니다. 천자여, 그러므로 만일 어떤 이가 이와 같이 두타를 행하면서 기억하지도 않고 분별하지도 않으면 나는 그것을 일러 진실한 두타라고 말할 것입니다. 왜냐 하면 천자여, 만일 이러한 사람이라면 탐욕을 털어 버리고 성냄을 털어 버리며, 어리석음을 털어 버리고 삼계(三界)를 털어 버리며, 5()을 털어 버리고 12()을 털어 버리며 18()를 털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것을 나는 진실한 두타라고 말합니다. 왜냐 하면 그 두타는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으며 생각하지도 않고 기억하지도 않으며 닦지도 않고 행하지도 않으며 법이 아니고 법이 아닌 것도 아니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나는 진실한 두타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때 문수사리가 다시 선주의 천자에게 말하였다.
천자여, 나는 그 사람이 이와 같이 출가하고 계를 받고 나면 다시 가르쳐 주리니 '선남자들아, 그대들은 이제 4성제(聖諦)를 관찰하지도 말고 4념처(念處)를 닦지도 말며, 4정근(正勤)을 닦지도 말고, 4여의족(如意足)을 닦지도 말며, 5()을 닦지도 말고, 5()을 닦지도 말며, 7각분(覺分)을 닦지도 말고 8성도(聖道)를 닦지도 말며, 37조보리법(助菩提法)을 닦지도 말고, 3해탈문(解脫門)을 증득하지도 말라'고 할 것입니다. 왜냐 하면 천자여, 4성제란 생함이 없는 모양에 들어가 있으므로 기억하거나 알 수도 없고, 닦거나 증득할 수도 없나니 저 생함이 없는 가운데서 어떻게 증득한다고 말하겠습니까? 천자여, 그러므로 나는 '염처(念處)라 하면 기억하는 것도 아니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며 온갖 모든 법이기 때문에 염처라 한다'고 말합니다. 천자여, 만일 비구가 욕계에 머무르지도 않고 색계에 머무르지도 않고 무색계에 머무르지도 않으면 그 때문에 '비구가 4념처에 머무르지 않는지라...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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