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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인음녀몽(三人婬女夢)

근와(槿瓦) 2018. 4. 30. 02:57

삼인음녀몽(三人婬女夢)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신 때의 일이다. ··라는 세 사람이 있었는데 그들은 비야리에는 婬女 암라파리가 있고, 사바제에는 음녀 수만나가 있으며, 왕사에는 우발라반나라는 음녀가 있음을 들었다. 세 사람은 각각 그 여인들의 매우 아름다움에 반하여 밤낮으로 마음에 깊은 애착심을 품고 있었다. 어느 날 문득 꿈속에서 그녀들과 情事를 하다가 깨어보니 마음에 생각뿐이요, 그들은 오지 않고 자신도 가지 않았는데도 婬事를 얻을 수 있음으로 인하여 일체의 모든 법이 이같음을 깨달았다. 이에 발타바라 보살에게 가서 이 일을 물으니, 보살이 대답하기를, “모든 법은 모두 자신의 생각에서 나온다면서 방편으로 설명하니 세 사람이 곧 不退地를 증득하였다는 傳說.(智度論 七)

 

참고

불퇴지(不退地) : 阿毘跋致 不退의 지위를 말함. 비록 각 마다 차이가 있으나 항상 菩薩初地를 말하는 것. 三不退 가운데 行不退이고, 四不退 가운데 證不退이다.

 

삼불퇴(三不退) : (1) 位不退. 이미 수행하여 증득한 자리에서 뒤로 물러나지 않는 것. (2) 行不退. 수행을 퇴폐하는 일이 없는 것. (3) 念不退. 향상심에서 불퇴하는 것.

 

사불퇴(四不退) : 佛道를 수행하는 가운데 이미 證得을 다시 退失치 않는 地位를 말한다.

位不退·行不退·念不退·處不退.

(1) 信不退十信의 제6이상. 異解를 내어서 善根을 끊지 않는 것이다.

(2) 位不退十住의 제7이상. 다시 二乘 등에 떨어지지 않는 이다.

(3) 證不退十地初地 이상. 眞如의 진리를 깨달아 다시 退失하지 않는 이다.

(4) 行不退8이상. 眞純無漏智相續하여도 修行退墮하지 않는다.

 

아비발치(阿毘跋致) : 不退·不退位·不退轉이라 번역함. 佛道를 구하는 마음이 견고하여 惡道退轉하지 않는 것. 阿鞞跋致·阿惟越致라고도 쓴다. 보살에서 다시는 退轉치 않으며, 반드시 成佛할 것이 결정되어 의심할 여지가 없는 지위란 뜻. 소승 有部宗에서는 阿羅漢果를 향해 결정코 不退位에 오른 預流果, 大乘에서는 初住·初地 또는 八地菩薩을 일컫는다.

 

불퇴(不退) : 阿鞞跋致 · 阿鞞拔致 · 阿惟越致라고 한자음으로 음역하고, 不退轉 · 無退라 번역한다. 必定이라고도 한다. 退退步 · 退墮의 뜻으로 惡趣二乘地(聲聞 · 緣覺의 자리)退墮하고, 깨달은 보살의 地位나 깨달은 을 잃는 것을 뜻하며, 따라서 不退란 그 반대를 말한다. 不退의 자리를 不退轉地라고도 한다. 有部에선 四善根位 중에 忍位에 이르면 다시 惡就에 떨어지는 일이 없으므로 不退를 얻는다고 한다. 大乘般若 卷四四九에 말하기를, 見道에 들어가면 無生法忍을 얻어 다시 二乘地에 떨어지지 않으므로 不退를 얻는다고 했다. 또 보살의 品階로 말하면 十住第七住位不退轉住라고 부른다. 이런데 근거하여 여러 가지 不退說이 생겼다.

三不退. 吉藏法華義卷李의 설. 네 가지 이 소개되어 있는 가운데 第一설에 따르면, (1) 位不退十住位第七住 이상의 보살이 二乘地退轉치 않는 것. (2) 行不退十地第七地의 보살이 수행한 退轉치 않는 것. (3) 念不退第八地이상의 보살이 無功用(짐짓 노력을 하지 않아도 자연히 도를 얻는 것)에 들어 不動念이 된 것.

四不退. 三不退處不退(彌陀淨土에 태어난 뒤 거기에서 退轉치 않는 것)를 더한 것. 迦才淨土論 卷上. 窺基法華玄贊 卷二에는 별도의 四不退를 설하고 있다. (1) 信不退十信位第六心 이상의 보살은 재차 邪見을 일으키지 않는 것. (2) 位不退十住位第七住 이상의 보살이 二乘地退轉치 않는 것. (3) 證不退初地 이상의 보살이 깨달은 법을 잃지 않는 것. (4) 行不退八地 이상의 보살이 有爲無爲의 행을 잘 닦아 退轉치 않는 것. 懷感群疑論 卷四에도 같은 뜻으로 술회했다. 智旭阿彌陀經要解에는 · · · 畢境四不退, 慈恩四土圖說에는 · · · 四不退하고 있다.

五不退. · · · 四不退煩惱不退(等覺位의 보살이 번뇌 때문에 退轉치 않는 것.)를 더한 것.

淨土宗(眞宗)에서는 진실한 信心을 얻는 자는 現生(이승)에서 正定聚의 자리에 하여 반드시 佛果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은 기정사실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이것을 現生不退라고도 하며 現生正定聚라고도 한다.

 

지도론(智度論) : 大智度論의 약칭. 100. 용수보살이 저술하고 구마라집이 번역함. 마하반야바라밀경을 자세히 해석한 것.

 

() : 睡眠중에 ·心所(의 작용)가 대상을 映寫하여 종종의 일을 마치 현실처럼 보는 것을 말하며, 꿈을 말한다. 大毘婆沙論 三十七에서는 잠을 깨어나서 기억하고 있는 것을 남에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 완전한 꿈이다. 自性(자신의 本質)에 대해서는 ··五取蘊··心所法이라고 하는 등의 여러 가지 이 있다고 하며, 꿈을 꾸는 이유에 대해서도 五緣·七緣 등과 吠陀(폐타, 브라만교의 경전인 베다를 말함)이래의 모든 을 들고 있다. 꿈은 欲界에만 있는 것으로 色界·無色界에는 없으며, 佛陀는 수면이 없다.

유식종에서는수면이 깊을 때는 전혀 의식이 없지만 얕을 때에는 몽중의 의식이 있어서 그 작용에 따라서 꿈을 꾼다고 한다.

有部에서는 몽중에 일어난 일을 모두 사실로 보는데 譬喩師는 이것을 부정하며, 智度論 에도은 사실이 아닌 妄見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꿈은 미래의 일을 預見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으며, 인도에서는 일찍부터 占夢術이 행해졌다.

佛傳에 의하면, 釋尊託胎할 즈음에 摩耶夫人은 보살이 흰 코끼리를 타고 태에 들어 오는 꿈을 꾸었다고 전한다. 波斯匿王이 꾼 열 가지 꿈은 釋尊滅後의 불교상태를 암시한 것이라고 한다. 般舟三昧經에는, 꿈에 불타를 보는 경우를 말하고 있다. 꿈을 類別하여,

(1) 四大不和夢(신체의 부조화로부터 생기는 꿈)

(2) 先見夢(먼저 경험한 일을 꿈에 보는 경우)

(3) 天人夢(사람으로 하여금 善惡의 행위를 하게 하기 위해 天人이 사람에게 보이는 꿈)

(4) 想夢(과거에 행한 善惡에 따라서 각각 善惡의 생각을 일으키고 善惡의 현상이 전개되고 경험하는 꿈을 꾸는 경우)4몽이 있다고 했다.(善見律毘婆沙 十二). 

 

유심(唯心) : 우주의 온갖 존재는 마음에서 變現한 것으로서 마음을 여의고 존재하는 것은 없으며, 마음은 萬有本體로서 唯一實在라고 하는 것. 舊譯의 화엄경 권 二十五十地品에는 三界는 허망하여 다만 이 一心이다라고 했다. , 有情生存하는 의 세계(三界)는 다 一心變作한 것이기 때문에, 心外實在하는 무엇인가가 있다고 인정하는 것은 망상이고, 三界唯一心·心外無別法(三界唯心)이라 한다. 一心의 의미에 대해서, 법상종에서는 이것을 아뢰야식으로 풀이하여 萬法 唯識의 의미로 푸는데, 화엄종에서는 이것을 如來藏自性淸淨心으로 해석하여 眞如에 따라서 모든 을 짓는다는 의미로 풀이한다. 澄觀의 화엄경大疏 四十에는, 三界唯心二乘人心外에 있는 實在로 간주하고 그것은 마음의 轉變으로 말미암는다고 풀고, 대승에서도 유심의 賴耶(아뢰야식)라고 하는 이와 여래장이라고 하는 이의 두 가지가 있음을 설하고, 또 널리 十門을 세워서 詳說하고 있다. 知禮十不二門指要鈔 에는 唯心·由心의 말을 가지고 대승과 소승의 연기설을 구별하고 있다또 구역의 화엄경 권十 夜摩天宮菩薩說偈品如來林보살의 에는마음은 솜씨가 좋은 畵師와 같아서 가지가지의 五陰을 그린다. 일체세계중에서 하나도 마음이 만들지 않은 것은 없다. 마음과 같이 부처도 그와 같고, 부처와 같이 중생도 그러하다. 衆生의 삼법은 전연 구별할 것이 아니다.心佛及衆生 是三無差別(三法無差)을 설함. 이것을, 화엄종에서는 마음을 能造(만드는 자), ·중생을 所造(만들어진 것)로 보고, 여래장심이 깨닫는 것을 불, 한 것을 중생으로 하여, 연기에는 染淨(더러운 것과 깨끗한 것과)의 구별이 있어도 마음 그 자체는 같은 것이기 때문에 三法無差라고 하는데 대해서, 천태종 山家派에서는 심··중생의 삼법은 함께 동일의 삼천의 법이기 때문에 마음만이 能造·能具가 아니고, ·중생도 능조·능구이다. 또 불·중생만이 소조·소구는 아니고, 도 또한 소조·소구라 하여 三法無差를 설함. 단 천태종에서도 山外派에서는 을 능조, ·중생을 소조로 하는 이설을 주장한다. 법상종에서는 이것을 唯識無境의 의미로 풀고 또 진언종에서는 불과 중생의 三密이 평등하다는 證文으로 한다.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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