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적경-2205-441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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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부루나야, 받아들이는 모양은 모두 삿된 소견[邪見]이라 하느니라. 보살은 모든 모양을 없애고 자비로운 마음[慈心]을 닦고 쌓나니, 중생이 허물어지기[敗壞] 때문에 모양 역시 허물어지고 모양이 허물어지기 때문에 일 역시 허물어지며 일이 허물어지기 때문에 소견 역시 허물어지느니라. 보살은 그 때에 모든 법을 허물어뜨리고 자비를 닦고 쌓나니, 이와 같은 자비를 얻을 수 없는 자비라 하고 이와 같은 얻을 수 없는 자비를 법의 자비[法慈]라 하며 이와 같은 법의 자비를 부처님의 자비[佛慈]라 하느니라.
부루나야, 무엇을 부처님의 자비라 하는가 하면, 짓는 것도 없고 무너뜨리는 것도 없으므로 이것을 부처님의 자비라 하느니라.
또 부루나야, 사실대로 온갖 모든 법을 통달하면 이것을 부처님의 자비라 하느니라.”
“세존이시여, 어떻게 사실대로 온갖 모든 법을 통달한다고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부루나에게 말씀하셨다.
“통달할 바란 이것이 법이라고도 말하지 않고 법이 아니라고도 말하지 않나니, 왜냐하면 부루나야, 만일 법이 있다고 하면 곧 그것은 법이 아니요 만일 법이 없다고 하면 법이 아님이 없기 때문이니, 곧 그 안에는 쓸모 없는 이론도 없으며 만일 쓸모 없는 이론이 없다면 그것을 열반이라 하느니라. 너는 극히 멀고 극히 가까움을 자세히 관찰해야 하느니라.”
부루나가 말하였다.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나이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이치에는 방향도 없고 처소도 없고 안도 없고 바깥도 없기 때문이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느니라. 부루나야, 법에 대하여 수(數)를 짓는 것이니라.”
“세존이시여, 어떤 법에 대하여 수를 짓는 것입니까?”
“부루나야, 마치 모든 범부들이 집착하는 법 같은 데서는 여래는 얻지도 않고 닦지도 않으며 깨닫지도 않고 통달하지도 않나니, 이러한 법에서 수를 짓는 것이니라. 부루나야, 이 모든 법에서의 수(數)는 법을 분별하기 위해서가 아니니라. 부루나야, 이제 너를 위하여 말하리니, 이와 같은 첫 번째의 적멸(寂滅)한 법은 부처님의 도를 잘 포섭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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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루나야, 장차 오는 세상에 어떤 사람이 기꺼이 세간의 이익에 나아가면서 만일 이 경을 듣는다면 즐거이 들어 받지 않으리라.
부루나야, 나의 이 보리(菩提)는 너희들이 다만 음성과 장구(章句)만으로써 조금 알 뿐이니라. 그 안의 이치는 너희가 알지 못할 것이며 이 이치야말로 깊고 멀어서 말로는 설명할 수가 없나니, 오직 지혜가 있는 이만이 속으로 알 수 있을 뿐이니라.”
그 때에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이치를 잘 모르는 이면
불법을 듣고 근심하며 괴로워하나
만일 이치를 잘 아는 이면
여래를 스승으로 삼게 되느니라.
어떤 사람이 부처님을 스승으로 삼으면
그는 곧 열반을 구하게 되고
다투거나 송사하는 마음이 없이
바르게 법을 헤아리게 되느니라.
이 안에선 법의 생김이 없고
또한 법의 없어짐도 없으며
생김도 없고 없어짐도 없는
이것이 모든 법의 참 모습[寶相]이니라.
만일 법에 생김이 없다면
곧 짓거나 일으킴이 없으며
옳고 그름과 하나와 다름이
이 법 안에서는 모두 없느니라.
이것을 열반이라 이름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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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안에는 없어지는 것이 없으며
만일 극히 멀고 가깝다 하면
이 두 가지는 다 같이 공이니라.
만일 공임을 알 수 있으면
곧 열반을 안다고 하나니
만일 열반을 아는 이라면
그를 바로 나의 제자라 하느니라.
“부루나야, 보살에게 이 네 가지의 법이 있으면 곧 법을 많이 들어 앎을 닦고 쌓아서 마치 큰 바다와 같이 다할 수 없게 되며 항상 법을 많이 들어 앎의 보배광을 닦고 쌓아 모든 법에서 결정된 이치를 얻고 모든 언어에서 그 장구를 환히 잘 알게 되느니라.”
그 때에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항상 법을 많이 들어 앎을 구하고자 함은
모든 부처님께서 찬탄한 바이며
반드시 진실한 이치를 얻나니
그러므로 마치 큰 바다와 같으니라.
하나의 글자 가운데서
그리고 한 구절의 이치에 대하여
천만억 겁 동안에
설명한다 하여도 다할 수 없느니라.
그러므로 바른 법을 구해야 하고
구한 뒤엔 바르게 생각하면서
법의 모양을 탐하거나 취하지 말며
부처님께서 찬탄한 바도 탐하지 않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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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여래를 기억하여 염(念)하며
그리고 바른 법을 염하면서도
탐내거나 다투는 마음으로써
길잡이를 구하지 않을 것이니라.
언제나 모든 중생에 대하여
자비로운 마음을 수행하면서도
중생들에게 집착하지도 않고
온갖 법을 흩어 없애느니라.
큰 이름 가진 보살은
이와 같은 법을 닦고 익히어
빨리 다라니(陀羅尼)를 얻게 되나니
법을 많이 들어 앎도 이로부터 생기느니라.
마치 허공의 성품이
더함도 없고 덜함도 없듯이
법의 성품도 또한 그와 같아서
더함도 없고 덜함도 없느니라.
나는 지혜의 힘으로써
한량없는 겁 동안 법을 설하고
설한 바가 무앙수(無央數)라 하여도
오히려 또한 설했다고 하지 못하느니라.
모든 중생들의 성품을 다하여
모두가 사람의 몸이 되게 하고
두루 다 함께 출가하여서
법을 많이 들어 앎은 아난(阿難)과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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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라니의 보살이
이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천억겁 동안 설법한다 하여도
그 지혜는 오히려 다하지 않느니라.
부처님의 지혜는 견줄 데 없어
허공과 같이 한량없으며
허공이 나거나 일어남이 없듯이
지혜 또한 그와 같으니라.
마치 용(龍)이 물을 취하지 않았어도
큰물을 비 내리게 하며
그 물은 머무를 곳이 없으면서도
비를 내리게 함이 끝없듯이
보살도 또한 그와 같아서
이 다라니를 얻는 것이며
모든 법은 머무는 곳이 없으면서도
이 반연으로 하는 말은 끝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법을 많이 들어 앎을 구해야 하고
구한 뒤에는 바르게 생각하며
법의 인연으로 부처님을 염(念)해야 하나니
법을 많이 들어 앎도 이로부터 생기느니라.
자비로 두루 중생을 덮어 주어
중생의 모양[相]을 흩어 없애고
모든 법의 모양도 없앨 것이니
법을 많이 들어 앎도 이로부터 생기느니라.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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