ᄉ~ㅇ(시옷~이응)

십여시(十如是)

근와(槿瓦) 2018. 2. 18. 00:21

십여시(十如是)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법화경방편품에오직 만이 諸法實相을 사무쳐 남김 없이 다 아신다. 이른 바 如是相 · 如是性 · 如是體 · 如是力 · 如是作 · 如是因 · 如是緣 · 如是果 · 如是報 · 如是本末究竟 이라고 한데 기초하여 모든 존재(諸法)의 있는 그대로의 실다운 모습(實相)을 이 10종의 如是로서 파악하려 한 것. 특히 이 십여시는 천태종의 一念三千敎義에 근거하는 중요한 것으로, 智顗의 스승인 慧思는 이 글을 <>로 끊어서 十如로 읽으며, 혹은 이것을 十如實相 · 十如境이라고도 부르고 줄여서 十如라고도 한다.

 

또 이 經文은 법화경의 要義開會의 사상을 요약해서 나타낸 것이므로 略開三顯一 · 略法華라고 일컫기도 한다. 智顗 이전의 諸師는 이 句文을 혹 단지 지혜의 작용으로만 해석하고 혹은 十力으로 설명하기도 하며 혹은 또 三乘法의 내용을 밝힌 것으로 푸는 등 구구한 바 있었다. 智顗는 그 모든 해석을 불가하다고 보고 이 십여시는 · 依報 · 正報 등 모든 것이 含攝되어 (現象)(本體)가 상호 一體化된 것으로 별개의 것이 아니라고 보았으며, ()(眞實)融合하여 一如임을 나타낸 것이라고 했다. 智顗는 이 십여시의 深旨玄義 · 文句 · 止觀 · 別行玄四書에 기술했으며, 그 중에도 특히 玄義止觀에서 십여시의 相貌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여기에 通解別解2종이 있다

 

別解에서는 4로 나누었으니, 4류란 四趣(止觀에서는 四途라 함. 곧 지옥 · 아귀 · 축생 · 수라) · 二乘과 보살 · 불을 일컫는다.(지관에서는 보살과 불을 따로 해석하여 5류로 하고 있다). 이 가운데 文句에서는   · · 二智를 해석하기 때문에 玄義 · 止觀과 그 뜻이 다르게 된다. 십여시는 通解가 근본으로 通解를 잘 이해하면 別解4妙義는 따라서 통하게 되므로 여기서는 通解의 입장에서 해석하기로 한다.

 

십여시 가운데,

相狀 外的 형상 · 모습을 가리키며,

不改 · 不變의 뜻이니 내적인 本性,

을 속성으로 가지고 있는 주체를,

에 구족해 있는 잠재적 능력을,

은 그것이 顯現하여 동작으로 나타난 것,

은 직접 원인,

은 간접 원인,

으로부터 생긴 결과,

果報라는 뜻이니,

이상의  · · 의 갚음으로 후세의 果報, 本末究竟등은 ,  곧 이상의 如是相으로부터 내지 如是報에 이르기까지의 歸趣는 결국 동일한 實相에 지나지 않음을 가리켜 本末究竟等이라 한 것이다. 別解四類와 관련하여 현실에 비유하여 풀면 다음과 같다.

 

(1) 相如是. 相以據外覽而可別이라 하여, 선악 등의 外覽而可別이라고 했듯이 선악 등의 행위가 밖으로 나타난 . 그렇지만 밖으로 나타난 가운데도 人相과 같이 볼 수 없는 경우도 있다. 高麗의 유명한 觀相家가 중국의 에서 光源씨의 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故事와 같은 경우가 그것이다. 에는 옛날에 孫劉을 나타내고 曹公을 숨김에 보는 사람이 큰 소리로 울었다고 했다. 이것을 별해사류로 풀면, 먼저 지옥의 십여시에서 相如是는 악인에게는 죽은 후에 지옥에 떨어지기 전에 이 그렇게 나타난다고 한다. 이것을 범부는 비록 알아보지 못하지만 불 · 보살은 본다고 한다.

(2) 性如是. 性以據內自分不現이라고 하여 남의 눈에 보이지 않는 生得의 습관 · 소질 등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 것을 말한다. 또 나무에는 불의 성질이 있어서 나무를 비비어 마찰하면 불이 일어나는 등이 그것. 이 성여시는 玄義止觀의 해석에 약간의 다른 데가 있다. 곧 현의에는 薰習成性(습관을 길들이면 성품이 된다)이라 했고, 지관에는 理性佛性이라고 했다. 별해사류로 풀면, 오로지 악만을 행한 사람은 그 습관이 태어나서부터의 성격으로 되어 좀처럼 고칠 수 없는 것을 가리킨다고 했다.

(3) 體如是. 人身總體에 비유된다. 예컨대 지옥에 떨어져서 옥졸에게 질책을 당하여 荒惡身心가 그것.

(4) 力如是. 을 들이면 이 생김을 말한다. 열반경에담을 쌓고자 하면 갠흙을 가지고 할 것이요, 초상을 그리려 하거든 채색을 가지고 할 것이며 풀이나 나무로 할 것이 아니다.지옥에서 칼산에 오름으로 몸이 찢어지는 것과 같은 力用을 일컫는다.

(5) 作如是 · · 意 三業으로 하는 바를 所作이라 한다. 별해사류의 지옥계의 그것을 말하면, 지옥에 떨어질 악업을 짓는 것이 그것이다.

(6) 因如是. 전에 익힌 습관이 지금의 종자가 됨을 말함. 善人을 익혀서 더욱 하게 되고, 惡人을 익혀서 더욱 하게 됨과 같다. 곧 과거에 을 익힌 것.

(7) 緣如是. 의 차이는 곡식의 종자가 이 되고  · · · 이 됨과 같다. 이것을 新譯에서는 異熟因이라 한다. 지옥 십여시에서는 악행을 하도록 돕는 助緣을 말한다.

(8) 果如是. 일찌기 익힌 를 불러 오는 것. 新譯에서는 等流果라 하며 지옥의 십여시로는 과거에 익힌 惡事가 지옥의 몸을 받게 되는 것으로, 習因 習果過現二世 · 現未二世를 걸쳐서 해당되기도 하고 또 현재 일체의 因果에 공통하게 적용되기도 한다.

(9) 報如是. 報果爲報라 하여 금생의 선악의 業因의 갚음으로 내생에 苦樂를 받는 것을 일컫는다. 新譯家에서는 이것을 異熟果라고 한다. 報因에 의해서 報果를 이루는 것은 반드시 一世 이상을 지나지 않으면 안된다. 지옥의 십여시에 견주어 말하면, 불에 타는 구리 기둥을 안거나 뜨거운 쇠 상에 앉고 누워야 하는 등의 에 해당된다.

(10) 本末究竟等.初相爲本, 後報爲末, 所歸趣處爲究竟等이라 하며 앞의 九如是는 다  成就過程이고,  究竟等임을 밝힌 것이다. 앞의 九事가 마치는 바는 구경적으로 평등한 이치에 바탕하고 있으므로 이라 한 것이다. 이것을 지옥의 십여시로 보면, 相如是報如是도 다 이어서 지옥에 떨어지기 바로 전의 이나 끓는 구리쇠를 마시는 도 결국은 다 임을 뜻한다. 또 악의 과보가 본래 性相 가운데 거짓 있었고 본래의 性相이 악의 과보 가운데 있으므로 다 같이 이며, 또 지옥의 理體佛果와 다를 것이 없고 불과가 그대로 지옥의 理體여서 모두가 中道法界 아닌 것이 없으므로 中道가 두루하다는 뜻으로, 동일한 中道라는 뜻으로 이라 한 것으로 된다. 따라서 십여시에는 반드시 의 원리가 함께 하게 된다. 이기 때문에 本末이 다 眞空이고, 이기 때문에 本末이 다 妙假이며 이기 때문에 本末이 다 中道法界이다. 究竟等가 곧 實相이니 그러므로 결국 앞의 九如是諸法으로서 本末究竟等實相이므로 諸法實相의 넉자를 해석하기 위해 이 十如是한 것이라 하겠다.

 

참고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ᄉ~ㅇ(시옷~이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법(五法)   (0) 2018.02.18
여여(如如)  (0) 2018.02.18
삼처아란야(三處阿蘭若)  (0) 2018.02.17
선근(善根)  (0) 2018.02.17
수연(隨緣)   (0) 2018.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