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말(言)과 깨끗함(淨)

근와(槿瓦) 2018. 2. 20. 09:47

()과 깨끗함()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말!!!


이 말이란 것. 곧 입에서 뱉어내는 글이 되겠습니다만, 이 말을 부드럽게 또는 조화롭고 유연하게 행하는 것이란 그리 쉽지 않다고 생각됨이 저만의 생각은 아니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그렇게 쉽지 않음의 말 내뱉음이 왜 쉽지 않고 어려운 것인가를 새삼스레 짚어보아야 할 것 같아 이야기를 시작해보는 것입니다.


먼저 말을 할 때에 어떠한 단어가 튀어나올 경우, 그 단어는 이미 그 뱉어냄의 장본인의 마음에 저장되어 있어서 튀어나오는 것이지 즉각적으로 튀어나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을 해 봅니다. 이것에 대한 전문적인 용어가 바로 상응(相應. 자신 마음속의 저장분과 외부와의 환경과의 조우)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하기에 가능하면 온화하게 느껴지는 단어를, 가능하면 타인으로부터 거부감을 주는 단어가 아닌 단어를, 가능하면 거칠거나 육두문자가 아닌 단어 등을 자신의 마음에 새겨두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해야 할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의 수많은 각종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말을 귀기울여 볼 때 그 분야의 업에 어울리는 단어들을 구사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달리 바꿔보면, 그 분야에 종사하면서 사용하는 단어들이 수없이 되풀이되어 저장되고 내뱉어지고 하면서 그 장본인의 마음에 새겨져버리고 습관화되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수많은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이끌고 컨트롤하는 위치에 있다고 할만한 사람들이라고 여겨지는 그런 사람들은 어떤 말들을 뱉어내야 할 것 인가요.


우리들 인간 즉 만물의 영장이라고 표현되어지는 사람과 그 곁을 같이하는 동물과 식물들. 이들은 각기 제각기 모두가 다른 (얼굴 또는 모습)을 명확히 하고들 있습니다. 둥그런 모습, 모난 모습, 긴 모습, 짧은 모습, 백색의 모습, 황색의 모습, 흑색의 모습, 녹색의 모습 등등의 각종 모습을 하고 있는데 어찌 유독 모든 사물의 중심을 인간의 모습으로만 표현하려고 애를 쓰려는 것일까요?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여 인간의 모습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것은 그 만물의 영장이라는 표현이 있기까지에는 그 곁을 지켜주는 인간 이외의 수많은 모습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요?


이는 곧 수많은 (모습) 중에서 굳이 인간의 모습만이 제일이라고 강조될 수는 없다는 것이며, 이러한 수많은 (모습)의 공통점이 나타내어져질 수밖에 없다는 방향으로 논한다면 과연 무엇을 공통의 상()인 것이라고 도출해 낼 수 있는 것일까요?


이는 달리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이며, 즉답이라고 해 본다면 역시 불가피하게 마음()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 마음이란 단어는 우리 나라 뿐만 아니라 타국(美洲,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冬土 등등의 땅)에도 역시 존재하는 단어이기에 귀결되어지는 단어요 결정되어지는 단어요 확정이라고 말할 수 있는 단어인 마음()”인 것입니다.


육체의 머리에 위치하고 있는 뇌()의 존재 없이도 보고 듣고 느끼고 하는 등의 존재가 이 마음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를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또한 소화해 내야만이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고 장차 이뤄질 무수한 선악(善惡)을 조절하거나 그나마도 어렴풋이 종잡을 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되어지는 바, 이에 따라 이 세상에서 물()이 최우선시된다고 여겨지는 요즘의 이 세파를 현명하고 슬기롭게 넘길 수 있는 것이라고 판단됩니다.


자기 자신의 마음이 주체요, 자기 자신의 마음이 의지할 곳이요, 자기 자신의 마음이 세파를 이겨낼 수 있는 최선의 도량이요, 자기 자신의 마음이 정결해야만이 이것이 바로 최선의 충효(忠孝)인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마음 속에 온갖 잡된 그다지 바람직스럽지 못한 단어들이 난무하고 있으면서 무슨 놈의 효가 되고 충이 되고 주체가 된다고 하는 것입니까? 자신의 마음은 수없이 오염(거친 말, 시기, 질투, 비방, 폭력, 음모, 거짓말, 갈취, 투기, 갑질, 교만 등) 되어 있으면서 값진 물건들만 상(·)에 올리면 다 되는 것이라고 혹여 믿는 것은 아닌지요?


자기 자신이 정화되어져야 이것이 곧 진정한 상(·)의 올림이요, 진정한 효(), 진정한 충()인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들 즉 인간들과 동물들이 가지고 있는 크고 작은 뇌()들은 물질세계에서 살고 있어야만 되는 필연적인 존재들이기에 그저 보이지 않는 마음과 상통하는 물질에 불과한 것이라고 보아야 하며, 물질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성인(聖人)이 아니고서는 자기를 조정하는 부분이 뇌()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겠지만, 이는 이런 내용으로 부숴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라는 단어와 우리들 인간들이 흔히 그리고 너무나도 자주 사용하는 단어인 라는 단어와 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또한 너무나도 잘 말하고 싶고픈 영어에도 “me”가 있고 “you”가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 자신의 본질이 뇌()라고 주장한다면 어찌하여 라는 단어가 필요할까요. 자기 자신이 뇌()라면 모든 인간들이 자기 자신을 라고 하지 말고 뇌()라고 부르거나 말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모든 사전에서는 ()”가 동시에 같이 사이좋게 존재하고 있습니다. 영어사전에도 “me”()”“brain”이 역시나 동시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는 어쩌면 ()”는 다르다고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음이며 각종 나라에 살고 있는 각종의 피부색 인간들이 모두 다 한결같이 “me”를 자신을 가리키는 대명사로 알고 있지 ()”“brain”으로 말하고는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분명하게 드러남은, ()라는 것은 물질세계에서 각종 물질(五臟六腑)의 기능을 담당하고 조정하기 위한 신경망 물질에 불과한 것이지 이를 완전하게 조정-충족케 하기 위한 마음이란 존재를 빼놓고 나면 역시 죽어있는 물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모든 사람들이 라고 하는 보이지 않는 참자기인 마음을 빼놓고서는 이 육신이란 것은 그저 육질에 불과하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참자기라고 할 수 있는 자기 자신의 마음을 정화해야 함은 손바닥에 있는 눈금을 보듯이 명약관화한 것인지라 누구에게도 의존하는 바 없이 자기 스스로 노력을 가해야 함이 마땅할 것입니다. 이는 옛 성현의 말씀에도 있듯이 학문은 날로 날로 더해가고 도()는 날로 날로 덜어간다라고 하는 바와 같이 거부감 풍기는 단어들은 가능한한 구사하지 않는 것이 좋을 듯 싶습니다.


이리 하여야 종내에 이 세상에서 멀어질 때 별다른 한()이 없고 무난한 마무리가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 저의 소견입니다. 그렇다고 이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너무 마음에만 즉 보이지 않는 것에만 치우쳐서 모습()들을 외면해 버린다면 이것 또한 곤란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됩니다.


()이 있기에 마음이 있는 것이고 마음이 있기에 또한 (모습)이 있는 불가분의 것이기에 이를 조화롭고 슬기롭게 아우른다면 자기 자신의 부조화스런 습관을 변화시켜 온화하고 조화로운 생의 전개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끝으로, 요즘 불경(佛經)의 말씀을 올리면서 하나의 말씀이 와닿기에 올립니다.


남의 장점도 보지 말고 남의 단점도 보지 말라.”입니다.


참고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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