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외(無畏)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범어 vaisaradya의 번역으로 無所畏라고도 번역한다. 불·보살의 德의 하나로서 어떤 일이든 怖畏함이 없는 十全의 자신을 가지고 안심하고 용감하게 법을 說하는 것. 여기에 흔히 四種의 無畏가 있다 하여 四無畏·四無所畏라고 한다. 또 密敎에서는 眞言行者의 수행과정에 있어서 無畏를 얻는 六位處가 있음을 든다. 곧
(1) 善無畏(十善을 행하여 十惡을 여의는 것. 三密의 行에 의해서 本尊을 공양하는 位).
(2) 身無畏(四念處觀에 따라서 육신의 不淨을 觀함으로 貪愛를 버리고 육신의 軛縛을 여의는 것. 有相의 觀行에 따라서 本尊의 衆相이 現前하는 地位).
(3) 無我無畏(人無我를 깨달아서 人我의 軛縛을 여읜다는 뜻. 心不可得을 觀하여 愛慢을 일으키지 않는 位).
(4) 法無畏(諸蘊의 即空을 觀하여 五蘊의 厄縛을 여의는 것을 뜻한다. 瑜伽의 境界가 無生·無性임을 깨닫는 位).
(5) 法無我無畏(法無我를 觀하여 心의 本不生을 깨닫는 法의 軛縛을 여읜다는 뜻. 瑜伽道에 있어서 心自在를 얻는 位).
(6) 一切法自在 平等無畏(一切法의 自性은 無性으로서 同一平等함을 깨닫는 것. 有爲·無爲의 軛縛을 여읜다는 뜻. 마음의 實際를 觀하여 그 本性으로서의 無垢 菩提心에 머무는 位)의 六無畏가 그것이다. 이 경우의 無畏는 衆生이 번뇌의 軛縛을 여의고 再生하여 蘇生하는 蘇息의 의미이다.
참고
불(佛) : ① 범어 buddha의 音略. 佛陀 · 佛駄 · 浮陀 · 浮屠 · 浮圖 · 浮頭 · 沒駄 · 勃陀 · 馞陀 · 步他 등으로 音譯하고 覺者 · 知者 · 覺이라 번역하며, 眞理를 깨달은 이의 뜻으로 스스로 깨달아(自覺) 다른 사람을 깨닫게 하여(覺他) 깨달음의 기능이 全知全能하게 충만하다는(覺行窮滿) 뜻이 있다. 이 自覺과 覺他와 覺行窮滿의 관계는 凡夫에 있어서는 三자가, 二乘에 있어서는 뒤의 둘이, 보살에 있어서는 최후의 하나가 모자라는 것으로, 이런 점에서 佛의 우월성을 나타낸 것이다. 또 불타의 깨달음의 내용에 대해서는 모든 경론에 여러 가지로 설해 있고, 佛身 佛土 등에 대해서도 各宗의 異說이 있는데 대체로 대승에서는 佛果에 이르는 것을 궁극의 목적으로 한다.
② 불타의 덕을 찬송하는데 갖가지 佛號를 세운다. 곧 여래의 十號를 비롯하여, 一切知者 · 一切見者 · 知道者 · 開道者 · 說道者라든가, 世尊 · 世雄(世間에 있어서 一切의 번뇌를 끊는데 雄猛, 雄健한 者) · 世眼(세간의 눈이 되어 이것을 인도하는 者) · 世英(세상에 훌륭하여 뛰어난 자) · 天尊(五天 가운데 가장 훌륭한 第一義天)이라든가, 大覺世尊(略하여 大覺尊) · 覺王(覺皇) · 法王 · 大尊師 · 大聖人 · 大沙門 · 大仙(大僊 仙人 중의 가장 높은 仙人) · 大醫王(병에 따라 신묘하게 약을 주는 명의와 같이 마음의 法을 자유자재로 설하는 자) · 佛天(五天 가운데 가장 뛰어난 第一義天) · 佛日(불타를 태양에 비유한 말) · 兩足尊 · 二足尊 · 兩足仙 · 二足仙(이 네 가지 이름은 두 다리를 가진 生類 중에서 가장 높은 이란 뜻. 또 二足이라 함은 願과 行을, 혹은 福과 慧를 갖추었다는 뜻) · 天中天(諸天중의 最勝者) · 人中牛王(불타를 牛王에 비유한 말) · 人雄獅子(人中의 雄者여서 마치 獸類中의 獅子와 같은 것) 등이다. 또 부처를 能化人 곧 가리키는 이, 인도하는 이란 뜻으로 能人이라고 부르고, 그래서 아미타불을 安樂能人(安樂世界의 能人이란 뜻)이라고도 한다. 일설에 能人이라 함은 能仁으로, 能仁은 釋迦의 번역이니 釋迦佛의 이름을 빌어서 佛 일반을 나타낸 것이라고도 한다.
불타의 특유하고 뛰어난 덕으로 하여 그 몸에는 三十二相 · 八十種好를 구족하고, 또 十力 · 四無所畏와 十八不共法 등의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또 불타의 초월성을 七항으로 묶어서 七勝事 · 七種最勝 · 七種無上 등으로 부른다. 곧 身勝 · 如法住勝 · 智勝 · 具足勝 · 行處勝 · 不可思議勝 · 解脫勝의 일곱 가지 이름이 그것이다. 불타의 定과 智와 悲는 공히 가장 뛰어나기 때문에 大定 · 大智 · 大悲라고 하여 斷德 · 智德 · 恩德의 三德에 배속하고 합해서 大定智悲라고 한다.
③ 過去世에 나타나신 佛(過去七佛 · 燃燈佛 등)을 過去佛 또는 古佛이라고 하고 미래에 사바세계에 나타나는 불타(彌勒佛 등)를 後佛, 또는 當來佛이라고 한다. 최초의 佛이라 하면 역사상의 불타는 釋尊뿐이었다고 하게 된다. 그러나 얼마 안가서 過去七佛(釋尊은 그 일곱번 째)의 사상이 생기고 좀 늦게 未來佛로써 彌勒佛을 생각하게 되어, 현재는 釋尊과 미륵불과의 두 부처의 중간에 無佛의 세상이라고도 한다. 곧 小乘에서는 現在世에 있어서 二佛이 같이 존재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大乘에 오면 그 세계관은 확대되어 자못 크고 넓게 되고 동방의 阿閦佛이나 西方의 아미타불과 같이 현재 他方세계에 無數(恒河의 모래의 수만큼)한 佛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하여, 十方恒沙의 諸佛이라고 일컫게까지 되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말하면 小乘은 一佛說이고, 大乘은 多佛說인데, 小乘중에도 大衆部 같은데서는 다른 三千大千世界에 동시에 다른 一佛이 존재할 수 있다고 하며, 一界一佛 · 多界多佛說을 취하고, 有部 등은 多界一佛說을 취한다. 이 경우「界」라 함은 三千大千世界를 말한다. 또 三世의 모든 부처에 대해서 과거의 莊嚴劫에 千佛, 현재의 賢劫에 千佛, 미래의 星宿劫에 千佛, 합하여 三劫에 三千佛이 있다고 하며, 그 佛名은 三劫三千佛名經에 나와 있다. 佛名會는 이 經의 說에 의한 法會이다.
④ 내세에 成佛하기 위한 信佛 등의 인연을 佛因 · 佛緣, 또 佛道에 들어가기 위한 인연을 佛緣(예컨대 佛緣을 맺는 것 등), 佛恩에 보답하는 것을 佛恩報謝라고 한다.
보살(菩薩) : 菩提薩埵 · 菩提索多 · 冒地薩怛縛 · 扶薩이라고도 하며, 道衆生, 覺有情, 道心衆生 등이라고 번역한다. 또한 無上菩提를 구하여, 衆生을 이익케 하고, 모든 波羅蜜의 行을 닦아서 미래에 불타의 깨달음을 열려고 하는 사람. 三乘의 하나. 十界의 하나. 보살에게는, 깨달음의 지혜를 구하는 有情(心識을 가진 자. 衆生)이라고 하는 뜻이나, 혹은 菩提(구하는 목적인 깨달음)와 薩埵(敎化의 대상으로서의 중생)를 대상으로 하여 자기도 이롭고 다른 사람도 이롭게 하는 것, 菩提를 얻을려고 하는 용맹한 큰 마음 등의 뜻이 있어, 聲聞이나 緣覺도 각기 菩提(覺智)를 구하는 점에서는 보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므로, 특히 無上菩提를 구하는 大乘의 수행자를 摩訶薩埵(摩訶는 크다는 뜻) · 摩訶薩 또는 菩薩摩訶薩 · 菩提薩埵摩訶薩埵 · 摩訶菩提質帝薩埵 등이라고 하여, 二乘으로부터 구별하여 이것을 보살이라고 한다. .....
덕(德) : 바른 道를 행하므로 하여 얻는 공덕이 있다는 뜻. 변하여, 은총 · 행운 등의 뜻도 있으며, 공덕 · 복덕 · 도덕 등의 숙어로도 된다. 도덕이라 함은, 바른 도리(道)를 이미 얻어서 잃지 않는(德) 것, 또는 내가 얻은(德) 것을 다른 이에게 미치게 하는 것(道)이다. 佛果의 공덕을 나누어서 智德(菩提 곧 智를 완성하여 사물을 분명히 안다)과 斷德(열반 곧 번뇌를 완전히 끊는다)과의 二德. 혹은 智 · 斷 · 恩(원력에 의해서 중생을 제도함)의 三德으로 하며, 불 보살의 德性을 나누어서 非德(利他)과 智德(自他)의 二德으로도 하고, 또 선천적으로 갖추어져 있는 진실의 본성을 性德이라고 하는데 대해서 후천적인 수행에 의하여 얻은 덕을 修德이라고 하며, 또 이것을 二德이라고 일컫는다. 또 일반적으로는 열반에는 法身 · 般若 · 解脫의 三德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勝論學派에서는 十句義의 第二에 德句義(존재의 속성에 대한 範疇)를 세워, 二十四德을 들고 있다. 또 數論學派에서는 三德의 說이 있다.
포외(怖畏) : 두려워하는 것. 舊譯 화엄경 권34에는 진리를 깨닫지 못한 중생에는 不活畏(생활의 불안) · 惡名畏(명예를 잃은 불안) · 死畏(命終畏) · 惡道畏(惡趣畏. 지옥 등의 惡趣에 떨어지는 불안) · 大衆威德畏(怯衆畏. 자신이 없어 대중 앞에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 등 5怖畏(5恐怖)가 있다고 한다. 이것을 여의는 것을 5離怖畏라고 한다. 有學·無學의 聖者에는 小怖畏는 있어도 大怖畏는 없고, 佛이 되면 완전히 사라진다고 한다. 또 재물을 보시하는 마음이 재물을 두면 없어질 우려가 있어 차라리 보시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여 보시하는 것을 怖畏施라고 한다. 8施의 하나라고 한다.
사무소외(四無所畏) : 無所畏는 범어 vaisaradya의 번역으로 설법함에 있어 두려움 없이 자신있게 할 수 있다는 뜻. 여기에 4가지가 있으므로 四無畏라고도 한다.
(1) 諸法現等覺無畏 · 一切智無所畏 · 正等覺無畏라고도 한다.「나는 일체법을 覺證했다」고 하며 두려움 없는 自信.
(2) 一切漏盡智無畏 · 漏永盡無畏 · 漏盡無所畏라고도 하며「일체의 번뇌를 아주 끊었다」고 하는 두려움 없는 自信.
(3) 障法不虛決定 · 授記無畏 · 說障法無畏 · 說障道無所畏라 하여「修行에 장애되는 것은 이미 다 설했다」고 하는 두려움 없는 自信.
(4) 爲證一切具足出道如性無畏 · 說出道無畏 · 說盡苦道無所畏라 하여「苦界의 迷妄의 세계에서 벗어나 解脫에 들어가는 길을 설했다」고 하는 두려움 없는 自信.
육무외(六無畏) : 밀교수행자가 菩提心의 일념을 닦아 얻는 공덕에 6종의 차별이 있음을 六無畏라 한다. 일체 중생은 번뇌에 속박되어 死滅의 苦를 얻는데 만일 이 六處에 이르면 그 속박을 여의고 安穩을 얻으므로 無畏라 한다. 大日經에서 地前 三阿僧祇劫을 세워서 이 三劫에 麤妄執과 細妄執과 極細妄執의 三妄執을 초월하며, 이 위에 다시 十地를 세워서 開發金剛寶藏位로 하며 여기서 上上方便으로 다시 微細妄執을 끊고 佛果에 이른다고 한다. 곧 三劫十地의 次第로 三劫을 地前, 十地를 地上으로 삼음으로써 顯敎가 3劫을 구경으로 하는 것과 다른바 있다. 그런데 이 地前三劫에 있어서의 眞言行者 所得의 功德을 곧 6종의 無畏를 성취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1) 善無畏. 세간의 善心이니, 곧 五戒十善 등의 계를 가지고 3악도의 業을 여의는 位를 말한다. 진언행자가 三密을 닦아서 本尊을 공양하는 位가 이것. (2) 身無畏. 二乘의 行者가 不淨觀 등을 성취하여 육신의 속박으로부터 해탈을 얻는 位. 眞言의 행자가 有相觀에 의해 壇上에서 本尊의 衆相이 現前하는 位가 바로 이것. (3) 無我無畏. 二乘人이 無我의 원리를 깨닫고 일체법 가운데 無我相을 觀하는 見道位. 진언행자가 本尊海會에서 衆像緣生의 원리를 깨달아 愛着을 내지 않는 位가 바로 그것. (4) 法無畏. 二乘人이 五蘊 등의 法이 그 性相이 空한 원리를 알아 偏眞의 이치를 깨닫는 無學道의 位. 진언행자가 瑜伽의 경계에서 水月鏡像과 같이 無性無相함을 觀하는 位가 바로 그것. (5) 法無我無畏. 三乘人이 萬法唯識·心外無法의 도리를 깨달아 心自在를 얻는 位. 진언행자가 一切境界가 다 自心의 功德이라고 알고 자재의 묘용을 얻는 位가 바로 그것. (6) 平等無畏. 一乘人이 萬法의 一實眞如를 깨달으므로 諸法의 能所本末이 없는 平等法界에 住하는 位. 진언행자가 諸法本不生의 도리를 觀함으로 心의 實際가 平等한 本源에 住하는 位가 바로 그것. 이상의 六無畏를 三劫에 배당하면 앞의 4位는 初劫에 해당하고, 제5位는 2劫에, 제6位는 제3劫의 位에 해당한다.
중생(衆生) : 有情 · 含識이라고도 번역하는데 이것은 心識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含識을 含生 · 含情 · 含靈이라고도 하며, 또 많은 生類라는 뜻으로 群生 · 群萠 · 群類라고도 한다. 대체로 이같은 말들은 "生存하는 것"이란 뜻으로 일체의 生類를 가리킨다. 衆生이란 말은 흔히 迷惑의 세계에 있는 生類를 가리키므로 때로는 넓은 의미로 불 · 보살까지도 포함한다. 雜阿含經 卷四十三에는 眼 · 耳 · 鼻 · 舌 · 身 · 意의 六根(여섯 感官)을 犬 · 鳥 · 蛇 · 狐 · 鰐 · 猿의 6종의 동물에 비유하여 흔히 이것을 六衆生이라 하고 六獸의 喩라고 한다.
액박(軛縛) : 구속하다. 액(軛)→軛은 수레의 멍에를 뜻하는 한자이니 여기서는 번뇌가 중생으로 하여금 고뇌에 얽매이도록 하는 멍에와 같다는 뜻으로 쓴 말. 곧 번뇌의 다른 이름.
사액(四軛) : 네 가지 번뇌. 軛은 수레를 끄는 소의 목에 메는 멍에이다. 欲軛·有軛·見軛·無明軛.
소식(蘇息) : 평온함.
소식처(蘇息處) : 小乘에서 설한 灰身滅智하는 열반을 말하는 것. 同寶窟中末에 「소식처는 몸을 태우고 智를 멸하고 몸이 永寂하는 곳이다」하였음.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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