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불교(佛敎,959)-뉴사전

근와(槿瓦) 2020. 7. 6. 07:38

불교(佛敎,959)-뉴사전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부처님이 설한 가르침. 부처가 되기 위한 가르침. 부처님의 말. 석가모니불께서 말씀하신 교법과, 그 발달하고 분파한 온갖 교리와 법문과 종지(宗旨)의 총칭. 석존께서 처음 인도에서 교법을 말씀하심으로부터 교세(敎勢)가 점점 퍼져 인도의 여러 나라는 물론, 석존께서 멸도하신 뒤에도 대대로 고승(高僧)들이 쏟아져 나오고, 임금과 대신들이 항상 외호하여 드디어 버마·태국·세일론·중앙아세아의 여러 나라로 퍼지고, 또 북으로 서장·중국·몽고·만주·한국·일본까지 퍼지고, 요사이는 유럽·아메리카까지 전파되다. 종교로서는 세계 인구의 4분의 1의 신도를 얻어, 인생 신앙의 기초가 되었을 뿐 아니라, 철학상으로도 연구하는 이가 동서고금에 허다하다. 교리로는 대승·소승으로 구별되고, 전파된 지방으로는 남방불교·북방불교로 구별한다. 우리 나라에는 372(고구려 소수림왕 2)에 중국 전진(前秦)으로부터 들어온 뒤로 3국시대에 고승들이 많이 나서 우리 나라 불교의 특색을 이루었다. 또 고려 때에는 왕실에서 전적으로 보호하여 극성 시대를 이루었으나, 조선시대부터는 정치적·사회적으로 갖은 압박이 심하여 점점 쇠퇴하게 되다. <長阿含經 2112> (해석예) 부처님의 결실. <書記 下 117> 석가의 불교. <香月 2659> 1. 석가(往生大要抄, 大要). 2. 제불(諸佛)을 받아들이다(元祖). <圓乘 2657> 성립(成立)종교로서의 불교. <海東高僧傳 1501015> 부처님의 진정한 취지. <正信偈>

 

참고

부처(939)-뉴사전 : 불교의 교조 석가모니.불타

 

석가모니(釋迦牟尼,1301)-뉴사전 : , Sakya-muni의 음역. 샤카족출신의 성자라는 뜻. 석가모니세존(釋迦牟尼世尊)·석존(釋尊)이라고도 함. 불교(佛敎)의 개조(開祖)인 고타마·붓다. 중인도 가비라의 성주(城主)인 정반왕의 태자로 어머니는 마야(摩耶)부인. B.C. 623년 룸비니 동산 무우수(無憂樹) 아래서 탄생하였으며 출생하면서 바로 4방으로 7()씩 걸으면서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고 외쳤다. 탄생한 지 7일 후에 어머니 마야를 잃고, 이모인 파사파제(波闍波提)에게 양육되었음. 어릴 때 이름은 교답마(喬答摩) 혹은 실달다(悉達多). 점점 자라면서 과학 문학의 대요(大要)4베다(吠陀)를 배우며, 무예(武藝)도 연마하여 숙달함. 선각왕의 딸 야수다라와 결혼. 아들 라후라를 낳음. 29(19)에 왕성의 4문으로 다니면서 노인·병든 이·죽은 이·수행승을 보고 출가할 뜻을 내어 하루 밤에 왕성을 넘어서 동방의 람마성(藍魔城) 밖 숲속에서 속복을 벗어 버리고 출가하였음. 남방으로 비야리·마갈타를 지나 다니면서, 발가바(跋伽婆)·아람가람(阿藍伽藍)·울다라(鬱陀羅) 등의 선인(仙人)을 만나 6년 동안 고행을 한 끝에 금욕(禁欲)만으로는 아무 이익이 없음을 알고, 불타가야의 보리수 나무 아래 단정히 앉아 사유(思惟)하여 마침내 크게 깨달아 불타가 됨. 그 때 나이는 35. 이로부터 스스로 깨달은 교법을 널리 퍼뜨리려고, 먼저 녹야원에 가서 아야교진여 등 5인을 교화하고, 다음에 3가섭·사리불·목건련 등을 제도하여 교단(敎團)을 조직함. 깨달은 뒤 3(6)후에 가비라 벌솔도에 돌아와서 부왕을 뵙고 친족을 제도함. 한편 여러 나라로 다니면서 빈바사라·아사세·바사익왕을 교화하여 불교에 귀위시키고 북방의 구시나가라성 밖 발제하(발제하) 언덕 사라쌍수 아래 누워 최후의 교계(敎誡)를 하시어, 45년 동안의 전도 생활을 마치고 밤중에 열반에 드심. 때는 B.C. 544215일 세수는 80.

 

불타(佛陀,994)-뉴사전 : , , Buddha의 음역.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 부도(浮圖·浮屠)·부타(浮陀·部陀)·부두(浮頭)·발타(勃馱)·모타(母馱)·몰타(沒馱)라고도 음역. 각자(覺者)라 번역. ()이라 약칭. 미망(迷妄)을 여의고 스스로 모든 법의 진리를 깨닫고, 또 다른 중생을 교도하여 깨닫게 하는 자각(自覺)·각타(覺他)2()을 원만히 성취한 이. 이 말은 처음 보리수나무 아래서 성도한 석존에 대한 칭호로 쓴 것. 불타는 석존 뿐이었으나, 뒤에 불교의 교리가 발달함에 따라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부처님으로 발전하여 드디어 그 수가 한량없게 되었다. 이것이 처음은 역사적 인물이던 것이 점점 이상화(理想化)되여 유형 무형 온갖 방면으로도 원만한 인격적 존재가 되었다.붓다 <法華經 壽量品 925> [표현예] 깨달은 사람.

 

서가모니(釋迦牟尼,1292)-뉴사전 : , Sakyamuni. 불교의 교조(敎祖). 능인 적묵(能仁寂黙)이라 번역. 서가문(釋迦文)·서가(釋迦)라고도 약칭. 서가는 종족 이름. 서가모니라 함은 서가씨의 성자(聖者)란 뜻. 중인도 가비라 벌솔도(伐窣堵)의 성주(城主) 정반왕의 태자. 어머니는 마야(摩耶). B.C. 623 룸비니 동산 무수(無憂樹) 아래서 탄생. 나면서 바로 4방으로 7()씩 걸으면서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고 외쳤다 함. 난지 7일 후에 어머니 마야를 잃고, 이모인 파사파제(波闍波提)에게 자라다. 어릴 때 이름은 교답마(喬答摩) 혹은 실달다(悉達多). 점점 자라면서 과학·문학의 대요(大要)4베다(吠陀)를 배우며, 무예(武藝)도 연마하여 숙달하다. 선각왕의 딸 야수다라와 결혼. 아들 라후라를 낳다. 29(19)에 왕성의 4문으로 다니면서 노인·병든 이·죽은 이·수행자를 보고 출가할 뜻을 내어 하루 밤에 왕성을 넘어서 동방의 람마성(藍摩城) 밖 숲속에서 속복을 벗어버리고 출가. 남방으로 비야리·마갈타를 지나 다니면서, 발가바(跋伽婆)·아람가람(阿藍伽藍)·울다라(鬱陀羅) 등의 선인(仙人)을 만나 6년 동안 고행을 한 끝에 금욕(禁欲)만으로는 아무 이익이 없음을 알고, 불타가야의 보리나무 아래 단정히 앉아 사유(思惟)하여 마침내 대오철저(大悟徹底)하여 불타가 되다. 그 때 나이는 35. 이로부터 스스로 깨달은 교법을 널리 퍼뜨리려고, 먼저 녹야원에 가서 아야교진여 등 5인을 교화, 다음에 3가섭·사리불·목건련 등을 제도하여 교단(敎團)을 조직함. 깨달은 뒤 3(6)에 가비라 벌솔도에 돌아가서 부왕을 뵙고 친족을 제도. 한편 여러 나라로 다니면서 빈바사라·아사세·바사익왕을 교화하여 불교에 귀의시키다. 북방의 구시나가라성 밖 발제하(跋提河) 언덕 사라쌍수 아래 누워 최후의 교계(敎誡)를 하시어, 45년 동안의 전도 생활을 마치고 밤중에 열반에 들다. 때는 B.C. 544215일 세수 80세이다.석가모니

 

(,950)-뉴사전 : 보통은 산, buddha의 음역이라고 하고 있으나, 필시 중앙아시아의 언어로 butbot로 발음되었던 것을 음역한 것일 것이다. 깨달은 자. (진리에) 눈을 뜬 사람. 완전한 인격자. 절대의 진리를 깨달은 사람. 스승. 존경받을 만한 사람. 스스로 진리를 깨닫고, 타인을 깨닫게 하며, 깨달음의 작용이 지극히 가득한 궁극의 각자(覺者).붓다 팔, buddha <雜阿含經 > , stonpa(스승. 스승으로 받들어지는 자). , bhagavat(존경하는 분. 존경하는 스승). , nayaka(지도자). , dvipadottama(최고의 인물). , purusarsabha(최고의 사람). , lokanatha(세계의 주인). , natha(주인). , tayin(구도자. 구세자). , vidu(어진 분). , agrabidhi(최고의 깨달음). [이렇게 원어가 다수 있다는 사실은부처라는 말이 이미 매우 오랜 시대에 중국에서 정착되어 있었다는 것을 가리킨다.] (해석예) 부처가 될 때의 금강유정(金剛喩定)의 일념으로, 모든 무명(無明)을 단번에 끊어버리는 그것이 무간도(無間道). 그 다음의 염()에 빨리 또는 일체종지(一切種智)의 부처가 될 때를 해탈도(解脫道)라 해석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불타. 여기에서는 각()이라 번역한다. 중심. <書記 下 45> 데우스(deus). 기독교의 신을 말한다. <破吉利支丹>

 

교법(敎法,195)-뉴사전 : 가르침.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가르침. 대승소승의 3() 12부경을 말함. 4()의 하나.

 

교리(敎理,194)-뉴사전 : 경전에 설해진 이론. <五敎章 中 127> 하나의 종파에서 세운 교의. 교의학(敎義學)을 말하는 것. 어떤 종교나 종파에서 진리로 인정하고 있는 가르침의 체계. 교의(敎義) 또는 종의(宗義)라고도 한다. 불교에 있어서의 교리는 부처님이 말씀하신 교법의 도리를 말한다. ()와 이()를 별도로 나누어서 말할 때는, ()는 부처님의 말씀을 언어와 문자로써 표현한 것을 가리키며, ()는 교()에 의해 나타난 진리의 내용을 가리킨다. 가르침에 의해 이치를 깨닫고, ()에 의해 행(: 실천)을 일으키고, 행에 의해 과(: 수행의 이상)를 실현한다하여 교리행과(敎理行果)를 사법보(四法寶)라 한다.

 

법문(法門,817)-뉴사전 : 진리의 가르침. 교설. 부처님의 가르침. 진리에 이르는 문. 깨달음을 연 상태에 이르는 문. <구사론 2418 > (해석예) 법문이란유식삼성(唯識三性) 등의 법상(法相)은 즉, 진리에 통입하는 입구이므로 법. , 문으로서 지업(持業)을 이름한다. <唯識發揮 本 1> 법은 모든 부처님의 본보기가 됨. , 지혜는 법에 의하여 깨달음에 들기 때문에 법을 문이라고 함. <香月 1350>

 

종지(宗旨,2359)-뉴사전 : 근본의 취의. <光宅 法華疏 1> 선종에서는 불법(佛法)의 근본. 여래선(如來禪)의 생쇠(生碎)의 곳. 근본사상. 또는 수행의 근거. <證道歌> <神會語錄> <碧巖錄 21> 한 종파의 교리나 종의(宗義)의 요지(要旨). 주지(主旨)로 하는 가르침. <禪源諸詮集都序> <歎異抄 序> 흔히 한 종파를 말함. <玉鏡>

 

석존(釋尊,1307)-뉴사전 : 석가모니세존(釋迦牟尼世尊)이라고 하는 것을 생략하여, 맨 앞과 맨 뒤의 두자를 묶어 만든 말. <歎異抄 2, 15>석가모니

 

멸도(滅度,585)-뉴사전 : 열반. 깨달음. 깨달음의 경계. ()는 피안(彼岸)에 건너다의 뜻. <般泥洹經 上 1182> <無量壽經 上 12266> [武帝, 滅度는 소승의 관념이고,大涅槃의 역어로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法華玄義 833776>] ···사 등의 육체적인 큰 고민이 영구히 사라지고, ()·()·()·무명(無明)4가지 흐름을 뛰어넘는 것을 말함. <肇論 45157> 없어지는 것. 석존이 없어지는 것. 불멸(佛滅)·입멸(入滅). , parinirvrta <法華經 193: SaddhP. p.12> 부정하는 것. 멸제(滅除)와 같음. <正法華 1965> (해석예) 아미타불이 된다. <眞聖 524> 열반의 깨달음을 연다. <眞聖 510> 대반열반(大般涅槃)이다. <眞聖 540> 열반. <金般講 160> 이생사영절(二生死永絶)하는 것은 멸()이라는 번뇌 대하(大河)를 초월하므로 건넌다고 말한다. <圓乘> 열반의 이명(異名)이지만, 응신불(應身佛)의 열반에 드는 바의 멸도(滅度)이다. <香月 2505>

 

고승(高僧,126)-뉴사전 : 행동이나 덕()이 높은 승려. <高僧傳>

 

외호(外護,1857)-뉴사전 : 2(二護)의 하나. 부처님이 제정한 계법으로 신()·()·()를 보호하는 것을 내호(內護). 승려이외 속인이 수행을 도와 불법의 홍통(弘通)에 힘이 되도록 원호(援護)하는 것을 외호.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을 외호자(外護者)라고 함. 아육왕 같은 국왕의 외호(外護)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이호. 외호자와 같음. <隨聞記 2> .....이호(二護,2100)-뉴사전 : (1) 내호(內護). ()는 자기 신심의 마음을 일컫는 말. 부처님의 계법(戒法)을 잘 지켜 자신의 몸과 마음을 호지(護持)하여 깨달음의 과()를 이루게 하는 것. (2) 외호(外護). ()는 친족과 권속을 말함. 수행하는 사람은 친족과 권속의 도움으로부터 몸과 마음을 잘 호지(護持)하여 도업(道業)을 성취하는 것. <涅槃經>.....외호자(外護者,1857)-뉴사전 : 외부에서 보호를 하는 자라는 뜻. 승단(僧團)의 밖에 있고, 권력 또는 재력을 갖고 불교를 보호하며, 여러 가지 장애를 제거하여 전도하는데 편의를 제공하는 사람. 또는 불교 보급을 권장하는 국왕 등을 말함. <今昔物語 1권 제37> .....외호선지식(外護善知識,1857)-뉴사전 : 3선지식의 하나. 나에게 의()·()과 필요한 것을 지급하여 나로 하여금 편안히 수도를 행하게 하는 선우(善友)를 말함.

 

서장(西藏,1299)-뉴사전 : 서장주(西藏主)의 준말. 선사에서 법당의 서쪽에 있는 지장(知藏)의 소임을 말함.장주(藏主) 티베트를 말함. .....서장주(西藏主,1299)-뉴사전 : 큰 선종사원에서는 대장경을 둘로 나누어 동서에 두고 이것을 맡은 사람을 각각 동장주(東藏主)·서장주(西藏主)라 함. .....지장(知藏,2438)-뉴사전 : 장주(藏主)·장사(藏司)와 동일.장주장사 <勑修百丈淸規 4481131> .....장주(藏主,2228)-뉴사전 : 선종에서의 소임명의 하나. 경장(經藏 : 一切經을 보관하는 건물)을 관리함. 또는 지장(知藏)이라고도 함. <禪林備用淸規>

 

종교(宗敎,2127)-국어사전 : 신이나 절대자를 인정하여 일정한 양식 아래 그것을 믿고, 숭배하고, 받듦으로써 마음의 평안과 행복을 얻고자 하는 정신 문화의 한 체계.

 

종교(宗敎,2352)-뉴사전 : 각각의 사상적 견해()를 설하는 가르침. 계통. 부문. ()의 연법사(衍法師), (1) 인연종(因緣宗). (2) 가명종(假名宗). (3) 불진종(不眞宗). (4) 진종(眞宗)이라는 네종교(四宗敎)의 구별을 세웠음. 또 기사법사(耆闍法師)는 위의 4개에 상종(常宗)과 원종(圓宗)을 덧붙여 육종교(六宗敎)를 세웠다.사종교진종교육종교 <五敎章 上 343, 44> 언어로는 표시되지 않는 궁극의 진리와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기 위한 가르침. 종과 가르침. <宗鏡錄 29, 3448588, 614> 자신이 받드는 가르침. 종지(宗旨). <禪源諸詮集都序> 교종(敎宗)이라고도 함.교종

 

신앙(信仰,1521)-뉴사전 : 삼보를 믿고 기뻐 우러러 보는 것. <大寶積經 8811504>信仰之心<大寶積經 3511198> .....삼보(三寶,1186)-뉴사전 : 세가지 보배라는 뜻. 부처님과 법과 승려. 깨달음을 연 사람(부처님 산, buddha)과 그 가르침(법 산, dharma)과 그것을 받드는 교단(승려 산, sangha)이라는 3가지를 말함. (깨달음을 연 가르침의 주())·(그 가르침의 내용)·(그 가르침을 받아 수행하는 집단)3가지를 보배에 비유한 말. 이것은 불교를 구성하는 3가지의 중요한 요소임. 삼보(三寶)에 귀의하는 것을 불교도로서의 기본적 조건임. <俱舍論 141315 > 3가지를 다른 것으로 보면 각각 별개이지만 본질적으로는 하나라고 생각됨. 또 석가세존의 죽음 후에는 삼보(三寶)는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 점에서 불상(佛像)과 경권(經卷)과 출가(出家)를 삼보(三寶)라 할 수 있음. 그래서 후대에서는 삼보(三寶)에 일체삼보(一體三寶 : 무상의 진리와 그 청정한 덕과 화합의 덕), 현전삼보(現前三寶 : 여래와 여래가 증명한 법과 여래의 법을 공부하는 자), 주지삼보(住持三寶 : 불상과 경권(經卷)과 체발염의(剃髮染衣)의 승려)3종류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삼보(三寶)가 본질적으로는 동일하다고 보는 것을 일체삼보(一體三寶)라 하고, 각각 별개라고 보는 것을 제등(梯橙)의 삼보(三寶)라 함. 공양하는 도구.

 

철학(哲學,2296)-국어사전 : 세계·인생·지식에 관한 근본 원리를 연구하는 학문. 세계관이나 인생관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대승(大乘,444)-뉴사전 : 커다란 탈 것의 뜻. 불교의 2대유파(二大流派)의 하나. 1, 2세기경 일어났다. 종래의 불교였던 소위 소승에 반대. 그 특징은 자신의 이익보다 많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이타행(利他行)을 실천하고, 그것에 의해 부처가 되는 것을 주장하는 점에 있음. 민중적(民衆的)이려고 했기 때문에, 힌두교의 여러 요소를 많이 도입하고 있음.()방등 증일아함경(12550-)대승이라는 말이 나와 있지만, 여기에서는대승불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위대한 교설의 뜻일 것임. 쟈이나교에서도 예부터 팔, mahajana(, mahayana)라고 하는 것을 말함. 보살승(菩薩乘). 삼승(三乘)의 하나. 일승(一乘)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음. <五敎章 上 135> 모든 실천법. 모든 실천법을 포용하는 가르침. 일체의 승(). (해석예) 자기를 해탈하는 것뿐만 아니라, 일체의 중생과 평등하게 생사를 함께 하는 것을 바라는 이것을 대승이라 함.

 

소승(小乘,1394)-뉴사전 : 대승에 비해 그 수행하는 바의 교()·()·()·() 및 수행하는 사람이 열등한 점에서 그것을 멸칭(蔑稱)하여 소승이라 함. 성문승(聲聞乘)이라고도 함. 열등한 탈 것의 뜻. 대승편에서 붙인 명칭임. ()은 싣고 운반하는 뜻. 사람을 태워 이상경(理想境)에 이르게 하는 교법. 소승에는 성문승·연각승 둘이 있다. (1) 성문승. 4()의 이치를 관하여 성문의 4()를 증득하여 열반에 이르는 것을 교리로 함. (2) 연각승. 12인연을 관하여 벽지불과(辟支佛果)에 이르는 것을 교체(敎體)로 함. 이것은 모두 회신멸지(灰身滅智)의 공적한 열반에 이르는 것을 최후 목적으로 여김. 인도의 상좌부·대중부 등의 20분파와 동토의 구사종·성실종·율종 등.

 

남방불교(南方佛敎,342)-뉴사전 : 북방불교의 반대어. 아육왕 때에 3()을 결집하고, 여러 지방에 사신을 보내어 불교를 확장. 그때 수나가·울다라는 버마 남부에, 마혜타·수마나 등은 세일론 쪽으로 가서 포교를 힘쓰다. 그뒤 이 지방에 전파된 불교는 플리어(巴利語)로 된 경전을 서장·중국 등지에 전파된 범어계(梵語系)의 경전을 쓰는 대승불교(북방불교)와 구별하기 위하여 남방불교라 한다.

 

북방불교(北方佛敎,941)-뉴사전 : 남방불교의 상대어. B.C. 3세기쯤 아육왕의 전도사 파견 후 인도의 북부에서 발달한 서역·중국·서장·한국·일본 등에 전파된 불교의 총칭. 세일론·버마 등 남방불교국의 경전이 소승교임에 반()하여, 이 지역의 불교 경전은 대승경전을 많이 포함. 이 두 지방 불교는 현저한 상위점(相違點)이 있으므로 이를 지리적으로 구분하여 북방불교라 함.

 

한국불교(韓國佛敎,2727)-뉴사전 : 우리 나라에 불교가 처음 들어온 것은 고구려 소수림왕 2(372) 6월에 전진 나라의 순도와 아도가 불경과 불상을 가지고 들어와 초문사, 이불난사 등을 창건하고 설법을 시작한 것이 그 시초이다. 이들의 설법과 전도를 공헌한 고구려에서는 그 후 평양 9사와 반용사 영탑 등을 짓는 한편 불교 전파에도 힘써 많은 고승이 배출되었고, 열반종·삼론종 등의 종파가 이루어졌다. 의연은 불교 역사 연구를 통하여 많은 업적을 남겼고, 혜자·운총·혜편·담징·법정 등은 일본에 불교를 전파하였고, 도림·덕창·혜량·신성 등은 호국 불교를 위한 실력 배양에 많은 힘을 기울였다. 백제는 384(침류왕 1) 인도의 승려 마라난타가 동진을 경유하여 입국, 왕의 우대를 받고 궁중에 머물다가 이듬해 남한산에 절을 짓고 포교를 시작하였다. 그후 왕흥사·미륵사·한산불사·경복사·수덕사 등 많은 사찰이 창건되고 교파도 삼론종·계율종·성실종의 세 종파가 성립됨. 그리고 백제 불교는 일본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 많은 고승들이 일본에 건너가 불교 전파에 큰 공헌을 하였으니 그 이름을 들어 보면, 일본 성실종의 개조가 된 도장을 위시하여 혜총·도림·혜미·도흠·담혜·도령·상휘·의각·방제·다상 등이 있다. 또 백제 멸망 후 그 재건을 위하여 궐기하였던 승장·도심, 인도에 유학하고 귀국 후 율부 72권을 번역한 겸익 등도 유명하다. 신라는 삼국 중에서 불교가 가장 늦게 전파된 나라로 527(법흥왕 14) 이차돈의 순교가 있은 후 비로소 공인되었는데 그 후 급속히 발전하여 국가적 종교로 존숭되고 승려와 사원이 국가의 두터운 보호를 받게 되었다. 많은 구법승이 인도와 당나라에 유학하였고, 그들에 의하여 당나라의 13(성실종·삼론종·구사종·지론종·섭론종·천태종·법상종·열반종·염불종·밀종·선종·화엄종·율종)이 도입되어 발전하였으며, 그 중에서도 선종은 독자적인 발달을 이루어 이른바 구산 선문의 분파를 이루었다. 국가 안태와 왕실의 번영을 비는 호국 불교로서의 신라 불교는 사상·정치·문화·외교·국민 생활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건축·공예 방면에도 찬란한 꽃을 피웠다. 열용사·사천왕사·봉성사·감은사·봉덕사·만덕사·법주사·통도사·화엄사·월정사·부석사·불국사·장안사·해인사·보현사·범어사·쌍계사 등의 명찰을 창건하였고, ··불상 등의 공예가 발달하여 불국사의 석가탑과 다보탑, 정혜사의 13층탑, 화엄사 쌍탑, 감은사 쌍탑, 무량사 탑, 동화사 쌍탑, 금산사의 석탑 등 6각 다보탑, 화엄사의 사리탑 등을 비롯하여 석굴암 석물, 황룡사의 장육금상, 봉덕사 종, 금산사 부도, 감산사의 2불상, 백률사의 약사상, 사천왕사의 사천왕상, 화엄사 석등 등은 귀중한 문화재로서 전승된다. 한편 수 많은 고승이 배출되었으니 원광과 같은 대학승은 세속 5계로 국민 도의를 확립하였고, 자장은 국내의 문물 제도를 수립하였으며, 의상은 실천적인 수행과 사찰의 건립을 통하여 화엄의 교리를 널리 펴는 한편 그 문하에 많은 학승을 양성하였고, 원효는 80여 부의 논소를 지어 불교의 대중화를 꾀하는 한편 통일 불교 창조에 정력을 쏟았다. 의상과 원효는 그 학통이 중국과 일본에 널리 알려졌다. 한편 원측은 유식설에 통달하여 독특한 견해를 가졌고, 그 때문에 중국의 법상종 정통파로부터는 비난을 받았으나 그의 저술 해심밀경소는 티베트어로 번역되어 전한다. 혜초는 인도에 건너가 불적을 순례하고 육로로 중앙 아시아를 거쳐 귀국한 다음 왕오천축국전을 저술하여 귀중한 자료를 남겼다. 그밖에 신라 시대의 고승들로는 도증·경흥·지통·표훈·명랑·승전·대현·도의·신행·체증·지증·혜초·현황·개청·낭공·범일·무영·원랑·진경 등을 들 수 있으며, 이들은 모두 당나라와 일본에까지 그 이름이 알려졌다고 전해진다. 특히 신라 시대에 밀교가 전래되어 불교 교리의 융성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즉 명랑과 혜통에 의해서 전래된 밀교는 계속적인 밀교승들의 입당 구법(入唐求法)으로 세력을 넓혀갔다. 명랑은 밀교를 전래한 후 신인종(神印宗)을 세우고 밀교 전파에 힘썼는데, 문무왕 때는 유가승(瑜伽僧) 12인과 더불어 문두루법(文豆婁法, 또는 신인작법(神印作法)>을 베풀어 50만 당병의 침략을 물리치고 호국 사찰인 사천왕사(四天王寺)를 창건하였다. 혜통도 역시 고등 밀교를 전하여 총지종(總持宗)을 열고 밀교를 널리 전하였다. 이보다 앞서 명효(明曉)도 당나라에서 귀국하였는데, 그는 다라니법(陀羅尼法)에 관심을 갖고 불공견삭경(不空羂索經)을 가져와서 다라니법을 널리 유포하는데 힘썼다. 그런데 신인종과 총지종의 성립은 신라 밀교야말로 중국 밀교의 단순한 수용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독특하게 발달한 것이며, 또한 신라 사회에 밀교의 신앙이 얼마나 열렬하였는가를 보여준다. 왜냐하면, 중국 밀교는 교학적으로는 크게 성하였으나 종파의 성립은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후 밀교는 불가사의, 의림, 현초, 혜초, 혜일 등의 입당 구법 승려들에 의해서 빛을 더하여 갔다. 불가사의는 선무외의 문하에서 수학한 후 대일경의 제7권인 공양차제법의 소()를 짓고 귀국하여 밀교를 선양하였고, 의림과 현초도 역시 선무외의 문하에서 태장법을 배우고 혜과 화상에게 법을 전할 만큼 뛰어난 밀교 승려였다. 보리심론을 가지고 귀국하여 밀교 전파에 공이 지대한 혜일은 바로 혜과 문하에서 수학하였는데, 일본 진언종의 개조인 공해는 현초의 법손이고 혜일의 법제가 된다. 이러한 사실로 볼 때 당시 신라 밀교승들은 높은 학덕과 수행력을 갖추었고 이들이 활동한 신라 사회에 밀교의 관심도가 어떠하였는가를 알 수 있다. 혜초는 금강지 문하에서 수학하다가 인도 구법 여행을 다녀온 후 계속해서 금강지의 제자 불공과 더불어 밀교법을 연구하고 경전도 번역하였다. 그가 남긴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은 세계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신라 밀교는 밀교의 두 계통인 태장문과 금강문이 모두 전하여져서 크게 홍전되었다. 그러나 교학적인 발전보다는 수행 정진의 신앙적인 면이 더 성하였다. 뿐만 아니라 밀교법은 귀족 계층에서 민간 서민 계층까지 퍼져 갔다. 이들은 주로 다라니법(陀羅尼法)을 수행하였다. 다라니법은 이들에게 직접 정신적 안정과 이익을 줄 수 있는 수행법이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다라니 신앙은 탑의 조성 때 다라니 경전을 탑속에 안치할 정도로 성행하였다. 당시의 큰 사찰인 불국사의 석가탑 속에서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이 발견된 사실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다라니법을 지도하는 주금사(呪禁師)도 많이 배출되었고, 백제 제 24대 위덕왕은 주금사를 다른 불교인들과 함께 일본에 파견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이 시대의 밀교는 귀족에서 민중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퍼져가서 당시인들의 가슴 속에 뜨거운 삶의 기쁨과 안락을 제공하였다. 고려의 불교는 신라 불교를 그대로 계승하는 한편 송나라의 영향 밑에 독자적인 발달을 이루었다. 태조 왕건은 불교를 국교로 정하고 새로 승과를 제정하여 승려를 우대하였다. 연등회·팔관회 등을 연중 행사로 개최하는 등 태조의 숭불 정책은 고려 전반에 걸쳐 계승되면서 사상적 지주가 되었다. 당시에 건립된 사찰로는 개성의 왕륜사·법왕사를 비롯한 16사와 봉은사·진관사·부석사·관음사·순교사·석왕사·영명사 등이 있으며, 공예품으로는 관촉사 석등, 부석사 조사전 벽화, 대흥사 종 등 우수한 예술품이 완성되었다. 특히 고종 연대에는 고려대장경(일명) 8만 대장경을 간행하여 우리 나라 불교 문화의 대표작을 남겼다. 고려는 불교를 국교로 삼았음에도 이름난 고승은 그다지 많이 배출되지 못하였다. 그 중에서 체관은 천태종을 재흥시켰고, 대각 국사 의천은 문종의 넷째 아들로 일찍이 11세 때 승려가 되어 송나라에 유학한 후 교장도감을 설치, 속장경 4740여권을 간행한 것은 특기할 만하며, 또 그에게는 문하생이 1,000명이 넘었다고 한다. 그 밖에 중기에 이르러 지눌·수기·균여, 말기의 나옹·보우·보조·백운 등은 이름을 떨친 고승들이었다. 고려의 불교 종파는 신라의 종파가 계승되었다가 말기에 다소 분파되어 조계종·천태법사종·천태소자종·화엄종·총남종·자은종·신인종·남산종·도문종·중신종·시흥종의 11종이 설립되었으며 그 중에서 화엄·자은·총남·중신·시흥의 5종을 5, 조계·천태의 2종을 양종이라 하여 5교 양종의 종파를 이루었다. 특히 고려말 밀교는 계속적으로 신앙되어 충숙왕 때는 금서밀교대장(金書密敎大藏)을 간행할 정도로 성행하였다.

조선 시대에 이르러 조정의 숭유 억불 정책으로 인하여 불교는 미증유의 수난기를 맞이하였으니 도첩제를 실시하는 한편 함부로 스님이 되는 것을 금하고 사전(寺田)에도 과세를 하였으며 스님의 궁중 출입과 도성내 출입을 금하였다. 또한 연산군 때는 승과를 폐지하고, 삼각산의 여러 절의 스님을 몰아내어 그곳을 놀이터로 삼았으며 원각사의 불상을 옮기고 그곳을 기관으로 삼는가 하면 선종의 본산인 흥덕·홍천 두 절을 없애고 여승은 궁중의 노비로 삼고 승려들도 모두 환속시켰다. 중종은 경주의 동불상을 녹여 병기를 만들고 원각사를 헐어 그 재목은 민가를 짓는데 나누어 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강압에도 불구하고 불교 신앙 자체를 말살하지는 못하였으며, 특히 상류층 부인의 신앙을 저지하기는 어려웠다. 더구나 역대 왕 중에는 호법왕도 있었으니, 태조는 석왕사·태고사·해인사 등에 비판을 하사하였고, 세종·세조 때는 간경도감을 설치, 불경을 간행하였다. 특히 세종은 불교 종파의 정비를 단행하여 조계·천태·총남의 3종을 선종으로, 화엄·자은·시흥·중신의 4종을 교종으로 통합하여 선·교 양종을 성립시켰다. 특히 조선 밀교는 세간적 실지(悉地)를 위주로 이루어졌는데, 위정자에 관한 한 주술적·기복적인 영험 신앙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다시 말하면 진언·다라니경이 간행된 것은 장수·멸죄·구병·안택·도액(度厄)·가지(加持)에 관한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특히 수륙재는 본래 외로운 혼들의 구제이나 질병 퇴치·양재·추복적 신앙의 경향이 짙었다. 이러한 신앙 이면에 전통적 밀교 교학이 발전하고 있다. 3밀 수행과 만다라 사상이 널리 유포되었다. 다시 말하면 조선 선조 2(1569)에 간행된 <칠대만법>에 의하면 우주법계는 지······식의 7대로 구성되었다는 7대만법, 7대 체대설을 주장하고 있다. 7대는 우주와 인간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이며, 법체라고 한다. 또한 조선 숙종 7(1681)에 간행된 <제반문(諸般文)>의 점안문(點眼文) 보소청(普召請)5()5()·5()·5()로 나타내고 있는데 이는 밀교의 금강만다라 사상을 뜻하고 있다. 한편 숙종 23(1695)에 간행된 <관상의궤(觀想儀軌)>에는 자기 마음에 불묘반야바라밀다 대명문자를 관상하고 8엽의 대흥연화를 관상하면 만다라를 이루리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밀교의 태장만다라 사상을 뜻한다. 정조 8(1784)에 간행된 몽은(蒙隱)<비밀교(秘密敎)> 5방관(方觀)에서 중앙 대일 여래를 여래장식으로 하여 5()·5()·5()·5()·5()·5()·5()을 서로 연계시켜 배대하였는데 이는 5(, ····)5(, ····)5·5·5·5(9)에 배대한 밀교의 금강만다라 사상이 발전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정토와 선()을 융합한 신앙이 전개되어졌다. 즉 정토 진언으로서 무량수여래근본다라니·불설대승성무량수결정광명왕여래다라니·아미타불심주·아미타불심중심주 등이 있으며, 이외에 왕생정토주·안좌진언(安座眞言)·결정왕생정토진언 등 많이 있다. 또한 선조 3(1570)에 간행된 설숭(雪崇)<제진언집>에서 진언이 천경의 골수요, 일심(一心)의 원감(元鑑)이라고 하여 진언이 선()과 일맥상통을 꾀했다. 다른 한편으로 선승인 보우(普雨, ?~1561)의 허응당집(虛應堂集)과 휴정(休靜, 1520~1604)<운수단(雲水壇)><설선의(說禪儀)>에는 진언들을 삽입시켜 선가의 의식 자체가 밀교 신앙과 자연스럽게 결합되어 선행되었다. 이후의 선승들도 밀교 의식집을 개간하거나 진언을 수지 독송하기도 하였다. 즉 유정(惟政, 1544~1610)<미타조성점안소>, 편양(鞭羊, 1581~1644)<수륙재소>, <시왕소(十王疏)>, 월저(月渚, 1638~1715)<약사회소>, 설암(雪巖, 1651~1706)<아미타도량소>, <지장도량소>, <행민소재제병관음도량소>, <소재도량소> 등과 성규(聖奎, 1728~1812)는 대비주(大悲呪) 10만편을 독송한 일례가 있다. 또한 선종의 소의경전인 능엄경의 능엄주가 융섭되어 신앙되어졌다. 명종 15(1560) 숙천부 장우사(藏于寺)에서 <성관자재수구육자선정>이 간행되어 밀교에서도 선정 관법을 수용하여 신행되었다. 따라서 조선 밀교는 주술적인 면에서 수륙재, 소재 도량, 기우재, 구병 도량 등 각종 밀교 의식이 시행되고 이와 관계된 의식 문집과 다라니경과 진언집류 등의 간행은 국난 타개와 개인의 구복을 위한 기복적 경향도 있었다. 교학·사상적인 면으로 3밀가지 수행법과 금·태 만다라 밀교 사상을 계승 발전시키면서 중국의 아자체대설과 일본의 ‘6자체대설을 따르지 않고 독특한 ‘7대만법설을 정립하였다. 더욱이 조선시대에는 밀교가 정토와 선과 융합하여 불교의 명맥과 혜명을 잇는데 중추적 역할을 했다. 한국의 근·현대사는 격동의 역사다. 조선 시대 이후 대한 제국의 성립, 일제의 강점, 8.15 해방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 및 5·6·7공화국에 이르는 과정에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한국불교의 근·현대사의 시기는 크게 대승불교는 대한 제국의 성립에서 정화 유시(1897~1954)까지, 정화 유시 이후에서 제1법난(10.27, 1954~1980)까지, 1법난(10.27) 이후에서 9.7해인사 전국승려대회(1980~1987), 9.7 해인사 전국승려대회에서 제2법난(3.29, 1987~1994)과 밀교는 1946년에 진각종, 진언종, 총지종으로 발전하였다. 1) 대승불교 : 근대불교는 조선시대의 숭유 억불정책에 의해 승려의 도성 출입의 탄압을 받은 불교가 고종 23(1895)에 일본 승려에 의해 입성 금지령이 해제되었다. 그리하여 1899년에 원흥사를 세워 전국 사찰의 통합을 논의하여 13도에 각각의 1개의 수사를 두어 사찰 사무를 총괄하게 하였다. 19083월에 한국불교의 종명을 원종(圓宗)이라 하였다. 1910년 원종의 대종정인 이회광이 일본 조동종과 연합 조약을 맺어 불교의 일본 식민지화를 꾀하였다. 이에 박한영, 한용운 등이 합종 반대 운동을 전개하여 임제종을 만들었다. 그러나 합방 이듬해 19116·3일 사찰령이 제정, 반포됨으로써 종지 수호 운동이 무산되었다. 사찰령에 의해 30본산 제도가 실시되고 1,200개의 말사로 구분되었으며 한국불교는 총독부의 통제하에 놓였다. 이후 사찰은 일부 승려들에 의해 개인 소유화 현상이 발생되고, 일본불교의 영향을 받아 결혼하는 대처승려가 급속히 증가되었다. 이러한 가운데 조선 말에 선풍을 떨친 경허 성우(1849~1912)의 문하에 만공, 혜월, 수월, 혜봉, 침운, 몽성, 한암 등의 쟁쟁한 선사가 배출되어 선풍을 진작시켰다. 그래서 1921년 선학원이 설립되었다. 선학원()은 사찰령에 의한 왜색 불교로부터 한국불교의 본래 모습을 지키고 총독부의 사찰령에 통제받지 않기 위함이다. 또한 19223월말 오성월, 김남전, 백학명 등 199인의 선승에 의해 선우 공제회가 자립 자애를 목적으로 수는 7001명 가운데 1~10명도 안되었다. 또한 전국 1363개 사찰 가운데 선우공제회 교단 내에 비구·대처가 구분되어졌다. 1954523일 이승만 대통령은 대처승은 사찰에서 물러나라.”는 정화 유시를 내렸다. 1962년 당시 문교부 장관의 주선으로 재통합하기도 하였으나 다시 분열되었다. 이로 인해 비구측과 대처측간에 사찰 점유 쟁탈과 법통시비에 대한 분쟁이 1969년까지 계속되었다. 한편 비구측은 정부로부터 정통을 인정받아 1955년에 대처측의 본부인 태고사를 조계사로 개칭하고 대처측의 사찰을 인수하기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비구측은 수적인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서 개중에는 수행인으로서 자질이 부적합한 이들을 출가시킴으로 인해 승려의 자질을 떨어뜨림은 물론 오늘날의 불교의 크고 작은 사건에 연루되어 조계종 병폐의 원인이 되었다. 이들로 인해 불교 재산이 피해를 입게 되자, 불교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불교 재산 관리법(불재법)이 정부에 의해 1962. 5·16 쿠데타 직후에 국가 재건 최고 회의에서 불재법은 불교 재산을 보호라는 명목하에 불교의 재산을 보호하는데 큰 역활을 하였지만, 정부는 이를 불교의 통제, 감독 수단으로 이용하였다. 종단에서도 불교 발전을 위한 도제 양성, 역경, 포교를 종단의 3대 강목을 세워 실천함으로써 불교의 활성화에 괄목한 성과를 이루었다. 19801027일은 한국불교 사상 유례가 없는 대법난을 당하게 되었다. 1980년 서울의 봄을 맞이하여 불교계에서도 조계사, 개운사 양 총무원간의 갈등이 해소되었다. 그리고 불교의 자율성을 위해서 불재법에 대한 폐지를 대처측에서 먼저 제기하여 조계종단도 본격 제기하였다. 이러한 불교계의 10·27법난은 당시 총무원장인 월주스님이 계엄정권에 협조하지 않자, 신군부는 불교의 분규 종식, 비리 조사라는 명분으로 자율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8010·2704시에 당시 비상계엄하 합동수사본부에서 조계종 총무원과 전국 사찰에 계엄군을 진입시켜 당시 송월주 총무원장 등 무고한 승려 56명을 연행 구속하고, 다시 30일에는 군·경 합동으로 전국 3,000여 사찰과 암자를 구두발로 피습하여 수백명의 승려를 연행구금한 불교최대의 탄압사건이다. 이로 인해 불교계는 한국불교 역사상 엄청난 충격과 오점을 남기게 되었다. 이 법난에 의해 불교는 사회적 무관심에 대해 사회 정의에 눈을 뜨게 했다. 이것은 민중불교 운동으로 나타났다. 1981111일에는 불교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전국 주요 인물 150여명이 국가 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198654일에는 고은, 여익구를 비롯한 진보적 불교인 100여명이 민중 불교 운동 연합을 창설하여 5·3 인천 학생, 구로동 포교원 등을 개설하여 사회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19865정토 구현 전국 승가회가 결성되어 승려들이 사회 정치 문제에 발언하기 시작함으로써 승단이 불교의 사회 현실에 참여라는 새로운 위상을 정립하였다. 이러한 불교의 사회운동은 198697일 해인사에서 전국승려대회가 개최되어 불교의 전국적인 현실 참여를 선언하였다. 이는 불교의 대중화·생활화·사회화를 위한 발돋움이었다. 1988528<전통사찰보존법>이 발효되면서 불교의 자율성을 찾게 되었다. 또한 19881130일에는 정부로부터 <10·27 법난 경위 설명회>를 듣고 국무총리로부터 공식 사과 담화를 받아냈다. 이는 사회 전반에 걸친 민주화 바람이 교계에도 미치게 되었다. 이러한 조치후 불교인의 완전한 명예 회복으로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불교는 이후 사회에 괄목한 활동상을 줄기차게 전개하였다. 즉 불교의 대중화 차원에서 공해, 환경, 종교의 형평 원칙, 불교 방송국 개국, 중앙 승가 대학 설립, 불교 사회 복지 사업, 전통 문화 보존 등에 큰 힙을 기울여 어느 시대보다 큰 발전상을 보였다. 1994329일은 제2법난이라 할 수 있다. 3·29법난은 당시 서의현 총무원장이 3선 당선을 강행하기 위해 30일 제112회 조계종 임시 중앙 종회 개최를 공고하였다. 이를 저지하기 위하여 3월 초부터 범승가종단개혁추진위원회(범종추) 스님 500여명과 대불련 소속 학생이 상무대 비리 규명과 서의현 총무원장 3선을 반대하는 각종 법회가 개최되고 28일부터 종단을 개혁하려는 범종추가 조계종 총무원 청사 앞에서 서의현 총무원장 3임 반대와 상무대 의혹 해명을 촉구하는 구종 법회를 주도하였으나, 총무원의 요청에 의해 29일 오후 6시에 전투경찰 1500여명이 조계사 경내로 진입하여 단식 기도 중인 청화, 시현, 도법 스님 등 범종추 대표와 400여명의 승가 재가를 강제로 연행하고 총회가 개최된 후 철수한 사건이다. 이에 의해 서의현 총무원장은 28일 오전 10시에 총회에서 3선에 당선되었으나 이 과정에서 29일 새벽에 괴청년을 조계사에 동원하여 범종추스님, 재가에게 폭력을 휘둘러 유혈이 난무하게 하고 30일 새벽 1시에 총무원 청사 1층에서 비폭력 무저항으로 정진하는 스님들을 연행하기 위해 전투경찰이 진입하여 아침 8시에 201명 전원을 경찰에 의해 강제연행했다가 불교의 위상을 땅에 떨어뜨렸다. 이로 인해 원로 스님인 월산, 월하 스님 등은 전학인은 구종 법회에 적극 나서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종단 개혁에 깊은 관심을 표명하였다. 29일에는 성태용 교수를 비롯한 36인의 불자 교수들이 범종추의 종단 개혁에 대한 지지 성명서를 발표했다. 31일에 민주당은 총무원장 선출 과정에서 빚어진 폭력 사태에 정부의 편파적 수사를 비판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사회에서도 불교의 구태 의연한 종권 분쟁에 불교도 개혁이 되어야 한다는 따가운 여론의 화살이 전국을 들끓었다. 한편 총무원장 선출이 있은 후 30일 오후 1시에 종회에 불참한 설조 스님 등 종회 의원 11명이 30일 종회를 위법이라 규정하였다. 조계종 원로 회의(의장 혜암 스님)5일 대각사에서 원로 스님인 비룡, 도천, 응담, 도견, 원담, 지종, 고송 등이 직접 참석하고 월하, 승찬 스님은 위임장을 보내 서의현 총무원장 3선 연임을 결정한 임시총회는 무효화를 선언하고 서원장 즉각 사퇴를 결의하였다. 그리고 410일 전국승려대회를 소집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앞서 고은 시인 등 안병직 교수를 비롯 문인 교수 등 419명은불교의 앞날을 생각하는 지성인 선언을 발표하고 서의현 총무원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그러나 서의현 총무원장측은 4.16일 서암 종정 스님과 원로회의 뜻을 받들어 절차에 의한 종권 이양이라는 조건부로 사퇴를 미루었다. 또한 재가 불자 연합은 49일에 서의현 총무원장 퇴진과 불교 탄압 규탄 대회를 가졌다. 송서암 종정은 9일자 교시를 통해 서의현 총무원장 즉각 퇴진 및 승려 대회 금지를 표명했다. 이리하여 조계종은 원로회의와 종정간의 종권 대립 양상을 비쳐 분열되는 위기에 처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혁을 위한 전국승려대회를 열어 1955812일 첫 전국승려대회 이후 지금까지 종단의 심각한 안건이 있을 때마다 전국 승려의 공의를 수렴하여 410일 오후 1시에 조계사에서 열어 비상 종단 개혁 추진 위원회를 결성해서 조계종 개혁회의가 출범되었다. 개혁되는 범종추의 불교 개혁을 위한 제도 방안을 강구하게 되었다. 상황이 개혁의 여론으로 돌아서자 총무원장 집행부가 11일 오전 1시 청사를 빠져나가고 서의현 총무원장이 전격 사퇴하였다. 이로써 불교 개혁은 주도권 싸움에서 법통 싸움으로 장기간 비화될 조짐이 보였으나 조계종 개혁 회의가 불교 개혁 여망을 안은 전불교도의 단합과 전국민이 호응하여 개혁의 승리를 쟁취하였다. 1994410일 전국 승려 대회는 불교가 1986년 해인사 전국 승려 대회 이후 그동안 정권 보호와 정부 정책에 무조건 옹호하는 왜곡된 호국불교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천명에도 불구하고 상무대 비리 의혹의 정불(政佛) 유착과 90년대 사회 전반에 걸친 개혁의 흐름을 타지 못하고 서의현 총무원장이 과거 독재 정권의 잔재인 3선을 강행하려하자 범종추가 총무원장 3임을 반대하였다. 이는 종단 내에 전 총무원장측의 보수 세력과 개혁 회의측의 진보 세력간의 불교 발전의 분수령에서 진보 세력이 승리한 것이다. 한편 이 대회에서 서암 종정의 전국 승려 대회 금지에 대한 불신임을 결의함으로서 불교계 최고 어른에 대한 결례를 범하고 불교에 커다란 상처를 남겼다. 나아가 사회 정의 차원에서 불교가 더 이상 과거 독재 시대의 부정과 독재의 유산물을 묵과할 수 없다는 의지이다. 94329일 법난 과정에서 폭력배를 동원한 총무원 집행부측의 행동은 불교의 위신을 실추시켰으며 또한 집행부측의 공권력 투입 요청으로 전투경찰이 경내에 진입한 것은 정부가 중립성을 잃어버리고 개혁 회의측에 부당한 공권력을 발휘하여 불교 탄압을 강행한 것이다. 그러나 범종추가 주도하는 선우 도량, 정토 구현 전국 승가회의 개혁 회의측이 경불련, 민불련, 재가 불자와 연합해서 폭력과 불법에 항의하여 단식과 철야 정진의 비폭력으로 불교 개혁을 위한 외침은 이 시대의 국민의 간절한 여망이었다. 또한 전불교도들의 하나된 마음으로 일치 단결하여 사회 불의와 공권력의 부당성에 대한 항거는 이 시대에 역행하는 잘못된 공권력을 올바르게 잡으려는 불교의 정법 구현의 정신을 발휘했다. 19941121일 불교 개혁 회의는 정식으로 28대 총무원장에 송월주 스님을 선출하여 정불 유착과 종권 다툼으로 얼룩진 상처를 치유하고 민족 종교로 불교 정신을 바로 세워서 조계종의 위상과 민족 의식 개혁의 초석을 다졌다.

 

이조불교(李朝佛敎,2084)-뉴사전 : 이조시대의 대표적인 종교로는 역시 불교를 들 수 있다. 이조에서는 처음부터 불교를 배격하고 유교를 숭상하였으나 오랜 기간에 걸쳐 번성하였던 불교 중심의 문화가 일시에 거세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고려 이래로 불교의 페단이 많았음은 사실이어서, 태조 때부터 이에 대한 개혁에 착수하였으며 태종은 시종일관 불교의 탄압 정책을 써서 태조 때에 제정한 도첩제를 더욱 엄하게 하고 전국의 사원을 정비하여 242개만을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없애버리는 동시에 거기에 딸려 있던 토지와 노비는 모두 국가에서 몰수하였으며 고려 이후 전해오던 국사왕사의 제도를 폐하는 등의 조처를 취하여 불교는 큰 타격을 받았다. 뒤이어 세종도 처음에는 억불정책을 썼는데, 특히 불교의 7종파를 선·(·) 양종으로 통합하는 한편 전국에서 선종·교종에 각각 18본산, 도합 36본산만을 인정하였으며, 서울 안에 있던 흥천사와 흥덕사를 각각 선·교의 대본산으로 삼았다. 그러나 이런 가운데서도 무학(無學)대사를 비롯하여 많은 명승들이 배출되었다. 세종은 만년에 불교를 믿게 되었으며 소헌왕후가 죽은 뒤에는 경복궁 안에 내불당(內佛堂)을 짓기까지 하였다. 당시 조정에서는 유신들에 의해 척불(斥佛)의 소리가 높았으나 왕실에서는 불교를 독실히 믿었으며, 훈민정음이 반포된 뒤에는 불경의 언해가 시작되었다. 세조는 불교를 독실히 믿어 처음부터 사원 및 승려의 보호에 힘썼으며, 또 간경도감을 설치하여 각종의 불경을 우리 말로 번역해 내는 등, 이조시대 불교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그러나 성종이 즉의하여서는 이내 억불정책을 써서 도첩을 발급하지 않고 승려들의 환속을 장려한 일도 있었다. 연산군 때에는 더욱 심하여, ·교 양종의 대본산인 흥천사·흥덕사의 철폐와 동시에 승과(僧科)·법계(法階) 등 불교에 관한 관제가 일체 없어짐으로써 국가와의 관계가 단절된 사적(私的)인 단체로서 남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선·교 양종의 존재 의의도 없어지고 따라서 종파도 제대로 구분될 수 없었다. 명종 때에 문정대비가 섭정하면서 보우라는 승려를 등용하고 양종을 부흥하며 승과와 도첩제를 다시 실시하여 한때 교세가 크게 확장되었으나 문정대비가 죽자 곧 양종·승과·도첩제는 모두 폐지되고 보우스님은 장상(杖殺)되며 불교는 또다시 쇠퇴하여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선조 때 임진왜란을 당하여 휴정(서산대사)과 유정(사명당)·영규·처영 등이 승병을 이끌고 나라를 위해 일본군과 싸움으로써 그에 대한 보답으로 교세를 만회할 기회를 얻었다. 한편 휴정은 선·교 양종을 조계종의 단일종으로 만들었으며, 그의 문하에서 유정·언기·태능 등의 고승을 비롯하여 우수한 승려들이 많이 나와서 제각기 훌륭한 업적들을 남겼다. 불교가 배척되던 이조 사회에서는 승려들도 천인과 같은 대우를 받았으나, 일반 백성들은 국가 정책과는 별 관계 없이 대부분 불교를 신봉하였다.

 

장아함경(長阿含經,2223)-뉴사전 : , Dirghagama-sutra. 4아함의 하나. 요진의 불타야사와 축불염이 함께 번역함. 4아함 가운데 비교적 장편의 경문을 모은 것이므로장아함경이라 함. 430경으로 되어 사제(四諦) 12인연의 가르침을 말한 것. 1분에는 과거 칠불과 석존의 열반 등을 밝히고, 2분에는 사성(四姓)의 평등, 미륵불의 출현, 육방에 예배하는 것 등을 말하고, 3분에는 외도 바라문의 그릇된 뜻을 파하고, 4분에는 남섬부주·전륜성왕·지옥·아수라·사천왕·삼재 등을 설명하였음.아함 .....아함(阿含,1649)-뉴사전 : , , agama의 음역. 오는 것이란 뜻. 인도에서는 일반적으로 전승경전(傳承經典)을 말한다. 전승된 가르침. 바라문교에서는 성전의 말. 주로 베다성전. , agama <金七十論 4541246: Gaud. 4> 가르침. 가르침의 전승. 예부터 전해져 온 가르침. <五敎章 上 352> 경전. 석존의 가르침. <眞諦譯 攝大乘論 36> 원시불교의 경전. 대승경전에 대비되는 말. 기원전후 대승불교가 일어나 대승경전이 제작된 후에는 소승불교를 달리 일컫는 말이 되었고, 또 소승불교경전인아함경의 약칭으로 쓰이게 되었다. 수나라의 지의(智顗)5시교판(五時敎判)을 세우는데에 그 하나로서 아함시(阿含時)를 세우고 있다. ⑥「아함경. 석존께서 최초로 설한 경.아함경아함시 .....아함경(阿含經,1650)-뉴사전 : 아함부에 속하는 4아함 또는 5아함의 총칭. 곧 원시불교의 경전을 말하며 석존께서 실제로 설한 것으로 생각되는 교법이 가장 많다. 여기에 남전·북전이 있으니 남방불교에서는 장부(Digha-nikaya)·중부(Majjhima-n)·상응부(Samyutta-n)·증지부(Anguttara-n)·소부(Khuddaka-n)5부로 구별되며, 북방불교에서는 장아함·중아함·증일아함·잡아함으로 일컬어지는 4부아함을 든다. 한역의장아함경22경으로, 430경이 들어 있는데, 1분에 불타에 관한 제경, 2분에 행과 교리에 관한 제경, 3분에 외도에 관한 논란, 4분에 세계의 성립괴공(壞空)을 설한 경전으로 편찬되어 있다. 중아함은 60권으로 222경인데, 특히 사제·십이인연·비유와 불타 및 제자의 언행 등의 내용으로 편찬되어 있다. 증일아함은 51권으로 법수에 따라 내용을 모아 편찬했는데, 1법으로부터 11법에 이르기까지를 하나로 묶은데 의하여 경명을 이름했다. 잡아함은 50권으로 다른아함경에 들어 있지 않은 모든 법문을 집록한 것이다. 5부와 4아함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고 상당한 거리가 있는 내용을 가진다. 아함부의 한역에 대해 살펴보면 그 부분 번역이 후한시대부터 행해졌음을 보아 불교의 동전(東傳)초기부터임을 알 수 있다. 안세고(147년부터 洛陽에서 譯經)로부터 몇가지아함경번역이 있었는데 장아함 등의 제부아함의별생경(別生經)일 뿐 중요한 중심아함경은 아니었다. 173년 뒤부터는 축불삭·지루가참 등에 의해 대승경전의 번역과 그 유행이 크게 행해짐에 따라아함경계의 번역과 그 유행은 한때 중단시대의 역사를 겪는다. 그러나 그 뒤 100년이 지나면서(380년경부터) 아함·비담의 학승들이 점차로 들어 옴에 따라 특히 384년의 담마난제(曇摩難提)가 도안(道安)·축불념(竺佛念) 등과 더불어 중아함·증일아함·비담심 등 106권을 번역, 또 승가제바 등이(343~344) 장안에 들어와 중아함 60권을 번역, 413년에 법현이 장아함·잡아함의 범본을 가지고 옴으로 불타야사가 외워 내어 불념이 번역했으며, 송나라 때에(435) 구나발타라가 건강(健康) 기원사(祇洹寺)에 머물면서잡아함경50권을 번역함으로써 한역4아함경이 완성되었다.

팔리어 대장경. 한역된아함경에 해당하는 경전으로 팔리어본의 니카아야(Nikaya)가 있다. 팔리어 니카아야에는 다섯가지가 있는데 그 명칭이나 내용이 소부를 제외하고는 한역아함경과 비슷하기 때문에 이 니카아야는 팔리어를 사용하던 부파(部派)에서 전승·봉지하던 경전의 집성으로 간주되고 있다. (1) 장부(Digha-nikaya)는 비교적 장편인 34가지의 경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장아함경과 비슷하다. (2) 중부(Majjhima-n)는 중편의 경전 152까지의 경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중아함경과 대비된다. (3) 상응부(Samyutta-n)는 도합 2875까지의 단편의 경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잡아함경과 비슷하다. (4) 증지부(Anguttara-n)는 마치증일아함경이 법수의 순차에 따르듯 단편의 경 2198가지를 1법부터 11법까지 법수의 순서대로 나열하고 있다. 끝으로 (5) 소부(Khuddaka-n)법구경」「본생담등과 같이 잘 알려진 경을 포함하여 15가지의 경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것은 한역아함경에는 없는 부분이다. 이 팔리어의 5부는 현재 스리랑카·버마·타일랜드 등의 남방 불교국가에서 받들어지고 있는 불교경전의 전부이다. 따라서 서구 여러 나라의 불교 및 불교학 연구는 이 팔리어본 5부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이것에 비하면 한역 아함의 원전인 범어의 agama는 대부분의 원전이 현존치 않고 오직 장아함의 일부만이 남아있어 한역본과의 대조 검토가 가능할 뿐이다. 교리사상(敎理史上)의 위치. 불멸후 100~200년경 사제(師弟)가 서로 전해져 내려오던 석존의 교설을 모두 집성한 이 경은, 문학적 작품으로 볼 때에는 웅대하고 시취(詩趣)가 풍부한 대승경전류나 우화 비유로서 평범하게 서술된 전기경류(傳記經類)에 비하면 자못 단편으로써 석존의 언행록이라고 할만한 것이다. 따라서 인간 석가의 이면을 보는데는 더없이 좋은 재료이며 살아 있는 석존에 접촉하는 느낌이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이는 석존의 입멸후 상당한 세월이 지나서 성립된 것이므로 그 중에는 어느 정도까지는 창작적인 요소도 있다. 예컨대 석존의 전세에 관한 이야기라던지, 과거 제불의 사상이라던지 또는 범천이나 천인의 등장과 같은 것 등은 그러한 예라고 하겠다. 그러므로아함경역시 석존 그대로의 불교는 아니라고 할른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른 어떤 경전보다도 석존에 멀지 않고, 사상면에서도 큰 변화가 없으며, 이설이 대립된다던지 분파의 경향이 나타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이른바 대·소승의 구별도 보이지 않아서아함경은 곧 후세에 발달하는 불교의 원천이 된다고 하겠다. 그리하여 19세기 후반 이후 구미인들의 불교연구에 있어서는 이를 근본불교 또는 원시불교라고 하여 불교교리연구의 기초로 삼아왔으며, 그 연구성과도 다른 부분에 비해 매우 괄목할 만한 것이어서 불교의 학술적 연구의 단서가 되어 왔다고 하겠다. 이와같이아함경은 초기 불교의 경전전집이며 여러 불전중 석존이 설한 바 본형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재료이기도 하다. 소승불교의 교리도 이아함경의 설에 의하여 이를 이론적으로 해석하고 조직한 것에 불과하고 후세에 성립된 대승경전도 모두 이 경전으로부터 변화 발달된 것에 불과하다. 예컨대반야경에서 설하여지고 있는 대승 공관(空觀)의 사상도 결국은 이 경전에서 설한 무아사상, 12인연 등의 전제가 된 것이니아함경은 말하자면 전시대(前時代) 불교의 총령(總領)인 동시에 후시대의 불교를 산출한 모체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아함시(阿含時,1651)-뉴사전 : 천태의 교판에 있어서 석존일대의 설법을 시간적으로 다섯 시기로 나눈 것 중 제2기에 해당한다. , 석존의 성도후 12년간은 베나레스의 교외의 녹야원에서 설법했지만, 그 내용은 현재의아함경및 그것과 비숫한 가르침이라 해서 이 시간을 아함시(阿含時), 혹은 녹원시(鹿苑時)리고 한다.아함경은 점교(漸敎)로서는 첫 번째이며, 대상이 저차원의 소승자라는 것에서 태양의 빛이 깊은 산골을 비추는 것에 비유된다. 우유로 말하면 낙미(酪味)에 해당되며, 내용적으로는 오로지 장교(藏敎)이다. .....장교(藏敎,2218)-뉴사전 : 천태종에서 말하는 화법(化法)의 사교(四敎)의 제일. 소승불교의 것. ()·()·()의 삼장교(三藏敎)의 뜻. 불교교리의 초보적단계의 것으로 간주되고 특히 아직 공()의 진의(眞義)를 파악하고 있지 않은 것에 강한 비판이 쏠림. 지의(智顗)삼장교라 한 것을 생략해서 말함. <天台四敎儀 46775> .....화법(化法,2848)-뉴사전 : 부처님이 중생을 인도하기 위해 설법한 가르침의 내용. <天台四敎儀 46774> <八宗網要 348> .....사교(四敎,1046)-뉴사전 : 4종의 가르침이라는 뜻. 천태종에서는 석존의 한 생애의 설교를 내용형식에 따라 4종으로 분류함. 즉 지의(智顗)의 설에서는, ()·()·()·()의 화법(化法)4()와 돈()·()·비밀(秘密)·부정(不定)의 화의(化儀)4()가 있음. 화법(化法)4()라고 하는 것은, (1) 삼장교(三藏敎 : 소승), (2) 통교(通敎 : 제대승경(諸大乘經)의 통설), (3) 별교(別敎 : 소승에서는 통하지 않는 대승 특유의 가르침), (4) 원교(圓敎 : 완전한 가르침, 화엄의 가르침)를 말함.화의사교(化儀四敎) <五敎章 上 247> <四敎儀> <天台四敎儀> <開目鈔 552> <本尊抄 707>

 

석가(釋迦,1301)-뉴사전 : 석존이 속해있던 부족의 이름을 팔, Sakiya , Sakiya , Sakya라고 하는데, 그 음역이 변하여 석존, 고타마·붓다라 함. <藥師寺佛足石歌> <沙石集 1(3)> , Sakka의 음역. 제석천(帝釋天)이라고 하는 것. , brgya byin <大日經 住心品 182>서가 .....서가(釋迦,1292)-뉴사전 : 석가모니의 약칭.석가모니서가모니

 

제불(諸佛,2319)-뉴사전 : 여러 가지 부처님. 원어는 보통 산, buddhah. <俱舍論 128·9 > 최고의 진리를 지각, 이해하는 사람들. <寶性論 31826> (해석예) 미타를 제불이라고 하는 과도인도(過度人道)의 마음이다. <眞聖 510>

 

원승(圓乘,1908)-뉴사전 : 완전한 실천법. 원교(圓敎). 원만한 교법. (四敎儀註 上本 24> .....원교(圓敎,1900)-뉴사전 : 완전한 가르침. 원만완전한 가르침. 불교중에서 가장 완전한 교설(敎說). 궁극적인 가르침. 진리 내지 세계를 종합적으로 보는 입장. 중국불교에서 여러 경론의 내용을 체계화하고 비판 분류할 때, 궁극적인 가르침을 원교(圓敎)라고 불렀다. 북위의 혜광(慧光 : 광통률사)은 점()·()·()3교를 나누어화엄경을 원교(圓敎)라고 하고, 지의(智顗)는 장()·()·()·()4교로,법화경만이 원래 원교(圓敎)를 말하는 경이라고 함. 당나라의 법장(法藏)은 소승(小乘)·()·()·()·()5교판(敎判)을 설명하고,화엄경을 제5의 원교(圓敎)로 함. 당나라의 원정(元政)은 진언밀교를 일대원교(一大圓敎)로 하고, 일본 천태의 밀교도 이 설을 채용하여, 발전시켜 교판을 세웠다. 천태종에서 말하는 화법(化法)4(四敎)중 제4. 법화·열반의 여러 종류의 설(). 특히법화경의 가르침을 말한다. 원경(圓經)의 묘법. 화엄종에서 말하는 5()의 제5. 일다상즉(一多相即)·중중무진(重重無盡)의 법문을 말한화엄경의 가르침. 도선(道宣)이 세운 3교의 제3. 유식원교(唯識圓敎). 만법유심(萬法唯心)의 이치를 고찰하는 것을 분명히 하는 화엄·법화·능가·섭대승론 등의 설. 태밀(台密)에서는 진언교를 일대원교(一大圓敎)로 한다. 진종(眞宗)에서는 본원일승(本願一乘)의 법을 원교(圓敎)중의 원교로 한다.

 

해동고승전(海東高僧傳,2753)-뉴사전 : 21. 1215(고려 고종 2) 경북 오관산 영통사 주지 각훈(覺訓)이 지음. 고구려·신라에 불교를 전한 순도(順道) 등 수십인의 전기를 기록하다. 후세에 흩어져 전하지 못하던 것이 30년쯤 전에 성주의 어느 절에서 몇권이 발견되었다.

 

취지(趣旨,2349)-국어사전 : (어떤 일의) 근본 목적이나 의도. (이야기나 문장의) 근본 뜻. 취의(趣意). 지취.

 

정신게(正信偈,2292)-뉴사전 : 송나라 자운(慈雲)천축별집(天竺別集)가운데에 왕생 정신게(正信偈)미타경정신게가 있음.

 

이십오원통(二十五圓通,2071)-뉴사전 : 25종의 방편수단으로 원통을 증()한 것. 원통은 원만 통달, 또는 주변(周遍) 융통이란 뜻으로 제법 진여의 묘경(妙境)을 원만하게 통달하고, 융통 무애한 심경(心境)에 이른 것. 곧 수릉엄정(首楞嚴定)을 얻은 것. 이 방법에 대하여 25성자(聖者)가 각각 체험한 것을 말한 25의 법문. (1) 교진나 등 5비구의 음성으로 증오(證悟)한 것을 비롯하여, (2) 우바니사타는 색인(色因)으로, (3) 향엄동자는 향인(香因)으로, (4) 약왕·약상 두 보살은 미인(味因)으로, (5) 발타바라는 촉인(觸因)으로, (6) 마하가섭은 법인(法因)으로, (7) 아나률타는 견원(見元)으로, (8) 주리반특가는 식공(息空)으로, (9) 교범자제는 미지(味知), (10) 필릉가바차는 신각(身覺)으로, (11) 수보리는 법공(法空)으로, (12) 사리불은 심견(心見)으로, (13) 보현보살은 심문(心聞)으로, (14) 손타라난타는 비식(鼻息)으로, (15) 부루나미다라니자는 법음(法音)으로, (16) 우바리는 신계(身戒), (17) 대목건련은 심달(心達), (18) 오추슬마는 화성(火性)으로, (19) 지지보살은 지성(地性)으로, (20) 월광동자는 수성(水性)으로, (21) 유리광법왕자는 풍성(風性)으로, (22) 허공장보살은 공성(空性)으로, (23) 미륵보살은 식성(識性)으로, (24) 대세지보살은 정념(淨念)으로, (25) 관세음보살은 이근(耳根)으로 제각기 증오(證悟)한 것으로 나눈 것.

 

선법(善法,1318)-뉴사전 : 선한 일. 바른 일. 도리에 따르고 자타(自他)를 이익되게 하는 법(). 세상의 선법. 오계·십선을 말함. 혹은 출세간(出世間)의 선법. 삼학육도(三學六度)를 말함. <俱舍論 162, 1711 >因 善法 向上, dharmena gamanam urdhvam(미덕(美德)에 의해서 천상에 오른다.) <金七十論 44541255> .....오계(五戒,1786)-뉴사전 : 5가지 계율. 재가(在家)의 불교신자가 지켜야 할 5가지 훈계. (1) 살생하지 말 것. (2) 도둑질하지 말 것. (3) 남녀 사이를 혼란시키지 말 것. 성에 관해서 문란하지 않는 것. 특히 부인외의 여자, 또는 남편외의 남자와 교제하지 말 것. (4) 거짓말하지 말 것. (5) 술을 마시지 말 것. 살생(殺生투도(偸盜사음(邪婬망어(妄語음주(飮酒)의 금제(禁制). 불살생계(不殺生戒불투도계(不偸盜戒불사음계(不邪婬戒불망어계(不妄語戒불음주계(不飮酒戒)의 총칭. 우바새계(優婆塞戒)라고도 함. <長阿含經 2114> , Panca-Sila <遊行經 1196> <九橫經 2883> [보통 원어는 산, panca-sila이다.] <四分律 22640> <俱舍論 1414-15, 그 위에 3 참조> <觀霧量壽經 2345> , panca siksapadani <藥師本願經 14407: Bhaisaj. p.19, c.8> <灌頂經 1221534, 535> <反故集> 오계(五戒)를 지키는 재가(在家)의 남자. 우바새(優婆塞). .....십선(十善,1577)-뉴사전 : 10가지의 선한 행위. 십악(十惡)의 반대. 십악(十惡)이란, 살생(殺生투도(偸盜사음(邪婬망어(妄語 : 거짓말을 하는 것양설(兩舌악구(惡口기어(綺語 : 정말로 재미있게 만드는 말탐욕(貪欲진에(瞋恚 : 화내고 미워하는 것사견(邪見 : 잘못된 견해)를 말함. 이상의 십악(十惡)을 행하지 않는 것. 불살생(不殺生)에서 불사견(不邪見)까지를 십선(十善)이라 함. 죽이지 않는다(, prana-atipatat prativiratah), 훔치지 않는다(, adatta-adanat p.), 사음하지 않는다(, kama-mi-thya-carat p.), 망어하지 않는다(, anrta-va-canat p.), 욕하지 않는다(, parusa-vacanat p.), 기어하지 않는다(, sambhinna-pralapat p.), 양설하지 않는다(, pisuna-vacanat p.), 탐욕하지 않는다(, abhidhyatah p.), 화내지 않는다(, vyapadat p.), 사견을 품지 않는다(, mithya-darsanat p.). <寂志果經 1272> <觀無量壽經 12341> <大智度論 4625395참조> 전생에 십선(十善)을 행한 공덕에 의해 금생에 왕위를 받기에 이르렀다는 의미로 천황의 위(: 지위)를 가리켜 말함. (해석예) 신삼구사의삼(身三口四意三). 성왕(聖王)의 천명을 받아 만민을 무육(撫育)하는 법. <十善戒相 131> 도에 따르는 것을 선이라 함. 차선십종(此善十種)이 있으면, 십선(十善)이라 함. <人登道隨 上 1352>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낼지니라.

 

출전 : 불교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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