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심(信心)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덧없는(疑)것을 여읜 청정한 마음. 佛法僧의 三寶 및 因果의 이치를 믿는 것으로 佛敎를 믿는 첫걸음으로 한다. 南本涅槃經卷三十二 師子吼品에는 佛性을 大信心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淨土敎에선 無量壽經의 설에 따라 아미타불의 本願을 믿는 것으로 되어 있다. 曇鸞은 往生論註卷下에 三不三信을 말하고, 善導는 觀經疏散善義에 機法二種의 信心을 말하고 있다. 眞宗에선 信心만으로도 往生할 수 있다고 해서 信心을 근본으로 할 것을 내세운다. 그 信心은 부처님이 준 他力信心(利他眞實信心 · 眞實信心)이라 하여 信心을 얻은 뒤 稱名念佛하는 것을 信後相續의 易行이라 하여 부처님의 恩惠에 보답하는 행위라 한다. 信心이 확정되는 것을 信心決定, 信心이 계속되는 것을 信心相續이라 한다.
참고
의(疑) : 범어 vicikitsa의 번역. 心所(마음의 작용)의 이름. 佛敎의 眞理에 대해서 망설이고 마음을 결정하지 못하는 것. 信에 상대가 된다. 俱舍宗에서는 不定地法의 하나. 唯識宗에선 6根本煩惱의 하나. 또 廣義로는 일반적으로는 번뇌가 아닌 疑도 포함된다. 의심하는 감정이 뒤섞여서 결정하지 못하는 것을 網에 비유해서 疑網이라고 한다. 자기를 의심하고 스승을 의심하고 法을 의심하는 것을 三疑라 한다.
청정심(淸淨心) : 범어 apratisthita-citta. 망념과 집착을 깨끗이 버린 맑은 마음.
삼보(三寶) : 불교도가 존경하고 공양할 佛寶와 法寶와 僧寶의 셋을 말한다. 佛은 우주와 진리와 인생의 참다운 모습을 깨닫고 이에 의해서 다른 이를 가리켜 인도하는 覺者로 불교의 敎主, 法은 그 불타가 스스로의 깨달음에 바탕하여 중생을 가르치기 위해 설한 敎, 僧은 그 法을 따라 修學하는 불타의 제자의 집단이다. 이 셋은 거룩하고 최상의 威德이 있어 변하지 않으므로 세속의 보배와 같기 때문에 寶라고 한다. 삼보에 대해서는 보통, 3종의 구별이 있다고 한다.
① 別相三寶. 階梯삼보라고도 하고, 불보와 법보와 승보가 각각 다른 존재인 측면에서 말한 것.
② 一切三寶. 同體삼보 · 同相삼보라고도 한다. 의미상으로는 불보 · 법보 · 승보의 셋으로 구별하지만, 그 본질은 다름이 없는 一體인 것을 말한다. 예컨대, 佛은 깨달은 사람이란 뜻으로 불보라 했고 불타의 덕은 깨달음의 軌範으로 할만하기 때문에 법보라고 이름하며, 僧은 다툼이 완전히 없는 화합의 상태에 있는 생활이므로 승보라고 하는데, 하나의 불보 안에 삼보가 구비하여 있고, 하나의 법보 · 승보 안에 삼보가 있음을 일체삼보라고 한다.
③ 住持三寶. 후세에 불교가 머물 수 있도록 전하여 가는 삼보란 뜻이니, 佛像과 經卷과 出家의 比丘 등을 말한다. 대승에서는 八相成道를 住持의 佛로 해석하고, 세상을 제도하는 온갖 敎를 住持의 법으로 삼으며, 法에 의해 敎化되어서 성립된 三乘의 대중을 住持의 僧으로 한다. 삼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온갖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근원이 됨으로 삼보에 歸依하는 것을 三歸 또는 三歸依라고 하여 入信 곧 최초의 入門의 요건으로 삼는다.
인과(因果) : ① 원인과 결과를 말함. 결과를 낳게 하는 것이 因이고 그 因에 의해 생기는 것이 果이다. 시간적인 因果 관계로 볼 때 因은 앞에 있고 果는 뒤에 있으므로 因果異時라 한다. 그러나 묶은 갈대를 서로 의지해서 세우는 것은 넓은 의미의 인과관계이니 이와같은 인과관계에서 보면 因果同時이다. 唯識派에선 種子에서 종자가 생기는 관계는 因果異時이고 종자에서 現行이 생기고 現行에 의해 종자를 熏하는 관계는 因果同時라 한다. 六因 · 五果 중에서 異熟因과 異熟果와의 관계 및 同類因 · 遍行因과 等流果와의 관계는 어느 것이나 因果異時로 俱有因 · 相應因과 士用果와의 관계는 因果同時이다. 能作因과 增上果와의 관계는 양쪽에 다 통한다. 또 同類因과 等類果와의 관계는 前生의 자기가 因이 되어 後世의 자기를 낳게되는 관계임으로 이것을 自類因果라 한다.
② 우리의 行爲(業에 대해서 異時의 因果를 세울 때 善의 業因에는 반드시 善의 果報가 있고 惡의 業因에는 반드시 惡의 果報가 있다. 이것을 善因善果 · 惡因惡果라고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善因樂果 · 惡因苦果라고 해야 될 것으로 본다. 善한 業을 因으로 善한 業이 생겨 善業이 계속할 경우도 있다. 이는 바로 善因善果이다. 善惡의 業因이 있으면 반드시 그것에 相應하는 苦樂의 果報가 있다. 因果의 이치가 엄연해서 조금도 흩어지지 않는 것을 因果應報라고 한다. 因果의 이치를 무시해서 인정치 않고 邪見에 빠지는 것을 因果를 撥無한다고 한다.
③ 因果關係를 실천수도상에서 본다면 수행의 因에 의해서 깨달음의 果를 얻게 됨으로 이것을 修因得果 · 修因感果 · 酬因感果라고 한다. 感이란 果를 불러 들이는 것이다.
④ 모든 外道의 說을 네 가지로 분류해서 外道四執 또는 四執이라 함. 곧 邪因邪果는 萬物生起의 원인을 大自在天의 能力으로 돌리는 것. 無因有果는 현재의 現象的 世界를 果로서 인정하고 그 果에 대한 因은 결국은 얻기 어려움으로 부정하는 것을 말한다. 有因無果는 현재의 현상적 세계를 因으로 인정하고 그 因에 대한 果는 얻기 어렵다고 부정하는 것. 無因無果는 그 양쪽을 다 부정하여 因果를 撥無하는 것. 또 따로 두 가지로 분류하기도 한다. 因中有果論은 婆羅門敎 및 數論에서 주장하는 說로 果로서 나타난 현상적 현상세계는 반드시 因 가운데 들어 있다. 따라서 因과 果는 성질이 같은 것이라고 보는 것. 이에 대해 因中無果論은 婆羅門敎에 대립하는 소위 일반사상계 및 勝論에서 주장하는 說로 독립한 많은 요소(곧 因)가 결합해서 현상적세계(곧 果)가 되었다고 봄으로 因과 果는 성질이 같지 않고 因 가운데 果는 없다고 한다. 따라서 차라리 果中有因論이라고 하여도 된다.
⑤ 善惡의 業因에 의해서 樂苦를 가지고 오는 것을 나타내는 異熟因 · 異熟果와 그 중에서 특히 福德(世間的인 善業)에 의해 人 · 天의 樂果를 가져오는 福因 · 福果, 智慧를 修習하여 깨달음의 결과를 가져오는 智因 · 智果의 세 가지 因果關係를 三因三果라 한다.
불교(佛敎) : 범어 Buddha-sasana. 佛陀(Buddha)·如來·世尊 등으로도 불리우는 釋尊의 가르침을 뜻하며 佛法·佛道라고도 불리운다. 즉, 석가모니를 교조로 삼고 그가 말씀한 敎法을 宗旨로 하는 종교다. 불교라는 말은 부처가 설한 교법이라는 뜻과 부처가 되기 위한 교법이라는 뜻이 포함된다.
① 불교의 성립과정을 보면, B.C.500년 경에 인도 釋迦族의 迦毘羅國의 淨飯王과 마야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太子 싯달타는 어려서부터 인간의 현실에 만족을 느끼지 못하여 항상 沈思冥想의 생활을 계속하였다. 29세가 되자 멀지 않아 다가올 임금의 지위도 거절하고 출가수도의 길을 떠나 당시 종교계와 철학계에 명망이 높은 사람을 두루 찾아 다니면서 자기가 회의하는 바를 풀려고 하였다. 그러나 아무도 그의 회의를 풀어 줄 수가 없음을 알게 되자 독자적인 思索과 수련을 닦을 결심을 하고 6년 간의 수도생활을 계속한 결과 드디어 자기의 心眼이 열렸다고 한다. 이것을 일러서 見性悟道라고 하며, 그 후의 그를 가리켜 불타(佛陀=覺者)라 부르고 따라서 그의 교설을 불교라고 부르게 되었다.
② 불교교리의 특성. 불교의 요지는 四諦·十二因緣·八正道 등이다. 4제라 함은 苦諦·集諦·滅諦·道諦 등으로서 고제와 집제는 인간의 현실계와 또 이 현실계가 고통의 현실계로 되는 원인관계를 밝히는 것이며 멸제와 도제는 인간의 理想界와 그 이상계에 이르는 방법과의 관계를 밝히는 것이다. 12인연이라 함은 因緣의 도리를 구체적으로 논하는 것이다. 인연이라 함은 이 우주 만물의 생성발전하는 관계를 말하는 것으로서 이것을 緣起라고도 한다. 8정도라 함은 4제 중의 도제의 구체적 방법을 가르친 것으로서 正見 등 8가지의 바른 길 즉 방법이다. 후세에 논의되는 불교의 모든 종교적 철학적인 교리문제는 모두 이 4제·12연기·8정도설을 확장한 것에 불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석존이 80을 일기로 이 세상을 떠난지 4개월 후에는 그가 45년간에 걸쳐 설한 律과 經의 편찬을 보게 되었다. 교주 석가모니불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 인격의 감화력은 그대로 律과 經안에 보존되었고, 이 율과 경의 위력에 의하여 불교의 교단은 성숙되었다. 특히 다른 여러 종교에 비하여 불교가 지니는 중요한 특징을 들어 보면,
(1) 神을 절대적 존재로 내세우지 않는다. 불타가 후에 이상화되고 확대되어 절대·무한 및 그 밖의 성격이 부여되고, 각성과 구제의 근거가 되고 있으나 창조자·정복자와 같은 자세는 취하지 않는다.
(2) 智慧와 慈悲로서 대표된다.
(3) 자비는 무한이며 無償의 애정이라 할 수 있어, 증오나 원한을 전혀 가지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일반적으로 광신을 배척하고 관용인 동시에 일체의 평등을 관철하고자 한다.
(4) 지혜의 내용은 여러 가지로 발전하는데 일체를 縱으로 절단하는 시간적 원리인 無常과 일체를 橫으로 연결하는 공간적 원리인 緣起가 중심에 있어, 이것은 후에 空으로 표현된다.
(5) 현실을 직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6) 모든 일에 집착과 구애를 갖지 않는 실천만이 강조되고 있다.
(7) 조용하고 편안하며 또 흔들리지 않는 覺性(解脫)을 이상의 경지로 삼아 이를 涅槃이라 한다. 그 敎義는 석존의 正覺에 기초를 둔다. 그러나 팔만사천의 法門이라 일컫듯이 오랜 역사 동안에 교의의 내용은 여러 형태로 갈라져 매우 복잡하고 다양성을 띠게 되었다. 佛도 본래는 석존 자체를 가리켰다고 볼 수 있으나, 석존의 入寂 후 불신에 대한 논의가 일어나 2身·3身 등의 논, 또는 과거불·미래불, 혹은 他方世界의 불·보살 등의 설이 나왔다.
③ 교리의 발달과 교단의 분열. 석가모니불의 입멸 후 근 100여 년간 통일 상태를 유지하면서 내려왔다. 그러나 그 후 교단원들의 생활상의 모든 문제와 교리에 관한 견해의 차이로 교단은 드디어 전통을 지키는 上座部와 진보적 사상을 가진 大衆部라는 根本二部로 분열되었다. 그 후 약 4~5백년 동안에는 이 근본 이부에서 支派가 분열·파생되었으며 따라서 이 시대를 部派時代 혹은 소승 20부시대라고 부른다. 이 시대에는 여러가지 다른 교리를 낳은 시대로서 교리발전사의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그러나 이 부파불교가 성행하던 시대에 약자는 자연 聖者에게 합류되어 성자만이 남게 되었는데 이것이 즉 소승불교로서, 이것을 소승불교 시대라 한다. 소승불교의 대표적인 것은 실재론적 입장에 선 說一切有部였다. 이 학파는 연구와 수도가 전문이었던 관계로 실사회에는 아무런 감화력도 주지 못하는 명목만의 불교였다. 종교로서의 힘을 잃은 소승불교로부터 소생재흥의 운동을 일으킨 것이 즉 대승불교이다. 대승은 실사회를 직접 구제하기 위하여 끊임없는 종교적 할동을 전개하는 동시에, 사상적으로도 소승의 실재론 사상에 대립되는 空·中道 사상을 중심으로 하였다. 그 原典은 반야경 등이다. 이러한 대승사상의 고취자는 龍樹(150~250)를 비롯한 그 계통의 학자들이다. 그 뒤를 이어 대승사상을 철학적으로 조직하는 데 큰 공로를 남긴 학자는 無着과 世親 등이다. 용수와 무착의 학설을 계승하는 그 각 계통의 학파는 후세까지 끊임없는 영향을 끼치면서 내려왔는데 특히 용수의 계통을 中觀派라 하고, 무착·세친의 계통을 瑜伽派라고 불렀다. 이들은 교리사적으로 인도 불교계의 최후를 장식한 학파들이다. 7~8세기에 이르러서는 바라문교의 영향을 받고 불교의 순수성을 잃은 밀교가 탄생하였다. 이 때부터 인도의 불교는 철학적인 발전을 이루지 못하게 된 것은 물론이고 종교적으로 쇠퇴기에 들어 갔다.
④ 불교의 전파. 佛滅 후 130여 년경에 출세한 아쇼카왕은 널리 해외까지 불교의 傳道師를 파견하였다. 남방으로는 세이론까지 파견되어 이것을 계기로 하여 버어마·샴·자바·인도차이나 등 남방 각 지역에 불교가 전파되어 남방불교를 형성하였다. 그러나 이 지역에 전파된 불교의 사상은 소승불교가 주이고, 대승불교는 그 지역 민족들의 성격에 맞지 않아서 그것은 신봉되지 않고 주로 원시불교의 三藏과 소승파인 上座分別部의 사상만이 신봉되고 있다. 그러나 이 남방불교의 특색은 불교의 典籍인 經·律·論 3 藏이 原語 그대로 전해져서 각국이 동일한 원전으로 유포되고 있는 점이다. 따라서 남방불교는 대체로 소승불교라고 불리어 지고 있다. 이에 대하여 인도의 북방인 카슈미르·간다라 지방을 거쳐서 중앙아시아 서역제국에 유포되고 또 거기서 다시 西藏에도 차급되어 중국까지 전파된 북방불교가 있다. 이 북방불교는 남방불교와 정반대의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1) 남방불교의 원전은 팔리어로 되어 있으나 북방의 그것은 범어로 되어 있으며
(2) 남방에서는 장경을 원전 그대로 신봉하는데 반해서 북방에서는 각국이 모두 자기 나라말로 번역하여 신봉하고 있다.
(3) 남방은 소승사상이 신봉되고 있으나 북방에서는 대소승의 三藏이 倂用되고 있으며 종교적으로 신봉되고 있는 것은 주로 대승정신인 것이 공통된 점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의 북방불교 중에서도 인도의 불교사상을 고도로 발전시킨 것은 중국 불교이다.
열반경(涅槃經) : 이 經의 원명은 大般涅槃經(범어는 Mahaparinirvana-sutra)으로 소승의 대반열반경과 이름을 같이 하기 때문에 이를 소승열반경이라 이름 부르는 데에 반하여 이 經은 대승열반경이라 하는데, 대승불교권에서 흔히 열반경이라고 줄여서 부를 때에는 이 대승열반경을 말한다. 소승열반경에 비해서 이 대승열반경이 가지는 특색은 소승열반경이 부처님께서 돌아가신 것을 사건 중심으로 서술한 것에 비해 이 經은 그러한 사건의 철학적 · 종교적 의미가 강조되고 있다는 데에 있다. 그리하여 이 經은 형식을 통해서 첫째, 佛身의 常住, 둘째, 열반의 常樂我淨, 그리고 셋째, 일체 중생의 悉有佛性이라는 세 가지의 사상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사자후(師子吼) : 범어 simhanada의 번역. 獅子의 咆哮(포효)하는 소리. 부처님이 낭랑한 梵音聲으로 설법하는 것을 백수의 왕인 사자가 포효하면 백수가 다 굴복하여 따르는 것처럼, 백수의 왕인 사자의 無畏音에 비유한 말.
불성(佛性) : 범어 buddha-dhatu. 또는 gotra의 번역으로 如來性, 覺性이라고도 한다. 불타의 本性이란 뜻. 佛陀가 될 가능성·因性·종자, 혹은 迷·悟에 의하여 변하는 일이 없이 본래 갖추어진 性品. 如來藏의 다른 명칭이라고도 한다.
北本 涅槃經 卷九에는 이마의 구슬(額珠)에 비유(力士가 씨름을 하다가 眉間에 있던 구슬이 피부속에 들어 박힌 것을 잃어버린 줄로 잘못 알고 있다가 나중에 의사가 이 사실을 알려 줌으로 구슬을 잃지 않았음을 알게 되는 비유. 또는 거울에 비추어 봄으로 귀중한 보배구슬을 잃어버리지 않고 있음을 알게 되는 비유)를 써서 중생들이 본래부터 佛性이 있지만(一切衆生悉有佛性) 범부들은 번뇌에 뒤덮여서 알지 못하고 번뇌를 끊어야 불성이 나타난다고 한다.
① 阿含이나 小乘에서는, 불·보살 이외의 成佛을 말하지 않으므로 佛性은 거의 문제로 삼지 않았다. 그러나 世親의 佛性論卷一에 의하면 有部 등에서는 중생에게는 先天的인 性得佛性은 없지만, 後天的으로 修行을 해서 얻는 修得佛性은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 決定無佛性·有無不定·決定有佛性의 세 종류로 중생을 나누며, 이에 대해서 分別部에서는 空을 佛性으로 하고, 모든 중생은 空을 바탕으로 하여 空에서 생긴 것이므로 다 그 本性으로서 佛性이 모두 있다고 전한다.
② 佛性論卷一에는 一切衆生悉有佛性이라고 말씀한 것은 불타가 중생으로 하여금 나 자신은 용렬하다고 생각하는 마음을 버리게 하는 등의 다섯 가지 과실을 없애고 부지런히 佛道에 정진하는 마음을 일으키도록 하는 등 다섯 가지의 功德을 베풀어 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또 同書卷二에는 佛性을 自性住佛性(凡夫의 位에서는 오직 理로서 있는 것)·引出佛性(初發心으로부터 成佛직전의 金剛心에 이르기까지 점차로 修行해서 나타나는 것)·至得果佛性(佛果에 이르러서 원만하게 나타나는 것)의 三位로 나누고 있다.
③ 중국·한국·일본의 諸宗에서는 각기 여러 가지 說이 있어, 서로 論雜했다.
(1) 天台宗에서는 正因佛性(모든 것에 본래 갖추어 있는 三諦 三千의 理)·了因佛性(이치에 비추어 나타나는 지혜)·因緣佛性(지혜를 일으키는 緣이 되는 모든 善行)의 正了緣의 三因佛性의 說을 세워 이 중 前一은 性(선천적), 後二는 修(후천적)이긴 하지만, 性修不二이므로 그대로 융합되어서, 三佛性은 非縱非橫(前後하여 繼起하는 것도 아니고 並列同時的인 것도 아니다)이라고 한다. 또 이 三因佛性에 果性(菩提의 智慧)·果果性(涅槃의 斷德)을 더하여 五佛性이라고 한다. 因果不離이므로 因位·果位가 서로 갖추어 합쳐진다고 한다.
(2) 華嚴宗에서는 중생의 佛性은 因果性相의 모든 것을 원만하게 갖추었다고 하고 또 有情이 갖추고 있는 成佛의 가능성을 佛性·覺性이라고 하고, 非情이 가지고 있는 眞如의 理를 法性이라고 구별하여 成佛을 有情에 국한한다고 하기도 한다.
(3) 眞言宗에서는 삼라만상이 그대로 大日如來의 法身이라고 하여, 그런 의미에서 悉有佛性을 말한다.
(4) 三論宗에서는 佛性에 관한 여러 가지 論이 있어서 因果를 따로 說하는 것을 迷執이라고 하여 廢하고, 非因非果의 無所得 中道를 佛性이라 했다.
(5) 法相宗에서는 理佛性(모든 것의 本體인 眞如의 理)·行佛性(사람마다 阿賴耶識 가운데 숨겨져 있는 成佛의 因이 되는 無漏種子)의 二佛性說을 說하고, 理佛性은 있어도 行佛性이 없으면 成佛할 수 없다고 하여, 菩薩定姓과 不定姓이라야만 行佛性이 있다고 했다.
(6) 禪宗에서는 중생 본래의 면목을 깨닫는 것으로, 佛性의 有無 등의 문제에 구애되는 것을 否定하는, 狗子佛性 등의 公案이 있다.
(7) 淨土敎에서는, 理佛性을 인정하는 주장과 否定하는 주장이 있는 등 종종의 說이 있는데, 往生은 彌陀의 本願力에 의한다고 하여 淨土宗에서는 이런 의미로 如來가 중생에게 준 信心을 佛性으로 하고 있다.(信心佛性)
④ 諸經典에서는 佛種·佛種性 등의 말이 있고, 成佛의 因이 되는 것을 의미하지만 그 내용은 說하는 경우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다. 중생이 본래 갖추고 있는 佛性을 말하는 때도 있고 번뇌·보리심·보살의 수행·稱名 등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
대신심(大信心) : 대신(大信)→부처님을 믿어 의심하지 않는 것을 信이라 하고, 믿는 마음의 공덕이 광대하므로 大라 한다. 또 이 信心은 곧 佛心이므로 大라 일컬음.
정토교(淨土敎) : 自力的인 수행을 하는 것을 聖道敎라 하는데 대해 아미타불의 本願力을 믿고 그 힘에 의해 극락정토에 往生할 것을 發願하는 것을 일컬으며, 일단 극락세계에 가서 아미타불과 성인들의 교화를 받아 佛法을 성취하고는 다시 사바세계의 중생들을 구제할 것을 發願하는 종파. 어느 경우나 極樂淨土를 전제로 하는 敎이므로 淨土敎라 한다.
무량수경(無量壽經) : 大無量壽經 · 大經 · 雙卷經이라고도 한다. 범명은 Sukhavativyuha로서 아미타경과 범명이 같기 때문에 아미타경을 小經이라고 하는데 대하여 大經이라 함. 이 經은 觀無量壽經 · 阿彌陀經과 함께 淨土三部經이라 하여 淨土宗에서 매우 존중하는 經이다. 梵本으로는 19세기에서 20세기에 걸쳐 유럽 및 일본 학자들에 의해 발견되어 현재 그 수는 13부에 달한다. 이 梵文 무량수경이 최초로 소개된 것은 영국의 Max Muller와 일본의 南條文雄이 네팔에 전해오는 諸本을 對校하여 낸 것이 있다. 이 무량수경의 내용을 보면 아미타불의 因果始終을 주로 밝힌 것이니 처음에 석가여래 부처님께서는 아란의 간청에 응하여 人生出現의 목적을 말씀하게 된 것을 기뻐하시었다. 이 목적은 다른 것이 아니다. 五濁惡世 중생의 최후 목적이 되는 구제를 얻는 길은 오직 아미타불에게 歸命하는 것밖에 다른 길이 없다고 明示하신 것이다. 그리고 아미타불의 내력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아미타불이란 부처님은 본래 國王이었는데 求道의 念願이 돈독하여 出家爲僧하여 法藏比丘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당시에 世自在王佛이라는 부처님이 계셨는데 그에게 나아가서 佛道成就의 방법인 설법을 듣고, 모든 중생을 구제하여 중생들의 모든 죄악을 끊어주고 일체의 진리를 밝혀서 無上의 佛果를 성취시키겠다고 서원을 세웠다. 그래서 그는 중생구제에 대한 특수한 48大願을 이루기까지는 어떠한 고통이라도 불사하고 받겠다고 영겁에 수행하기를 쉬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그 수행의 결과로 성불하여 아미타불이라는 부처를 이루는 동시에 西方十萬億佛土 밖인 피안에 극락세계를 건설하고 중생구제의 본원을 성취하게 되었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고, 다음에는 佛光의 功德이며 정토의 장엄이 顯示되어 있다. 그리고 下卷에는 처음에 48大願 가운데 가장 중요한 제18願 十念往生願의 성취를 明示하고 또 아미타불에게 구제를 받아가는 중생의 多種多樣을 上中下의 三種으로 나누어 그의 行法이 설명되어 있으니 이것을 三輩라고 일컫고 있다. 이와 같은 아미타불의 성취한 정토를 欣慕시키기 위하여 정토와 穢土가 對照되어 있다. 그리하여 저 유명한 五濁惡世라고 하는 사바세계의 모양을 밝히면서 부처님을 만나뵙기가 참으로 어려움을 말씀하셨다. 그러나 아미타불의 정토는 十萬의 세계로부터 무수한 보살이 往生하게 되므로 그 나라의 이름이 극락세계라고 부르게 됨을 說示하고 말세의 중생을 이익케 하는 것은 이 經 밖에 없다고 말씀하고 末法에까지 이 經을 傳持하라고 미륵보살에 대하여 부탁하고 이 經을 부여하시었다. 이 註疏도 상당하게 많다. 특히 淨影의 무량수경의 疏二卷을 비롯하여 65部나 傳하고 있다. 현존하는 經과 缺本經의 제목을 들면 아래와 같다.
(1) 무량수경 二卷 後漢 安世高譯.
(2) 無量淸淨平等覺經 二卷 後漢 支婁迦讖譯.
(3) 아미타경 二卷 吳支謙譯.
(4) 무량수경 二卷 曹魏 康僧鎧譯.
(5) 無量淸淨不平等覺經 二卷 曹魏 白廷譯.(缺)
(6) 무량수경 二卷 西晋 竺法護譯(缺).
(7) 無壽至眞等正覺經 二卷 東晋 竺法力譯.(缺)
(8) 新무량수경 二卷 東晋 佛陀跋陀羅(缺).
(9) 新무량수경 二卷 宋 寶雲譯(缺).
(10) 新무량수경 二卷 宋 曇摩密多譯(缺).
(11) 大寶積經第五無量壽如來會 二卷 唐 菩提留志譯.
(12) 大乘無量藏嚴經 三卷 北宋 法賢譯(缺).
이상의 여러 가지의 缺本現存本의 經이 있으나 康僧鎧三藏 번역이 널리 유포되고 있다. 이 經의 西藏譯도 大經·小經이 다 있으며, 英譯은 Max Muller가 번역한 The Targer Sukhavativyuha가 東方聖書(Sacred Book of the East) Vol. 49, Part 2 pp. 1~72에 수록되어 있다. 이 經에 대한 중국에 있어서의 주석서는 曇鸞(476~546)의 略論安樂淨土義 1권을 필두로 慧遠(523~592)의 無量壽經義疏 2권, 吉藏(549~623)의 無量壽經義疏 1권, 靈裕(771~853)의 無量壽經義疏 2권, 그리고 이 이외에도 상당히 많이 있다. 한편 우리 나라의 경우는 이 經을 비롯한 淨土三部經에 대한 신라 학승들의 註疏類가 눈에 띄게 많아서 통일신라 시대에 있어서 정토교학의 연구가 활발했음을 시사해 준다. 이 經에 대한 신라 학승들의 주석서는 다음과 같다.
(1) 圓測의 無量壽經疏 3권.
(2) 원효의 無量壽經疏 3권, 無量壽經宗要 1권, 無量壽經料簡 1권, 無量壽經私記 1권,
(3) 憬興의 無量壽經疏 3권.
(4) 靈因의 無量壽經疏 1권
(5) 玄一의 無量壽經記 2권(혹은 3권), 卷上 現存.
(6) 義寂의 無量壽經疏 3권, 無量壽經述義記 4권.
(7) 大賢의 無量壽經古述記 1권 등이 있다.
아미타불(阿彌陀佛) : 범어 Amitabha Buddha, Amitayus Buddha. 대승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부처님의 한분. 阿彌陀婆(無量光, amitabha)·阿彌陀庾斯(amitayus, 無量壽)라 음역한다. 이 중에서 婆(abha)는 光明의 뜻이며, 庾斯(ayus)는 壽의 뜻이다. 또는 無量淸淨佛·無量·阿密㗚多(Amrta, 甘露)·盡十方無碍光如來라고도 한다. 阿彌多·阿弭跢·阿弭嚲라고도 쓰며 서방극락세계의 敎主의 이름이다. 이 부처님과 그곳의 극락정토를 주로하여 無量壽經·觀經·阿彌陀經에 說하며, 화엄·법화·열반 등의 대승경전 이외에도 2백 수 십부의 경전에 설해지고 있다. 정토 3부경에 있는 이 부처님의 역사는 오랜 옛적 과거세에 世自在王佛의 감화를 받은 法藏이 2백 10억의 많은 국토에서 훌륭한 나라를 택하여 이상국을 건설하기를 기원. 또 48원을 세워 자기와 남들이 함께 성불하기를 소원하면서 장구한 수행을 지나 성불하였으니 이가 바로 아미타불이다. 오랜 옛적에 성불한 아미타불(本佛)에 대하여, 이 부처님을 10겁 전에 성불한 아미타불(迹佛)이라 한다.
본원(本願) : 불과 보살이 因位에서 생기는 誓願을 말한다. 本弘誓願을 약하여 本誓 · 宿願이라고도 한다. 그 원하는 바가 크다는 뜻에서 弘誓라고도 한다. 또 諸佛과 보살이 가지고 있는 固有한 願을 別願이라 일컫는다. 이에 대해서 四弘誓願은 함께 가지는 總願이다. 예를 들면 아미타불(法藏보살)의 四十八願(梵本에서는 四十六願, 異譯의 經典에서는 三十六願, 또 二十四願으로 되어 있는 곳도 있다), 藥師佛의 十二大願, 釋迦佛의 五百大願 등은 別願이다. 그 밖에 보현보살의 十大願이나 舊譯 화엄경에서 說하고 있는 初地의 보살이 일으키는 十大願 등이 있다. 淨土敎에서는 아미타불의 四十八大願 특히 第十八大願을 本願(王本願)이라 한다. 四十八大願은 無量壽經에 說하고 있는데, 이것을 六八弘誓 · 六八願이라 한다. (6×8=48). 六八大願을 열거하면,
(1) 無三惡趣
(2) 不更惡趣
(3) 悉皆金色
(4) 無有好醜
(5) 宿命智通
(6) 天眼智通
(7) 天耳智通
(8) 他心智通
(9) 神境智通
(10) 無有我相(漏盡智通)
(11) 住正定聚(必至滅度)
(12) 光明無量
(13) 壽命無量
(14) 聲聞無數
(15) 人天長壽(眷屬長壽)
(16) 無諸不善
(17) 諸佛稱揚
(18) 念佛往生
(19) 來迎引接(修諸功德)
(20) 係念定性
(21) 三十二相(具足諸相)
(22) 必至補處(還相廻向)
(23) 供養諸佛
(24) 供具如意
(25) 說一切智
(26) 那羅延身(得那羅延力)
(27) 所須嚴淨(國土難思)
(28) 見道場樹
(29) 得辯才智(誦佛經法)
(30) 智辯無窮
(31) 國土淸淨
(32) 國土嚴飾
(33) 觸光柔輭
(34) 聞名得忍
(35) 女人往生
(36) 常修梵行
(37) 人天致敬
(38) 衣服隨念
(39) 隨樂無染
(40) 樹中見土(見諸佛土)
(41) 諸根具足(具足諸根)
(42) 住定供佛
(43) 生尊貴家
(44) 具足德本
(45) 住定見佛(得定見拂)
(46) 隨意聞法
(47) 聞名不退
(48) 得三法忍이 그것이다.
이것을 慧遠은 攝法身 · 攝淨土 · 攝衆生의 三願으로 분류한다. 善導는 第十八大媛을, 아미타불의 名號로 부르는 것(念佛)을 淨土에 태어날 수 있는 원이라고 해석하여, 어떤 나쁜 사람도 구제받을 수 있다고 했다. 本願의 구제의 목표가 되는 것을 本願의 實機 · 正機라 하며 本願의 서원인 念佛을 本願의 行이라 하고 아미타불을 찬양하는 것을 本願功德聚라 한다.
담란(曇鸞) : (476~542) 중국 梁나라 승려. 중국 정토교 五祖의 初祖이다. 眞宗에서는 일곱 고승 중에서 제3위로 친다. 산시성 안문 출신으로, 어려서 고향 근처인 오대산에서 출가하였다. 널리 內外의 서적을 연구. 四論 즉 구마라집이 번역한 <中論> <百論> <十二門論> <大智度論>의 佛性義에 조예가 깊었다. 우연히 大集經을 읽고 그 주석을 짓다가 병에 걸리게 되어, 長生不死의 법을 찾아서 남방의 道士인 陶弘景을 찾아가 도술을 닦았으며, 仙經을 받아가지고 북으로 돌아왔다. 洛陽에서 菩提流支를 만나, <무량수경> 1권을 받은 뒤부터 淨業을 닦아 정토에 왕생하기를 원하였다. 魏王이 그를 존경하여 神鸞이라 존칭하고 대암사에 있게 하였으나 만년에 석벽의 玄中寺로 옮겼고, 흥화 4년 평요산사에서 67세의 나이에 入寂하였다. 저서에 <往生論註> <讚阿彌唾佛偈> 등이 있다. 그는 정토신앙 속에 대승불교의 2대사상을 조화 · 융합하고 있다. 또한 염불을 중심으로 한 정토행은 自利利他를 갖추고, 그것들은 모두 아미타불의 願力, 즉 他力에 의한다고 설법하여 정토교 교리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후세 淨土敎의 발전에는 그의 공이 크다.
삼불삼신(三不三信) : 三不信과 三信. 淨土에 태어나고자 하는 진실한 세 가지 信心을 三信이라고 한다. 곧 淳心(信心이 두텁고 견고한 것) · 一心(순수해서 의심이 섞이지 않은 것) · 相續心(항상 끊어짐 없이 계속되는 것)이 그것이다. 이에 대해 이와 반대되는 不淳心 · 不一心 · 不相續心을 三不信이라 한다. 曇鸞의 往生論註 卷下에 나오는 말로서, 淨土敎의 각파에서 각기 해석을 달리한다.
왕생(往生) : 목숨이 다하여 다른 세계에 가서 태어나는 것. 極樂往生 · 十方往生 · 兜率往生 등이 있다. 往生을 원하는 것을 願生(願往生)이라고 한다.
① 極樂往生은 無量壽經 등의 說에 의거하여 아미타불의 淨土에 태어나는 것을 말한다. 淨土敎는 이것을 목적으로 하는 敎이고, 다른 대승불교에서도 깨달음을 열기 위한 수단으로서 說한다. 眞宗등에서는 往生即成佛의 說을 세운다. 往生의 방법에는, 念佛往生(불타의 이름을 부름으로 인하여 왕생함) · 諸行往生(염불이외의 착한 행위를 해서 왕생함) · 助念佛往生(염불의 도움으로 하여 諸行을 닦아서 왕생함)등이 있고, 또 聞名往生(부처의 이름을 듣고 믿어 왕생함)이라고 하는 것도 있다. 또 即往生[불타께서 주신 信心에 의해서 報土에 태어나는(化生) · 便往生(자기의 힘을 의지해서 化土에 태어나는 것(胎生))의 二往生說, 혹은 即往生을 難思議往生(第十八願 他力念佛往生) · 便往生을 難思往生(第二十願 自力念佛往生) · 雙樹林下往生(第十九願 諸行往生)이라고 하는 三往生說이 있다. 또 眞宗에서는 信心을 얻은 때에 왕생할 수 있는 것이 定해지는(往生一定) 것을 前念命終 後念即生이라고 하고, 即得往生이라고 한다. 또 이것을 不體失往生(더러운 몸 그대로 平生중 어느 때에 왕생이 정해지는 것)이라고 하고, 體失往生(육체가 죽으면 곧 왕생한다)에 상대시킴. 또 한번 죽어 새로 태어났다가 왕생하는 것을 願次往生이라고 한다. (極樂傳記를 往生傳이라 한다).
② 十方往生은 十方隨願往生經 등의 說에 의거하여 아미타불 이외의 諸佛의 淨土에 태어나는 것.
③ 兜率往生은 彌勒上生經등의 설에 의거하여, 미륵보살이 現存하는 兜率天에 태어나, 56억 7천만년 뒤에 세계에 태어나서 깨달음 얻기를 원하는 것으로, 법상종 계통에서 많이 행해졌다.
진실신심(眞實信心) : ① 진실한 신앙심. ② 眞宗에서 아미타불의 本願을 믿는 마음을 말함.
칭명염불(稱名念佛) : 三種염불 또는 四種염불의 하나. 念은 마음으로 생각하고 입으로 부르는 뜻이 있고 佛에 佛像·佛體·佛名의 세가지 뜻이 있음을 따라 4종 염불로 세운다. 또 往生要集에서는 定·散·有相·無相의 4종 염불로 나눈다. 三種염불은 稱名·觀想·實相의 염불을 가리킨다. 이 가운데 稱名염불은 佛名을 부르며 佛을 생각하는 것을 말하며, 여기에 定心염불과 散心염불의 구별이 있고, 大念·小念 또 大聲·小聲의 다름이 있다. 또 한 부처님만을 생각하고 부르는 稱名正行과 여러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는 稱名雜行이 있다.
신심결정(信心決定) : 부처님의 구원을 믿는 마음이 확정되어 움직이지 않는 것.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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