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성(凡聖)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범부와 聖者. 성자는 성인이라고도 하고, 見道(비로소 無漏의 지혜가 열려서 四諦의 진리를 보는 지위)이상 곧 소승에서는 預流向이상 대승에서는 初地이상을 말한다. 그 이하의 사람은 범부라고 한다. 범부나 성자도 본래적인 절대의 모습으로는 평등하여, 하등의 차별도 없는 것을 凡聖一如, 凡聖不二라고 한다.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十界중 지옥·餓鬼·畜生·阿修羅·인간·天上의 六界를 六凡이라 하고, 聲聞 ·緣覺·보살·불의 四界를 四聖이라고 하며 합해서 六凡四聖이라고 한다. 전자는 有爲의 과보, 후자는 無爲의 聖果이기 때문이다.
참고
범부(凡夫) : 必栗託仡那라고 음역하고, 異生이라고 直譯한다. 또 婆羅必栗託仡那(小兒凡夫, 嬰兒凡夫, 愚異生)라고도 한다. 聖者(聖人, 聖)에 대해서, 어리석은 凡庸한 士夫(人間)란 뜻. 異生이란 말은 여러 가지 견해나 번뇌에 의해서 가지가지의 業을 일으켜 여러 가지 果를 받아서 갖가지 세계에 태어난다는 뜻.
수행의 階位上으로 말하면 見道(처음으로 無漏의 지혜가 열려서 四諦를 보는 位)에 이르기 이전이 범부인데, 구사종에서는 四善根位를 內凡, 三賢位를 外凡이라고 하며, 대승에서는 初地이전을 범부라고 하고, 十住 · 十行 · 十廻向(三賢)을 내범, 十信을 외범이라고 하고, 내범 · 외범을 아울러 二凡이라고 한다. 외범이 하는 아주 낮은 범부 곧 지옥의 有情 내지 하늘의 有情을 말한다. 범부로 하여금 범부답게 하는 性을 異生性(凡夫性)이라고 한다. 犢子部에서는 그 體를 欲界의 見惑이라고 하고, 有部에서는 聖道의 非得이라고 주장한다. 經部에서는 따로 體를 세우지 않고 聖法의 相續의 分位差別에 이름을 붙였으며, 유식종에서는 二十四 不相應行法의 하나로 하여 分別起의 煩惱障 · 所知藏의 種子적 작용에 따라 假名을 붙였다고 한다.
성자(聖者) : 聖은 正의 뜻. 無漏智를 내어 바른 이치를 증득한 사람을 聖者라고 말함. 三乘의 見道 이상의 사람.
견도(見道) : [修道] · [無學道] 修行의 한 階位. 합하여 三道라고 한다. 見道는 見諦道, 見諦라고도 말하고, 비로소 無漏道를 얻어 四諦(佛敎의 眞理)를 現觀하는(明了하게 본다) 位. 따라서 見道에 도달하기 이전은 凡夫(異生)이고, 見道에 들어간 뒤는 聖者이다. 修道는 見道 뒤에 다시 구체적인 事象에 대처하여 몇 번이고 되풀이 해서 修鍊 · 修習하는 位. 見道와 修道를 합하여 有學道라고 하며, 이에 대해 無學道는 無學位 · 無學果 · 無學地라고도 하고, 궁극적 최고의 깨달음에 들어가서, 이미 배울 것이 없는 位를 말한다. 小乘에서는 三賢 · 四善根 등의 준비적 修行(七方便)을 닦은 사람이 비로소 無漏智를 얻어 見道에 들어간다고 하며, 大乘에서는 初地 入見道라 하여 보살의 初地를 見道, 第二地 이상을 修道, 第十地와 佛果를 無學道라 하고, 密敎에서도 淨菩提心이 처음으로 생기는 자리를 見道라고 한다. 無漏智에서 道理를 명확히 가려내는 것(決斷簡擇한다)을 決擇이라 하며 見道는 決擇의 일부분이므로 決擇分이라 하고, 또 열반의 깨달음 혹은 그에 이르기 위한 聖道는 邪가 아니므로 正性이라고 하지만, 특히 見道를 正性이라 한다. 모든 聖道는 번뇌를 여의게 하므로 離生이라 하지만, 특히 見道는 異生(곧 凡夫)의 生을 여의게 하므로 離生이라 한다. 따라서 見道를 正性離生 · 正性決定(決定이란 반드시 열반으로 나아간다는 뜻)이라고도 한다. 見道에서 끊는 번뇌를 見道所斷(또는 見道斷, 見所斷)의 번뇌, 약하여 見惑이라고 하며, 修道에서 끊는 번뇌를 修道所斷(또는 修道斷, 修所斷)의 번뇌, 약하여 修惑이라 한다.
① 有部에서는, 見道에서 苦 · 集 · 滅 · 道의 四諦를 現觀하는 無漏智로써 틀림없이 見惑을 끊는다고 한다. 또, 無間道의 智(곧 忍)와 끊은 뒤에 四諦의 진리를 깨닫는 解脫道의 智가 있고, 이것을 觀察의 대상에 따라 八忍八智의 十六心이라 한다. 즉 欲界의 苦諦에 관한 無間道의 智를 苦法智忍, 欲界의 苦諦에 관한 解脫道의 智를 苦法智라 하고, 이와 같이 色界 · 無色界의 苦諦에 관한 忍과 智를 苦類智忍 · 苦類智, 마찬가지로 欲界에 대한 集法智忍 · 集法智, 上二界에 대해서는 集類智忍 · 集類智, 欲界에 있어서의 滅法智忍 · 滅類智, 欲界의 道法智忍 · 道法智, 上二界의 道類智忍 · 道類智를 세우고 이 十六心(刹那)의 觀法을 聖諦現觀이라 한다. 이 가운데 前十五心까지가 見道이고, 이 十五心을 見道十五心이라 한다. 道類智는 四諦의 眞理를 다 안 뒤의 지혜이므로 修道에 속한다고 한다. 修道는 三界 九地의 修惑의 각각에 대하여 上上品으로부터 下下품까지의 九品을 합한 八十一品의 修惑을 끊는 修道과정이다.
次第證의 편에서의 見道는 預流向이므로 第十六心(道類智)에 있어서 初果(預流果)를 깨닫지만, 이미 異生位(凡夫位)에서 世俗智에 의해 有漏의 六行觀을 닦는 修惑의 일부를 끊은 超越證은 第十六心에서 그 정도에 따라 初果 · 第二果(一來果) · 第三果(不還果)를 깨닫는다고 했고, 修道란 그 果로부터 각각 阿羅漢向까지를 말한다. 無學道는 阿羅漢果를 깨닫는 자리를 말하고, 여기에 능력 · 성질 등의 高下에 따라, 退法 내지 不退法의 七種阿羅漢에 獨覺 · 佛, 또는 慧解脫 · 俱解脫을 더한 九無學이 있다고 하며, 또 無學人은 無學正見 내지 無學正定의 八聖道와 및 無學解脫 · 無學正智의 열가지의 無漏法(十無學支)을 완성한다고 한다. 또, 鈍根은 見道에서 隨信行, 修道에서 信解, 無學道에서 時解脫을 얻는다고 하지만 利根은 차례로 각각 隨法行 · 見至 · 不時解脫을 얻는다고 한다.
② 經部나 成實論에서는 八忍八智의 十六心이 모두 見道에 속한다고 해서 十六心見道(十六心見諦)의 說을 취하고, 犢子部에서는 一諦에 대해 法智 · 法忍(有部의 說과는 별도) · 類智의 三心이 있다고 하여 十二心見道의 說을 취하고, 第十三心은 최후의 道類智가 앞의 刹那에 이어 다시 일어난다고 하고, 혹은 一刹那로써 四諦의 모두를 다시 觀한다고 하며, 第十三心부터가 修道位라고 한다. 또 大衆部에서는 頓現觀의 說을 주장하여 四諦의 모두를 한 찰나에 깨닫는다고 하고, 혹은 一時頓現觀의 說을 세워 먼저 총괄하여 觀하고 다음에 상세히 觀하므로 二刹那에 깨닫는다고도 한다. 이에 대해 有部의 說을 漸現觀이라 한다.
③ 唯識宗에서는 見道를 眞見道와 相見道로 나눈다. 전자는 根本(無分別)智를 일으켜 眞如의 이치를 깨닫고, 煩惱障 · 所知障의 분별의 隨眠을 끊는 자리이다. 이것은 一心眞見道의 說(頓證頓斷說)이다. 相見道는 眞見道를 얻은 뒤에 後得智를 일으켜 다시 眞如의 理를 觀하는 자리로, 이것은 더욱 더 三心相見道(첫째 자기의 육체를 觀察하여 我空 즉 有情으로서의 我體가 없음을 깨닫고, 둘째로 이와 같이 法空 곧 모든 것에는 實體가 없음을 깨달으며, 셋째로 自他의 모든 有情의 온갖 것을 觀察하여 我空과 法空을 깨닫는 것)와 十六心相見道(十六心으로 四諦를 觀한다)로 분류된다. 三心相見道를 眞見道에 포함시켜 三心眞見道의 說(漸證漸斷說)을 취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見道에 있어서 見惑을 끊어서 無分別智를 얻지만, 아직 餘障이 있기 때문에 修道를 하여 더욱 無分別智를 닦고 익혀 차례로 十重障을 끊고, 第十 金剛無間道에서 煩惱障과 所知障의 종자를 끊어 없애고 無學果를 깨닫는다. 이 三道를 五位에 비교하면, 見道는 通達位, 修道는 修習位, 無學道는 究竟位에 해당한다.
무루지(無漏智) : 眞理를 더욱 자라게 하고, 모든 번뇌의 허물을 여읜 淸淨한 지혜를 말함. 小乘에서는 四諦의 이치를 證한 지혜라 하여 法智와 類智의 두 가지를 세우고, 大乘唯識에서는 無漏智에 根本智와 後得智의 두 가지를 세운다. 根本智는 唯識의 性인 眞如의 이치를 證得한 無分別智를 말하고, 後得智는 그 根本智에서 나와 唯識의 相인, 因緣으로 일어난 모든 萬象을 아는 지혜이다.
사제(四諦) : ① 諦는 범어 satya, 파리어 sacca의 번역으로 진리란 뜻. 자세히는 四聖諦 · 四眞諦라 하며 4가지의 틀림없는 진리를 말한다. 四諦는 대체로 12緣起의 뜻을 교리적으로 조직화한 것으로 원시불교의 교리의 대강이 표시되어 있다. 이것은 ‘最勝法說’이라고도 불리워지는 석존 최초의 설법(곧 初轉法輪)에서 설한 것이라고 한다. 4가지 진리의 제1은 「迷惑의 이 세상은 다 苦이다」라고 한 가르침이며, 제2는 「苦의 因은 구하고 탐하여도 그치지 않는 執着이다」라고 한 가르침이다. 제3은 그 執着을 완전히 끊어 없애 버림으로 苦를 멸한 때가 궁극의 理想境이다」라고 한 가르침이며, 제4는 「이와 같이 苦가 없는 열반경에 도달하기 위하여 八正道의 옳은 修行의 길을 따라야 한다」고 하는 가르침이다. 이 4가지는 순서와 같이 苦聖諦 · 苦集聖諦 · 苦滅聖諦 · 苦滅道聖諦라고 불리운다. 이를 약하여 苦諦 · 集諦 · 滅諦 · 道諦라고도 한다. 이 苦 · 集 · 滅 · 道의 四諦 가운데 苦와 集은 迷妄의 세계의 因果를 나타내고, 滅과 道는 證悟의 세계의 인과를 나타낸다. 四諦의 이치가 三段階인데 여기에 각각 4가지의 行相을 붙여서 說할 때 이것을 三轉十二行相이라고 한다. 곧 三轉이란 제1轉 「이것은 苦諦(集 · 滅 · 道諦)이다」라고 하는 示轉, 제2轉은 「이 苦諦(集 · 滅 · 道)는 徧知(永斷 · 作證 · 修習)되어야 한다」라고 하는 勸轉, 제3轉은 「이 苦諦(내지 道諦)는 이미 徧知(내지 修習)되었다」고 하는 證轉이 그것이다. 12行相이란 이 三轉에 각각 眼 · 智 · 明 · 覺(옳은 智慧에 의한 이해를 뜻하는 4개의 同義語)의 四行相을 假設하고 각각의 諦에 12行相이 있다고 한 것. 그러나 다른 견해에 따르면 眼 · 智 · 明 · 覺을 고려하지 않고 一諦에 三轉이 있어 四諦全體로서 모두 12行相이 있다고도 해석한다.
② 有部敎學의 修證論에서는 우선 四善根位에서 4諦의 하나를 觀하는데 4種의 行相이 있으므로 합하여 十六行相을 가지고 四諦를 觀한다. 곧 苦諦에서 非常 · 苦 · 空 · 非我(恒存性이 없는 苦이며 假의 존재로 實體性이 없다)의 四行相, 集諦에서는 因 · 集 · 生 · 緣(執着을 苦의 원인으로 하여 苦를 모으고 생기게 하는 苦의 助緣이다)의 四行相, 滅諦는 滅 · 靜 · 妙 · 離(苦滅의 理想境은 繫縛을 끊고 번뇌를 가라앉혀서 殊妙의 境地에 이르러 災禍를 여읜다고 함)의 四行相, 道諦에는 道 · 如 · 行 · 出(苦滅의 聖道는 聖者實踐의 正道이고 正과 理가 합하여 迷의 生存을 超出하는 것이다)의 四行相이 그것이다. 이 四善根位의 다음에 見道에 들어 無漏의 眞智를 가지고 四諦를 現觀한다. 이 見道는 預流向에 속하는 일로서 預流果 이후로는 修道에 속하는데 이 預流向 · 預流果를 통하여 16心으로 四諦를 現觀한다. 이것을 聖諦現觀이라고 한다. 그 가운데 최후의 제16心만이 預流果에 속하고 앞의 제15心은 見道에 속한다. 먼저 欲界의 四諦를 觀하는 智를 法智라 하고 上2界(色界와 無色界)의 四諦를 觀하는 智를 類智라고 하는데 이 法智와 類智에 각각 忍과 智가 있다. 곧 無間道에서 忍을 가지고 煩惱를 끊고(斷惑) 解脫道에서는 智를 가지고 진리를 깨닫는(證理)다. 苦諦에는 苦法智忍(약하여 苦法忍이라고도 하며 이에 따라 欲界의 苦諦를 現觀함으로 苦諦에 迷惑되어 있는 煩惱를 끊는다)ㆍ苦法智(이것으로 欲界의 苦諦를 現觀함으로 苦諦의 이치를 깨닫는다)ㆍ苦類智忍(약하여 苦類忍이라고도 한다. 이것을 가지고 上2界의 苦諦를 現觀함으로 번뇌를 끊는다)ㆍ苦類智(이것으로 上2界의 苦諦를 現觀함으로 진리를 깨닫는다)의 四心을 가지고 苦諦를 現觀한다. 集ㆍ滅ㆍ道의 三諦에도 앞에서와 같이 集法(智)忍ㆍ集法智ㆍ集類(智)忍ㆍ集類智ㆍ滅法(智)忍ㆍ滅法智ㆍ滅類(智)忍ㆍ滅類智ㆍ道法(智)忍ㆍ道法智ㆍ道類(智)忍ㆍ道類智의 각각의 4心을 說하여 모두 16心이 된다. 이것을 八忍八智라고도 한다. 또 四諦를 觀하는 無漏淸淨의 智를 諦에 따라 나누면 苦智ㆍ集智ㆍ滅智ㆍ道智가 되어 法智ㆍ類智 등과 같이 10智로 된다.
③ 大乘佛敎에 따르면 顯揚星敎論 卷七에서는 四諦의 내용을 전개시켜 行苦諦ㆍ壞苦諦ㆍ苦苦諦ㆍ流轉諦(이상은 苦諦의 展開)ㆍ雜染諦(苦集 2諦에 해당)ㆍ流息諦(滅諦에 해당)ㆍ淸淨諦(滅道 2諦에 해당)ㆍ正方便諦(道諦에 해당)라고 하여 8諦를 들었다. 또 小乘의 四諦觀은 불완전하므로 有作四涕라 하여 낮추었으며 大乘四諦觀은 완전하므로 無作四諦라고 하고 이를 八諦라 했다. 또 天台宗에서는 제1의 生滅 四諦(四諦의 因果 그대로 生이 있고 滅이 있다고 觀하는 四諦觀)ㆍ제2의 無生四諦(또는 無生滅四諦라고도 한다. 四諦迷悟의 因果는 다같이 空無하여 生滅하는 일이 없다는 四諦觀)ㆍ제3의 無量四諦(一切의 現象은 無明에서 생기므로 無量의 차별이 있고 따라서 四諦에도 無量의 相이 있다고 하는 四諦觀)ㆍ제4의 無作四諦(迷와 悟와 같은 對立矛盾 상태 그대로가 矛盾이 아니라고 觀하는 四諦觀)등을 주장하여 이것을 四種의 四諦라고 하며, 이것을 또 藏ㆍ通ㆍ別ㆍ圓의 四敎에 배당한다. 法相宗에서는 四諦 가운데 滅諦에 自性滅ㆍ二取滅ㆍ本性滅의 三滅諦, 道諦에 徧知道ㆍ永斷道ㆍ作證道의 三道諦를 세우는데, 이것은 滅諦와 道諦에 각 三性(遍計所執性ㆍ依他起性ㆍ圓成實性)을 갖추고 있는 것에 연유한다(成唯識論 권8).
진리(眞理) : 참된 이치. 참된 도리. 佛法을 말함. 만인에게 보편 타당하다고 인정되는 인식의 내용.
불법(佛法) : ① 부처가 說하신 敎를 佛法이라고 한다. 成實論卷一에는 여섯 가지 동의어를 들고 있다. 이것을 佛法六名이라고 한다. 곧 (1) 善說(있는대로 說하기 때문). (2) 現報(現世에 있어서 果報를 얻게 하기 때문에) (3) 無時(吉凶이 때를 가리지 않고 따라오기 때문에) (4) 能將(正行으로써 중생을 잘 이끌어서 깨달음에 이르게 하기 때문에) (5) 來嘗(자신이 깨달아야 하기 때문에) (6) 智者自知(지혜있는 사람은 스스로 잘 信解하기 때문에)
② 부처가 중생을 가르쳐 인도하는 敎法. 곧 出世間의 법을 불법이라고 하는데, 국왕이 백성을 통치하기 위하여 만든 국법을 王法이라 한다. 眞宗에서는 王法爲本 · 仁義爲先이라고 해서, 일상생활에 있어서는 국법을 준수하고 윤리도덕을 실천해야 한다고 한다.
③ 불타가 얻은 법(곧 緣起의 道理와 法界의 진리 등). 부처가 알고 있는 법(곧 一切法). 불타가 갖추고 계신 여러 가지 功德(十八不共法)을 불법이라 하는 수도 있다.
소승(小乘) : 범어 hinayana. 乘은 싣고 운반하는 뜻. 일체 중생이 모두 부처가 되기에는 너무나 작고 보잘 것 없는 수레라는 뜻. 대승의 對. 이 교법 중에서 敎·理·行·果가 모두 深遠 광대하고, 따라서 수행하는 사람도 大器利根인 機類를 요하는 것을 대승이라 하고, 이와는 달리 아라한과와 벽지불과를 구하는 것을 소승이라 한다. 소승에는 성문승과 연각승이 있다.
(1) 聲聞乘. 四諦의 이치를 관하여 성문의 四果를 증득하여 열반에 이르는 것을 교리로 한다.
(2) 緣覺乘. 12인연을 觀하여 辟支佛果에 이르는 것을 敎體로 한다. 이것은 모두 몸을 태우고 智를 멸하여 空寂 열반의 깨달음으로 돌아가는 것을 최후 목적으로 생각한다. 부처님이 열반하신 후 100년에 上座部와 大衆部로 분열하였고, 이 대중부는 또 다시 9부로, 上座는 11부로 나뉘어져 결국 도합 20부가 되었다. 스승이나 지역 관계가 분열의 원인이 되었는데, 이와 같은 분열은 한편으로 교세의 확장을 의미하기도 한다. 각 부의 敎義는 서로 영향을 받았으며, 거기다가 이상적 질서를 부여한 것은 중국의 敎判으로, 窺基의 八宗判, 法藏의 十宗判 등이다. 이 이름은 대승이 有部의 煩瑣 연구를 소승이라고 낮추어 부른 데서 비롯한다. 대표적인 부파는 有部·經量部·正量部·大衆部 등이다. 인도의 상좌부·대중부 등의 20분파와 東土의 구사종·성실종·율종 등이다.
예류향(預流向) : 預流에 向하는 과정. 聲聞 四向의 하나. 三界見惑(88使)을 끊는 기간인 見道 15心의 사이를 말한다. 向은 果에 이르는 因道(과정)의 뜻.
대승(大乘) : 摩訶衍那·摩訶衍이라 음역하며, 上衍, 上乘이라고도 한다. 乘은 타는 것이란 뜻이며, 迷惑의 此岸으로부터 깨달음의 彼岸에 이르는 敎法을 가리킨다.
① 阿含經에서는 불타의 가르침을 존중하여 大乘이라 했다.
② 대승·소승이란 말은 釋尊의 入滅 후 그 言行의 傳承을 중심으로 불교(原始佛敎)로부터 그 註釋的 硏究의 불교(部派불교)가 전개되는 것과 동시에 따로 보살도를 說하는 불교(대승불교)가 또한 발달되었는데, 이때에 후자의 敎徒가 자신들이 받들고 있는 敎를 殊勝한 것으로 규정하여 대승이라 불렀으며, 전자를 낮추어서 小乘이라 이름하게 된데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전자의 敎徒로부터는 대승은 부처님이 말씀한 敎가 아니라고 非難하는 이른바 大乘非佛說이 주장되었다. 그러나 思想史的으로 보면 小乘은 大乘敎學의 기초 내지 前驅라고 하는 의미를 갖는다.
③ 소승은 자신의 解脫만을 목적으로 하는 自調自度(調는 번뇌를 制伏하여 없애는 것. 度는 깨달음에 이르는 것)의 聲聞·緣覺의 道이며, 대승은 涅槃의 적극적인 의미를 인정하여 自利·利他의 兩面을 다 갖춘 보살의 도라 할 수 있다.
④ 小乘에는 반야경·四分律·五分律 등의 律, 婆沙論·六足論·發智論·俱舍論·成實論 등이 있고, 대승에는 般若經·法華經·華嚴經 등의 經과 中論·攝大乘論·大乘起信論 등의 論이 있다.
⑤ 대승이 殊勝한 이유로서, 菩薩善戒經 卷七등에서는 七을, 世親의 攝大乘論釋 卷六에서는 十一을 들고 있는데, 보살선계경에서 말하는 七大乘이란 十二部經 가운데 最上의 경인 毘佛略의 敎에 기초를 두고(法大), 菩提心을 일으켜서(心大), 그 교를 이해하고(解大), 청정한 마음으로(淨大), 보살의 복덕과 지혜가 몸에 나타나며(莊嚴大), 三大阿僧祗劫의 수행을 쌓아(時大), 마침내 相好를 갖추며 無上菩提를 얻는것(具足大)이라고 했다.
⑥ 印度의 대승에는 대략 中觀·瑜伽의 2系統과 밀교가 있다.
⑦ 중국에서는 대승의 諸經論에 기초한 많은 敎派(三論·涅槃·地論·淨土·禪·攝論·天台·華嚴·法相·眞言 등의 諸宗)가 있어서 각각 自宗의 우월한 점을 나타내기 위해 대승에 관한 종종의 구별을 세웠다. 예컨대 진언종에서는 顯敎·密敎로, 華嚴宗이나 천태종에서는 權대승(대승 가운데 方便에 해당하는 敎 곧 五性各別의 說을 세운 敎·實대승(대승 가운데 眞實敎. 모든 중생이 成佛하게 된다는 가르침)등으로 나누어진다. 또 有相大乘·無相大乘의 2종대승, 혹은 法相·破相·法性의 3大乘으로 나누는 說이 있다.
⑧ 우리나라·중국·일본의 불교는 전통적인 대승불교이며, 서장불교, 몽고의 라마교 등도 대승의 계통에 속한다. 버마·태국·스리랑카 등의 불교는 대승교도로부터 고래로 小乘으로 불리워 온 계통에 속하는 불교다.
⑨ 천태종에서는 小乘에는 經律論의 三藏이 확실히 구별되어 갖추고 있는 점에 비추어 小乘敎를 三藏敎(藏敎)라 일컫는다.(화엄종에서는 小乘敎라 이름한다). 또 천태종에서는 小乘 가운데 有門(發智論·六足論 등)과 空門(成實論), 그리고 亦有亦空門(毘勒論, 이 논은 중국에 들어오지 않았음)과 非有非空門〔迦旃延經(가전연경), 중국에 들어오지 않았음〕의 四門이 있다고 하고 이것을 小乘敎의 四門 또는 小乘의 四分이라고 했다.
⑩ 智顗(지의)의 金光明玄義에는 理乘(모든 存在의 本質인 眞如 理性)·隨乘(對象에 隨應해서 작용하는 智慧)·得乘(스스로 깨달음을 얻음과 동시에 다른 사람을 깨닫게 하는 證果)의 三大乘을 說했는데 이것은 順次로 眞性·觀照·資成의 三軌에 해당시킨 분류다. 또 起信論에는 大乘의 本體는 衆生心이라고 記述하고 있다.
초지(初地) : 곧 歡喜地(淨心地. 慧遠의 大乘義章 卷十四에서 해석하고 있는 자리로서, 처음으로 聖者가 되어서 크게 기쁜 마음이 일어나는 자리임). 보살이 成佛하기까지 52位의 階位가 있는 가운데 제41位. 十地 중 첫째 階位.
범성일여(凡聖一如) : 凡聖不二라고도 한다. 범부와 성인이 차별이 있는 듯이 보이지만, 그 본성인 진여는 똑 같다고 하는 것.
십계(十界) : 迷한 者나 깨달은 이까지도 포함해서 모든 境地를 10종류로 나눈 것. 곧 地獄界 · 餓鬼界 · 畜生界 · 修羅界 · 人間界 · 天上界 · 聲聞界 · 緣覺界 · 菩薩界 · 佛界의 10으로, 이 가운데 앞 6은 범부의 세계이고, 뒤 4는 聖者의 세계이기 때문에, 六凡四聖이라고 한다. 또 이것을 四類로 나누어서, 순서대로 四趣 · 人天 · 二乘 · 菩薩 · 佛로 하는 경우도 있고, 5종류로 나누어 순서대로 三惡道(三途) · 三善道 · 二乘 · 菩薩 · 佛로 하는 경우도 있다.
이 10종의 法은 각각 苦樂凡聖에 있어서 다른 것과 같이 그 경지를 자초한 원인도 같지 않으므로, 分齊가 不同하다는 의미로 또 十法界라고도 부른다. 지옥은 地下에 있는 牢獄이므로 고통이 가장 많은 곳. 축생은 서로 다른 축생을 먹이로 하여 생존하기 때문에 고통이 무겁다. 아귀는 음식을 얻지 못하므로 고통이 그칠 날이 없다. 수라는 阿修羅의 略語로, 바다에 살고 질투심이 강한 것. 사람은 괴로움 반, 즐거움이 반쯤 되는 것. 천은 아주 즐거움을 누리기는 하나, 구경적인 괴로움을 면치는 못하는 것. 성문은 부처의 소리(敎)를 듣고서 깨닫는 것(단 소승의 敎). 연각은 인연을 觀하여 홀로 깨달음을 즐거워 하는 것. 보살은 다른 이와 같이 깨달음을 얻고자 願을 내어 수행하는 것. 불은 스스로도 깨닫고 다른 이도 깨닫게 하는 이. 이 가운데에서 불계는 悟界(또는 성문 · 연각 · 보살까지 포함한 4계를 悟界로 하기도 함)이고, 다른 九界는 迷界인데, 천태종에서는 十界 각각 權實(진실과 잠정적인 것)을 갖추고 있고, 그리고 權과 實은 본질적으로 일체이기 때문에 十界皆眞實이라고 한다. 이 문제를 十界權實이라고 한다.
또 십계중에서 성문과 연각의 이승은 일반적으로는 성불할 수가 없다고 하나, 법화경에서는 이승도 성불하기 때문에, 십계의 중생이 다 성불한다고 설한다. 이것을 十界皆成이라고 한다. 천태종에서는 또 불계의 평등한 진리만을 관념하고 다른 九界차별은 理가 緣에 따라서 생긴 妄法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여 斷破하고 배척하는 입장을 緣理斷九라고 하고, 이것은 別敎에서 說하는 方便의 敎로 圓敎의 진실한 說은 아니라고 한다.
육도(六道) : 六趣라고도 한다. 중생이 邪執 · 謬見 · 煩惱 · 善(有漏) · 惡業 등으로 인하여 죽어서 머무르는 장소를 여섯 가지로 나누어 가리키는 것. 즉 地獄道 · 餓鬼道 · 畜生道 · 修羅道 · 人間道 · 天道. 이것은 色界 · 欲界 · 無色界의 三界와 함께 중생이 윤회전생하는 범위로 인정된다. 6도 가운데 앞의 3을 3惡道, 뒤의 3을 3善道라고 하는 說도 있다. 중국 · 한국 등에서는 6도의 說이 널리 쓰이고 있다.
육범(六凡) : 十界중에 地獄·餓鬼·畜生·修羅·人間·天上을 말함.
사성(四聖) : ① 聲聞·緣覺·보살·佛을 말한다. 또 6凡(지옥 등의 六道)을 합하여 十界라고 한다. ② 聲聞의 四果. 즉 豫流果·一來果·不還果·無學果(阿羅漢果)를 말한다. ③ 선종에서는 禮佛할 때 請念하는 4尊. 곧 아미타불·관세음보살·대세지보살·대해중보살을 말한다.
육범사성(六凡四聖) : 천태종에서 十界중 앞에 地獄·餓鬼·畜生·修羅·人間·天上을 六凡, 뒤에 聲聞·緣覺·菩薩·佛을 四聖이라 함.
유위(有爲) : 爲作 · 造作의 뜻으로 有爲法이라고도 한다. 모두 인연의 화합에 의해서 造作되어진 現象的 존재를 말하고, 영구불변의 절대적 存在인 無爲에 相對語.
① 일반적으로 말하면 五蘊이 有爲法인데, 俱舍宗에서는 일체법을 七十五法에 분류하는 가운데 七十二法을, 唯識宗에서는 百法 중에서 九十四法을 有爲法이라고 한다. 대별하면 色法(물질)과 心法(心)과 非色非心法의 3종이 되므로, 이것을 三有爲라고 한다.
② 有爲는 無常하여 항상 轉移하고 변하므로 無常을 有爲轉變이라고도 한다. 有爲法이 無常하다는 論理的 근거는, 生 · 住 · 異 · 滅의 四相에 있으므로 이것을 四有爲相이라고 한다.
③ 俱舍論 권一에는 有爲法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4개의 다른 이름을 들고 있다. (1) 世路라 함은 有爲法이 과거 · 미래 · 현재의 三世를 所依로 함을 나타낸 것으로, 혹 世는 破壞 · 無常의 뜻으로, 無常의 所依가 됨을 나타낸다고도 한다. (2) 言依라 함은, 言語 · 音聲의 所依라는 의미로, 有爲法은 잘 詮表되는 명사에 의해서 詮表되기 때문에 이와 같이 말한다. (3) 有離라 함은, 離는 涅槃의 깨달음으로, 有爲法을 마침내는 捨離하여야 열반에 이르게 되므로 이와 같이 말한다. (4) 有事라 함은, 事는 因의 뜻. 有爲法은 因에서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④ 또 有爲法은 因果的 관계에 있어서 성립되는 것으로 반드시 果가 있기 때문에 有果라고도 한다.
과보(果報) : 異熟이라고도 한다. 因으로서의 業 곧 業因으로 말미암아 얻는 보답의 결과. 여기에 二報가 있다.
(1) 總報는 引業(總報業)에 의하여 引出되는 總體로서의 果報를 말한다. 예를 들면 일단 인간으로 태어나면 누구나 그 인간으로서의 공통된 생존을 누리게 됨을 말한다.
(2) 別報는 滿業(別報業)에 의하여 引出되는 차별의 果報로서 滿果라고도 한다. 예를 들면, 같은 인간으로 태어난 경우에도 男 · 女 · 貧 · 富의 차가 있게 되는 등이 그것이다. 또 三時業에 대한 각각의 果報를 합하여 三報라 한다. 곧
(1) 順現報는 現報라고도 하며, 금생에 業을 지어 금생에 받는 果報를,
(2) 順生報는 生報라고도 하며 금생에 業을 지어 다음生에 받는 果報를,
(3) 順後報는 금생에 業을 지어 次生을 넘어 未來世 이후에 받는 果報를 받는다. 六趣 가운데 人趣와 天趣의 果報는 五戒 十善의 因에 의하여 받는 훌륭한 報이므로 人天勝妙의 善果라고 한다. 그렇지만 아직 凡夫의 迷惑의 경계를 여의지 못했으므로 顚倒의 善果라 부른다.
무위(無爲) : 범어 asamskrta의 번역으로 有爲에 상대된다. 因緣에 의해서 作爲되는 것이 아니고, 생멸변화를 여읜 常住絶對의 法을 일컬으며, 자세히는 無爲法이라고 한다. 본래는 涅槃의 異名이지만 뒤에는 열반이란 말 이외에도 여러 가지 無爲를 세워서 三無爲 · 六無爲 · 九無爲 등의 說이 있게 되었다. 三無爲는 有部 등의 說로서 擇滅 · 非擇滅 · 虛空을 가리키며, 六無爲는 唯識宗의 說로서 三無爲에 不動無爲 · 想受滅無爲 · 眞如無爲를 더한 것을 말한다. 다만 六종의 無爲法이 따로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眞如法性에 대해서 설명하는 방법 여하에 따라서 거짓으로 六종의 이름을 세운 것에 지나지 않는다.
예컨대 眞如가 無障礙임을 허공에 비유해서 虛空無爲라고 한다. 본래 自性이 淸淨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非擇滅無爲라고 한다. 第四靜慮와 滅盡定에서 나타나는 眞如를 不動無爲 · 想受滅無爲라고 하는 것과 같다. 眞如는 말이나 생각을 초월한 것으로 더구나 有爲法 밖에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란 뜻에서 假設이지만, 다만 眞如에 의해서 眞如의 뜻 위에 이러한 六無位를 세운 것을 依如의 六無爲라고 했다. 또 六無爲를 가끔 듣고 생각한다든지 하는 것에 의해서 마음 속으로 六無爲와 같은 相分이 일어나는 것을 識變의 六無爲라고 한다. 大衆部에서는 三無爲에 四無色處(無色界의 五蘊이 깃드는 곳)와 緣起支性(十二緣起의 원리)과 聖道支性(八聖道의 진리)의 無爲를 더해서 九無爲라고 한다. 化他部에서는 四無色處대신 不動 · 善法眞如 · 不善法眞如 · 無記法眞如를 더해서 九無爲로 하고 있다.
성과(聖果) : 八正道와 六波羅蜜의 聖道를 닦아 얻은 聖者의 果. 곧 涅槃.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