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법어 모든 생명을 부처님과 같이 존경합시다. 만법의 참모습은 둥근 햇빛보다 더 밝고 푸른 허공보다 더 깨끗하여 항상 때묻지 않습니다.
악하다 천하다 함은 겉보기 뿐, 그 참모습은 거룩한 부처님과 추호도 다름이 없어서 일체가 장엄하며 일체가 숭고합니다. 그러므로 천하게 보이는 파리, 개미나 악하게 날뛰는 이리, 호랑이를 부처님과 같이 존경하여야 하거늘 하물며 같은 무리인 사람들끼리는 더 말할 것 없습니다. 살인 강도 등 극악 죄인을 부처님과 같이 공경할 때 비로소 생명의 참모습을 알고 참다운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광대한 우주를 두루 보아도 부처님 존재 아님이 없으며 부처님 나라 아님이 없어서 모든 불행은 자취도 찾아볼 수 없고 오직 영원한 행복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 서로 모든 생명을 부처님과 같이 존경합시다.
1982년 법어 자기를 바로 봅시다. 자기는 원래 구원되어 있습니다. 자기가 본래 부처입니다. 자기는 항상 행복과 영광에 넘쳐 있습니다. 극락과 천당은 꿈 속의 잠꼬대입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자기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하고 무한합니다. 설사 허공이 무너지고 땅이 없어져도 자기는 항상 변함이 없습니다. 유형, 무형할 것없이 우주의 삼라만상이 모두 자기입니다. 그러므로 반짝이는 별, 춤추는 나비 등등이 모두 자기입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모든 진리는 자기 속에 구비되어 있습니다. 만약 자기 밖에서 진리를 구하면 이는 바다 밖에서 물을 구함과 같습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자기는 영원하므로 종말이 없습니다. 자기를 모르는 사람은 세상의 종말을 걱정하며 두려워하며 헤매고 있습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자기는 본래 순금입니다. 욕심이 마음의 눈을 가려 순금을 잡철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나만을 위하는 생각은 버리고 힘을 다하여 남을 도웁시다. 욕심이 자취를 감추면 마음의 눈이 열려서 순금인 자기를 바로 봅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아무리 헐벗고 굶주린 상대라도 그것은 겉보기일 뿐 본모습은 거룩하고 숭고합니다. 겉모습만 보고 불쌍히 여기면 이는 상대를 크게 모욕하는 것입니다. 모든 상대를 존경하며 받들어 모셔야 합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현대는 물질만능에 휘말리어 자기를 상실하고 있습니다. 자기는 큰 바다와 같고 물질은 거품과 같습니다. 바다를 봐야지 거품을 따라 가지 않아야 합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부처님은 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것이 아니요, 이 세상이 본래 구원되어 있음을 가르쳐 주려고 오셨습니다. 이렇듯 크나 큰 진리 속에 살고 있는 우리는 참으로 행복합니다. 다 함께 길이길이 축복합시다.
1983년 법어 중도(中道)가 부처님이니 중도를 바로 알면 부처님을 봅니다. 중도는 중간, 또는 중용(中庸)이 아닙니다. 중도는 시비선악(是非善惡)등과 같은 상대적 대립의 양쪽을 버리고 그의 모순, 갈등이 상통하여 융합하는 절대의 경지입니다. 시비선악 등의 상호 모순된 대립, 투쟁의 세계를 현실의 참모습으로 흔히 생각하지만 이는 허망한 분별로 착각된 거짓 모순입니다. 우주의 실상은 대립의 소멸과 그 융합에 있습니다. 시비가 융합하여 是가 즉 非요 非가 즉 是이며, 善惡이 융합하여 善이 즉 惡이요 惡이 즉 善이니 이것이 즉 원융무애한 중도의 진리입니다.
자연계뿐만 아니라 우주 전체가 모를 때에는 제각각으로 보이지마는 말고 보면 모두 일체입니다. 착각된 허망한 분별인 시비선악 등을 고집하여 버리지 않으면 상호투쟁은 늘 계속되어 끝이 없습니다. 만법이 혼연융합한 중도의 실상을 바로 보면 모순과 갈등, 대립과 투쟁은 자연히 소멸되고 융합자재한 일대단원(一大團圓)이 있을 뿐입니다.
악한과 성인이 일체이며 너는 틀리고 나는 옳다함이 한 이치이니 호호탕탕한 자유세계에서 어디로 가나 웃음뿐이요, 불평불만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대립이 영영 소멸된 이 세계에는 모두가 중도 아님이 없어서 부처님만으로 가득 차 있으니 이 중도실상(中道實相)의 부처님 세계가 우주의 본모습입니다.
우리는 본래로 평화의 꽃이 만발한 크나큰 낙원에서 살고 있습니다. 시비선악의 양쪽을 버리고 융합자재한 이 중도실상을 바로 봅시다. 여기에서 우리는 영원한 휴전을 하고 절대적 평화의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삼라만상이 일제히 입을 열어 중도(中道)를 노래하며 부처님을 찬양하는 이 거룩한 장관 속에서 손에 손을 맞잡고 다같이 행진합시다.
1984년 법어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김으로 저것이 생긴다.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고, 이것이 죽으므로 저것이 죽는다. 이는 두 막대기가 서로 버티고 섰다가 이쪽이 넘어지면 저쪽이 넘어지는 것과 같다. 일체 만물은 서로서로 의지하며 살고 있어서 하나도 서로 관련되지 않은 것이 없다는 이 깊은 진리는 부처님께서 크게 외치는 연기(緣起)의 법칙이니 만물은 원래부터 한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이쪽을 해치면 저쪽은 따라서 손해를 보고, 저쪽을 도우면 이쪽도 따라서 이익을 받습니다. 남을 해치면 내가 죽고 남을 도우면 내가 사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러한 우주의 근본진리를 알면 남을 해치려고 해도 해칠 수가 없습니다. 이 진리를 모르고 자기만 살겠다고 남을 해치며 날뛰는 무리들이여! 참으로 내가 살고 싶거든 남을 도웁시다. 내가 사는 길은 오직 남을 돕는 것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상반된 처지에 있더라도 생존을 위해서는 침해와 투쟁을 버리고 서로 도와야 합니다.
물과 불은 상극된 물체이지만 물과 불을 함께 조화롭게 이용하는 데서 우리 생활의 기반이 서게 됩니다. 동생동사(同生同死) 동고동락(同苦同樂)의 대 진리를 하루빨리 깨달아서 모두가 침해의 무기를 버리고 우리의 모든 힘을 상호협조에 경주하여 서로 손을 맞잡고 서로 도우며 힘차게 전진하되 나를 가장 해치는 상대를 제일 먼저 도웁시다. 그러면 평화와 자유로 장엄한 이 낙원에 영원한 행복의 물결이 넘쳐흐를 것입니다.
화창한 봄날 푸른 잔디에 황금빛 꽃사슴 낮잠을 자네
1985년 법어 부처님의 몸은 광대무변(廣大無邊)하여 시방(十方) 세계에 꽉 차서 없는 곳이 없으니 저 가 없는 허공도 대해(大海)중의 좁쌀 하나와 같이 작습니다. 부처님의 수명은 영원무궁하여 우주가 생기기 전에도 우주가 없어진 뒤에도 항상 계셔서 과거가 곧 미래요 미래가 곧 현재입니다.
부처님의 능력은 신묘불측(神妙不測)하여 상대의 욕망에 따라 천변만화(天變萬化) 무수(無數)의 형태로 몸을 나토아 일체를 이익되게 하여 쉬지 않습니다.
부처님의 광명은 기묘난사(奇妙難思)하여 이 광명 속에서는 설사 백천일월(百千日月)이 일시에 비추어도 대낮의 촛불만도 못합니다.
부처님의 지혜는 무사자연(無師自然)이니 우주의 근본을 통찰하고 생명의 천연(泉淵)을 요달(了達)하여 일체의 진리와 정도를 개시합니다.
부처님의 자비는 무장무애(無障無碍)하여 오물중(汚物中)의 미충(微蟲)을 부처로 모시며 철천의 원수를 부모로 섬기고 남을 위하여서는 모든 것을 아끼지 않으며 자기 목숨까지도 기꺼이 버려서 일체에 뻗치는 따뜻한 손길은 바쁘고도 바쁩니다.
이렇듯 거룩한 부처님의 모습은 천상천하의 먼지들이 낱낱이 입이 되어 억만년 동안 찬탄하여도 그 만분의 일도 형용할 수 없습니다. 이는 석가만의 특징이 아니요, 일체에 평등하여 유형무형이 전부 완비하여 있으니 참으로 불사의중(不思議中) 불사의(不思議) 입니다.
우리 모두 마음의 눈을 활짝 열어 이 거룩한 모습을 역력히 바라보며 길이길이 찬양합시다.
1986년 법어 교도소에서 살아가는 거룩한 부처님들, 오늘은 당신네의 생신이니 축하합니다. 술집에서 웃음파는 엄숙한 부처님들, 오늘은 당신네의 생신이니 축하합니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수없는 부처님들, 오늘은 당신네의 생신이니 축하합니다. 꽃밭에서 활짝 웃는 아름다운 부처님들, 오늘은 당신네의 생신이니 축하합니다. 구름 되어 둥둥 떠 있는 변화무쌍한 부처님들, 바위 되어 우뚝 서 있는 한가로운 부처님들, 오늘은 당신네의 생신이니 축하합니다.
물 속에서 헤엄치는 귀여운 부처님들, 허공을 훨훨 나는 활발한 부처님들, 교회에서 찬송하는 경건한 부처님들, 법당에서 염불하는 청수한 부처님들, 오늘은 당신네의 생신이니 축하합니다.
넓고 넓은 들판에서 흙을 파는 부처님들, 우렁찬 공장에서 땀 흘리는 부처님들, 자욱한 먼지 속을 오고 가는 부처님들, 고요한 교실에서 공부하는 부처님들, 오늘은 당신네의 생신이니 축하합니다.
천지는 한 뿌리요 만물은 한 몸이라, 일체가 부처님이요 부처님이 일체이니 모두가 평등하여 낱낱이 장엄합니다. 이러한 부처님의 세계는 모든 고뇌를 초월하여 지극한 행복을 누리며 곳곳이 불가사의한 해탈도량이니 신기하고도 신기합니다. 입은 옷은 각각 달라 천차만별이지만 변함없는 부처님의 모습은 한결같습니다. 자비의 미소를 항상 머금고 더 큰 소리로 끊임없이 설법하시며 우주에 꽉차 계시는 모든 부처님들, 나날이 좋을시고 당신네의 생신이니 영원에서 영원이 다하도록 존경하며 서로 축하합니다.
1987년 법어 사탄이여! 어서 오십시오. 나는 당신을 존경하며 예배합니다. 당신은 본래로 거룩한 부처님입니다. 사탄과 부처란 허망한 거짓 이름일 뿐 본 모습은 추호도 다름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당신을 미워하고 싫어하지만은 그것은 당신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당신을 부처인 줄 알 때에 착한 생각 악한 생각, 미운 마음, 고운 마음 모두 사라지고 거룩한 부처의 모습만 뚜렷이 보게 됩니다. 그리하여 악마와 성인을 다같이 부처로 스승으로 부모로 섬기게 됩니다.
여기에서는 모든 대립과 갈등은 다 없어지고 이 세계는 본래의 가장 안락하고 행복한 세계임을 알게 됩니다. 일체의 불행과 불안은 본래 없으니 오로지 우리의 생각에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나아갈 가장 근본적인 길은 거룩한 부처인 당신의 본 모습을 바로 보는 것입니다. 당신을 부처로 바로 볼 때에 온 세계는 본래 부처로 충만해 있음을 알게 됩니다.
더러운 뻘밭 속에서 아름다운 연꽃이 가득 피어 있으니 참으로 장관입니다. 아! 이 얼마나 거룩한 진리입니까. 이 밖에서 진리를 찾으면 물 속에서 물을 찾는 것과 같습니다. 당신을 부처로 바로 볼 때 인생의 모든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됩니다. 선과 악으로 모든 것을 상대할 때 거기에서 지옥이 불타게 됩니다. 선 악의 대립이 사라지고 선 악이 융화상통할 때에 시방세계에 가득히 피어 있는 연꽃을 바라보게 됩니다. 연꽃마다 부처요 극락세계 아님이 없으니 이는 사탄의 거룩한 본 모습을 바로 볼 때 입니다.
1988년 법어 산과 들에 꽃이 피고 나무마다 새가 우니 어허 좋을시고! 사월이라 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부처님은 중생이 본래로 성불한 것, 곧 인간의 절대적 존엄성을 가르쳐 주려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인간의 절대성은 부처님이 오시기 전이나 오신 뒤에라도 추호도 변함이 없는 진리이며 이 진리는 부처님이 오시거나 오시지 않는 데에 관계없는 우주의 근본원리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인간들이 이 절대성을 모르고 꿈결같이 살고 있기 때문에 대명천지(大明天地)의 이 절대성을 가르쳐 주었을 뿐입니다.
인간의 절대성은 남녀(男女) 노유(老幼) 귀천(貴賤)할 것 없이 평등하여, 선악 시비등의 구분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악하고 천한 사람이라도 인간은 모두 지고지선(至高至善)한 절대적 존재이니, 이것이 부처님께서 고창(高唱)하신 본래의 성불입니다.
아무리 악한 상대라도 성인으로 섬기며, 아무리 천한 인간이라도 부모로 모셔서, 서로 존경하며 서로 사랑하여야 합니다. 서로 싸우고 침해하는 것은 본연의 절대성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서로의 본연성을 알고 보면 싸울래야 싸울 수 없으며, 해칠래야 해칠 수 없습니다. 다만 서로 존경하며 사랑할 뿐이니 태평성세(太平聖世)의 낙향(樂鄕)은 이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털끝만한 이해를 지고 세상이 시끄럽게 싸우지 맙시다. 이 이해 관계는 허망한 꿈 속의 일이니, 넓은 바다위에 떠도는 물거품보다 못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 물거품을 보지 말고, 넓은 바다만을 봅시다. 만고불변인 본래성불(本來成佛)의 진리는 설사 허공이 무너지는 날은 있어도 변함이 없어서, 인간에게 주어진 지상의 행복입니다.
이 진리는 항상 우리의 눈앞에 펼쳐 있으므로, 우리가 알고 보면 본래성불(本來成佛)인 자기들의 생일을 온 우주가 다함께 입을 모아 축하한다 하여도 부족합니다. 마루 밑의 멍멍이, 외양간의 얼룩이, 나르는 새, 기는 짐승, 섯는 바위, 흐르는 물, 늙은이 젊은이 모두 함께 입을 열어 자기들의 생일을 축복합시다.
1989년 법어 천상천하에 독존무비(獨尊無比)한 부처님의 처소는 험악하고도 무서운 저 지옥이니, 지옥에서 온갖 고통을 받고, 그들을 안락한 곳으로 모시며 그들을 돕기 위하여 부처님은 항상 지옥에 계십니다. 부처님은 남의 고통을 대신받는 것을 가장 큰 기쁨으로 삼습니다. 부처님은 지옥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부모로 모시고 가장 존경하며 정성을 다하여 지극히 섬기고 받듭니다. 이는 부처님이 베푸는 자비가 아니요 부처님의 길이며 생활입니다. 부처님은 험하고 어려운 곳만을 찾아다닙니다. 부처님은 어둡고 더러운 곳만을 찾아다닙니다. 부처님은 괄세받고 버림받는 이들만을 찾아다닙니다.
부처님의 부처는 고통받는 중생들이니 그들이 아니면 부처가 필요없습니다. 부처님은 그들을 효자가 부모 모시듯 정성으로 섬깁니다. 설사 그들이 부처님을 여러 가지로 괴롭게 하더라도 더욱더 존경하며 더욱더 잘 받듭니다. 과거세에 부처님이 깊은 산중을 가시다가 호랑이가 새끼를 낳고 먹을 것이 없어서 죽어가는 것을 보시고, 자기 몸을 호랑이에게 먹혀 그들을 살렸습니다.
이렇게 부처님은 흉년에는 곡식이 되고 질병에는 약초가 되어 자기 몸을 바쳐서 중생을 구합니다. 이 숭고하고도 거룩한 부처님의 행동은 천고 만고에 길이 빛나고 있습니다. 대저 천당과 지옥은 어리석은 생각으로 일어나는 환상이니 마음의 눈을 떠서 바른 지혜를 가지면 이 환상은 저절로 없어집니다. 그때에는 전체가 부처이며 전체가 태평하여 천당과 지옥이라는 이름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잠을 깨지 못하면 꿈이 계속되듯이 마음의 눈을 뜨지 못하면 중생이 끝없이 계속되므로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러한 중생계가 한(限)이 없으니 부처님의 지옥 생활도 끝이 없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중생계가 다할 때까지.....
1990년 법어 가없는 우주로 집을 삼고 한없이 많은 만물들은 형제되어 호수백발(皓首白髮)의 노부모를 모시고 사이좋게 살아가니, 전체가 평등하며 낱낱이 완전합니다. 모두가 뛰어난 예지를 갖추고 덕행이 원만하여 천상천하에 독존무비(獨尊無比)한 본래불(本來佛)이라 이름하나니, 이 숭고한 장엄은 설사 산천초목이 전부 입이 되어 이 광경을 찬미한다 하여도 다하지 못합니다.
푸른 허공의 찬란한 별들은 형님이요 맑은 바다에 출렁이는 물결들은 아우입니다. 나는 새 기는 벌레 사나운 짐승 온순한 양떼가 형제 아님이 없으니, 작은 생쥐와 날쌘 고양이 독사와 개구리가 한 집에서 형제로 살아가니, 참으로 장한 일입니다. 아침마다 붉은 해는 동쪽에서 비추고 밤마다 둥근 달은 서쪽에 떠 있으니, 시냇물은 노래하고 산위의 바위들은 덩실덩실 춤추며, 환희에 넘쳐 있는 우주를 찬미합니다.
봄이 되면 붉은 꽃은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가을이면 기러기 소리 좋은 풍악을 연주합니다. 여름의 푸른 숲 깊은 곳에서는 황금빛 꾀꼬리 목소리를 뽐내이며, 겨울이면 펄펄 날리는 눈보라의 꽃송이가 우주를 뒤덮으니, 앞뒤에서 정답게 손잡고 가는 거룩한 본래 부처님들 지극히 만족해합니다.(중략)
부처는 공자의 아버지요 공자는 부처의 아버지이며, 노자 속에 예수 있고 예수 속에 노자 있습니다. 서로가 부모 형제되어 일체가 융화하여 시비장단(是非長短)이 떨어졌으니, 아무리 싸우려 하여도 싸울 수 없습니다. 조그마한 오물(汚物)에서 무한한 광명이 일어나니 크나큰 우주를 다 비추고도 남습니다. 현미경이라야 볼 수 있는 극미소(極微小)한 먼지가 광대(廣大)한 세계를 다 삼키는데, 그 세계는 먼지의 일부분에도 다 차지 않습니다.
여기에서는 국토나 인종과 피부 색깔의 구분도 없이 오직 세세탕탕(洗洗湯湯)한 불국토(佛國土)가 있을 뿐이니, 흑백시비(黑白是非)와 선악투쟁(善惡鬪爭)은 어젯밤 꿈 속의 일들입니다.
어허! 좋을시고 본래불(本來佛)의 우리나라 영원에서 영원이 다하도록 영광이 충만하리로다. 마른 나무 꽃이 피고 무쇠말이 소리치니 천지가 진동하는데 보리밭의 종달새는 봄소식을 자랑합니다.
1992년법어 난타가 피운 일잔(一盞)의 기름등은 오늘도 타오르고 있습니다. 우리들이피운 과거의 등불도 오늘도 밝게 빛나고 미래에도 빛날 것 입니다.
허공보다 넓고 바다보다 깊으며 청정무구한 우리들의 마음속에 타오르는 등불은 삼라만상을 밝게 비추니 칠흑 같은 어둠은 사라지고 환희의 세계가 열리고 있습니다. 만문억호(萬問億戶)에 걸린 연등이 너울너울 춤추고 호접(胡蝶)은 꽃밭으로 달려가는데 꾀꼬리 풍악이 속진(俗塵)을 녹입니다. 생일 맞은 부처님보다 뭇중생이 더욱 즐겁습니다.
본래 부처님이 중생 위해 사바에 오셨으니 중생이 즐거워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요, 부처님도 중생으로 와서 부처되었으니 오늘은 중생들의 생일입니다. 이는 곧 중생이 부처라는 말이요, 천지일근 만물일체(天地一根 萬物一體)로서 일체중생은 평등하고 존귀한 것입니다. 일체가 평등하면 대보살이 항아리 속에 앉아 있어도 바람탄 배가 만리창파를 헤쳐가듯 평화와 자유가 공존하는 세상이 열릴 것입니다.
8만대장경 속의 부처님 말씀 전체가 평등 평화 그리고 자유가 그 요체입니다. 허망한 꿈 속에 꿈틀거리는 개체의 욕망과 거짓의 먼지를 털어 버리고 너와 내가 형제가 되어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도 재물이 있는 사람도 없는 사람도 권력이 있는 사람도 없는 사람도 사월이라 초파일 우리들의 생일을 맞이하여 모두가 감로수에 흠뻑 젖어봅시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석가모니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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