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적경(大寶積經)

대보적경-2555-511

근와(槿瓦) 2018. 3. 6. 00:48

대보적경-2555-511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2551 / 3476]

없다 하느니라.”
천자가 물었다.
당신은 세간에서 공양을 받을 만한 분이십니다.”
대답하였다.
나는 온갖 중생에 대하여 죽이고 해치려는 마음을 내느니라.”
또 물었다.
당신은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대답하였다.
나는 저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것을 죽이고 해치기 때문에 세간에서 공양을 받을 만한 이이니라.”
천자가 말하였다.
당신께서 말씀하신 대로라면 모든 세간을 놀라고 다 두렵게 만들 것입니다.”
대답하였다.
천자여, 만일 실제(實際)적인 놀라움과 두려움이라면 세간이 놀라고 두려워하리라. 왜냐하면 온갖 세간이 곧 실제이기 때문이니라.”
또 물었다.
만일 또 어떤 사람이 이런 말씀을 헐뜯는다면 장차 어디에 이르게 됩니까?”
대답하였다.
장차 열반에 이르게 되느니라.”
또 물었다.
그것은 또 무슨 뜻입니까?”
대답하였다.
거룩한 해탈 가운데는 문자가 없나니, 이 때문에 언설을 헐뜯으면 열반에 이르게 되느니라. 이런 이치 때문에 온갖 법은 본래가 해탈이요, 다시 해탈하는 것이 아니니라.”
또 물었다.
그 이치는 어떠한 것입니까?”


                                                                            [2552 / 3476]

대답하였다.
이미 해탈한 이가 어찌 다시 해탈하겠느냐?”
또 물었다.
바른 법을 비방한 이가 어찌 지옥에 들어가지 않겠습니까?”
대답하였다.
만일 이미 해탈하였다면 모든 때[]를 여의었거늘 어떻게 지옥으로 나아가겠느냐?”
천자가 말하였다.
문수사리여, 당신께서 하신 말씀대로라면 찬양하거나 돕는 이가 없겠습니다.”
대답하였다.
공하고 모양과 소원이 없는 데서 그 무엇이 찬양하고 돕겠느냐?”
또 물었다.
공의 행을 닦는 이는 어디에 머물러야 합니까?”
대답하였다.
자애로움[]에 머물러야 하느니라. 왜냐하면 중생은 마치 환술[]과 같아서 제 성품이 공하기 때문이니라.”
천자가 물었다.
문수사리여, 어떻게 하면 모든 중생의 경계를 분명하게 압니까?”
대답하였다.
온갖 중생은 인연(因緣)으로부터 생기는 것이어서 아주 끊어지지도 않고[不斷], 항상 있지도 않다[不常]고 보는 것이니, 이 때문에 중생의 경계를 두루 알게 되느니라.”
또 물었다.
중생의 경계란 무슨 뜻입니까?”
대답하였다.
중생의 경계란 곧 법계(法界)이니라.”
어떤 것을 법계라 합니까?”
대답하였다.


                                                                            [2553 / 3476]

제 성품이 공한 경계를 법계라 하느니라.”
또 물었다.
어떤 것을 공한 경계라 합니까?”
대답하였다.
온갖 경계를 초월하는 그것이 바로 허공의 경계이니라.”
또 물었다.
어떤 것이 바로 경계를 초월하는 것입니까?”
대답하였다.
그것은 바로 부처님의 경계이니라.”
또 물었다.
어떤 것을 부처님의 경계라 합니까?”
대답하였다.
눈의 경계[眼界]가 바로 부처님의 경계이니, 그러나 부처님의 경계는 눈과 눈으로 보는 빛깔과 안식(眼識)의 경계가 아닌 까닭이니라. 귀의 경계[耳界]가 바로 부처님의 경계이니, 그러나 부처님의 경계는 귀와 귀로 듣는 소리와 이식(耳識)의 경계가 아닌 까닭이니라. 나아가 뜻의 경계[意界]가 바로 부처님의 경계이니, 그러나 부처님의 경계는 뜻과 뜻의 법과 의식(意識)의 경계가 아닌 까닭이니라.
물질의 경계[色界]가 바로 부처님의 경계이니, 그러나 부처님의 경계는 물질의 경계가 아닌 까닭이니라. 느낌[생각[지어감[의식[]의 경계가 바로 부처님의 경계이니, 그러나 부처님의 경계는 느낌·생각·지어감·의식의 경계가 아닌 까닭이니라. 무명(無明)의 경계가 바로 부처님의 경계이니, 그러나 부처님의 경계는 무명의 경계가 아닌 까닭이니라. 늙고 병들고 죽음의 경계가 바로 부처님의 경계이니, 그러나 부처님의 경계는 늙고 병들고 죽음의 경계가 아니기 때문이니라.
 

욕심 세계[欲界]가 바로 부처님의 경계이니 탐내는 모양이 없기 때문이요, 형상 세계[色界]가 바로 부처님의 경계이니 탐욕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형상이 없는 세계[無色界]가 바로 부처님의 경계이니 무명의 소견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무위(無爲)의 경계가 바로 부처님의 경계이니


                                                                            [2554 / 3476]

두 모양[二相]이 없기 때문이요, 유위(有爲)의 경계가 바로 부처님의 경계이니 세 모양[三相]이 없기 때문이니라.
천자여, 이것을 부처님의 경계라 하느니라. 이와 같은 경계로 온갖 경계에 들어가서 끝이 있거나 끝이 없거나 모두 다 섭수하는 것이니라. 보살은 이런 경계에 잘 들어가기 때문에 항상 세간의 온갖 경계를 행하면서도 악마의 경계를 초월하게 되며 부처님의 경계와 악마의 경계를 사실대로 분명히 알아서 고요하고 평등하나니 이것을 곧 가장 큰 신변[最大神變]이라 하느니라.
 

또 보살은 평등함에 머무르지 않으면서도 평등한 법으로써 중생을 성숙시키느니라. 어떤 것을 평등하고 평등함이 아니라고 하느냐 하면, 온갖 모든 법은 제 성품이 공하고 적정하므로 이와 같은 것을 분명히 알면 평등함에 머무른다고 하고, 모든 법의 공한 성품에 들지 못하면 평등함이 아니라 하느니라.
보살은 이러한 중생을 성숙시키면서도 역시 공의 평등함에 머무르지 않게 하기 때문이니, 온갖 모든 법은 소원 없음[無願]의 평등이요, 지음 없음[無作]의 평등이며, 생김 없음[無生]의 평등이요, 소멸 없음[無滅]의 평등이며, 물듦을 여읨[離染]의 평등이요, 적멸(寂滅)의 평등이며, 성품 없음[無性]의 평등이요, 사라짐[]의 평등이며, 열반(涅槃)의 평등이지만, 그가 이 평등법을 분명하게 알지 못한다면 보살은 이러한 중생을 성숙시키면서도 또한 평등함에 머물지 않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보살은 평등함에 머무르지도 않고 평등함을 여의지도 않는데 그것이 보살의 행이니라.”
 

그 때에 상주 천자가 문수사리에게 아뢰었다.
원컨대 저를 위하여 모든 보살의 행[菩薩行]을 말씀하여 주소서.”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천자여, 보살의 행이란 불가사의하느니라.”
천자가 말하였다.
어찌하여 보살의 행이 불가사의합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탐내는 행[貪行]이 바로 보살의 행이니 탐냄은 불가사의하기 때문이요, 성내는 행[瞋行]이 바로 보살의 행이니 성냄은 불가사의하기 때문이며,


                                                                            [2555 / 3476]

리석은 행[癡行]이 바로 보살의 행이니 어리석음은 불가사의하기 때문이니라. 인색함[慳悋]이 바로 보살의 행이니 보시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요, 계율을 헐지 않음이 바로 보살의 행이니 계율의 모양[戒相]을 취하지 않기 때문이며, 성을 내고 해치지 않음이 바로 보살의 행이니 참았다는 생각이 없기 때문이니라.
게으르지 않음이 바로 보살의 행이니 정진했다는 생각을 여의기 때문이요, 산란하지 않음이 바로 보살의 행이니 선정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며, 어리석음을 여읨이 보살의 행이니 선정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며, 어리석음을 여읨이 보살의 행이니 지혜라는 생각을 짓지 않기 때문이요, 번뇌가 없음이 바로 보살의 행이니 끊을 것이 없기 때문이며, 탐애(貪愛)가 없음이 바로 보살의 행이니 몸의 모양을 여의기 때문이요,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 바로 보살의 행이니 여인의 자애로움을 버리기 때문이니라.
물들거나 더러움 없음이 바로 보살의 행이니 5()을 꾸짖고 책망하기 때문이요, 법이 아닌 것을 여의는 것이 바로 보살의 행이니 선근을 쌓아 모으기 때문이며, 인색함 없음이 바로 보살의 행이니 몸과 목숨을 버리기 때문이요, 모든 악()을 없앰이 바로 보살의 행이니 뜨거운 번뇌가 없기 때문이며, 집착할 것 없음이 바로 보살의 행이니 사랑하고 사랑하지 않음을 여의기 때문이니라.
 

파괴할 것 없음이 바로 보살의 행이니 번뇌를 바르게 관찰하기 때문이요, 두려워하지 않음이 바로 보살의 행이니 끝없는 나고 죽음에 들기 때문이며, 큰 정진이 바로 보살의 행이니 온갖 중생의 짐을 짊어지기 때문이요, 물러나지 않음이 보살의 행이니 옛날에 세운 서원을 원만하게 이루기 때문이며, 많은 보배로운 행이 바로 보살의 행이니 3()를 섭수하기 때문이니라.
온갖 행이 바로 보살의 행이니 도를 돕는 법[助道法]을 부지런히 닦기 때문이요, 장애가 없음이 바로 보살의 행이니 두 가지 치우침을 여의기 때문이며, 허물없음이 바로 보살의 행이니 지혜 있는 이의 칭찬을 받기 때문이요, 마음에 편히 머무름이 바로 보살의 행이니 온갖 중생을 생각하기 때문이며, 분별 없음이 바로 보살의 행이니 온갖 것을 평등하게 관찰하기 때문이니라.
훌륭한 장부[善丈夫]가 바로 보살의 행이니 짐을 짊어져도 게으름이 없기...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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