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안(公案,話頭)이란?

구자불성(狗子佛性)

근와(槿瓦) 2017. 12. 21. 00:04

구자불성(狗子佛性)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개에게 佛性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有無에 사로잡히는 견해를 公案. 趙州從諗에 의해 시작되다. 禪宗에서는 古來로 극히 통과하기 어려운 難問이라 했다. 古德은 이 話頭를 의지해 많은 苦楚를 극복하면서 공부를 하였다.

 

참고

() : (). 견공(犬公).(다음,한국어)

 

불성(佛性) : 범어 buddha-dhatu. 또는 gotra의 번역으로 如來性, 覺性이라고도 한다. 불타의 本性이란 뜻. 佛陀가 될 가능성 · 因性 · 종자, 혹은 · 에 의하여 변하는 일이 없이 본래 갖추어진 性品. 如來藏의 다른 명칭이라고도 한다.

北本 涅槃經 卷九에는 이마의 구슬(額珠)에 비유(力士가 씨름을 하다가 眉間에 있던 구슬이 피부속에 들어 박힌 것을 잃어버린 줄로 잘못 알고 있다가 나중에 의사가 이 사실을 알려 줌으로 구슬을 잃지 않았음을 알게 되는 비유. 또는 거울에 비추어 봄으로 귀중한 보배구슬을 잃어버리지 않고 있음을 알게 되는 비유)를 써서 중생들이 본래부터 佛性이 있지만(一切衆生悉有佛性) 범부들은 번뇌에 뒤덮여서 알지 못하고 번뇌를 끊어야 불성이 나타난다고 한다.

阿含이나 小乘에서는, · 보살 이외의 成佛을 말하지 않으므로 佛性은 거의 문제로 삼지 않았다. 그러나 世親佛性論卷一에 의하면 有部 등에서는 중생에게는 先天的性得佛性은 없지만, 後天的으로 修行을 해서 얻는 修得佛性은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 決定無佛性 · 有無不定 · 決定有佛性의 세 종류로 중생을 나누며, 이에 대해서 分別部에서는 佛性으로 하고, 모든 중생은 을 바탕으로 하여 에서 생긴 것이므로 다 그 本性으로서 佛性이 모두 있다고 전한다.

佛性論卷一에는 一切衆生悉有佛性이라고 말씀한 것은 불타가 중생으로 하여금 나 자신은 용렬하다고 생각하는 마음을 버리게 하는 등의 다섯 가지 과실을 없애고 부지런히 佛道에 정진하는 마음을 일으키도록 하는 등 다섯 가지의 功德을 베풀어 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同書卷二에는 佛性自性住佛性(凡夫에서는 오직 로서 있는 것) · 引出佛性(初發心으로부터 成佛직전의 金剛心에 이르기까지 점차로 修行해서 나타나는 것) · 至得果佛性(佛果에 이르러서 원만하게 나타나는 것)三位로 나누고 있다.

중국 · 한국 · 일본의 諸宗에서는 각기 여러 가지 이 있어, 서로 論雜했다.

(1) 天台宗에서는 正因佛性(모든 것에 본래 갖추어 있는 三諦 三千) · 了因佛性(이치에 비추어 나타나는 지혜) · 因緣佛性(지혜를 일으키는 이 되는 모든 善行)正了緣三因佛性을 세워 이 중 前一(선천적), 後二(후천적)이긴 하지만, 性修不二이므로 그대로 융합되어서, 三佛性非縱非橫(前後하여 繼起하는 것도 아니고 並列同時的인 것도 아니다)이라고 한다. 또 이 三因佛性果性(菩提智慧) · 果果性(涅槃斷德)을 더하여 五佛性이라고 한다. 因果不離이므로 因位 · 果位가 서로 갖추어 합쳐진다고 한다.

(2) 華嚴宗에서는 중생의 佛性因果性相의 모든 것을 원만하게 갖추었다고 하고 또 有情이 갖추고 있는 成佛의 가능성을 佛性 · 覺性이라고 하고, 非情이 가지고 있는 眞如法性이라고 구별하여 成佛有情에 국한한다고 하기도 한다.

(3) 眞言宗에서는 삼라만상이 그대로 大日如來法身이라고 하여, 그런 의미에서 悉有佛性을 말한다.

(4) 三論宗에서는 佛性에 관한 여러 가지 이 있어서 因果를 따로 하는 것을 迷執이라고 하여 하고, 非因非果無所得 中道佛性이라 했다.

(5) 法相宗에서는 理佛性(모든 것의 本體眞如) · 行佛性(사람마다 阿賴耶識 가운데 숨겨져 있는 成佛이 되는 無漏種子)二佛性說하고, 理佛性은 있어도 行佛性이 없으면 成佛할 수 없다고 하여, 菩薩定姓不定姓이라야만 行佛性이 있다고 했다.

(6) 禪宗에서는 중생 본래의 면목을 깨닫는 것으로, 佛性有無 등의 문제에 구애되는 것을 否定하는, 狗子佛性 등의 公案이 있다.

(7) 淨土敎에서는, 理佛性을 인정하는 주장과 否定하는 주장이 있는 등 종종의 이 있는데, 往生彌陀本願力에 의한다고 하여 淨土宗에서는 이런 의미로 如來가 중생에게 준 信心佛性으로 하고 있다.(信心佛性)

諸經典에서는 佛種·佛種性 등의 말이 있고, 成佛이 되는 것을 의미하지만 그 내용은 하는 경우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다. 중생이 본래 갖추고 있는 佛性을 말하는 때도 있고 번뇌 · 보리심 · 보살의 수행 · 稱名 등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

 

유무(有無) : 있음과 없음.

 

공안(公案) : 公府案牘의 약칭. 선종에서 修學人에게 깨달음을 열어주기 위해 주는 문제. 곧 예로부터 祖師가 보여온 언어 또는 그 행위의 宗要를 모아 참선하는 사람들에게 공부의 과제로 주었다. 부처와 조사가 그 깨달음을 열어 진리를 나타내 보여준 古則은 수도자에게 있어서 가장 존엄한 것이므로 公案이라 한다. 禪宗宗師心地를 밝게 깨달은 機緣 또는 學人을 인도하던 사실을 가지고 후세의 공부하는 규범으로 삼았다. 공안이란 古德禪師言句이다. 그의 言句에는 일종의 殺氣가 있어서 參學者들은 그와 악전고투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공안은 일종의 문제이기 때문에 이것을 풀어야 하는데, 그것이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身命을 내놓고 공부해도 되거나 말거나 하기 때문에 殺氣가 있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의 信根에 따라서는 直下에 성취할 수도 있는, 다만 그 사람의 근기에 달려 있을 뿐이다. 信根이란 맹세코 꼭 이루어 보겠다고 하는 큰 결심을 말한다. 공안에는 千七百則의 화두가 있으나 우선 趙州無字가 가장 유명하다. 千七百則의 원리는 모두 같으므로 굳이 前後 순서를 가릴 것 없겠으나 처음에 이 無字를 보이는 이유가 있다. 그러나 이것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다만 參學者가 스스로 체득하고 인식해야만 알 수 있을 따름이다. 無字의 공안은 無門關이란 四十八則으로 엮어진 古德들의 言句중 제 1칙에 쓰여 있다. 즉 그것은 어느 때 조주선사에게 이 묻기를 개에게도 佛性이 있습니까? 없읍니까?이때 조주가 대답하기를 없다()라고 했다. 그런데 사실상 없다는 말은 無字를 풀이한 말이다. 조주선사는 풀이로 말한 것이 아니라 !라고 대답했던 것이다. 공안을 볼 때 해석이나 또는 이론으로는 되지 않는다. 화엄경에 일체 중생이 모두 여래의 지혜 덕상을 가지고 있다.고 설했고, 열반경에도 일체 중생이 모두 불성이 있다고 했다. 중생이라고 했으니 을 가진 것에 한한 것처럼 생각되나, 부처님께서는 삼라만상 어떤 물체를 막론하고 불성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어떤 것에도 모두 불성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개에게도 불성이 있느냐고 물었다. 조주는 라고 대답했다. 라는 글자는 아무 것도 없다는 의미지만, 조주의 는 그런 의미가 아니다. 여기를 뚫어내야 한다. 또 어느 때 어떤 이 조주선사에게 똑같이 물었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읍니까?이때는 라고 대답했다. 그러면 똑같은 물음에 한쪽에는 라고 대답하고 다른 한쪽에는 라고 대답했으니, 이것은 문제의 해답으로는 큰 모순이 있다고 생각된다. 가령 이것을 풀이로 대답한 것이라면, 라고도 하고 라고도 하여 兩舌을 내 휘두른 조주는 정신빠진 사람이 아닐 수 없다이런 점으로 보아  」「하는 兩端의 차별 문제가 아니다. 無字가 결코 有無의 상대의 無字가 아니라는 것에 유의하여야 한다. 古來로 수많은 祖師와 영웅호걸들이 모두 이 無字를 터득하느라고 진땀을 흘렸던 것이다. 결코 학문적 이론이나 분별지식으로서는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들이 오늘날까지 배운 지식을 가지고 생각해서 해결하려고 해서는 절대 안된다. 도리어 머리 속을 텅 비워야 하며, 우리들이 배워온 지식을 모두 버려야 한다. 가장 주의할 것은 모든 것 즉 생사를 초월해야 하는데, 이것을 절대 멀리서 구하지 말고, 가까이 가까이 또 가까이 끄집어 내라. 사실은 너무 가깝기 때문에 어렵다. 한치 두치의 거리에 있다면 도리어 쉬울 것인데 머리털 하나 사이 보다도 더 가깝고 너무 가깝기 때문에 도리어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속 눈썹이 눈에 제일 가깝지만 이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공안이란 公府案牘이란 뜻이다. 안독은 정부가 정한 법도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라도 굽힐 수 없고 그 정한대로 준수해야 하며, 만일 이를 범하면 처벌하는 것이 공부의 안독이다. 이런 의미에서 예로부터 禪宗의 조사들이 정한 법문을 공안이라 했다. 즉 만인이 다 통하는 不易의 법문으로서 때에 응하고 하여 자유자재로 제시하는 公法이다. 그래서 일명 이라고도 한다. 참선자들을 위한 公定의 법칙, 古德들이 인정한 理法이란 의미에서 이고, 理法에 따라 정진하면 반드시 禪旨에 이를 수 있다는 뜻에서 다시 말하면 師弟間의 문답(공안)에 따라 수행하면 반드시 의 심경에 이를 수 있다는 데서 이라고 했다圭峰廣錄山房夜話이란 古德이 도를 행한 흔적으로서 천하의 를 보이는 至理이고, 이란 古德이 보인 진리를 기록한 正文이다고 했다. 公案은 석존 때부터 시작된 것은 아니다. 후대에 와서 世尊拈花란 공안을 쓰기는 했지만 사실은 달마때부터 쓰인 것이다. 곧 달마가 526년에 東土 양무제와 나눈 문답이 공안으로 채택되고 있으며, 2慧可와 달마사이의 문답도 역시 공안으로 쓰인다. 그러나 公認되기는 黃檗선사 때로 보고 있다. 黙照禪看話禪으로 구별한다. 묵조선이 전혀 공안을 쓰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간화선처럼 전용하지 않는 점에서 논쟁도 있었고 피차간 비난도 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결국은 깨달음을 목적으로 하므로 수단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 공안은 문답을 요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그 문답이라야 지적인 것도 아니고 논리적인 것도 아니고, 설명도 아니고 해석도 아니고 교훈도 아니다. 靜慮, 思惟修, 禪那라고도 한다. 이 말은 고요히 생각한다는 뜻인데 무엇을 고요히 생각하느냐 하면 공안을 가지고 그 공안에 마음을 집중시키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공안을 가지고 그것을 일심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것이기 때문에 공안이란 말을 붙이게 된 것이다. 禪宗宗旨는 실지로 수행하는 것이다. 부질없는 이론, 어떤 철학적 이야기 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실지로 수행하여 자기의 자성을 硏明하는 宗旨그러므로 공안을 설명하는 것은 무리라기 보다 도리어 본뜻과 어긋나는 일이다. 공안은 깨달음에 이르는 수단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 깨침을 열려면 그 공안을 써서 직접 수행을 진행해 나가야 하는데, 그 공안에는 1,701의 공안이 있다. 그 숫자는 景德傳燈錄1,701인의 行履를 수록했기 때문에 그 숫자에서 나온 말인듯 하다. 사실 공안은 우리 일상생활의 전부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공안은 곧 의문인데, 우리들 생활은 전부가 의문 아닌 것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無字 · 是甚麽 · 麻三斤 등이 초보자에게 쓰이는 공안인데, 쉽게 말하면 모두 일종의 문제인 것이다. 공안을 쓰는 것은 悟道를 열자는 것이 그 목적이다깨치기위해 공안을 쓰고, 공안을 써서 깨침을 열자는 것이므로 이를 公案禪이라고도 하고, 또는 깨침豫期하여 수행하므로 이를 待悟禪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공안은 일명 話頭라고도 한다. 화두라는 말은 말머리라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공안이란 말보다도 話頭로 통하고 있다. 공안은 쉬운 것으로부터 어려운데 이르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梯子禪이라고도 하고, 雁木悟라고도 한다. 마치 기러기가 줄지어 나는 것처럼 다음 순서를 쫓아 수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趙州無字라든가, 庭前栢樹子라든가, 麻三斤등은 간단한 공안 중의 하나이지만, 그 전개되는 줄거리가 장황하고 등장인물도 수백수천의 사람을 헤아리는 공안이 많다. 그래서 이런 것을 가리켜 文字禪이라고 한다. 사실은 그 줄거리가 아무리 길어도 보는 곳은 하나다. 그래서 話頭라고 말한 것이다. 화두란 말은 실마리라는 뜻이니, 결국 執念하는 곳은 하나다. 선가구감에도 대체 수행인은 모름지기 活句하고 死句하지 말라고 하였다. 이 말은 수백 수천 으로 엮어졌다 해도 그의 觀點은 하나라는 것을 뜻한 것이다. 한 공안 즉 조주의 無字 하나를 깨치면 물론 견성한 것인데, 그 후에 1,700여 공안을 본다는 것은 그 조사 그 조사들의 行履를 본받는 것이며, 이것을 깨친 후의 수행이라고 한다趙州無字 하나로 깨쳤다면 이것은 뼈가 되고, 깨친 후의 수행은 살이 되는 셈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모든 스님들이 선지식을 찾아 行脚했다는 것이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公案이라면 다만 선종의 조사스님네가 깨우치기위해 수행자에게 주어서 공부하게 하는 한 문제로만 생각할 수도 있다. 공안으로서 중요한 것은 碧巖錄百則, 從容錄百則, 葛藤集上下272, 無門關48외에 臨濟錄 등이 있다. 선종의 어록에 나타나 있는 佛祖機緣問答商量이 근본 공안으로서, 그를 그대로 써서 修禪者가 참구하는 것으로만 알 것이 아니라, 그 보다도 더 깊은 의미가 있다. 1,700의 공안 모두가 一心異名이다. 어떤 때는 를 가리키고, 어떤 때는 을 쓰고 또는 을 보이고, 어떤 때는 體用一句에 표현한다. 이처럼 무량무변하다. 그러나 그 가르치는 바는 하나다. 이를 本地風光이라고도 하고, 本來面目이라고도 한다. 一心이란 우리들 개개인의 한 마음을 가르키는 것이 아니고, 적어도 우주간의 광대무변한 一心을 말한다. 1,700 공안은 盡虛空遍塞하여 間髮의 여지가 없고, 萬里一條라고 識得하여 迷悟得失과 관계없는 본래 있는 一物이니 취할 것도 없고 버릴 것도 없다. 1,700 공안마다 진리가 각각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즉 원리원칙은 하나다. 다만  · · · 用相에 있어서 이름이 서로 다를 뿐이다

 

조주(趙州) : (778~897) 중국 당나라 임제종 승려. 속성은 (). 이름은 從諗(). 당나라 曹州 사람. 趙州의 관음원에 있었으므로 조주라 함. 南泉普願의 법제자. 어려서 조주의 ()通院에서 출가하였으나 는 받지 않고 池陽에 가서 南泉을 찾으니, 마침 누워 있다가 어느 곳에서 왔는가?趙州 瑞像院에서 왔습니다.南泉 서상을 보았는가?」「서상은 보지 못하고 누워있는 부처를 보았습니다.」「네가 有主 사미냐, 無主 사미냐?」「有主 사미입니다.」「가 어데 있느냐?趙州 동짓달이 매우 춥사온데 체후 萬福하시나이까?南泉이 기특하게 생각하고 入室을 허락하였다. 嵩嶽(숭악)瑠璃壇에 가서 를 받고 南泉에게 돌아왔다. 뒤에 대중이 청하여 조주 관음원에 있게 하니, 이곳을 東院이라고도 하며, 교화가 크게 떨치다가 당나라 건녕 4120세에 入寂하다. 시호는 眞際大師. (傳燈錄 十)

 

선종(禪宗) : 佛心宗이라고도 함. 달마대사가 인도로부터 와서 전한 것. 敎外別傳綱格으로 하고, 坐禪으로써 內觀外省하여 自性徹見하고, 自證三昧妙境을 요달함을 宗要로 하는 宗派. 또한 禪宗이란 부처님의 敎說所依로 삼는 宗派敎宗이라 함에 대하여 坐禪을 닦는 종지라는 뜻이다. 禪宗은 석존에게 正法을 유촉받은 迦葉尊者로부터 28祖 菩提達磨가 있고, 28菩提達磨가 중국에 건너와서 慧可(487~593)에게 을 전함으로부터 東土의 제5弘忍(602~675)에 이르러 그 門下에서 慧能(638~713)을 제6로 하는 南宗, 神秀(?~706)를 제6로 하는 北宗으로 나누어졌다. 그러나 神秀北宗은 오래지 않아 이 끊어지고 慧能南宗만이 57으로 번성하였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新羅 선덕여왕 5(784) 당나라의 西堂智藏師에게서 을 받아온 道義禪師初祖로 하는 迦智山門을 비롯하여, 역시 智藏을 받은 洪陟初祖로 하는 實相山門鹽官 齋安에게서 을 받아온 梵日初祖로 하는 闍崛山門, 智藏에게서 을 받은 惠哲初祖로 하는 桐裏山門, 麻谷 寶徹을 받은 無染初祖로 하는 聖住山門, 南泉 普願을 받은 首允初祖로 하는 師子山門, 禪宗慧隱을 받은 道憲初祖로 하는 曦陽山門, 章敬 懷暉을 받은 玄昱初祖로 하는 鳳林山門, 新羅 雲居 道膺을 받은 利嚴初祖로 하는 須彌山門, 九山門이 성립되어 번성하였다.

 

고덕(古德) : 古聖先德의 약칭. 예부터 전해오는 諸佛諸祖를 가리킴. 옛날의 이 높은 승려의 존칭.

 

화두(話頭) : 또는 公案·古則이라 함. 선종의 조사들이 정한 법문을 화두 또는 공안이라 했다. 즉 모든 사람이 다 통하는 不易의 법문으로서 때에 응하고 하여 자유자재로 제시하는 公法이다. 그래서 일명 이라고도 함. 참선자들을 위한 公定의 법칙, 古德들이 인정한 理法이란 의미에서 이고, 理法에 따라 정진하면 반드시 禪旨에 이를 수 있다는 뜻에서, 다시 말해 스승과 제자간에 문답에 따라 수행하면 반드시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데서 이라고 했다. 공안에는 천 칠백여 화두가 있으나 우선 趙州無字가 가장 유명하여 누구에게든지 처음 보이는 것이 無字 화두다. 천 칠백 화두 중에서 처음에 이 無字를 보이는 것은 이유가 있으나 이것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다만 參學者가 스스로 體認해서라야만 과연 그렇구나 할 따름이다. 無字의 화두는 無門關이란 48칙으로 엮어진 古德들의 言句 중 제1칙에 쓰여 있다. 즉 그것은 어느 때 조주선사에게 이 묻기를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이때 조주가 대답하기를 없다()라고 했다. 그렁데 사실상 없다는 말은 無字를 풀이한 말이다. 조주선사는 풀이로 말한 것이 아니라 !라고 대답했던 것이다. 화두를 볼 때 해석이나 또는 이론으로는 되지 않는다. 화엄경에 일체 중생이 모두 여래의 지혜 덕상을 가지고 있다고 했고, 열반경에도 일체 중생이 모두 불성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어떤 것에도 모두 불성이 있다는 것을 들고 나와 개에게도 불성이 있느냐고 물었다. 조주선사는 라고 대답했다. 無字는 아무 것도 없다는 의미지만, 조주의 는 그런 의미가 아니다. 여기를 뚫어내는 문제가 화두이다. 라 하면 매우 가벼워 보이지만, 선종에서는 단순한 이라는 의미가 아니고, 宗旨를 표현하기 위한 말밖의 말이므로 보통 사용하는 말과는 그 뜻이 다르다. 즉 조주스님의 栢樹子라든가, 丹霞화상의 燒佛등은 한자로써 화두의 뜻을 지닌다. 頭字에는 큰 의미가 없다.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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