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보살(菩薩)

근와(槿瓦) 2013. 6. 9. 09:45

 보살(菩薩)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보살은 깨달음을 구하는 동시에 이웃과 더불어 아픔을 함께 나누면서 성불의 그 날까지 수행해 나가는 존재이다. 그것은 현재의 위치에서 보건대 아직 깨달음에는 미치지 못한 자각적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또한 대승의 세계에 들어서면 거의 붓다의 경지에 다다랐으나 중생에 대한 연민으로 성불을 미루고 중생 교화에 전념하는 무수한 보살들의 행렬이 도도한 산맥처럼 나우리친다.

여기서 우리는 스스로 붓다의 위치를 사양하고선 끝까지 열반의 저 세계로 나가지 않고 오히려 차안인 이 세계에 머물면서 고뇌하는 일단의 아름다운 무리들을 만나게 된다.

이름하여 관음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미륵보살, 지장보살 등 그 수는 이루 헤아리기가 힘들 정도이다. 자각적 인간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그렇지만 완성으로 향하고자 하는 미완의 보살이지만, 이들은 완성된 보살이다. 바로 석가보살처럼 성불이 결정된 보살인 것이다. 아니 이미 붓다의 몸이지만 구체적으로 인간을 구제하게 위해서 보살이라는 다정다감한 모습을 하고 나타나는 부처님의 화신(化身), 즉 화신불(化身佛)로 간주될 정도이다. 이러한 대승의 보살은 석가보살이 전생의 선행에 의해서 태어난 업생(業生) 보살임에 비해서, 원해서 이 세바 세계에 몸믈 나투기 때문에 원생(願生) 보살이라 한다.

이들은 앞서 언급한 여러 기다한 부처님과 대응하면서 그들의 수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어쩌면 부처님 수보다 더 많은 가지가지 모습으로 이 땅에 나투게 된다. 보살을 탄생시키기에 이른다. 무수한 부처님들이 이 땅위를 흐르는 강이라면 보살들은 그 강으로 흘러드는 여러 지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한 특정 부처님의 구체적 특성 내지는 속성을 중요시한 결과, 그 하나하나가 보살의 형상을 띠고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양상은 불상의 경우 부처님을 양 옆에서 옹호하고 도와주며 봉사하는 협시(協侍)의 형태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석가모니불의 협시보살로서 제화갈라보살과 미륵보살, 아미타불의 협시 보살로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 비로자나불의 협시 보살로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등 실로 다종다양하다. 심지어 부처님의 조력자 내지 협력자로서의 협시의 위치에서 벗어나 단독으로 모셔지는 경우마저 있으니, 관음보살이나 문수보살이 그 구체적인 예이다.

보살이 그만큼 다양한 모습을 하고 출현한 이유는 다른 데서도 찾을 수 있다. 보살은 중생의 아픔을 자기의 아픔처럼 느끼는 눈물 많고 다정다감한 헌신적인 연인이요, 한없이 사랑을 베푸는 어머니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당장 생존의 현장에서 신음하고 있는 수많은 고통을 어루만지고 보듬켜 주기 위해서 그 고통의 수에 버금가는 다양한 보살의 출현을 잉태했다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일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 산하를 수놓은 그토록 아름다운 삶의 미덕, 그 발자취를 살펴보건대, 사실 이 삶의 현장에서는 부처님보다는 보살의 체취가 녹녹하게 배어 있다. 『삼국유사』를 보면, 시름에 겨워 아파하던 사람이 보살의 은덕을 갈구하여 소망을 이룬 일이며, 수행승의 경우 그 수행자의 잘못된 점을 일깨워 올곧은 길로 나가게끔 따금한 일침을 놓는 보살들의 이타행이 절절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보살들이 문자 그대로 실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부처님의 한 속성 내지는 중생의 원(願)에 응해서 이 세상에 몸을 나툰 이상적 존재요 이념적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이상적 존재로서의 보살은 특정 역사속에 갇혀 있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언제나 어떤 사람들에게라도 가까이 다가서는 지혜와 자비의 화신인 것이다.

반면 역사적으로 실존한 인물 가운데 보살의 지위에 오른 몇몇 불교의 성인들이 있다. 그들은 보살로서의 길을 간 결과 모든 보살의 위치로 올라서서 생명력 넘치는 지혜의 보고를 우리들에게 선사하게 된다. 대승의 공사상을 체계화시킨 용수(龍樹)보살, 유식(唯識)의 가르침을 체계화한 미륵(彌勒)보살과 무착(無着)보살, 세친(世親)보살 등이 그들이다. 여기서 미륵보살은 앞서 말한 이상적 인물로서의 비역사적 인물이 아닌 인도에서 태어나 유식 사상의 빛을 밝힌 실존인물을 일컫는 말이다.

보살의 여러 유형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1. 석가보살 : 석가모니의 전생을 지칭
2, 이상과 이념으로서의 보살 : 문수, 보현, 관세음 보살 등
3, 자각적 인간으로서의 보살 : 보살로의 길로 들어선 모든 사람들
4, 실제로 존재했던 보살 : 용수, 세친, 미륵 보살 등.


보살도와 그 단계


이러한 수많는 보살에 일관하는 이상은 드디어 보살의 나아갈 길, 즉 보살도(菩薩道)로 형성되기에 이른다. 그것이 육바라밀(六波羅蜜) 내지는 십바라밀이다. 바라밀이란 피안 또는 구원에 이른 상태, 또는 그 과정을 의미하는 파라미타(Paramita)의 한문 번역어이다 우리들은 이 여섯 내지 열 가지의 바라밀을 실천함으로써 결국에는 저 언덕, 피안에 도달하거나 자타(自他)의 구원을 완성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화엄경』 「십지품(十地品)」에는 보살의 경지를 열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는데, 그것은 수행이 단계적으로 무르익어가는 과정을 그려낸 것으로, 바라밀 행과 더불어 자각적 인간이 걸어가야 할 길이기에 이 자리에서 간단히 소개해 보겠다.

첫째, 환희지(歡喜地 Pramuchita bhumi): 아집으로 치닫는 중생의 잘못된 길을 버리고 진리를 발견하여 참된 행복의 길로 들어선다. 즉 중생으로서의 삶을 버리고 부처님의 집에서 다시 태어나 마음이 새롭게 열리는 뜨거운 종교 체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진정 가슴 벅찬 진리를 발견하여 그 길로 들어서니 환희롭고 환희로운 일 아니겠는가.

둘째, 이구지(離垢地 vimala bhumi): 강렬한 종교 체험의 그 황홀한 상태에 언제까지나 머무르지 않고 다시 이 세상 속에 들어와 인륜 생활의 기초 훈련을 쌓아나가는 경지이다. 이러한 도덕적 삶 속에서 잘못된 행위가 떨어져 나가므로 이구지라 하는 것이다.

셋째, 발광지(發光地 prabahkari bhumi): 보살이 대 사회적 이타행에 눈을 떠 중생을 구제하는 길로 나서려 하는 순간 아직도 자신에게 모자라는 부분이 있음을 알고, 진리를 닦고 선정을 수행하며 지혜를 터득한 결과, 이제 그 지혜의 빛이 내면으로부터 솟아오르는 경지를 말한다.

넷째, 염혜지(焰慧地 arcismati bhumi): 지혜의 빛이 불꽃처럼 활활 타올라 모든 번뇌의 더미를 태우고 의혹의 다발을 뿌리채 뽑는다.

다섯째, 난승지(難勝地 suburjaya bhumi) : 제4지까지가 인격 연마의 내면적 수행이라면 제5지부터는 다양한 방편을 습득하여 이타행의 길을 본격적으로 걸어가는데 어떤 장애와 맞닥뜨려도 좌절되지 않기에 난승지라 한다. 그리고 보살은 이 경지에서 진(眞)과 속(俗), 생사와 열반, 번뇌와 보리의 대립을 융화시키는데, 그 두가지를 말끔히 조화시킨다는 게 몹시 어려운 일이므로 난승(難勝)이라고도 한다.

여섯째, 현전지(現前地 abhimukhi bhumi): 난승지에서 생사와 열반의 대립을 모순없이 해소했다 하지만 거기에는 아직도 그 사이에 깨끗함과 더러움의 미세한 차이를 인식하는 번뇌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 차이마저 공으로 달관하여 걸림없는 진리가 현전하게 된다. 게다가 삼계(三界)가 모두 마음이 지어낸 것 임을 알고, 그 마음조차 공하다는 사실을 체득하여 반야의 지혜가 목전에 나타나게 된다.

일곱째, 원행지(遠行地 duranmgama bhumi): 여기서부터는 인위적 행위 내지는 형상이 남아 있는 행위에 종지부를 찍고 걸림이 없는 행위를 해나가기 시작하는데, 그것이 참으로 멀고 먼 길이기에 원행지라 한다. 그 걸림이 없는 행이란 바로 무공용(無功用)의 행으로서 모든 작위적인 의도가 제거된 자연스러운 행위를 말한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의 무공용은 아직 철저하게 무르익지 못한 상태이다

여덟째, 부동지(不動地 acala bhumi): 무공용이 완전히 드러나 하등의 나(我)라는 의식마저 없다. 이 제8지부터 10지까지의 보살의 행은 부처님의 힘에 위해 움직이는 무위자연(無爲自然) 그 자체이다. 이 지는 파괴할 수 없는 까닭에 부동지라 한다.

아홉째, 선혜지(善慧地 Sadhumati bhumi): 온갖 중생의 마음을 샅샅히 꿰뚫어 각기 중생의 능력에 맞추어 법을 자유자재로 설한다.

열째, 법운지(法雲地 Dhamamegha bhumi): 지혜의 구름이 허공과 같이 되어 모든 번뇌의 흔적마저 덮어 진리의 몸, 자연의 몸 그 자체가 된다. 드디어 미세하게 남아 있던 번뇌의 티끌도 말끔히 사라져 붓다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법〔진리〕의 비를 온 세상에 뿌려 중생의 번뇌를 가라앉힌다.

이렇게 십지에 들어선 보살들은 단계별로 초지(初地) 보살, 제2지 보살, 제3지 보살....... 제10지 보살로 불린다. 혹 이러한 보살 십지는 우리 인간에게는 너무나 아득한 이상향으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이다. 그 첫걸음은 타성에 끌려다니는 일상적 삶에 대한 거부요 진리의 길로 나아가는 제일보다. 우리는 이러한 모습을 『화엄경』 「입법계품(入法界品)」의 주인공 선재(善財)동자의 구도의 여정에서 찾아볼 수 있다.

 

출처 : 조계사 홈페이지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석가모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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