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보살도(菩薩道)

근와(槿瓦) 2013. 6. 8. 16:15

 보살도(菩薩道)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대승불교의 보살이 닦고 실천하는 수행.

 


수행의 근거는 자리이타(自利利他)인데, 보살이 자리이타의 실천행을 닦는 까닭은 참된 깨달음은 모든 중생과 함께 하기 때문이며, 모든 중생이 갖추고 있는 불성(佛性) 또는 여래장(如來藏)의 발현이야말로 이 세계를 진정한 불국토(佛國土)로 만들고 그 불국토의 구현이 불교의 목표가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보살도에는 3종심(三種心)․4무량심(四無量心)․6바라밀(六波羅蜜)․4섭법(四攝法) 등이 있다.

 

① 삼종심(三種心)은 직심(直心)․심심(深心) 대비심(大悲心)으로, 이들 마음가짐을 온전하게 갖추어야만 보살도에 대한 믿음을 온전히 갖출 수 있다고 했고,

- 직심(直心) : 진여를 염 하는 마음

- 심심(深心) : 모든 선행을 몸에 붙이려고 하는 마음

- 대비심(大悲心) : 모든 중생을 구하려고 하는 마음

 

② 사무량심(四無量心)은 자(慈)․비(悲)․희(喜)․사(捨)의 무량심으로서, 중생에게 즐거움을 주고 미혹과 고통을 제거하여 주기 위한 것이다.

 

자무량심(慈無量心) : 우리중생은 각자 타인을 대함에 원수처럼 대하기도하고 또 성낸 얼굴로 싫어하는 모습으로 대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남에게 고통을 주는 것으로 불자가 하여야 할 일은 못된다. 우리가 진정한 불자라면 반드시 이를 떠나 만인을 평등하게 사랑하여 즐거움을 주도록 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를 곧 자무량심(慈無量心)이라 한다.

 

 - 비무량심(悲無量心) : 중생을 교화한다는 말은 곧 모든 고통을 떠나도록 한다는 말과 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이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그 고통받는 것을 슬퍼하여 그의 고통을 덜어주도록 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를 곧 비무량심(悲無量心)이라고 한다.

  

희무량심(喜無量心) : 위의 자(慈), 비(悲)로써 하나의 중생이라도 고(苦)를 여의고 낙(樂)을 얻었다면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이것을 기뻐하는 것이 곧 희무량심(喜無量心)이다.

  

사무량심(捨無量心) : 이것은 궁극적으로 모든 중생을 평등하게 보아 아무런 원친(怨親)도 없게 하는 것이다. 흔히 부처님께선 중생을 사랑하기를 모두 갓난아기<赤子>와 같이 하신다고 하니 곧 이런 무량평등심(無量平等心)을 말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볼 때 이 사무량심은 어디까지나 남을 교화하기 위한 용심(用心)의 도(道)이다. 그렇다고 하여 이

것이 이타(利他)의 행(行)은 반드시 자신에게도 그에 상응하는 이익을 가져오기 마련이다. 경에는 사무량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여있다.

 

[ 아난아, 나는 본래 너를 위하여 사무량심을 설하였다. 비구는 심(心)과 자(慈)를 같이 하여 일방(一方)에 편만(遍滿)시켜 성취케 하며 이와 같이 二三四方 四維上下 일체에 널리 두루케 한다. 심(心)과 자(慈)와 함께하여 苦<번뇌>도 없고 크고 무량하게 잘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 가득 차게하라. 이와 같이 비(悲)와 희(喜)와 사(捨)와도 같이 하여 ... 일체 세간에 두루 가득차게 성취하라.

아난아, 이 사무량은 네가 마땅히 연소한 비구들을 위하여 설하고 가르칠지니라. 만약 모든 연소한 비구들을 위하여 가르치면 그는 문득 안온을 얻고 힘을 얻으며 낙을 얻어서 신심이 번열(煩熱)치 않고 종신토록 범행(梵行)을 하리라.] (중아함경 권21)

 

③ 육바라밀(六婆羅蜜)은 보시(布施)․지계(持戒)․인욕(忍辱)․정진(精進)․선정(禪定)․반야(般若)의 실천행으

    로, 보살행을 좁은 뜻으로 해석할 때는 이것만을 논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


-  보시(布施) : 희사(喜捨), 증여(贈與), 기증(寄贈). 
                       

보시에는 세 가지가 있다. 
돈, 또는 재물을 주는 것을 ‘재시(財施)’라 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이나 법문을 해 주는 것을 법시(法施)라 하고, 그리고 상대방의 마음을 편케 해 주는 것, 두려움, 공포, 불안감을 없애 주는 것을 무외시(無畏施)라고 한다. 보시 가운데서도 진정한 보시를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라고 한다.  ‘무주상보시’란 보시를 했지만 마음 속에 보시를 했다는 의식(意識=住相)이 조금도 없는 보시이다. 사실 말이 쉽지 무주상보시란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보시를 하거나 남을 도와주면 대가, 기대를 바라는 것이 속성이기 때문이다. 러나 이것은 진정한 보시가 아니다. 보시를 할 적에는 대가를 바라지 말아야 한다. 순수하게 남을 도와주고 순수하게 보시해야 한다.



- 지계(持戒) : 계를 지킨다'는 의미이다. 
일반적으로 계(戒)에는 재가신자들이 지켜야 할 오계(五戒)와 출가한 비구와 비구니가 갖추어야 할 250계와 350계가 있지만 대승의 보살계에는 10가지가 있다. 이 열 가지는 십선(十善)이라고 하는데 이는 불살생(不殺生), 부도(不盜), 불사음(不邪淫), 불망어(不妄語), 불악구(不惡口), 불양설(不兩舌), 불기어(不綺語), 무탐(無貪), 무진(無瞋), 정견(正見) 등의 착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승의 지계(持戒)는 이전의 소승처럼 수동적이고 타율적이지 않으며 능동적이고 자율적 정신을 강조한다. 계(戒를 지키는데 있어서 그 본래의 정신을 망각하게 되는 상황을 경계하는 것이다. 계(戒) 역시 공한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집착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지키며, 타인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하는 것이 지계바라밀의 본질이다.

  

- 인욕(忍辱) : 참고 용서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 자체가 고통이며 그러한 세계에서 사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화내지 않고 괴로움을 참고 견디며 사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미움은 미움으로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큰 미움을 부르기 때문에 참고 용서하는 것으로 극복되는 것이다.

   

- 정진(精進) :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不動心)의 실천이며 불퇴전(不退轉)의 노력이다.
중생의 정진은 본질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지만, 보살의 정진은 이타적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중생과 보살의 정진의 목표는 궁극적으로 깨달음을 얻는데 있다.

  

- 선정(禪定) : 정(定)은 삼매(三昧)란 뜻으로 '산란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고요히 사색하는 것'이라고 풀이된다. 선정은 붓다가 성도(成道)하실 때부터 행하신 것으로 근본불교에서부터 강조되고 있다. 선정을 통해 모든 존재가 무자성(無自性), 공(空)임을 직관하여 그것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는 수행이라고 할 수 있다.

  

- 반야(般若) : 수승한 지혜 라는 뜻이다.
여기서 지혜는 사유분별의 망상을 떠난 지혜로서 집착이 없는 지혜이며, 공(空)한 지혜이다. 반야바라밀이란 지혜의 완성이라는 의미이다. 반야바라밀은 앞의 다섯 가지 바라밀 가운데 가장 으뜸인 것으로 주로 <반야경>에서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바라밀의 수행은 자신의 이익을 구하지 않고 오로지 다른 이의 이익을 위해 전력하는 것이며, 성불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끊임없는 수행이기 때문에 이를 실천하는 데에는 대단한 결의가 필요하다. 보살의 이러한 결의를 갑옷을 입고 싸움터에 나가는 전사에 비유하여 '큰 서원(弘誓)의 갑옷(大鎧)을 입는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보살은 무량무수(無量無數)의 중생을 열반으로 인도하면서도 인도된 사람도 존재하지 않으며, 인도하는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④ 사섭법(四攝法)은 보살이 중생을 제도할 때 취하는 기본적 태도로 보시(布施)․애어(愛語)․이행(利行)․동

   사(同事)이다.

 

   사무량심(四無量心)이 남을 교화하기 위한 것 같으면 이 사섭법(四攝法)은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실제

   행동에 옮기는 중생을 교화하기 위한 행동의 도(道)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것은 사무량심(四無量心)

   보다 적극적인 행동의 덕목이라 하겠다.

 

- 보시법(布施法) : 보시란 한마디로 말하면 베풀어주는 것이다.

즉 재물을 구하는 자에겐 재믈을, 법을 구하는 자에겐 혜시(惠施)하여 주는 것이다. 이것을 재시(財施), 법시(法施)라고 하거니와 그것이 어느쪽이건 간에 불자(佛子)로우매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선 먼저 그들이 바라는바 욕구를 가능한 아낌없이 또 바라는 바 없이 들어주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후세에 와선 재시(財施), 법시(法施)이외에 재(財), 법(法)의 보시가 아무런 조건도 없이 완전하게 이루어져 생사에 대한 두려움도 없게 해야 한다는 뜻이 상당히 강조되어 무외시 (無畏施)가 첨가되었다.


- 애어섭(愛語攝) : 애어(愛語)란 말은 사랑스런 말이니, 상대자를 대할 때 어떤 경우, 어떤 곳이던 간에 일체의 악한 말이나 거짓된 말을 하지 않고 항상 진실되고 좋은 말, 사랑스런 말을 하라는 뜻이다.

 

 - 이행섭(利行攝) : 모든 중생에게 이익되는 일을 하라는 뜻이다. 특히 중병에 걸렸거나, 액난을 만나서 괴로와하고 있을 때 같은 경우 자비를 근본으로 삼고 있는 불자라면 그에게 뭔가 조금이라도 성심껏 이익되는 일을 해 주는 것이 도리가 아니겠는가. 이런 것이 다 이행(利行)이다.


- 동사섭(同事攝) : 동사(同事)란 같이 일을 하라는 뜻이니, 일반 중생과 함께 화복(禍福), 고락(苦樂)을 같이하며 그들을 교화하라는 것이다. 중생을 교화하는 방법에는 물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이 있겠지만 가장 좋은 조반자(助伴者)가 되어 고락(苦樂)을 나누며 이끌어 가는 이 동사섭(同事攝)이야말로 가장 좋은 방법 중의 하나라고 하겠다.

 

보살행의 실천에 솔선수범한 승려로는 신라의 대안(大安)․혜공(惠空)․원효(元曉), 조선의 언기(彦機) 등이 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석가모니불-


'불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관세음보살님(觀世音菩薩)  (0) 2013.06.09
보살(菩薩)  (0) 2013.06.09
성철큰스님 불탄법어  (0) 2013.06.06
육바라밀(六婆羅蜜)  (0) 2013.06.05
응무소주 이생기심  (0) 2013.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