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佛陀,부처님)

부처는 신(信) 참(慚) 괴(愧) 정진 지혜 갖춰야(107)

근와(槿瓦) 2014. 12. 5. 00:51

부처는 신(信) 참(慚) 괴(愧) 정진 지혜 갖춰야 107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아난은 세존을 모시고 교상미로 내려가 그 구사다원에 머무르셨다. 어느 날 나형 외도(裸形外道)의 제자인 한 거사(居士)가 아난을 찾아와 말하였다.

“존자여, 누가 저희들에게 법을 가장 잘 가르쳐 주는 사람일까요, 또 세간에서 가장 잘 살고 행복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아난이 대답하기를,

“거사여, 탐욕, 진에, 우치를 버리라고 설하는 사람이 가장 법을 잘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그 탐욕과 진에와 우치를 잘 버릴 수 있는 사람이 가장 잘 살고 행복한 사람이다.”

“존자시여, 참으로 뛰어난 말씀이옵니다. 저는 오늘부터 목숨이 끝나기까지 세존과 법과 승가에 귀의하여 그 신자가 될 것을 맹세하겠습니다.”

 

세존은 제자들에게 가르치시기를,

“제자들이여, 수행하는 제자에게 다섯 가지 힘이 있다. 신(信)과 참(慚)과 괴(愧)와 정진과 지혜의 힘이다. 그대들은 이 다섯 가지 힘을 갖추도록 애쓰지 않으면 안 된다.

 

제자들이여, 또 다섯 가지 법을 갖추면 이 세간에서 괴로워하고 내세에는 악도에 들게 된다. 다섯 가지의 법이란 불신(不信)과 무참(無慚)과 불괴(不愧)와 태타(怠惰)와 무지이다.

 

제자들이여, 승의를 버리고 환속하면 다섯 가지의 비방을 받는다. 선법(善法)에 대한 신심이 없었다. 안으로 참(慚)하는 마음이 없었다. 지혜가 없었다고 하는 비방이다.

 

제자들이여, 비록 고뇌하고 눈물에 젖어 있더라도 청정하고 원만한 행을 하고 있으면 다섯 가지의 칭찬을 받는다. 선법에 대한 신심이 있고 안으로 괴(愧)하는 마음이 있으며, 밖으로 참(慚)하는 마음이 있고 정진이 있고 지혜가 있다고 하는 칭찬이다.

 

제자들이여, 나는 여태껏 일찍이 깨닫지 못했던 사성제(四聖)의 법을 깨닫고 부처가 되었음을 말하겠다. 신과 참과 괴와 정진과 지혜는 그 부처의 다섯 가지 힘으로써 이것을 갖추고 부처는 중생 가운데 우왕(牛王)이 되어 사자후(獅子吼)를 하고 법을 설하는 것이다.

 

제자들이여, 이 신과 참과 괴와 정진과 지혜의 다섯 가지 힘 가운데 지혜의 힘이 그 주가 된다. 이 힘에는 다른 네 가지의 힘이 모여 있다. 마치 첨탑(尖塔)이 중각(重閣)의 주요한 부분으로서 그 첨탑에 모든 것이 모여 결부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제자들이여, 또 다른 다섯 가지의 힘이 있다. 믿음과 정진과 정법과 선정(禪定)과 지혜이다. 이 다섯 가지의 힘 가운데 지혜의 힘이 그 주된 것이다. 이 힘에 다른 네 가지의 힘이 모여 있다.

 

제자들이여, 스스로 계를 지키고 남에게도 계를 지키게 하며, 스스로 선정에 머물고 남도 선정에 들게 하며, 스스로 지혜를 갖추어 남에게도 지혜를 갖추게 하고, 스스로 해탈케 하고, 스스로 해탈의 지견(知見)을 갖추어 남에게도 해탈의 지견을 갖추게 하는 자는 자타의 이익을 아울러 갖춘 자이다.”

 

 

그 후 세존은 가비라 성으로 나가 성 밖 니구로타의 숲에 머무르셨는데 가벼운 병에 걸렸으나 얼마 후 나으셨다.

어느 날 석가족의 마하나마는 세존을 뵙고 배례한 뒤 옆에 앉아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마음이 고요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고 고요하지 못한 자에게는 지혜가 없다고 세존께서 전에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세존이시여, 선정이 나중이옵니까?”

 

옆에서 이 말을 듣고 있던 아난은 생각하기를 ‘세존께서는 병환이 겨우 나은 참이시다. 그렇건만 마하나마는 너무나 깊은 것을 물어 세존께 번거로움을 끼치고 있다. 나는 그를 다른 곳으로 데려가 설해 주리라’생각하고 아난은 마하나마의 손을 끌고 다른 곳에 가서 말하였다.

 

“마하나마여, 세존은 계와 정과 혜에 관해 이미 수행중인 자와 이미 깨달은 자와의 일을 설하셨다. 그 수행중인 자의 계란 계를 지켜 그 한몸을 억제하고 착한 행을 하여 오관을 억제하고 작은 죄도 두려웁게 보고 굳게 지켜 열심히 배우는 일이다. 또 정(定)이란 선정에 들어가 주(住)하는 일, 혜란 사성제의 이치를 진실로 아는 일이다. 다음으로 이미 깨달은 자의 계정혜(戒定慧)란 이에 깨달은 사람이 닦을 경우의 일을 말하는 것이다. 마하나마여, 세존은 이와 같이 설법하셨다.”

 

세존은 병환이 나은 뒤, 동으로 향해 구시나라를 거쳐서 비사리의 대림 중각 강당에 머무셨다. 아난이 수행을 하다가 어느 날 세존께 물었다.

“세존이시여, 유(有=존재)라는 것은 어떠한 범위로 말할 수 있사옵니까?”

“아난이여, 만일 미세(迷世)의 과(果)를 받을 업이 없다면 미세라는 존재가 나타날까?”

“나타나지 않습니다.”

“아난이여, 그러므로 업은 인이고 식(識)은 종자이며 갈애는 물이다. 무명에 덮이고 갈애에 계박되어 중생들의 식은 하계(下界)에 멈춘다. 이렇듯 미래의 재생과 전생(轉生)이 있는 것이다.”

 

 

어느 날 또 세존은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아난이여, 모든 믿음을 통틀어도 좋은 보가 있을까?”

“세존이시여, 그것은 일률적으로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것을 행하여 악이 증장하고 선이 멸하는 것이면 선보가 있을 까닭이 없습니다. 이것을 행하여 악이 줄고 선이 느는 것이라면 선보가 있는 것입니다.”

세존은 이 아난의 설을 듣고 칭찬하셨다. 아난이 떠난 뒤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아난은 수행 중도에 있는 자이지만 지혜에 있어 그와 비등한 자를 얻기란 쉽지가 않다.”

 

 

출전 : 불교성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