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적경-2070-414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2066 / 3476] 쪽
대보적경 제72권
북제 삼장 나련제야사 한역
송성수 번역
16. 보살견실회 ⑫
24) 차라가바리바라사가외도품(遮羅迦波利婆羅闍迦外道品)
그 때 차라가바리바라사가 외도(外道) 8천 명은 모든 아수라와 가루라와 용녀며 모든 용과 구반다·건달바·야차·긴나라·마후라가며 공행(空行)의 모든 하늘과, 사천왕천·삼십삼천·야마천·도솔타천·화락천·타화자재천·범천·광음천·변정천·광과천 및 정거천 등이 세존께 공양하는 것과 찬탄함을 듣고는 희유한 마음을 내었으며, 이 법문을 듣고 들어보지 못했던 법이었으므로 곧 의심을 내면서 그 외도들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구담(瞿曇)이시여, 저희들은 옛날부터 아직 들은 일이 없었던 법을 들었으며 듣고 나면 차라가바리바라사가 외도들도 즐거워하지 않으며 또한 집에 있는 것도 즐겁지 않습니다. 저희가 이 법에 대하여 또 의심을 내었고 공경심과 믿음을 내지 않았던 것은 도무지 옛날부터 아직 이런 법을 듣지 못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희는 구담 사문에 대하여 인연이 있습니다. 왜냐 하면 사문 구담께서 이러한 신통 변화(神通變化)를 지으셨고 이러한 신통 변화를 지으신 뒤에는 그 변화 때문에 저희들은 이 모든 하늘들이 얻은 미묘한 몸을 보게 되었고 대중들이 구담께 귀의하고 조복된 이들이 지극히 많았음을 보았으며 구담께서 설법을 잘하심도 알았기 때문이니, 이 때문에 구담께 다시 작은 믿음도 생겼습니다.
[2067 / 3476] 쪽
그리고 구담께서는 또 광과천(廣果天)의 하늘들에게 '모든 법이 여래'라는 이러한 법도 말씀하셨습니다. 저희들은 여기에 대하여 큰 의심이 생겼습니다. 어째서 모든 법을 여래라 하십니까? 저희들이 구담께 이와 같이 믿음을 내었음을 오직 구담만이 아실 것이니, 이렇고 이렇다 함을 저희들을 위하여 말씀하시어 저희들이 그렇게 말씀하신 뜻을 이해하게 하여 의심의 그물을 떠날 수 있게 하소서.”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이와 같이 청하였으므로 세존께서는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그로써 나는 이제 그대들에게 도리어 물으리니, 그대들의 뜻대로 대답하거라.”
외도들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거룩하십니다. 구담이시여, 구담께서 저희들에게 물으시면 저희들은 이제 말씀드리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곧 그들에게 물으셨다.
“어떻게 하여 태아(胎兒)가 어머니의 태 속으로 들어가는 것인가를 그대들은 알고 있는가?”
이렇게 물으시자마자 외도들은 부처님께 대답하였다.
“구담이시여, 저희들의 모든 논(論) 중에서는 세 가지 인연이 화합하여 태아가 어머니의 태 속으로 들어간다고 하였습니다. 즉 부모가 서로 가까이 하여 탐염(貪染)을 내고 음행할 일을 생각하나니, 생각하였기 때문에 음행을 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태 안으로 들어가고 이렇게 하여 태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 외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부모가 생각할 때에 그 탐염은 어머니의 마음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인가?”
외도들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구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머니의 생각에서부터 일어나는 것인가?”
[2068 / 3476] 쪽
외도들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구담이시여.”
“그 탐염은 아버지의 마음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인가?”
“아닙니다, 구담이시여.”
“아버지의 생각에서부터 일어나는 것인가?”
“아닙니다, 구담이시여.”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아버지의 탐욕(貪欲)이 어머니의 뱃속으로 들어가는 것인가?”
“아닙니다, 구담이시여.”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버지의 마음이 어머니의 뱃속으로 들어가는 것인가?”
“아닙니다, 구담이시여.”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버지의 분별(分別)이 어머니의 뱃속으로 들어가는 것인가?”
“아닙니다, 구담이시여.”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태아는 하늘[天]에서 목숨을 마친 뒤에 어머니의 뱃속으로 들어가는 것인가?”
외도들이 말하였다.
“모르겠습니다, 구담이시여.”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태아는 지옥(地獄)에서 목숨을 마친 뒤에 어머니의 뱃속으로 들어가는 것인가?”
“모르겠습니다, 구담이시여.”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태아는 축생(畜生)에서 목숨을 마친 뒤에 어머니의 뱃속으로 들어간 것인가?”
“모르겠습니다, 구담이시여.”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태아는 아귀(餓鬼)에서 목숨을 마친 뒤에 어머니의 뱃속으로 들어가는 것인가?”
“모르겠습니다, 구담이시여.”
[2069 / 3476] 쪽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태아가 아수라(阿修羅)에서 목숨을 마친 뒤에 어머니의 뱃속으로 들어가는 것인가?”
“모르겠습니다, 구담이시여.”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태아는 물질이 아닌 것[非色]이 와서 어머니의 뱃속으로 들어가는 것인가?”
외도들은 말하였다.
“모르겠습니다, 구담이시여.”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태아는 곧 물질[色]이 와서 어머니의 뱃속으로 들어가는 것인가?”
“모르겠습니다, 구담이시여.”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受]·생각[想]·지어감[行]·의식[識]이 와서 어머니의 뱃속으로 들어가는 것인가?”
“모르겠습니다, 구담이시여.”
이렇게 대답을 하자마자 부처님께서 외도들에게 말씀하셨다.
“외도들아, 이 법은 매우 깊어서[甚深] 훌륭한 언설[善說]도 고요히 사라지고[寂滅] 미묘하여 헤아리기 어렵고 생각하거나 헤아리는 경계가 아니며 드러내 보이기도 어려운 것이므로 그대들이 알 바가 아니니라.”
이 모든 외도들은 다른 견해와 다른 지혜와 다른 종류의 요욕(樂欲)으로 바른 곳이 아닌 데서 정진하고 수행하여 다른 견해 가운데도 결정하고 향해 나아갈 것이므로 부처님께서는 외도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선남자와 선여인들이 이러한 선지식(善知識)을 만나면 매우 깊은 법 가운데서 안목(眼目)이 생기게 되느니라.
외도들아,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눈에 질환이 있을 때에 용한 의사를 만나 눈을 치료하여 낫게 되면 그 깨끗한 눈으로써 현재의 그 몸으로 옛날에는 보지 못했던 빛깔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외도들도 그와 같아서 만일 어떤 선남자와 선여인들로서 신근(信根) 등 근을 갖추지 못한 이도 선지식을 만나면 지혜의 눈[慧眼]이 깨끗하게 되고 그 깨끗한 지혜 눈으로써 깊은 법을 볼 수 있는 것이니라.
[2070 / 3476] 쪽
그러므로 그대들 모든 외도의 무리는 본래 옛날부터 오랜 세월 동안 삿된 논리[邪論]에 현혹되어 다른 견해를 내므로 그 그릇된 법에서 좋은 법이라는 모양을 취하고 해탈이 아닌 데서 해탈이라는 모양을 취했으며 벗어나는 곳이 아닌 데서 벗어난다는 모양을 낸 것이니, 그대들의 스승은 자기 자신을 망치고 또한 그대들도 망치느니라.
외도들아, 마치 사람이 자신이 소경이면서 또 다른 소경에게 '내가 그대를 데리고 가겠다'고 말한다면, 지혜 있는 이는 그들 두 사람은 길이 아닌 곳으로 반드시 떨어져서 갖은 고생을 겪게 될 것임을 알 수 있는 것처럼, 외도들도 그와 같아서 사문(沙門) 또는 바라문(婆羅門)으로서 실로 길잡이가 아니면서도 자칭(自稱) '길잡이'라 하고 실로 바르게 깨달은 이가 아니면서도 '나는 바르게 깨달았다'고 하며, 실로 세간을 벗어나는 도(道)를 잘 알지 못하면서도 '나도 잘 안다'고 하고 실로 세간을 벗어나는 도를 알지 못하면서도 '나는 잘 안다'고 하며, 실로 얕은 데로 건너가는 곳을 잘 모르면서도 '나는 잘 안다'고 하느니라.
또 실로 가르쳐 줄 만한 스승이 못 되면서도 '나는 곧 스승이다'라고 하는 것이므로 그가 가르치는 것은 곧 삿된 가르침이요 자기 자신이 바르게 깨달은 것이 아니므로 가르쳐서 깨닫게 하는 것도 삿된 깨달음이며 실로 벗어날 줄을 모르면서도 '나는 잘 벗어난다'고 하는 것이므로 그가 가르쳐서 벗어나게 하는 것도 곧 삿되게 벗어나는 것이요 실로 도(道)를 모르면서도 '나는 도를 안다'고 하는 것이므로 그가 보인 것은 모두가 삿된 도이며 실로 얕은 곳을 모르면서도 '나는 그곳을 안다'고 하는 것이므로 그가 건너게 하는 곳은 도리어 곤액(困厄)을 치르게 되느니라.
외도들아, 비유하면 마치 소를 치는 사람이 얕은 곳을 모르는지라 소를 몰고 물로 들어가 깊은 곳으로 건너다가 그 소도 놓쳐버리고 저 언덕에 이르지도 못할 뿐더러 저 물 가운데[中流]에서 곤액을 치르고 있는데도 구호하여 줄 이가 없는 것과 같으니라. 왜냐 하면 그 소치는 사람이 얕은 곳을 몰랐기 때문이니, 외도들도 이와 같아서 그대들은 실로 길잡이가 아니면서도 길잡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라 그 교화되는 것이 도리어 곤액을 치르는 것이니라.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대보적경(大寶積經)'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보적경-2080-416 (0) | 2017.12.01 |
---|---|
대보적경-2075-415 (0) | 2017.11.30 |
대보적경-2065-413 (0) | 2017.11.28 |
대보적경-2060-412 (0) | 2017.11.27 |
대보적경-2055-411 (0) | 2017.1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