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간다라불교미술(健駄羅佛敎美術)

근와(槿瓦) 2018. 5. 4. 00:57

간다라불교미술(健駄羅佛敎美術)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파키스탄 북서부 지방에서 기원 전후 무렵부터 5세기경까지의 사이에 만들어진 불교미술의 총칭이다. 불교미술은 인도에서 B.C. 3세기 이후부터 있어 왔는데 간다라에 있어서의 중요한 사항은 여기서 처음으로 佛像이 조성되었다는데 있다. 부처님은 그 때까지 보리수 · · 법륜 · 寶座 등으로 상징적으로 표현되었을 뿐이다. 그 후 이것이 인간적인 형상으로 나타나게 된 것인데, 이것을 일반적으로 간다라 불상이라고 부른다. 간다라 불상의 표현은 그리스의 자연주의와 현실주의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그 이유는, 이 지방에 알렉산더 대왕의 침입이래 B.C. 2세기부터 A.D. 1세기에 걸쳐서 그리스· 샤카족 · 파르타아족 · 大月氏族이 잇달아 진출하여 그리스 계통의 문화를 받아들였다. 간다라 조각의 주제로서 중요한 것은 佛傳圖佛陀像이다. 보살중에서도 觀音彌勒 뿐이라는 것도 특이한 사실이다. 조각의 대부분은 浮刻이고, 대개는 탑 基壇의 벽면을 장식한 것이다. 재료는 청흑색의 角閃()片岩을 주로 사용하였다. 특히 간다라 조각은 2세기 중엽 카니시카왕 때에 가장 활발하였다. 간다라 불상의 형식은 서역을 거쳐 중앙아시아, 우리 나라, 일본 등지에 전파되어 많은 영향을 주었다.


참고

간다라(健駄羅) : 범어 Gandhara. 인더스강 중류에 있는 폐샤워르(Peshawar)주변의 옛 이름. 인더스강 지류인 카불강 하류 지대에 있는 평원. 현재의 파키스탄 폐샤워르에 해당한다. 예로부터 이 산맥을 가로질러 고대 중앙 아시아와 서부 아시아 사이에 문화와 통상면에서 교류를 계속하여 왔다. 또한 다른 민족들이 인도로 진출하는 관문이 되었다. BC 1500년경 아리아인들이 이곳을 경유하여 인도에 들어갔으며, 외래문화를 받아들이는 관문일 뿐만 아니라 불교를 비롯한 인도문화를 외부 세계로 전파시킨 근거지이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동서문화를 융합하여 독특한 문화를 발달시킨 것이 소위 간다라 미술이다.


불상(佛像) : 부처의 形像을 말함. 널리 보살· 羅漢 · 明王 · 諸天 등의 도 포함해서 말하는 수도 있다. 彫塑像 · 畵像(繪像)의 두 가지가 있는데, 前者만을 국한해서 佛像이라고 하고, 後者圖像이라고 일컫는 수가 있다. 인도에서는 옛날에는 불타의 모습을 彫畵하는 것은 神聖을 모독하는 것이라 하여, Sanchi등의 古彫刻에는 法輪 · 菩提樹 · 佛足跡 등을 가지고 불타를 상징하는데 그쳤는데, 大乘佛敎가 일어남과 동시에 佛像彫畵가 행하여지게 되어, 모든 大乘經典에는 造像의 인연이나 功德 등을 말하고 있다.

彫塑像에는 鑄像(金佛) · 鎚鍱像(押出像 · 金屬板으로 母型에 떠서 만든다木像(木佛) · 石像 · 塑像(泥像) · 夾紵像(乾漆像. 麻布를 굳게 한다) · 紙泥像 · 磚像 · 蠟像 등이 있다. 圓像에는 絹本 · 紙本에 그리는 것 외에, 壁畵 · 刺繡(繡佛像) · 織成 등이 있다. 鑄像에는 材料에 의해서 金像 · 銀像 · 金銅像 · 鍮石像 · 鐵像 등의 종류가 있고 木像에는 만드는 법에 의해서 一木造寄木造가 있고, 用材(御衣木이라 한다)栴檀(香木의 일종)하며, 더욱이 鍍金하고, 혹은 金箔을 누루고 혹은 金泥 · 彩色을 칠하는 수가 있다.

佛像은 그 威儀에 따라 立像 · 坐像 · 倚像 · 臥像 · 飛行像 등으로 구별되고, 身長에 따라 丈六像(불타의 身長은 보통사람의 배로 一丈六尺이라고 하는 데에 근거한다半丈六像(丈六半分. 八尺大佛像(丈六 이상의 大像) · 等身像(願主와 동등인 身長) · 胎內等身像(丈六像 등의 胎內安置하는 一磔手半 一尺二三寸)이라 한다.

如來像은 대개 出家男形으로 袈裟를 입고 寶冠瓔珞 등을 머리에 얹지 않지만, 誕生佛(불타가 降誕할 때, 바른 손은 하늘을 가리키고 왼손은 땅을 가리킨 형용의 불상)과 같이 裸形像인 것도 있고, 보살상은 숭고한 장부 또는 온화한 여자모양으로 寶冠瓔珞 등을 몸에 걸친 在家居士形을 본뜨고 羅漢像出家形으로 비구 수련의 을 나타냈으며 明王像忿怒形, 諸天像武裝形 · 女形 · 神形 · 鬼形 · 天人形 · 童子形 등을 하고 있다. · 菩薩像 등의 印契 · 持物 · 身色 · 衣色 등은 각기 다르고, 西藏에서는 불 · 보살 등의 얼굴의 치수의 비율을 정하여 佛滿月面 · 菩薩雞子面(새의 알과 같아 慈愛이 있는 얼굴) · 佛母芝蔴面 · 明王四方面 등의 형으로 한다.

牡形으로 金屬板으로 본을 만들어서 佛像板佛하고, 圓板의 중앙에 半肉彫佛像을 부착시켜 매어 달은 것을 懸佛, 屋外에 있는 露佛濡佛, 불타가 미소짓는 상을 한 것을 笑佛 등이라 한다.

斗帳으로 감추어서 모습을 볼 수 없게 한 것을 秘佛, 같은 모양의 小佛像을 무수히 만들어서 安置한 것을 千體佛, 佛像胎內에 수용한 小佛像胎內佛이라고 한다.

佛像安置하는 牀座臺座라고 하며, 師子座(부처를 人中師子라고 하기 때문에 부처의 坐所師子座라 하는 수도 있다) · 蓮華座 · 荷葉座(잎의 臺座) · 須彌座(須彌山形臺座) 등이 있다.


카니시카: 범어 Kaniska. 월지국으로 쿠산왕조 제3. 간다라(Gandhara)왕이라고도 한다. 그의 즉위 연대는 정치사적으로나 불교사적 · 미술사적으로도 중요한 기준이 되지만 정확한 연대에 관해서는 異說이 많다. 그는 아쇼카왕 다음가는 대제국을 건설하고, 푸루샤푸라(Puruspura, 지금의 Peshawar)에 도읍했다. 쿠샤나제국은 지리적으로 중앙아시아 · 인도 · 이란에 뻗쳐 있었을 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 중국 · 로마 · 그리스 등의 문화조류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왕의 관용한 정책에 힘입어 동서문화가 융합되었다. 간다라 예술이 떨친 것도 이 시대이다. 당시의 화폐에 페르샤의 諸神이 많이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처음에 그는 조로아스터교(Zoroaster)를 신봉했었던 것 같으나 후에 불교에 귀의하여 그 보호자가 된듯하다. 일반적으로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여 자이나교도 마투라 부근에서 융성하였다. 학술도 흥성하여 차라카(Caraka) 같은 名醫도 나와서 外科 · 內科 등의 구별도 이루어져 있었다. 또한 그는 많은 불교학자를 모아 三藏을 결집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보통으로는 이 때에는 카슈미르 有部系의 대비바사론의 편찬이 행하여진 것으로 해석된다. 또 이 시대 전후에는 大乘 흥기의 모든 조건이 구비되어 대승경전 제작의 기운이 촉진되었다.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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