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를 먹지 말라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너희 불자들이여, 짐짓 고기를 먹지 말지니라. 어떤 중생의 고기라도 먹지 말지니 대저 고기를 먹으면 대자비의 불성종자가 끊어져서 일체 중생들이 보고는 도망을 가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보살은 일체 중생의 고기를 먹지 말아야 하느니라. 고기를 먹으면 한량없는 죄가 되나니, 만일 짐짓 먹으면 경구죄를 범하느니라.
1) 대자비 불성종자
먼저 경문에서 "일체 보살(一切菩薩)"이라고 한 것이 모든 보살이 아니라 처음 계를 받은 이로부터 지상(地上 : 初地 이상)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보살만을 가리킨다는 것을 밝혀 둡니다. 왜냐하면 이미 지상에 오른 보살은 스스로 계를 지킬 줄 알기 때문에 고기를 먹는 허물을 범할 이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왜 고기를 먹지 말라고 한 것인가?
이미 보살이 되었으면 자비로써 마음의 바탕을 삼아야 하는데, 중생을 죽여서 그 고기를 먹는 것은 일체 중생을 사랑하는 마음에 위배되는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일부러 고기를 먹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능가경 楞伽經)에서는 일체 중생의 윤회설에 초점을 맞추어 육식의 불가론(不可論)을 펴고 있습니다.
"일체 중생은 비롯함이 없는 그 옛적부터 서로가 항상 육친과 권속이 되었으나, 이제 생을 바꾸어 나는 새와 기는 짐승의 몸을 받은 것인데, 그 고기를 어떻게 취하여 먹을 수 있겠느냐? 보살은 모든 중생을 집안 식구와 같이 보고, 내가 외아들을 생각하는 부모의 마음으로 보느니라. 또 일체 생명의 고기는 다 피와 살과 온갖 더러운 것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인데, 청정을 구하는 보살이 어떻게 그것을 먹겠는가? 만일 자비심을 닦고 혹 주문을 외우고 지니며 혹 해탈을 구하거나 혹은 대승으로 나아가는 이는 고기를 먹는 것 때문에 모든 것을 성취하지 못하게 되나니, 모든 하늘이 멀리하여 잠자고 꿈꾸는 것이 편안하지 않을 뿐 아니라, 나찰 악귀들이 그 정신을 빼앗아 질병을 더하고 온갖 죄악을 내고 모든 공덕을 다 무너뜨리느니라."
이상의 말씀과 함께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게송을 읊었습니다.
생사의 가운데서 어찌하여 벗어나지 못하는가
이익을 위해 중생을 죽인 탓이요,
재물 때문에 고기를 그물질한 탓이네,
이 두 가지는 큰 악업이니,
죽어서 규환지옥 면할 수 없네.
인간이 먹는 고기는 뭍이나 물에 사는 중생, 허공을 날아다니는 중생의 생명을 희생시킴으로써 비로소 얻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중생들에게는 불성이 있습니다. 보살은 불성이 있는 일체 중생을 나와 더불어 한 몸이라고 보아야 하는데, 이제 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보살이 한 몸이기를 거부하는 것이며, 대자비 불성종자를 스스로 끊는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누에의 입에서 나오는 명주실이나 짐승의 털이라 하더라도 함부로 취하여서는 안됩니다. (앙굴마라경)에 이르기를, "명주실 등으로 짠 비단옷이 설사 사람의 손을 거쳐 직접 살생한 사람을 떠났다 하더라도, 그것을 비구에게 보시하면 또한 마땅히 받지 못하나니 받는 것은 자비가 아니기 때문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어찌 보살이 자비의 종자를 끊을 수 있겠습니까? 특히 (능가경) 단식육품에는 부처님께서 고기를 먹지 못하게 한 까닭을 대혜보살에게 설하셨습니다.
"대혜여, 보살은 중생들의 신심을 보호하고 중생들로 하여금 불법을 비방하거나 비방하지 못하게 하며, 일체 중생에 대한 자애와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마땅히 고기를 먹지 않도록 해야 하느니라.
대혜여, 만일 나의 제자가 고기를 먹으면 모든 세상 사람들이 모두 헐뜯고 비방하는 마음을 품어서 말하기를, '어찌하여 사문의 청정한 행을 닦는 사람이 하늘과 신선들이 먹는 음식을 버린 채 악한 짐승처럼 고기를 배불리 먹고 세간에 나타나서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놀라고 두려운 마음을 품게 하며, 청정한 행을 깨뜨리고 사문의 도를 저버리는가? 이로 보아 불법 중에 조복행(調伏行)이 없음을 알겠도다,라고 하리라. 보살은 자애와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중생들을 보호하고 중생들로 하여금 이와 같은 마음을 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응당 고기를 먹지 말아야 하느니라.
대혜여, 사람의 몸을 태울 때 더러운 냄새가 나는 것처럼 다른 고기를 태울 때도 그와 다름이 없거늘 어찌하여 그 중에서 먹고 먹지 않고를 가리겠는가! 그러므로 일체의 낙과 청정을 좋아하는 이는 마땅히 고기를 먹지 말아야 하느니라."
그리고 (능가경)에는 과거세에 사자생(獅子生)이라는 왕이 고기의 맛을 너무 탐착하여 갖가지 고기를 즐겨 먹다가 마침내 사람의 고기까지 먹기에 이르르자, 신하와 백성들이 차마 볼 수 없다 하여 모두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에 국왕의 지위를 잃고 큰 고통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2) 완전히 육식을 금하기까지
이 세간에는 마음이 무자비하여 횡포한 행동을 나찰과 같이 행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몸이 충실하게 살찐 짐승들을 보면 문득 고기라는 생각을 내어 식욕을 불러일으키기부터 합니다. 실로 중생이 먹이로 보인다면 큰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고기를 너무 즐기다 보면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지는 것도 결코 다른 사람의 이야기만은 아니게 되고 맙니다. 물론 부처님은 소승계에서 삼정육(三淨肉) 등을 먹는 것을 허락하신 바 있습니다.
3정육은 ① 자기를 위해 죽이는 것을 눈으로 직접 보지 않은 것(不見爲我殺) ② 자기를 위해 죽인 것이라는 말을 듣지 않은 것(不聞爲我殺) ③ 나를 위해 죽인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전혀 가지 않는 것(不疑爲我殺)을 말합니다.
곧 가게에서 파는 고기나 저절로 죽은 고기가 이에 해당됩니다. 그리고 병이 있어 불가불 고기를 먹어야 할 경우도 있습니다. 예컨대 약을 조제할 때에 녹각이나 호골(虎骨) 등을 넣는다든지, 위에서 말한 3정육, 모든 짐승이 자신의 명이 다하여 스스로 죽은 경우, 매나 솔개 등의 새가 먹다 남긴 고기 등은 병을 치료하기 위해 먹을 수 있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능가경)에서는 3정육 등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대혜여, 세상에는 스스로 죽지 않았으면 남이 죽이지 않은 고기가 없으나, 마음으로 나를 위해 죽인 것이라고 의심되지 않는 것이면 먹을 수 있느니라. 이러한 뜻으로 나는 성문들이 이와 같은 고기만은 먹을 수 있다고 허락했었느니라.
대혜여, 미래 세상의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나의 법 가운데로 출가하여 계율을 그릇되게 설하여 정법을 파괴하고 어지럽히고 나를 비방하여 말하기를, '부처님은 고기를 먹는 것을 허락하셨으며 당신 스스로도 일찍이 잡수셨다,고 하리라.
대혜여, 내가 만일 이 말과 같이 성문들에게 고기를 먹는 것을 허락하였다면 나는 곧 자비심에 머문 이가 아니며, 관행을 닦는 이가 아니며, 두타를 행하는 이가 아니며, 대승으로 가는 이가 아니리니, 어떻게 모든 선남자와 선여인에게 권하여 모든 중생을 아들과 같이 생각하여 일체의 고기를 먹지 않도록 권할 수 있겠는가?"
이는 곧 고기 먹는 것을 허락하지 않은 것이 부처님의 본의임을 분명히 밝히신 것입니다. 그리고 처음 소승에게 3정육식을 허락한 것은 점차로 익혀서 아주 끊도록 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었습니다. (능가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대혜여, 내가 곳곳에서 '10종(十種)은 막고 3종(三種)은 허락한다,고 말한 것은 점차로 고기 먹는 것을
금단(禁斷)하여 닦아 배우게 하기 위해서이었느니라. 지금 이 경 가운데에서 스스로 죽은 것이거나 남이 죽인 것을 가림이 없이 무릇 모든 고기는 모두 다 끊어야 한다고 하나니,
대혜여, 나는 일찍이 제자들이 고기를 먹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현재에도 허락하지 않고 또 미래에도 마땅히 허락하지 않으리라.
대혜여, 무릇 고기를 먹는 것은 출가한 사람에게 있어 모두 청정치 못한 것이니라."
마침내 부처님께서는 모든 출가 승려는 육식을 하여서는 안된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천명하신 것입니다.
물론 출가 승려의 모든 육식은 (열반경)이나 (앙굴마라경)에서도 단호하게 금하고 있습니다.
3)고기를 먹는 허물
(1) 공업(共業)은 무섭다
이제 고기를 먹는 허물을 살펴봅니다. 《법원주림 法苑珠林》에서는 《능엄경 楞嚴經》 차육품(遮肉品)
에 의거하여 열 가지 허물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① 일체 유정(一切有情)은 무시 이래 다 나의 친속이었으므로 행자는 고기를 먹는 것이 불가하다.
② 고기를 먹으면 짐승들이 다 두려워하므로 행자는 고기를 먹는 것이 불가하다.
③ 자비심과 소욕(小欲)을 기르는 행자는 고기를 먹는 것이 불가하다.
④ 고기 먹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신심을 파괴하므로 행자는 고기를 먹는 것이 불가하다.
⑤ 고기 먹는 사람은 과거에 나찰이 되었던 습기(習氣)로 인하여 이제 특히 고기를 탐하는 것이므로 행자는
고기를 먹는 것이 불가하다.
⑥ 고기 먹는 사람은 세상의 주술을 배워도 성취하지 못하거늘 출세법(出世法)을 어떻게 증득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행자는 고기를 먹는 것이 불가하다.
⑦ 유정(有情)이 목숨을 사랑하는 것은 나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으므로, 행자는 고기를 먹는 것이 불가하다.
⑧ 고기를 먹는 사람을 하늘과 현성(賢聖)은 멀리 떠나고 악신이 찾아든다. 그러므로 행자는 고기를 먹는 것이 불가하다.
⑨ 정육(淨肉)의 고기일지라도 먹는 것이 불가하거늘 하물며 부정한 고기이랴? 그러므로 행자는 고기를 먹는 것이 불가하다.
⑩ 고기를 즐겨 먹다가 죽으면 나찰 등으로 태어날 것이므로 행자는 고기 먹는 것이 불가하다.
혹 어떤 이는 직접 살생하지 않은 것인데 무슨 큰 죄가 있겠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먹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살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닭 한 마리를 먹으면 닭 하나 죽이라는 주문을 한 것이 되고, 내가 쇠고기
1근을 먹으면 '소 한마리 잡자'는 공동 주문서에 날인한 것이 됩니다. 이와 같은 행위는 나중에 그 과보를 공동으로 함께 받게 되는 '공업(共業)'을 짓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전쟁이 끊일 날이 없는 것도
공업 때문이요, 많은 사람들이 흉한에게 끔찍한 일을 당하게 되는 것도 공업을 함께 받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제 일곱 명의 소도둑이 도둑질하여 잡은 소의 고기를 함께 먹은 업보를 기록한 《잡보장경 雜寶藏經》의
이야기를 함께 살펴봅시다.
(2) 비사리의 과보
부처님 당시 덕차시라국(德叉尸羅國)에 비사리(毘舍利)라는 아름답고 현명한 처녀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마을 친구들과 함께 꽃을 따기 위해 집을 나섰습니다. 꽃이 만발한 앞산으로 가려면 마을 앞의 개울을 건너야 했기 때문에, 마을 처녀들은 다 신을 벗고 치마를 추슬려 올리며 개울을 건넜습니다. 그러나 비사리는 신은 커녕 옷도 추키지 않은 채 건너는 것이었습니다. 뚝 위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나이든 한 나그네는 호기심이 일어 그 뒤를 따랐습니다.
처녀들은 꽃이 만발한 동산을 올라 향기로운 꽃을 정신없이 따서 꽃바구니에 담고 있었지만, 내를 건널 때 벗지 않고 건너던 바로 그 처녀만은 다소곳한 자세로 손길이 닿기 쉬운 곳의 꽃만을 차근차근 따고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이를 지켜보고 있던 나그네는 처녀들이 산을 내려올 무렵 비사라에게 다가가 조용히 물었습니다.
"아가씨! 다른 아가씨들은 많은 꽃을 꺾기 위해 나무도 오르고 서로 다투기도 하는데, 왜 아가씨는 손에 닿는
꽃만을 따셨지요?" 그녀는 시원한 눈매를 얌전히 치뜨며 은쟁반에 옥구슬 구르듯 하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별로 대단한 뜻은 없사옵고, 나무에 오르다 미끄러지거나 하면 몸을 다칠 염려가 있어 조심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조금 전에 내를 건널 때 왜 옷도 걷지 않고 신을 신은 채 건넜지요?"
"신을 신은 것은 냇물 가운데 혹시 가시덤불이나 사금파리가 있어 발을 상하게 하지 않을까 하여 조심한 것뿐이오며, 옷을 걷지 않은 것은 여자의 몸이 묘하여 맨살을 남자에게 보이게 되면 그로 인해 유혹을 일으키게 되고, 걷어올린 모양이 고우면 모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흉하게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비사리의 이야기를 듣고 감명한 나그네는 다시 물었습니다.
"아가씨의 집은 어디이며 아가씨와 아버님의 성함은 무엇이요."
"저의 아버지는 달마하선이며 제 이름은 비사리라 합니다."
비사리는 나그네의 점잖은 언행과 품위에 이렇게 대답하고 집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날밤 나그네는 처녀의 아버지를 방문하여 자신을 소개하였습니다.
"저는 코살라국 파사익왕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는 명재상 리기미 대신의 가신(家臣 : 참모비서)입니다.
지금 리기미 대신의 명을 받고 그 댁의 며느리될 아가씨를 찾아 5천축 16국을 찾아다니고 있는 중입니다."
그리고 나그네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습니다.
"따님의 혼처를 아직 정한 데가 없으면 저희 코살라국 리기미 대신의 막내 아드님과 혼인시키기를 청합니다."
갑작스런 청혼에 달마하선은 딸의 미거함을 핑계삼아 사양하였지만, 나그네는 낮에 딸을 지켜본 이야기를 하며 거듭 청하는 것이었습니다. 나그네가 딸을 간택하게 된 사연을 들은 달마하선은 딸의 처세에 흐뭇함을 느껴 혼인을 쾌히 승락하였습니다. 리기미 대신은 아들의 결혼패물을 갖추어 수레에 싣고 덕차시라국으로 떠났고, 비사리 신부 집에서도 준비에 바쁜 나날을 보냈습니다. 마침내 예식일을 맞아 혼례를 마친 뒤, 리기미 대신은 흡족한 마음으로 신부 일행을 데리고 코살라국으로 떠났습니다. 얼마쯤 가다가 쉬어가기 좋은 정자가 있어 일행은 그 곳에서 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든 비사리는 시아버지께 다른 곳으로 옮겨 쉬기를 간청하였습니다. 시아버지가 수레와 일행을 재촉하여 막 그 정자를 벗어나는 순간, 큰 코끼리가 정자 곁으로 다가와 가려운 등을 비비는 바람에 정자가 무너져 그 곳에 있던 다른 나그네들이 그대로 깔려 죽고 만 것입니다. 이를 본 리기미 대신은 크게 놀라면서, 과연 5천축국의 제일 가는 며느리를 구하기 위해 정성을 드리고 애쓴 보람이 있다며 흐뭇해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코살라국을 향해 가다가, 한 내를 만나 오랜 여행에 지친 말과 일행은 쉬고자 하였습니다. 이 때
하늘을 쳐다보던 비사리는 큰 비가 올 것 같은 예감이 들어 시아버지께 내를 건너 쉴 것을 조심스레 청하였습니다. 시아버지는 정자에서의 일을 경험한지라 며느리의 말대로 곧 출발할 것을 명하자, 영문을 모르는 인부들은 투덜거리며 마지못해 따라나섰습니다. 일행이 내를 건너 평지를 지나고 언덕에 올라 숨을 돌리는데, 갑자기 번개와 천둥이 치면서 소나기가 쏟아져 냇물이 순식간에 불어났습니다. 일행은 일찍 건너오기를 잘했다고 하면서 서둘러 장막을 치고 비를 피하였으며, 리기미 대신은 또 한번 경탄했습니다. 시댁에 당도한 비사리는 성중의 많은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았으며, 시부모와 남편과 어른들을 정성껏 받들며 지냈습니다. 시댁의 가세(家勢)와 덕망은 날로 높아졌으며, 그녀에 대한 찬사와 존경도 날로 더하여졌습니다.
어느덧 그들 부부는 출중한 아들 7형제를 두게 되었습니다.
7형제를 기르는 동안 그녀에게도 고난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친정의 나라인 덕차시라국과 시가의 나라인 코살라국 사이에 세력 다툼의 불화가 감돌아 전쟁 직전의 상태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시의 전쟁 풍속은 특이한 점이 있었습니다. 곧 서로의 국력을 가늠하는데 있어 무력의 강약도 중요한 기준이 되었지만, 그보다 뛰어난 지혜로 국민의 단합심을 가져오게 하는 현인(賢人)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이 더 큰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쟁 전에는 상대국에 현인이 있는지를 시험하기도 하고, 전승국에서는 패전국으로부터 배상금 대신 그 나라의 현인을 데리고 가는 예가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중인도 마갈타국의 마명(馬鳴) 보살과 서역 구자국(龜慈國)의 구마라습(鳩摩羅什) 삼장을 들 수 있습니다.
비사리 여인의 친정이 있는 덕차시라국에서도 코살라국에 현인이 있는지 여부를 시험하기 위해 세 가지 문제를 보내왔습니다. 첫째는 크기가 비슷한 두 마리의 말을 보내어 어미와 새끼를 구별하라는 것, 둘째는 두 마리의 새끼뱀을 보내어 암, 수를 구별하라는 것, 셋째는 위아래의 식별이 부가능한 나무토막을 보내어 윗쪽과 아랫쪽을 구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이 문제를 풀지 못하면 군대를 동원해 침공하겠다고 위협하였기에, 코살라국의 왕과 대신은 크게 근심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 비사리는 시아버지의 근심을 알고 밝게 웃으며 그 답을 가려내는 방법을 일러 주었습니다.
"첫 번째 문제는 말이 좋아하는 풀을 한 곳에 모아 놓고 그 풀을 먹게 하십시요. 새끼말은 저만 먹을 줄 알지만 어미말은 먹이를 새끼 쪽으로 밀어줄 것이옵니다. 두 번째 문제는 색깔 곱고 부드러운 비단을 펴 놓고 그 위에 뱀의 새끼 두 마리를 올려 놓으십시요. 암놈은 성질이 부드러워 비단 위에 가만히 있을 것이고 숫놈은 좋다고 펄펄 뛸 것이옵니다. 세 번째 문제는 큰 통에 물을 가득 담은 다음 그 물 위에 나무를 띄워 보십시요. 가라앚는 쪽이 밑부분이고 뜨는 쪽은 윗부분이옵니다."
마침내 문제를 가지고 온 덕차시라국의 사신은 탄복을 하며 둘아갔고, 비사리는 사위국의 위기를 구했습니다. 파사익왕은 자신들이 풀지 못하는 난문제를 풀어 준 주인공이 비사리라는 것을 알고 만나기를 청하였으며, 그녀의 고결하고 밝은 얼굴과 한없는 슬기, 위엄을 함께 담은 눈과 단정한 몸매를 보며 경탄을 금치 못하였고, 존경하는 마음이 생겨 의동생을 맺었습니다. 자연히 비사리의 이들들은 장성함에 따라 좋은 벼슬길도 열리고, 문(文), 무(武)에도 뛰어나 만인의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었습니다.
또 그녀는 부처님의 기르침을 받들고 존경하는 신심이 돈독하여, 때때로 부처님과 제자들을 초청하여 공양
올리는 일을 즐겨 베풀었습니다. 당시 부처님께서는 어느 한 사람만을 따로 청하여 공양을 올리는 별청(別請)을 철저히 금하고 있었습니다. 비사리 여인 또한 어느 한 스님만을 청하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제자가 얼마나 되든지 부처님을 모시고 계신 스님네를 한 분도 빠뜨리지 않고 청하는 공양청(供養請)을 하였기 때문에 실로 엄청난 잔치와도 같았습니다. 비사리 여인은 어느날, 부처님과 학덕 높은 스님네를 모시어 좋은 음식과 진기한 과일과 차를 내어 정성껏 공양하고 옷과 약을 시주하였습니다. 그러나 비사리는 웬지 마음 한 구석이 불안하고 떨렸습니다.
"거룩하신 부처님과 성인들을 모시어 공양하는 일이 얼마나 영광인가? 그런데 왜 이리도 내 마음이 불안할까?"
그런데 공양을 올리는 중, 대궐의 임금님이 비단으로 싼 크고 무거운 함을 보내왔습니다. 모두 그 하사품을
궁금해 하였고, 비사리 여인도 그것이 보통 함이 아니라 임금이 직접 하사한 것이라 열어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열어 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공양이 끝난 후 부처님은 비사리 여인에게 법문을 설했습니다.
"비사리 여인이여! 육신은 덧없고 한없이 괴로운 것이니라. 생로병사의 고통은 물론이요, 살고 있는 동안에도 모든 일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며, 지금 당장은 즐겁고 편안하여도 미래에 대한 불안과 은애(恩愛)에 얽혀 살아야 하느니라. 모든 중생이 참된 자신을 잃은 채 부질없는 일로 한평생을 헛되이 보내나니, 죄업 속에서 나날을 지내느니라. 인생이란 인연따라 모였다가 흩어지는 것이니, 이렇게 인연법을 깊이 관찰하여 흩어지는 인연에 애착을 가지지 말고 부디 슬퍼하지 말라. 이 세상에는 애착할 것도 슬퍼할 것도 없음이니, 본래 없음을 간절히 사무쳐 알도록 하라."
비사리 여인은 부처님의 이 무상법문(無常法門)을 듣는 동안 자신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던 천근 무게의 불안한 기운이 사라졌고, 한 줄기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렸습니다. 그리고 인생무상의 실상과 생사인연의 실상을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이 희미하게나마 열리게 되었습니다.
부처님은 그녀가 마음의 그림자를 벗고 장차 안심입명(安心立命)의 경지에 들 것을 아시고는, 곧 제자들을 거느리고 기원정사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러자 비사리는 식구들과 함께 임금님이 보내 주신 함의 뚜껑을 열었습니다. 순간, 그녀는 참으로 두 눈을 뜨고는 볼 수 없는 참혹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녀는 기절하였고 온 식구들은 모두 소리 높여 통곡했습니다. 그 함 속에는 그토록 믿음직스럽고 씩씩하였던 그녀의 일곱 아들들의 머리가 일그러진 채 담겨져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곧 정신을 가다듬고 방금 전 부처님께서 말씀해 주신 법문의 뜻을 뼈 속 깊이 생각하며, 마음 속으로부터 끓어오르는 분노와 배신, 끝없이 아끼고 사랑했던 자식에 대한 애착과 복받쳐오르는 설움을 조용히 조용히 가라앉혔습니다. 그것은 부처님의 법문을 들었을 때 인생의 무상을 꿰뚫어보는 마음의 힘을 얻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비사리는 일곱 아들이 그와 같은 비참한 죽음을 당하게 된 까닭을 전해 들었습니다.
이들의 죽음은 비사리 여인의 일곱 아들 중 막내아들이 화근의 발단이 되었습니다. 그는 시기를 잘하고 질투심이 강하였으며, 뜻에 맞지 않는 일이나 경우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는 이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격투를 신청하여 징계를 하고야 마는 성격이었습니다.
당시의 조정에는 할아버지인 리기미 대신과 라이벌 관계에 있는 거물 대신이 있었습니다. 리기미 대신은 덕망이 높고 충직한 인격으로 조정에서 신망이 높았을 뿐 아니라, 비사리 여인이 파사익왕과 의남매가 되었으므로 그의 지위는 한층 탄탄했고 드높았습니다. 또한 상대편 대신은 명문가의 후손으로 정략이 뛰어나고 실리에 밝은 정치인이었으므로 왕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으며, 벼슬아치들의 출세심리를 잘 조종하여 많은 실권을 장악하고 위세를 부렸습니다.
문제는 비사리 여인의 막내아들과 상대편 아들 사이의 싸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들은 서로 자신의 가문을 믿고 서로 지지 않으려는 우월감에서 늘 만나면 맞서기가 일쑤였습니다. 어느 날 두 사람이 개울을 건너는 다리에서 만났을 때 서로 수레를 비켜주지 않으려 하여 시비가 일어났고, 시비 끝에 비사리 여인의 막내 아들은 상대편의 수레를 들어서 개울로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비사리 여인이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찾아가서 사과를 하였지만, 상대쪽에서는 겉으로는 양해를 하는 척하면서 속으로 칼을 갈았습니다. 정략에 뛰어난 상대편 대신은 리기미 대신의 권세가 너무 비대한 탓이라 생각하고 비밀리에 계략을 꾸몄던 것입니다.
그는 겉으로는 친한 척 부드럽게 대하여 이 쪽에서 서로를 믿고 안심하게 되었을 무렵, 여러가지 보배를 섞어 훌륭하게 장식한 말채찍 일곱 개를 선물했습니다. 일곱 아들들은 그 말채찍이 너무나 값진 것이었으므로 고맙게 생각하면서 늘 그것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말채찍 끝에는 예리한 칼이 감춰져 있었습니다. 당시의 국법으로는 어느 누구도 칼 등의 무기를 가지고 궁궐로 들어갈 수 없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정략에 능한 저 대신은 기회를 보아 왕에게 일곱 형제들이 역적을 도모한다고 모함을 하였습니다. 왕이 그것을 믿지 않자 증거가 있다고 하면서 일곱 아들들의 채찍을 빼앗아 그 속에 든 칼을 파사익왕에게 보인 것입니다. 이에 왕은 대로하여 일곱 아들들의 목을 단숨에 치게 하였던 것입니다.
한편 불심과 덕망이 높기로 이름난 비사리 여인의 일곱 아들이 무참하게 처형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 아난 존자는 이것이 어떠한 인연의 소치인가를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부처님은 잠깐 침묵하셨다가 침통한 음성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의 죽음은 금생의 일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니라. 그들 일곱 사람은 저 과거세에 서로 친구 사이로서 남의 소를 훔치던 소도둑이었느니라. 소를 훔친 그들은 홀로 사는 노파의 외딴집 근처에서 소를 잡았는데, 노파는 좋아라 하며 불을 피우고 물을 끓이면서 삶을 준비를 하였고, 소금을 공급하여 함께 맛있게 먹었느니라. 그때의 일곱 도둑이 지금의 비사리 여인의 일곱 아들이며, 그 때의 노파가 지금의 비사리 여인이니라. 그리고 그 때의 소 주인은 일곱 아들을 역적으로 모함한 바로 그 대신이니라. 이러한 인연으로 그들은 금생에 모함을 받아 한꺼번에 죽임을 당하게 된 것이니라."
부처님의 말씀처럼 일곱 명의 소도둑은 남의 소를 도둑질하고 죽인 죄로 금생에 비참한 죽음을 받은 것으로 투도와 살생을 한 직접적인 과보라고 할 수 있지만, 비사리 여인은 그 소를 죽인 것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었지만, 도둑질하여 잡은 쇠고기를 삶고 소금을 갖다 주어 함께 맛있게 먹은 죄 때문에 일곱 아들의 어머니로서 아픔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이 때 아난 존자는 도둑질을 한 그들이 어떻게 그와 같은 귀한 가문에 태어나서 높은 벼슬까지 할 수 있었으며, 비사리 여인은 또 무슨 공덕을 지은 바 있어 그렇게 총명하고 부귀하게 살게 되었는지를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이 인과를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들이 어떤 인연으로 이러한 부귀한 집에 태어나서 고귀한 신분을 얻게 되었나이까?"
"부귀한 집에 태어난 데도 그만한 인연이 있느니라. 아득히 먼 옛날 가섭부처님이 출현하시어 법을 세상에 전하고 있을 때, 재산이 넉넉한 한 노파가 부처님이 말씀하신 진리와 그 제자들을 지극히 공경하였으며, 절에 자주 찾아가서 여러 가지 공양을 올렸느니라. 어느 날 그녀는 향과 기름 등을 마련하여 가지고 절에 공양하러 가다가, 언덕을 오르는 길목에서 일곱 청년들과 만났느니라. 이 때 노파는 일곱 청년들에게 간곡히 당부하였느니라. '이 향과 기름을 나와 함께 가지고 절에 가서 공양 올리는 일을 거들어 주면 한없는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일곱 청년들은 노보살의 공양을 도와 주었고 자비심이 넘치는 노파에게 훈훈한 정을 느껴 발원을 하였느니라. '다음 생에는 저희들이 노모님을 어머니로 모시고 살기를 원합니다.'
그 때의 인연이 있어 금생에 비사리 여인과 모자로 만난 것이며, 부처님과 함께 공양을 올린 인연 때문에 고귀한 신분으로 태어나 불심이 돈독한 불제자가 되었느니라."
이 설화를 살펴보면 금생의 삶만을 위하고 목전의 부귀영화만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온갖 죄업을 불사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위험한 짓인가를 절감하게 됩니다. 진실로 부처님 법을 믿는다면 금생 이후로는 결정코 부처님 법을 떠나지 않고 세세생생 불법을 믿겠다는 것과, 지혜를 닦고 복을 짓고 죄업을 참회하며 살기를 다짐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남의 소를 훔쳐서 잡아 먹은 일곱 청년과 고기를 탐한 노파의 전생은 닮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향과 기름을 공양한 저 노파와 그것을 기쁜 마음으로 도와 준 일곱 청년의 전생을 힘써 배워야 할 것입니다. 또한 소를 훔쳐와 잡은 것을 보고 고기를 실컷 먹겠다는 생각으로 좋아하면서 함께 먹은 업보로 금생에 뼈아픈 슬픔을 당한 여인의 인과응보를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부귀를 누리고 살다가 젊고 씩씩한 일곱 아들을 잃는 아픔을 겪겠느냐? 가난하게 고생을 하며 살지만 부모 자식 사이에 생이별이 없는 그런 삶을 살겠느냐?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누구나 나중을 택할 것입니다.
불자라면 모름지기 살생은 말할 것도 없고 함부로 육식을 하여서도 안됩니다. 출가보살이라면 당연히 육식을 금하여야 하고, 재가보살일지라도 육식을 좋아하는 생활태도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자비심을 기르고 중생을 섭수(攝受)해야 할 것입니다.
참된 보살의 삶! 그것은 우리 모두의 한 마음이 결정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출처 : 일타스님의 범망경보살계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석가모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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