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佛陀,부처님)

구도자(求道者)의 마음가짐(122)

근와(槿瓦) 2015. 5. 21. 00:06

구도자(求道者)의 마음가짐(122)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세존은 다시 왕사성으로 돌아가 그 성 밖의 죽림정사에 머무르셨고, 어느 날 제자들을 불러 말씀하셨다.

“제자들이여, 친족을 떠나 집을 나와 마음을 알고 그 근본에 다다르고 도를 깨치는 자를 출가자라고 일컫는다.

출가자는 세간의 재보를 버리고 걸식함으로써 족함을 알고 하루에 한번 먹고 나무 아래에서 자고 죄를 삼가 다시 범하지 않는 자이다. 제자들이여, 사람을 어리석게 하는 것은 자랑과 욕심이다.

 

제자들이여, 어떤 사람이 ‘나를 헐뜯더라도 나는 자애로써 그를 두호하리라. 그가 만일 거듭 나를 범하더라도 나는 더욱 선으로써 대하리라’생각하라. 복덕(福德)의 기(氣)는 언제나 여기에 있고 해로움의 기와 재앙은 거기에 있는 것이다.

악인이 현자를 해치고자 함은 마치 하늘을 우러러보며 침을 뱉는 것과 같다. 그것은 마치 하늘을 향하여 침을 뱉으면 하늘을 더럽히지 못하고 도리어 그 몸을 더럽히리라. 또 바람에 거슬려서 티끌을 뿌려 남을 더럽히고자 하면 티끌은 남을 더럽히지 못하고 오히려 몸을 더럽히는 것과 같다. 현자는 헐뜯지를 못한다. 화는 반드시 자기를 멸한다.

도를 위해 널리 베풀더라도 그는 반드시 큰 보시가 되지 못한다. 다만 뜻을 지키고 도를 받들면 그 복은 크다. 남이 베푸는 것을 보고서 이를 돕고 기뻐한다면 복의 보를 얻으리라. 비유컨대 하나의 횃불에서 수백 수천 명의 대중들이 불을 붙이더라도 그 횃불은 전대로인 것처럼 베푸는 복도 이것과 마찬가지로 멸하는 것이 아니다.

 

세간에 스무 가지 어려운 일이 있다. 가난하여 보시하기가 어렵고, 존귀하여 도를 배우기가 어렵고, 목숨을 버리고서 도를 구하는 일은 어렵다. 부처의 가르침을 보기가 어렵고, 부처의 세상을 만나는 일은 더욱 어렵다. 색을 참고 욕을 여의는 일도 어렵고, 좋은 것을 보고서 구하지 않는 일도 어렵다. 세력을 가지고 권세로써 사람에게 임하지 않는 일도 어렵고, 모욕을 당하고 성내지 않는 일도 어렵고, 일에 관해 무심(無心)한 것도 어렵다. 널리 배우고 두루 탐구하는 일도 어렵고, 초학자를 깔보지 않는 일도 어렵고, 또 아만을 제거하는 일도 어렵다. 선지식과 만나는 일도 어렵고, 심성을 보고 도를 배우는 일도 어렵고, 상대를 대하고 움직이지 않는 일도 어렵다. 근기에 따라 중생을 제도하는 일도 어렵고, 마음을 평안히 갖는 일도 어렵고, 시비를 말하지 않는 일도 어렵고, 방편을 잘 깨치는 일도 더욱 어렵다.

 

도를 행하는 자는, 비유컨대 횃불을 가지고 어둔 방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 어둠은 바로 사라지고 밝음으로 가득하다. 도를 배워 자세히 살피면 어리석은 어둠은 멸하고 밝은 지혜를 얻으리라.

너희는 내가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도를 염하고 어떠한 행으로써 도를 행하고 어떠한 말로써 도를 말하리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다만 사성제의 도를 염하여 잠시도 잊는 일이 없을 뿐이다.

천지를 관하여 무상을 염하고 산천을 보고 무상을 염하고 만물의 왕성한 형체를 보고 무상을 염한다. 이렇듯 마음을 갖는다면 도를 깨닫는 일이 빠르다.

하루 행하고서 항상 도를 염하고 도를 행하고 나아가서는 신근(信謹)을 심으면 그 복은 한이 없다.

 

중생은 욕화(欲火) 그대로 화려한 이름을 구한다. 비유컨대 향을 사르는데 있어 사람은 다만 그 냄새를 맡지만, 향은 냄새를 풍기면서 스스로를 태운다. 어리석은 중생은 헛된 명예를 탐하고 도의 참됨을 지키지 않기 때문에 화려한 명성을 얻어 몸을 위태롭게 한다. 뉘우침은 후에 그 마음을 씹게 되리라.

 

재물과 색을 탐하는 것은 마치 어린애가 칼날에 묻은 꿀을 핥는 것과 같다. 한번 핥을 것도 못되는 달콤한 맛 때문에 혀를 벨 근심을 남기게 되리라.

 

처자나 집에 얽매이는 환(患)은 뇌옥에 갇혀 수갑이나 족쇄를 찬 것보다도 심하다. 뇌옥에는 사면될 때가 있지만 처자에게 주는 정은 범의 입의 화를 가졌으면서도 스스로 달콤한 생각에 잠겨 있듯 계박에서 벗어날 때가 없다.

 

애욕을 탐하는 중생은 횃불을 가지고 바람을 거슬려 가는 것과 같다. 손을 태우고 몸을 태울 근심이 있는 탐욕, 진에, 우치의 독은 몸 속에 있다. 빨리 도로써 이 독을 제거하지 않으면 화는 반드시 그 사람에게 오리라. ‘온갖 더러움을 담은 가죽 자루여, 뜬세상의 중생을 속일지는 모르지만 깨달음에 들은 사람을 움직이지는 못한다. ‘그대에게 나는 쓸모가 없다.’ 이것은 옥녀(玉女)를 바쳐 나를 시험하려고 했던 자에게 준 나의 대답이었다.

 

꿈에라도 너의 마음을 믿지 말라. 너의 뜻은 끝내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꿈에라도 색을 가까이 해서는 안 된다. 색을 가까이 하면 화가 생한다.

 

도에 이르고자 생각하는 자는 욕화를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마른 풀을 걸친 자가 산불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피하듯 도를 닦는 사람은 욕화를 보면 반드시 이를 멀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떤 사람이 음심이 그치지 않는 것을 우려하고, 칼날로 남근(男根)을 끊고자 했다. 나는 그에게 고했다.

‘남근을 끊는 것보다 마음을 끊는 게 좋다. 마음은 주인이다. 주인이 병들면 종자(從者)는 모두 병들으리라. 사심이 그치지 않는다면 남근을 끊더라도 무슨 효험이 있겠는가.’

 

도에 이르는 일도 괴롭지만 도에 이르지 않으면 더욱 괴롭다. 세상에 태어나 늙고 병들어 죽음에 이른다. 그 괴로움에는 한이 없다. 마음이 괴로워 죄를 거듭하면 생사는 마침내 끝날 때가 없다. 그 괴로움은 모두 설할 수가 없다.

 

도에 이르고자 애욕의 뿌리를 뽑지 않으면 안 된다. 비유컨대 주렴(珠簾) 한가닥 한가닥을 뽑아내면, 마침내 끝날 때가 있듯이 악이 다하면 도를 얻기에 이르리라.

 

도를 행하는 일은 소가 무거운 짐을 지고서 깊은 진흙 속을 갈 때, 지치더라도 좌우를 돌아보지 않고 나아가서 진흙 속을 벗어나 그런 연후에 숨을 돌리는 것과 같이 해야 한다. 정욕의 진흙은 그보다도 깊고 심하지만 마음을 곧게 하고서 도를 염하면 온갖 괴로움을 면할 수가 있다.”

 

 

출전 : 불교성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