ㄹ~ㅁ(리을~미음)

무작(無作)

근와(槿瓦) 2018. 3. 7. 03:06

무작(無作)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生滅이 없는 이치. 無爲法性, 涅槃異名.

자연히 되는 것으로 造作이 없는 것.

··造作이 없이 저절로 된 것.

 

참고

생멸(生滅) : 生起滅盡을 병칭하는 것으로 起滅이라고도 한다. 인연이 화합하여(곧 모든 조건이 만족하게 되어) 성립하는 萬有(有爲法)는 변천하는 성질의 것(無常)이므로 반드시 生滅한다. 인연을 여의고 존재하는 영구불변(常住)하는 것(無爲法)無生無滅(不生不滅)이다. 단 대승에서는 유위법에도 불생불멸의 뜻이 있다고 한다. 또 생멸은 시간의 최소단위(刹那)로 논하면 찰라찰라에 생멸하므로 이것을 刹那生滅(刹那滅)이라 한다. 이에 대해 有情이 나서 죽을 때까지 한 평생(一期)을 가지고 생멸(出生死滅)이라고 하는 것을 一期生滅이라 하고 합해서 2種生滅이라 한다.

 

무위(無爲) : 범어 asamskrta의 번역으로 有爲에 상대된다. 因緣에 의해서 作爲되는 것이 아니고, 생멸변화를 여읜 常住絶對을 일컬으며, 자세히는 無爲法이라고 한다. 본래는 涅槃異名이지만 뒤에는 열반이란 말 이외에도 여러 가지 無爲를 세워서 三無爲 · 六無爲 · 九無爲 등의 이 있게 되었다. 三無爲有部 등의 로서 擇滅 · 非擇滅 · 虛空을 가리키며, 六無爲唯識宗로서 三無爲不動無爲 · 想受滅無爲 · 眞如無爲를 더한 것을 말한다. 다만 종의 無爲法이 따로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眞如法性에 대해서 설명하는 방법 여하에 따라서 거짓으로 종의 이름을 세운 것에 지나지 않는다.

예컨대 眞如無障礙임을 허공에 비유해서 虛空無爲라고 한다. 본래 自性淸淨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非擇滅無爲라고 한다. 第四靜慮滅盡定에서 나타나는 眞如不動無爲 · 想受滅無爲라고 하는 것과 같다. 眞如는 말이나 생각을 초월한 것으로 더구나 有爲法 밖에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란 뜻에서 假設이지만, 다만 眞如에 의해서 眞如의 뜻 위에 이러한 六無位를 세운 것을 依如六無爲라고 했다. 六無爲를 가끔 듣고 생각한다든지 하는 것에 의해서 마음 속으로 六無爲와 같은 相分이 일어나는 것을 識變六無爲라고 한다. 大衆部에서는 三無爲四無色處(無色界五蘊이 깃드는 곳)緣起支性(十二緣起의 원리)聖道支性(八聖道의 진리)無爲를 더해서 九無爲라고 한다. 化他部에서는 四無色處대신 不動 · 善法眞如 · 不善法眞如 · 無記法眞如를 더해서 九無爲로 하고 있다.

 

법성(法性) : 법의 體性이란 뜻. 우주의 모든 현상이 지니고 있는 진실 불변한 본성. 眞如法性 · 眞法性 · 眞性이라고도 하고 眞如의 다른 이름이라고도 한다. 智度論卷三十二에는 諸法에 대한 각각 (현상의 차별적인 )實相이 있다.

예컨대 , 모두 초를 불에 닿게 하면 녹아버려 이전의 을 잃어 버리듯이 고정적인 것이 아니므로 그것을 분별하여 찾아보려고 하면 끝내 찾아낼 수 없다(不可得). 찾아낼 수 없으므로 이며, 곧 그 인 것이 諸法眞相이라고 설명한다.

인 것이 모든 差別相에 대해 전부 동일하므로 그런 의미에서 라 하고, 모든 이 똑같이 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에서 法性이라고 하며, 또한 예컨대 黃石 속에 의 성질이 있듯이 일체 世間法 속에 모두 열반의 법성이 있어서 이 諸法 본연의 實性法性이라 설명한다. 일반적으로는 법성을 如來藏과 구별하여 광범위하게 일체법의 實性이란 뜻으로 사용하지만, 여래장과 같은 뜻이라고 하는 도 있다.

 

열반(涅槃) :  · 寂滅 · 滅度 · 이라 번역한다. 擇滅 · 離繫 · 解脫 등과 동의어로, 般涅槃(은 범어 pari의 음역으로, 완전의 뜻. 圓寂이라 번역한다), 大般涅槃(는 뛰어나다는 뜻, 大圓寂)이라고도 한다. 원래는 불어 끈다는 뜻, 불어 끈 상태, 곧 타오르는 번뇌의 불을 滅盡해서 깨달음의 지혜인 菩提를 완성한 경지를 말한다. 이것은 生死(의 세계)를 넘어선 깨달음의 세계로, 불교의 구극적인 실천목적이며, 그러므로 여기에 불교의 특징을 나타내는 旗印(法印)의 하나로서 涅槃寂靜을 세우게 된다. 불교 이외의 外道에서도 열반을 말하지만, 불교의 열반과는 다르다. 불교에서도 대승 · 소승에서 각기 그 해석에 異說이 많다.

部派(소승)불교에서 열반이라 함은 번뇌를 멸하여 없앤 상태라 하고, 여기에 有餘열반과 無餘열반의 2종열반을 세운다. 앞의 것은 번뇌를 끊었지만 육체(殘餘依身가 아직 있다는 의미로餘依또는라고 한다)는 아직 殘存하는 경우, 뒤의 것은 灰身滅智의 상태로, 모든 것이 滅無로 돌아간 경우를 가리킨다. 有部등에서는 열반을 하나의 본연의 자세인 실체적인 경지로 생각하고, 經量部등에서는 열반은 번뇌가 멸한 상태에 대한 假稱的인 명칭으로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대승에서는, 열반을 적극적인 것이라 생각하여· · · 四德을 갖추지 않은 소승의 열반을 有爲열반이라고 하는 데 대해서, 이 사덕을 갖춘 열반을 無爲열반이라 하여, 이것을 최상의 목표로 삼는다. 南本열반경 卷三에는· · · 淸淨 · 不老 · 不死 · 無垢 · 快樂8가 열반에는 갖추어 있다고 하여, 이것을 열반의 八味라고 한다· 은 항상· 快樂으로, 不老 · 不死, 淸淨 · 無垢對應하여 이것을 四德에 배속하는 수도 있다. 唯識宗에서는, 本來自性淸淨열반과 有餘依열반과 無餘依열반과 無住處열반의 4종열반으로 나눈다. 본래자성청정열반은 또 본래청정열반이라고도 性淨열반이라고도 하고 모든 것이 본래의 에 있어서는 眞如寂滅理體 그것이라고 하여 진여를 가리켜서 이와같이 말한다. 무주처열반이라 함은 지혜에 의해서 煩惱障所知障을 여의었기 때문에 생사(의 세계)에도 停滯하지 않고, 大悲를 가지고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의 세계중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열반의 경지에서도 머무르지 않는 것을 말하고, 대승불교의 열반의 특색을 잘 나타내고 있다. 地論宗이나 攝論宗에서는 性淨열반 · 方便淨열반(도를 닦음으로 인하여 번뇌의 더러움을 없애고 얻는 열반)열반, 천태종에서는 性淨열반 · 圓淨열반(지론종등의 방편정열반에 상당) · 方便淨열반(불타가 중생을 구하기 위해 잠정적으로 모습을 나타냈다가 이 다하여 들어가는 열반으로, 應化열반이라고도 한다)3열반을 세운다.

소승의 聲聞이나 緣覺이 무여열반에 들어가서 다시 마음을 바꿔서 대승의 轉向하는 것을 無餘還生이라고 한다. 또 열반은 모든 차별적인 모습(有爲)超離하여 있는데, 이것을 離相이라고 한다. 淨土敎에서는 불타의 정토를 涅槃之城 또는 無爲涅槃界라고도 한다.

이 세상에 사람으로서 나타난 불타(특히 釋尊)의 육체의 죽음을 涅槃 · 般涅槃 · 大般涅槃이라고 하고, 열반에 들어가는 것을 入涅槃 · 入滅 · 薪盡火滅(佛身 또는 機緣, 는 지혜 또는 佛身에 비유한다)이라고 한다. 대개 본래는 석존의 成道를 열반이라고 해야 할 것이나, 지금은 아마도 無餘依열반의 의미로 이와같이 말하는 것일 것이다. 석존의 入涅槃의 모습을 본뜬 畵像  影像涅槃像, 그날(215)에 석존을 追慕하여 진력하는 법회를 涅槃會 · 涅槃忌 · 常樂會등이라고 한다. 또 승려의 圓寂 · 歸寂 · 示寂 · 入寂등이라고 한다.

 

조작(造作) : 일을 거짓으로 그럴듯하게 꾸며 냄.(다음,한국어)

 

삼업(三業) : 三業이라 해도 그 기준에 따라 각각 다르게 나눈다.

身業 · 口業 · 意業3으로 나누는 것이 일반적이고,

받는 果報의 내용이 인가 罪苦인가에 따라 福業 · 非福業 · 不動業(色界 · 無色界에 태어날 善業),

받을 果報의 시기에 따라 順現業 · 順生業 · 順後業三時業을 들기도 하며,

行業의 내용이 인가 인가에 따라 善業 · 惡業 · 無記業(도 아닌 것)이 있는가 하면,

行業을 일으키는 심리내용에 따라 曲業(아첨에서 일어남) · 穢業(嗔心에 의함) · 濁業(貪欲에 의함) 등이 있다.

 

자연(自然) : 다른 것에 의해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제 스스로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을 뜻하는 말. 佛敎 그 자체의 진리를 표현하는 경우와 불교적 입장에서는 부정돼야 하는 내용을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

佛敎 그 자체의 眞理를 표현하는 경우는, 깨달음의 세계는 有無의 분별을 초월하여 한 경계로서 진리 그대로여서(眞如) 그 자신이 獨立自存이며 絶對自由임을 無爲自然이라 한다. 自然한 그대로 生滅變化가 없는 眞如法性의 이치를 무위자연이라 한다. 혹은 善惡行爲 곧 지은 바 에 의해서 因果의 법칙을 따라 結果를 내는 것을 業道自然이라 하는 것처럼, 그 자신이 가지고 있는 法則에 기준하여 그와 같이 如法하게 있는 것(法爾)을 가리킨다. 무량수경에는 極樂無爲自然의 세계이고 거기에 나는 모든 것은 自然虛無이라고 했다. 他力敎에서는 願力自然을 말하기도 한다. 곧 중생이 스스로의 수행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아미타불의 本願을 믿음으로 아미타불의 本願願力에 의해서 자연히 淨土往生하는 것을 願力自然이라고 한다

불교적 입장으로부터 부정되고 있는 自然外道自然說이 있다. 萬物因緣을 따라 생겼다는 因果論을 부정하고 本來的으로 그렇게 되어 있다는 無因自然說이 그것이다. 자연설에 이상의 4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1) 無爲自然 2) 業道自然 3) 願力自然 4) 無因自然이 그것이다.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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