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종교 · 철학 · 윤리면에서의 불교

근와(槿瓦) 2018. 3. 6. 00:09

종교 · 철학 · 윤리면에서의 불교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종교, 그 의미의 다양성>

 

종교학자들은 종교를 단순히 사상적으로만 정의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를 어떠한 사상에만 국한하는 것은 모순이며 때에 따라서는 커다란 우를 범하기 쉽습니다.


종교가 어떤 사상 위에 기반을 두어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종교의 사상과 형태를 좌우하는 의식(儀式)을 무시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기독교의 의식이 있고, 회교는 회교의 의식이 있으며, 불교에는 불교의 의식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종교의 의식만을 통해서도 그 종교의 특이성(特異性)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종교의 의식(儀式)적인 면에서 불교를 본다면 예불이라는 특이한 의식이 있는 만큼 이러한 사실만으로도 그 독특한 불교의 존재성을 알 수 있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고등종교에서 단순한 의식만을 앞세워 이것이 이 종교의 전부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고 그 이면에 그 종교의 독특한 사상적 이론을 내포하고 있어야 함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불교는 그 의식에서도 그 면모가 나타나듯 다른 사상적 내용이 빈약한 종교와는 달리 복잡다단한 이론을 지니고 있는 종교입니다.


그러면 불교가 얼마나 사상적으로 복잡하고 다단(多端)한 종교인가를 알기 이전에 서양의 철학자들이 내린 종교의 정의가 무엇인지 살펴보기로 합시다.


칸트는 주의적 관점(主意的觀點)에서 신()의 존재와 영혼의 불멸을 인정하면서 다음과 같은 정의를 내렸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인식의 대상으로 삼을 수는 없으나 만약에 이것을 부정한다면 귀중한 인생은 무의식의 세계로 돌아갈 수밖에 없으므로 종교를 믿는다는 것은 마음의 밑바닥으로부터 일어나는 요구이다.라고 하였고,


슐다이어 머허는,

종교의 본질은 결코 우리의 인식에 호소할 것이 아니라 오로지 우리가 절대적으로 신에게 의지하는 감정에 의한다.라는 감정적 견지에서 신 즉 종교와 인생과의 관계를 밝히고 있음을 봅니다.


위에 든 종교의 정의는 모두 신의 존재를 요구하거나 신의 존재를 상정(想定)하고 내린 종교를 논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만약에 이러한 유신적(有神的)관점에서 불교를 본다면 불교는 절대로 종교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불교는 우주적으로 창조주로서의 신이나 삼라만상을 지배하는 지배자로서의 신()을 부정하는 무신주의(無神主義), 개체적으로 볼 때에도 개체의 고정불변하는 자신의 실체를 부정하는 말하자면 무아주의(無我主義)이기 때문입니다.


불교는 종교인가, 철학인가, 도덕인가, 그렇다면 불교는 종교가 아니고 철학인가? 철학이란 어의 자체가 애지(愛知)의 학() 즉 필로소피입니다. 철학에 대한 정의로서 플라톤은 <지식의 획득>이라고 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물의 원인과 원리에 대한 학문>이라고 하였고, 칸트는 <일체의 인식으로 하여금 인간 이성의 본래의 목적에 관계시키는 학문>이라고 했는가 하면, 헤겔은 <철학은 절대학(絶對學)이라고 정의하였고, 피에테는 <지식학(知識學)>이라 표현했으며, 스피노자는 <철학이란 완전한 통일된 지식>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정의에 의하면 철학은 절대주지(絶對主知)의 학문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하겠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불교는 철학일 수도 없습니다. 서양의 극단적인 일부 철학자들은 <중아함경(中阿含經)중의 전유경(箭喩經)을 인용하면서 그 경 중에 당시의 철학자들이 세계가 상주(常住)하는 것이냐? 또는 영혼이란 존재하는 것이냐? 등의 형이상학적인 질문을 던졌을 때 석존께서,

그러한 질문은 마치 독화살에 상처를 입은 자가 그 독화살을 발사한 사람의 성명 · 계급 · 체격 · 종족이나 상처를 입힌 활과 화살촉의 강도(强度)와 모양 · 독성 등을 미리 알기 전에는 그 독화살을 뽑지 않겠다고 하는 어리석음과 다를 바 없다.

고 대답했던 것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속단은 극히 편협하고 옹졸한 사고방식에서 비롯되었다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6가지 감각을 통한 감각적 지식과, 머리로 생각해 낸 지식은 마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과 같은 덧없는 지식이라고 하여 이를 유루지(有漏知)라고 하셨습니다. 이 유루지는 따라서 불완전한 지()이며 이는 마땅히 버려야 할 지()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불교는 윤리학인가? 불교를 윤리학이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일반윤리학에서 윤리학을 정의하기를 <윤리는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이라든가 또는 <인간의 행위와 품성에 관하여 반드시 있어야 할 과학(科學)이라든가 <도덕을 그 연구의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하고, 있는 것에 반하여 불교는 불교도의 일상생활 태도에 관한 규정에 처자 등 혈연에 대한 애착심을 끊고 부모와 친지 사회와 국가 등에도 등지고 즉 인륜관계를 끊고 입산하여 수도하라는 것으로, 한 마디로 말하여 인륜관계를 끊으라는 것이니 불교가 윤리학일 수도 없는 일입니다.


이상의 서양의 종교에 관한 정의나 철학에 관한 정의, 윤리학에 대한 정의의 관점에서 살펴볼 때, 불교는 종교도, 철학도, 윤리학도 아닙니다.


그러나 모든 종파의 종교인, 철학자, 윤리학자는 한결같이 불교를 가리켜 심오하고 깊은 종교요, 철학이며, 윤리학이라고들 말하며 그 심오성 때문에 때때로 또는 종교의 다름에서 미신이라고까지 취급을 당하는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1~2차원의 관점에서 볼 때 그것은 종교도 아니요, 철학도 아니요, 윤리도 아닌 허깨비 같이 보일 것이지만,


4차원의 눈으로 보면 그것은 더없는 무상(無上)의 종교요, 철학이요, 윤리학이요, 또한 더 나아가서 이들을 통합한 총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불교가 종교요, 철학이요, 윤리학일 수 있는 점은 무엇인가를 더듬어 보기로 합시다.  .........

 

참고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출전 : 무심유심(서경보큰스님)



-나무 관 세 음 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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