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안(公案,話頭)이란?

동산마삼근(洞山麻三斤)

근와(槿瓦) 2017. 9. 30. 03:53

동산마삼근(洞山麻三斤)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禪宗公案. 어느 날 한 洞山화상에게 찾아와 부처란 어떤 겁니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동산화상은 3근일세하고 대답하였다.

 

참고

동산(洞山) : 중국 江西省에 있는 산. 당나라 말기에 良价선사가 이 곳에서 크게 禪風을 떨치다. 그 뒤 曹山本寂이 와서 이 종지를 받고 曹山에 돌아가서 洞山의 종풍을 펼치었으므로, 宗風曹洞宗이라 한다. 良价의 뒤에는 首全 · 師處 · 道延 등이 뒤를 이어 법을 증득하고 오래도록 이 땅에서 선풍을 지켰다. 良价(807~869)선사를 말한다. 양개선사가 이 산에서 禪風을 크게 떨친 까닭이다.

 

선종(禪宗) : 佛心宗이라고도 함. 달마대사가 인도로부터 와서 전한 것. 敎外別傳綱格으로 하고, 坐禪으로써 內觀外省하여 自性徹見하고, 自證三昧妙境을 요달함을 宗要로 하는 宗派. 또한 禪宗이란 부처님의 敎說所依로 삼는 宗派敎宗이라 함에 대하여 坐禪을 닦는 종지라는 뜻이다. 禪宗은 석존에게 正法을 유촉받은 迦葉尊者로부터 28祖 菩提達磨가 있고, 28菩提達磨가 중국에 건너와서 慧可(487~593)에게 을 전함으로부터 東土의 제5弘忍(602~675)에 이르러 그 門下에서 慧能(638~713)을 제6로 하는 南宗, 神秀(?~706)를 제6로 하는 北宗으로 나누어졌다. 그러나 神秀北宗은 오래지 않아 이 끊어지고 慧能南宗만이 57으로 번성하였다.

 

공안(公案) : 公府案牘의 약칭. 선종에서 修學人에게 깨달음을 열어주기 위해 주는 문제. 곧 예로부터 祖師가 보여온 언어 또는 그 행위의 宗要를 모아 참선하는 사람들에게 공부의 과제로 주었다. 부처와 조사가 그 깨달음을 열어 진리를 나타내 보여준 古則은 수도자에게 있어서 가장 존엄한 것이므로 公案이라 한다. 禪宗宗師心地를 밝게 깨달은 機緣 또는 學人을 인도하던 사실을 가지고 후세의 공부하는 규범으로 삼았다. 공안이란 古德禪師言句이다. 그의 言句에는 일종의 殺氣가 있어서 參學者들은 그와 악전고투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공안은 일종의 문제이기 때문에 이것을 풀어야 하는데, 그것이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身命을 내놓고 공부해도 되거나 말거나 하기 때문에 殺氣가 있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의 信根에 따라서는 直下에 성취할 수도 있는, 다만 그 사람의 근기에 달려 있을 뿐이다. 信根이란 맹세코 꼭 이루어 보겠다고 하는 큰 결심을 말한다. 공안에는 千七百則의 화두가 있으나 우선 趙州無字가 가장 유명하다. 千七百則의 원리는 모두 같으므로 굳이 前後 순서를 가릴 것 없겠으나 처음에 이 無字를 보이는 이유가 있다. 그러나 이것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다만 參學者가 스스로 체득하고 인식해야만 알 수 있을 따름이다. 無字의 공안은 無門關이란 四十八則으로 엮어진 古德들의 言句중 제 1칙에 쓰여 있다. 즉 그것은 어느 때 조주선사에게 이 묻기를 개에게도 佛性이 있습니까? 없읍니까?이때 조주가 대답하기를 없다()라고 했다. 그런데 사실상 없다는 말은 無字를 풀이한 말이다. 조주선사는 풀이로 말한 것이 아니라 !라고 대답했던 것이다. 공안을 볼 때 해석이나 또는 이론으로는 되지 않는다. 화엄경에 일체 중생이 모두 여래의 지혜 덕상을 가지고 있다.고 설했고, 열반경에도 일체 중생이 모두 불성이 있다고 했다. 중생이라고 했으니 을 가진 것에 한한 것처럼 생각되나, 부처님께서는 삼라만상 어떤 물체를 막론하고 불성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어떤 것에도 모두 불성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개에게도 불성이 있느냐고 물었다. 조주는 라고 대답했다. 라는 글자는 아무 것도 없다는 의미지만, 조주의 는 그런 의미가 아니다. 여기를 뚫어내야 한다. 또 어느 때 어떤 이 조주선사에게 똑같이 물었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읍니까?이때는 라고 대답했다. 그러면 똑같은 물음에 한쪽에는 라고 대답하고 다른 한쪽에는 라고 대답했으니, 이것은 문제의 해답으로는 큰 모순이 있다고 생각된다. 가령 이것을 풀이로 대답한 것이라면, 라고도 하고 라고도 하여 兩舌을 내 휘두른 조주는 정신빠진 사람이 아닐 수 없다이런 점으로 보아  」「하는 兩端의 차별 문제가 아니다. 無字가 결코 有無의 상대의 無字가 아니라는 것에 유의하여야 한다. 古來로 수많은 祖師와 영웅호걸들이 모두 이 無字를 터득하느라고 진땀을 흘렸던 것이다. 결코 학문적 이론이나 분별지식으로서는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들이 오늘날까지 배운 지식을 가지고 생각해서 해결하려고 해서는 절대 안된다. 도리어 머리 속을 텅 비워야 하며, 우리들이 배워온 지식을 모두 버려야 한다. 가장 주의할 것은 모든 것 즉 생사를 초월해야 하는데, 이것을 절대 멀리서 구하지 말고, 가까이 가까이 또 가까이 끄집어 내라. 사실은 너무 가깝기 때문에 어렵다. 한치 두치의 거리에 있다면 도리어 쉬울 것인데 머리털 하나 사이 보다도 더 가깝고 너무 가깝기 때문에 도리어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속 눈썹이 눈에 제일 가깝지만 이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공안이란 公府案牘이란 뜻이다. 안독은 정부가 정한 법도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라도 굽힐 수 없고 그 정한대로 준수해야 하며, 만일 이를 범하면 처벌하는 것이 공부의 안독이다. 이런 의미에서 예로부터 禪宗의 조사들이 정한 법문을 공안이라 했다. 즉 만인이 다 통하는 不易의 법문으로서 때에 응하고 하여 자유자재로 제시하는 公法이다. 그래서 일명 이라고도 한다. 참선자들을 위한 公定의 법칙, 古德들이 인정한 理法이란 의미에서 이고, 理法에 따라 정진하면 반드시 禪旨에 이를 수 있다는 뜻에서 다시 말하면 師弟間의 문답(공안)에 따라 수행하면 반드시 의 심경에 이를 수 있다는 데서 이라고 했다圭峰廣錄山房夜話이란 古德이 도를 행한 흔적으로서 천하의 를 보이는 至理이고, 이란 古德이 보인 진리를 기록한 正文이다고 했다. 公案은 석존 때부터 시작된 것은 아니다. 후대에 와서 世尊拈花란 공안을 쓰기는 했지만 사실은 달마때부터 쓰인 것이다. 곧 달마가 526년에 東土 양무제와 나눈 문답이 공안으로 채택되고 있으며, 2慧可와 달마사이의 문답도 역시 공안으로 쓰인다. 그러나 公認되기는 黃檗선사 때로 보고 있다. 黙照禪看話禪으로 구별한다. 묵조선이 전혀 공안을 쓰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간화선처럼 전용하지 않는 점에서 논쟁도 있었고 피차간 비난도 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결국은 깨달음을 목적으로 하므로 수단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 공안은 문답을 요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그 문답이라야 지적인 것도 아니고 논리적인 것도 아니고, 설명도 아니고 해석도 아니고 교훈도 아니다. 靜慮, 思惟修, 禪那라고도 한다. 이 말은 고요히 생각한다는 뜻인데 무엇을 고요히 생각하느냐 하면 공안을 가지고 그 공안에 마음을 집중시키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공안을 가지고 그것을 일심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것이기 때문에 공안이란 말을 붙이게 된 것이다. 禪宗宗旨는 실지로 수행하는 것이다. 부질없는 이론, 어떤 철학적 이야기 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실지로 수행하여 자기의 자성을 硏明하는 宗旨그러므로 공안을 설명하는 것은 무리라기 보다 도리어 본뜻과 어긋나는 일이다. 공안은 깨달음에 이르는 수단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 깨침을 열려면 그 공안을 써서 직접 수행을 진행해 나가야 하는데, 그 공안에는 1,701의 공안이 있다. 그 숫자는 景德傳燈錄1,701인의 行履를 수록했기 때문에 그 숫자에서 나온 말인듯 하다. 사실 공안은 우리 일상생활의 전부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공안은 곧 의문인데, 우리들 생활은 전부가 의문 아닌 것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無字 · 是甚麽 · 麻三斤 등이 초보자에게 쓰이는 공안인데, 쉽게 말하면 모두 일종의 문제인 것이다. 공안을 쓰는 것은 悟道를 열자는 것이 그 목적이다깨치기위해 공안을 쓰고, 공안을 써서 깨침을 열자는 것이므로 이를 公案禪이라고도 하고, 또는 깨침豫期하여 수행하므로 이를 待悟禪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공안은 일명 話頭라고도 한다. 화두라는 말은 말머리라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공안이란 말보다도 話頭로 통하고 있다. 공안은 쉬운 것으로부터 어려운데 이르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梯子禪이라고도 하고, 雁木悟라고도 한다. 마치 기러기가 줄지어 나는 것처럼 다음 순서를 쫓아 수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趙州無字라든가, 庭前栢樹子라든가, 麻三斤등은 간단한 공안 중의 하나이지만, 그 전개되는 줄거리가 장황하고 등장인물도 수백수천의 사람을 헤아리는 공안이 많다. 그래서 이런 것을 가리켜 文字禪이라고 한다. 사실은 그 줄거리가 아무리 길어도 보는 곳은 하나다. 그래서 話頭라고 말한 것이다. 화두란 말은 실마리라는 뜻이니, 결국 執念하는 곳은 하나다. 선가구감에도 대체 수행인은 모름지기 活句하고 死句하지 말라고 하였다. 이 말은 수백 수천 으로 엮어졌다 해도 그의 觀點은 하나라는 것을 뜻한 것이다. 한 공안 즉 조주의 無字 하나를 깨치면 물론 견성한 것인데, 그 후에 1,700여 공안을 본다는 것은 그 조사 그 조사들의 行履를 본받는 것이며, 이것을 깨친 후의 수행이라고 한다趙州無字 하나로 깨쳤다면 이것은 뼈가 되고, 깨친 후의 수행은 살이 되는 셈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모든 스님들이 선지식을 찾아 行脚했다는 것이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公案이라면 다만 선종의 조사스님네가 깨우치기위해 수행자에게 주어서 공부하게 하는 한 문제로만 생각할 수도 있다. 공안으로서 중요한 것은 碧巖錄百則, 從容錄百則, 葛藤集上下272, 無門關48외에 臨濟錄 등이 있다. 선종의 어록에 나타나 있는 佛祖機緣問答商量이 근본 공안으로서, 그를 그대로 써서 修禪者가 참구하는 것으로만 알 것이 아니라, 그 보다도 더 깊은 의미가 있다. 1,700의 공안 모두가 一心異名이다. 어떤 때는 를 가리키고, 어떤 때는 을 쓰고 또는 을 보이고, 어떤 때는 體用一句에 표현한다. 이처럼 무량무변하다. 그러나 그 가르치는 바는 하나다. 이를 本地風光이라고도 하고, 本來面目이라고도 한다. 一心이란 우리들 개개인의 한 마음을 가르키는 것이 아니고, 적어도 우주간의 광대무변한 一心을 말한다. 1,700 공안은 盡虛空遍塞하여 間髮의 여지가 없고, 萬里一條라고 識得하여 迷悟得失과 관계없는 본래 있는 一物이니 취할 것도 없고 버릴 것도 없다. 1,700 공안마다 진리가 각각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즉 원리원칙은 하나다. 다만  · · · 用相에 있어서 이름이 서로 다를 뿐이다

 

부처() : 범어 buddha音略. 佛陀 · 佛駄 · 浮陀 · 浮屠 · 浮圖 · 浮頭 · 沒駄 · 勃陀 · 馞陀 · 步他 등으로 音譯하고 覺者 · 知者 · 이라 번역하며, 眞理를 깨달은 이의 뜻으로 스스로 깨달아(自覺) 다른 사람을 깨닫게 하여(覺他) 깨달음의 기능이 全知全能하게 충만하다는(覺行窮滿) 뜻이 있다. 自覺覺他覺行窮滿의 관계는 凡夫에 있어서는 자가, 二乘에 있어서는 뒤의 둘이, 보살에 있어서는 최후의 하나가 모자라는 것으로, 이런 점에서 의 우월성을 나타낸 것이다. 또 불타의 깨달음의 내용에 대해서는 모든 경론에 여러 가지로 설해 있고, 佛身 佛土 등에 대해서도 各宗異說이 있는데 대체로 대승에서는 佛果에 이르는 것을 궁극의 목적으로 한다.

불타의 덕을 찬송하는데 갖가지 佛號를 세운다. 곧 여래의 十號를 비롯하여, 一切知者 · 一切見者 · 知道者 · 開道者 · 說道者라든가, 世尊 · 世雄(世間에 있어서 一切의 번뇌를 끊는데 雄猛, 雄健) · 世眼(세간의 눈이 되어 이것을 인도하는 ) · 世英(세상에 훌륭하여 뛰어난 자) · 天尊(五天 가운데 가장 훌륭한 第一義天)이라든가, 大覺世尊(하여 大覺尊) · 覺王(覺皇) · 法王 · 大尊師 · 大聖人 · 大沙門 · 大仙(大僊 仙人 중의 가장 높은 仙人) · 大醫王(병에 따라 신묘하게 약을 주는 명의와 같이 마음의 을 자유자재로 설하는 자) · 佛天(五天 가운데 가장 뛰어난 第一義天) ·  佛日(불타를 태양에 비유한 말) · 兩足尊 · 二足尊 · 兩足仙 · 二足仙(이 네 가지 이름은 두 다리를 가진 生類 중에서 가장 높은 이란 뜻. 二足이라 함은 , 혹은 를 갖추었다는 뜻) · 天中天(諸天중의 最勝者) · 人中牛王(불타를 牛王에 비유한 말) · 人雄獅子(人中雄者여서 마치 獸類中獅子와 같은 것) 등이다. 또 부처를 能化人 곧 가리키는 이, 인도하는 이란 뜻으로 能人이라고 부르고, 그래서 아미타불을 安樂能人(安樂世界能人이란 뜻)이라고도 한다. 일설에 能人이라 함은 能仁으로, 能仁釋迦의 번역이니 釋迦佛의 이름을 빌어서 일반을 나타낸 것이라고도 한다. 불타의 특유하고 뛰어난 덕으로 하여 그 몸에는 三十二相 · 八十種好를 구족하고, 十力 · 四無所畏十八不共法 등의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또 불타의 초월성을 항으로 묶어서 七勝事 · 七種最勝 · 七種無上 등으로 부른다. 身勝 · 如法住勝 · 智勝 · 具足勝 · 行處勝 · 不可思議勝 · 解脫勝의 일곱 가지 이름이 그것이다. 불타의 는 공히 가장 뛰어나기 때문에 大定 · 大智 · 大悲라고 하여 斷德 · 智德 · 恩德三德에 배속하고 합해서 大定智悲라고 한다.

過去世에 나타나신 (過去七佛 · 燃燈佛 )過去佛 또는 古佛이라고 하고 미래에 사바세계에 나타나는 불타(彌勒佛 )後佛, 또는 當來佛이라고 한다. 최초의 이라 하면 역사상의 불타는 釋尊뿐이었다고 하게 된다. 그러나 얼마 안가서 過去七佛(釋尊은 그 일곱번 째)의 사상이 생기고 좀 늦게 未來佛로써 彌勒佛을 생각하게 되어, 현재는 釋尊과 미륵불과의 두 부처의 중간에 無佛의 세상이라고도 한다. 小乘에서는 現在世에 있어서 二佛이 같이 존재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大乘에 오면 그 세계관은 확대되어 자못 크고 넓게 되고 동방의 阿閦佛이나 西方의 아미타불과 같이 현재 他方세계에 無數(恒河의 모래의 수만큼)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하여, 十方恒沙諸佛이라고 일컫게까지 되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말하면 小乘一佛說이고, 大乘多佛說인데, 小乘중에도 大衆部 같은데서는 다른 三千大千世界에 동시에 다른 一佛이 존재할 수 있다고 하며, 一界一佛 · 多界多佛說을 취하고, 有部 등은 多界一佛說을 취한다. 이 경우라 함은 三千大千世界를 말한다. 三世의 모든 부처에 대해서 과거의 莊嚴劫千佛, 현재의 賢劫千佛, 미래의 星宿劫千佛, 합하여 三劫三千佛이 있다고 하며, 佛名三劫三千佛名經에 나와 있다. 佛名會는 이 에 의한 法會이다.

내세에 成佛하기 위한 信佛 등의 인연을 佛因 · 佛緣, 佛道에 들어가기 위한 인연을 佛緣(예컨대 佛緣을 맺는 것 등), 佛恩에 보답하는 것을 佛恩報謝라고 한다.


화상(和尙) : 범어 upadhyaya. 교우 鄔波駄耶라 음역. 烏社 · 殟社 · 和社 · 和上이라고도 한다. 親敎師 · 力生· 依學 · 近誦이라 번역함. 본래는 아사리와 함께 수계사인 스님을 말하는 것이나, 후세에는 덕이 높은 스님을 가리키는 말이 되다. 제자를 둘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 제자에게 구족계를 줄 수 있는 를 말함. 선종에서는 수행경력이 10년 이상의 승려를 화상이라 한다.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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