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本門)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本門이라 함은 眞佛은 아주 먼 옛날에 이미 成道하였다는데 근거하여 本佛의 本地 · 根源 · 本體를 나타냄을 말하고, 迹門이라 함은 이 世上에 형체를 나타낸 佛은 그 根源佛이 중생을 인도하기 위해 本地에서 자취를 나타내 보인 것이라 하여 應迹 · 影現을 보인 것이라고 말하므로 이들을 합하여 本迹二門 · 本迹 · 本地垂迹 등의 이름으로 부른다. 法華經卷五 如來壽量品에 釋尊의 本迹을 說하고 있는 것이 그 典據다.
중국에서는 姚秦의 羅什門下의 僧肇가 維摩經에 대해서 [本迹이 殊勝하지만 그러나 不思議한 점에서는 같다]했고, 또 僧叡(혹은 道叡)는 法華經을 나누어 九轍로 하는 가운데 無生轍을 세우고 法華經의 寶塔品에 대해 本迹을 說했다고 전하는데, 天台宗의 開祖인 隋의 智顗는 특히 이것을 重視했다. 그는 法華經의 내용을 二大別하여 전반 十四品은 迹門, 후반 十四品은 本門으로 하고 本迹二門의 의미를 저술의 여러 곳에서 설명하고 또 경전해석의 방법으로 因緣 · 約敎 · 觀心의 해석과 함께 本迹門을 더하여 四釋으로 했다.
智顗에 따르면 法華經의 迹門에 있어서는 釋尊이 佛陀伽耶에서 비로소 깨달음을 연(開示) 近迹의 모습(伽耶近成)으로서 敎를 說하고, 法華이전의 藏 · 通 · 別의 三敎는 모두 法華의 圓敎로 인도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說示했으며, 중생으로 하여금 그 方便(藏 · 通 · 別)에 사로잡히는 마음을 갖지 않도록 자취의 문을 활짝 열어 제쳐버리고 圓敎를 나타냄으로(迹門의 開顯) 또한 聲聞이나 緣覺도 다 佛이 될 수 있는 一乘法을 설했다고 했다.
그러나 本門에서는 釋尊을 近迹佛(迹佛)이라고 생각하여 그것에 대한 집착을 털어 없애고 久遠의 本佛임을 나타냄으로(本門의 開顯) 보살이 中道의 지혜를 더하게 하고 變易生死를 줄게 했다(增道損生)고 한다.
本과 迹과를 대조하여 일반적으로 말하면, 本門은 實, 迹門은 權, 本門은 事圓, 迹門은 理圓(圓은 圓敎의 뜻)이 되고, 深淺 · 明味 · 勝劣 등의 구별이 있는데 그 깊은 뜻을 밝혀 말하면 다 一實相의 이치를 說한 것이라고 한다.
法華玄義에는 經題(妙法蓮華經)의 妙字에 本迹의 十妙를 세우고 蓮華의 三喩에도 本迹의 二意가 있다고 하였으며, 또 同書 卷七下에 本門의 十妙를 說하는 가운데 六種의 本迹을 들었으니 곧
(1) 모든 것의 本體인 無住의 理를 本, 그것이 現象으로 나타난 모든 事가 迹(理事本迹),
(2) 이 本地根源의 佛의 깨달은 事와 理와의 두 개의 眞理는 말을 초월한 절대의 眞理인 것이 本, 그것이 상대방을 향해 옛날의 불타에 의해 敎說로서 나타난 것이 迹(理敎本迹),
(3) 상대방을 향해 설한 최초의 옛날 불타의 교설을 받는 것을 本, 그 교설에 따라 理를 나타내고 行을 일으키도록 하는 것을 迹(敎行本迹),
(4) 옛날 최초의 수행에 의해서 理에 契合하는 法身을 깨닫는 것을 本, 그 法身의 體에서 應身의 작용을 일으키는 것을 迹(體用本迹),
(5) 그래서 최초의 久遠의 옛날에 참으로 法應二身을 얻는 것을 本, 그 뒤 여러 번 세상에 나타나 숨고 하여 중생을 인도하는 방편을 베푸는 法應二身은 迹(實權本迹),
(6) 지금의 法華經(今經)에서 說하는 久遠의 事理 내지 權實을 本, 法華이전의 모든 敎(已說)에서 說하는 事理 내지 權實은 迹(今已本迹)이라고 하고, 六種에 의해서 今經 가운데 說示된 本이 已說의 迹과 다름을 보임과 동시에 今經 가운데 說示된 久遠의 本이 없으면 已說의 迹을 나타낼 수 없을 것이며, 已說의 迹에 의해서 今經의 本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므로 本迹은 不思議한 하나라고 한다.
참고
성도(成道) : 佛道를 완성한다는 뜻. 成佛 · 得佛 · 得道 · 成正覺이라고도 한다. 보살이 수행을 완성하고 부처님의 깨달음을 펴는 것(八相成道). 석존은 보리수 밑에서 成道한 것으로 전해 오지만 그 年月日時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중국에서는 臘月(12월 8일)설이 행해지고 있다. 이날 행하는 법회를 成道會 · 臘八會라 하여 이날을 특히 선종에서 지키고 있다.
天台宗에서는, 三乘敎의 보살은 초 · 제2 · 제3 阿僧祗劫 및 百大劫의 네 단계의 수행계단을 거친뒤 成道하므로 四階成道라 한다.
단 有部 등의 小乘敎에서는 이것을 (1) 3阿僧祗劫 (2) 百大劫 (3) 菩薩最後身에서 九地중 下八地의 번뇌를 끊는 것. (4) 三十四心斷結成道에 4단계가 있다.
적문(迹門) : 법화경 二十八品 가운데 前十四品을 가리킴. 참된 佛, 本來의 佛은 久遠劫전에 成道한 本佛의 本地 · 本體를 나타낸 本門에 대해 이 세상에 형상을 나타낸 부처님은 그 根源佛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本地로부터 자취를 드리운 應迹 · 影現의 자취를 보인 것을 迹門이라 한다.
본적이문(本迹二門) : 本門·迹門의 二門을 말함. 천태종에서 法華經을 해석함에 있어, 佛의 本地·根源·本體를 나타내는 門과 네팔의 迦耶城에 몸을 나타내는 두 門을 말함.
부다가야(佛陀伽耶) : 범어 Buddha Gaya. 佛陀伽耶)라 음역. 인도의 북동부의 비하르주 가야의 남쪽 약 10km에 있는 불교의 성지. 갠지스강 지류인 팔구다디강에 있다. 석가모니가 도를 깨달은 땅으로, 석존의 4대 성지의 하나. 석존이 6년 고행 후에 이 곳의 보리수 밑에서 정좌하여 사유한 끝에 마침내 크게 깨달아 불타가 되었다고 한다. 佛滅 후 아쇼카왕이 여기에 큰 탑과 精舍를 지었다. 4세기에는 실론왕에 의해 대보리사(대각사)가 건립되어 불교의 중심지가 되었다.
현재 보리수나무 아래에는 석존이 정좌하였다고 전해지는 金剛寶座가 있다. 그 주위에는 돌을 조각한 난간이 일부 남아 있어, 초기 불교미술의 단면을 엿보게 한다. 또 보리수 동쪽에는 높이 약 50m의 大精舍大塔이 직선적인 피라밋형으로 아름답게 솟아있다. 창건 연대는 분명치 않으나, 중국의 승려 玄奘이 찾아갔을 때(7세기) 이미 건립되어 있었으며, 12, 13세기에는 미얀마왕 등이 대탑을 수리복원하였으나, 그 후 이슬람교도와 힌두교도의 지배하에 들어가 황폐하였다. 1881년 영국인 커닝검들이 정글 속에서 대탑을 발견하여 수리 복원하였으며, 1953년 성지는 다시 불교도의 수중에 들어와 정비되었다.
일승(一乘) : 乘이라 하는 것은 타는 물건이란 뜻. 깨달음에 나가게 하는 敎를 말한다.
一乘이라 함은 불교의 참다운 교는 오직 하나로, 그 교에 의해서 모든 이가 고루 불타가 된다고 說하는 교이며, 三乘이라 함은, 중생의 성질이나 능력에 응해서, 聲聞 · 緣覺 · 菩薩에 固有한 3종의 깨달음의 길이 있는 것을 말함. 또 三乘에는 一乘에 대해서 말하는 이외에, 또 3종의 교, 3종의 깨달음의 실천을 말하는 경우가 있어, 法藏의 華嚴五敎章 권一에는, 小乘 · 大乘 · 一乘, 혹은 大乘 · 中乘 · 小乘의 3으로 하고, 大寶積經 권九十四에는, 보살은 天乘(初禪 내지 四禪의 마음을 가라앉히는 실천) · 梵乘(慈悲喜捨) · 聖乘(八聖道)의 3을 스스로 닦아 다른 이를 가르친다고 설함.
① 一乘이란 말은, 법화경 方便品에는,「唯有一乘法無二亦無三」이라고 말하여, 二乘이라든가 三乘이라고 하는 것은 一乘으로 인도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고, 화엄경 明難品이나 勝鬘經 一乘章에도 불타는 一乘을 說하고, 一乘에 의해서 불타가 되는 것을 說함. 一乘은 佛乘 · 一佛乘 · 一乘敎 · 一乘究竟敎 · 一乘法 · 一道 등이라고도 하고, 一乘의 敎를 說하는 經을 一乘의 妙典, 一乘의 敎를 믿는 이를 一乘의 機, 그 깊고 넓은 것을 바다에 비유해서 一乘海 등으로 일컫고, 一乘은 大乘의 최고의 敎이기 때문에 一乘極唱이라고 한다.
三乘이란 말은 增一阿含經 권四十五를 비롯한 여러 經論에 보이고, 聲聞乘을 小乘 · 下乘, 緣覺乘을 辟支佛乘 · 獨覺乘 · 中乘, 菩薩乘을 大乘 · 佛乘 · 如來乘 · 上乘이라고도 하고, 三乘의 敎를 三乘敎라고 한다.
聲聞 · 緣覺을 二乘이라고 하고, 大乘을 전연 믿을 수 없는 二乘을 愚法의 二乘, 마음을 뒤집어서 大乘에 들어가는 二乘을 不愚法의 二乘이라고 한다.
② 阿含經에는 三乘의 道를 얻을려고 하면 衆중에 구하라고 하였고, 有部 등에서는 三乘의 구별은 忍位에 있어서 定해지고, 聲聞 · 緣覺 · 菩薩은 각기 四諦 · 十二因緣 · 六度를 닦아서 解脫하는데, 얻어지는 涅槃에 다른(異) 바는 없다고 한다. 大乘 가운데, 法相宗에 의하면, 중생은 처음부터 五性의 구별이 있고, 定性聲聞, 定性緣覺, 定性菩薩은 三乘敎에 의해서 각기의 果를 깨닫고, 다만 不定性인 자는 一乘의 敎를 받아서 佛果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一乘敎는 不定性인 자를 誘引하기 위한 불타의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고, 三乘眞實 · 一乘方便의 입장을 취한다. 여기에 대해서 천태종이나 화엄종에서는 참다운 불교는 一乘뿐이라고 하여 一乘眞實 · 三乘方便의 입장을 취한다. 또 三論宗에서 三乘 중의 菩薩乘을 眞實, 二乘을 方便으로 하는데 천태종이나 화엄종에서는 三乘밖에 佛乘이 있다고 한다.
이 法相宗이나 三論宗을 三車家, 화엄종이나 천태종을 四車家라고 하는데, 三車 · 四車의 구별은 三乘과 一乘의 관계를 법화경 譬喩品의 火宅內 羊 · 鹿 · 牛의 三車와 門外 大白牛車의 관계 해석에 관련시켜서 붙인 이름이다.
③ 화엄종에서는, 그 究極的인 敎인 一乘圓敎를 상대적 차별의 面과 절대적 平等의 面에서 同敎와 別敎(共敎와 不共敎, 方便乘과 正乘)의 2종一乘으로 하고, 同別의 2를 나누면서, 同別無礙라고 한다. 또 同敎一乘의 體에 一乘 · 三乘 등의 모든 乘敎가 있는 것을 分諸乘, 그것들의 모든 乘敎가 모두 一乘이라는 것을 融本末이라고 한다.
三乘을 풀이하는데, 모든 중생이 다 불타가 되는 것을 不許하는 敎를 三乘으로 하는 通門의 說과, 事事無礙圓融을 說하지 않는 모든 敎를 三乘으로 하는 別門의 說이 있다고 하고, 또 一乘 · 三乘을 5종, 3종 등으로 나눈다(法藏의 華嚴五敎章 권一 등). 五種一乘이라 함은 別敎一乘(超越절대적인 一乘. 화엄경) · 同敎一乘(三乘에 공통하는 內在的인 一乘, 법화경) · 絶想一乘(思量을 넘어 직접으로 진리를 體現하는 一乘. 維摩經 등) · 佛性平等一乘(平等一乘이라고도 한다. 중생은 모두 佛性이 있어서 成佛한다고 하는 一乘 · 勝鬘經 · 涅槃經 등) · 密意一乘(密義意一乘이라고도 한다. 三乘眞實 一乘方便의 一乘. 解深密經 등)의 5로, 五敎에 맞춰보면 同別二敎는 圓敎, 絶想은 頓敎, 平等은 終敎, 密意는 始敎가 된다. 三種一乘이라 함은, 存三(密意一乘을 말함) · 遮三(법화경 등과 같이 三乘을 廢遮한다) · 表體(화엄경과 같이 大菩薩의 一乘을 直顯함)를 말한다.
④ 천태종에서는 법화경에 의거하여 法華一乘을 眞實로 하는데, 이것을 敎行人理의 四一(곧 敎도 수행도 수행자도 깨닫는 이치도 이 넷이 다 하나이다)로 해석한다. 智顗의 法華玄義 권九下에는, 三乘과 一乘의 관계를 10의 面(迹門의 十重→開廢會)에서 論하고, 잠정적인 三乘 등의 權(方便)을 否定하고 진실로 돌아오는 것(泯權歸實)을 說하고, 특히 實相의 理에 서서 三乘 그대로가 一乘에 融合된다고 한다. 곧 法華一乘의 敎를 說함에 따라서 聲聞 · 緣覺의 二乘이 불타가 될(二乘作佛)수 있다고 한다.
⑤ 眞宗에서는 誓願一佛乘이라고 하여 아미타불의 本願에 돌아감에 의해서 모든 이가 淨土에 往生하여 불타가 된다고 하고, 自利만을 구하는 二乘種도 그대로는 태어나지 못하는데(二乘種不生), 自力의 마음을 뒤집으면 다 같이 왕생하여 佛陀가 된다고 한다.
변역생사(變易生死) : 2종생사의 하나. 보살이 세상에 나서 번뇌를 끊고 성불하기까지 받는 생사. 迷 · 悟의 경계를 지나가는 상태.
권실(權實) : 權敎와 實敎란 뜻. 權은 중생의 근기에 알맞도록 假說한 방편을 말하며, 實은 수단이 아니고 假說이 아닌 究竟 불변하는 진실을 뜻한다. 그러므로 여래성불의 본체는 實智에 있으며, 일대에 걸쳐 중생을 교화한 것은 權智에 있다고 한다. 이 두 가지의 관계는 서로 상대되는 개념으로 權敎 · 實敎, 權智 · 實智, 權境 · 實境 등이라 한다. 또한 體 · 用 · 理 · 事의 관계와 같아, 사물의 차별상을 인식하는 것을 權智라 하며, 그 실상의 이치에 통달한 것을 實智라 하기도 한다. 그 權 · 實의 판단은 종파에 따라 달라, 聲聞 · 緣覺 · 보살의 三乘과 부처님의 一乘을 각각 權敎와 實敎에, 또는 實敎와 權敎에 해당시키고 있다. 그러나 천태종에서는 <법화경>에 근거하여 三乘은 인간의 이해능력에 따른 방편적 가르침이므로 權敎이며, 一乘이야말로 진실한 대승 즉 實敎라 한다. 그러나 三乘의 權敎와 一乘의 實敎는 다른 것이 아니라 하여 權敎가 實敎라고 하는 것은 權實不二의 사상으로 발전하였다.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