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경계(삿된 직업으로 생활을 하지 말라)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너희 불자들이여, 나쁜 마음으로 이양을 위하여 남색이나 여색을 판매하거나, 제 손으로 생명을 죽여 나쁜 음식을 만들어 먹거나 스스로 갈고 스스로 찧으며, 남녀를 점치고 상보고 해몽하면서 길흉을 말하며 이 남자 저 여자에게 주술로 교묘한 술수를 부리거나, 매를 길들이는 법과 백 가지 약이나 천 가지 약을 섞어 독약을 만들거나, 뱀독과 금과 은과 벌레로써 독약을 만들면 도무지 효순심이 없는 것이니, 만일 짐짓 이런 짓을 하면 경구죄를 범하느니라.
"若佛子야 以惡心故로 爲利養하야 販賣男女色하며 自手作食하며 自磨自
1) 불건전한 직업
이 계는 건전하지 못한 일을 따름으로써 악을 더하게 되는 것을 경계한 계입니다. 곧 이 계는 나쁜 생업에 종사하는 그 자체를 금하고 있습니다.
"惡心"은 좋은 마음이 아닌 나쁜 동기를 지닌 마음입니다. 구체적으로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삼독심(三毒心)을 가리키며, "위이양"은 이와 같은 삼독심에 사로잡혀 자신의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뜻합니다. "판매남녀색"(販賣男女色)은 소년소녀를 음란과 타락의 소굴에 빠뜨려 매매하고 돈을 버는 일이며, 자수자식(自手自食)은 생명을 죽여 삶고 끓이고 빻는 일을 스스로 행하는 것이며, 자마자용(自磨自
특히 삼독심에 사로잡히면 독약을 만드는 무서운 일까지 주저없이 저지르게 됩니다. 경문에서 화합백종독약(和合百種毒藥), 천종독약(千種毒藥) 이라 한 것은 백종의 독약, 천종의 독약을 섞어서 더욱 독한 약을 만드는 것을 밝힌 것이고, 사독(蛇毒)은 5월 5일 독이 오른 뱀을 잡아서 섞어 만든 독약이나, 독약을 뱀에게 먹인 다음 더욱 독이 오른 그 뱀을 잡아서 만든 독약을 말한 것입니다.
생금은(生金銀)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법장스님은 가짜 금과 은을 섞어서 사람을 속이는 것으로 해석하였고, 천태 지자대사는 생금과 생은은 그대로 독약이라고 풀이하셨습니다.
또 고독(蠱毒)의 고는 독한 뱀이나 지네 등 각양각색의 독충을 잡아서 한 항아리에 넣어 두면 서로 잡아먹어 마지막으로 남게 되는 가장 강한 놈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것을 잡아 독약을 만든 것을 고독이라고 합니다.
실로 중생을 해롭게 하면서까지 나를 이롭게 하는 이상의 직업들은 보살의 자비심이나 청정한 마음을 따질 필요도 없이 하여서는 아니되는 직업이요 행위인 것입니다. 홍찬스님은 이 계의 취지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습니다.
"보살은 마땅히 일체의 중생 자애와 애민으로 대하되 마치 자기의 갓난아기처럼 여겨서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남은 이롭게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도리어 자기의 삶을 위해 남을 해친다면, 그것은 자식의 고기를 먹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것을 "자애하고 연민하는 마음이 없다(無慈愍心)고 하신 것이다. 또 보살은 중생 보기를 자기 부모처럼 여겨야 하는데, 도리어 자기를 이롭게 하고 어버이를 상하게 한다면 이것은 부모를
거역함이 아주 심한 것이다. 그러므로 효순심이 없다(無孝順心)고 하신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짓을 한다고 하신 것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저지르는 것이요 삿된 법으로 생활을 하는 것이므로 경구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한 것이다.
마땅히 하지 말아야 할 짓을 저지르는 것..... 물론 자신의 생활을 위해 남을 해롭게 하는 일을 구체적으로 따지기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손해를 본 상대가 어느 정도 가벼운 손해만 보았다면 경구죄를 범하는 것으로 그치겠지만, 만일 사람의 목숨을 해치거나 정신적인 불구자로 만들었다면 그것은 중계에 해당될 것입니다.
가령 나의 생활을 위해 아편이나 히로뽕을 제조하여 불법적으로 판매하고, 그 결과 사람들의 건강을 완전히 버려 놓았거나 생명을 위태롭게 하였다면 이것은 경구죄가 아니라 중계에 해당되는 죄입니다. 그리고 상대의 재산에 많은 손실을 주면서 그것이 곧 나의 이익이 되도록 하였다면 도계(盜戒)를 동시에 범한 것이며, 만일 직업적으로 사음(邪淫)을 하도록 이끌었다면 사음계를 범한 것이므로 중죄를 범한 것이 너무나 자명해지는 것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위에서 열거한 내용 중에서도 그것이 남을 해롭게 할 목적이 아닌 경우, 예컨대 극약이라 할지라도 어떤 질병을 치유할 목적으로 독약을 제조하였다면 결코 범계가 되지 않습니다. 홍찬스님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 만일 재가인으로서 주술과 공교한 기술을 익히거나 의약의 기술을 익혀 여법(如法)하게 활용함으로써 중생을 상해하지 않는다면 계를 범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출가한 이가 바른 정법의 주술로 위태로운 액을 구제해 주기 위해 쓰는 경우, 그리고 자신의 이익을 구하는 마음이 없을 경우 또한 무방하다."
법도에 맞게, 그리고 정법(正法)에 입각하여 주문을 외우고 기술을 활용하되 사리사욕이 없다면, 이 계를 범한 것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홍찬스님은 삿된 방법으로 사는 사구활명(邪求活命)의 종류를 재가5종, 출가4종으로 나누어서 설명하였습니다.
재가인의 5종 사명(邪命)은,
① 이양을 위하여 거짓으로 기이하고 특별함을 나타내는 것,
② 이양을 위하여 스스로 자신의 공덕이 큰 것처럼 말하는 것,
③ 이양을 위하여 길흉을 점치고 관상을 보는 것,
④ 이양을 위하여 큰소리로 위엄을 표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외경하게 하는 것,
⑤ 이양을 위하여 얻은 바 공양을 스스로 설명하면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 등입니다.
출가인의 4종 사명으로는,
① 의약과 풍수지리나 논밭을 경영하며 사는 하구식(下口食),
② 천문, 점성을 하여 생활을 영위하는 앙구식(仰口食),
③ 세력가나 부호에 아첨하여 생활하거나 사절이 되어 사방을 다니며 교묘한 말을 구사하여 많은 이익을 도모하는 방구식(方口食),
④ 갖가지 주술이나 길흉화복을 점치는 유구식(維口食) 등으로 분류하였습니다.
2) 청정한 생업
그렇다면 어떻게 사는 것이 사명(邪命)이 아닌 바른 생활, 곧 정명(淨命 : 正命)으로 사는 것인가? 홍찬스님은 4종 정명을 들었습니다.
"청정한 생활법 또한 4가지가 있다.
첫째, 깊은 산속에서 과일과 채소를 먹으며 수행하는 것이요,
둘째, 항상 얻어서 먹는 것이요,
셋째, 단월이 가져다 주는 공양을 먹는 것이며,
넷째, 승가대중의 공양을 먹고 수행하는 삶이다.
이렇게 사는 것은 마음자세를 더럽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명, 곧 거룩한 생활이라고 하느니라."
그런데 대승보살도의 입장에서 보면 대승보살은 중생을 요익하게 하기 위해 중생과 함께 살아가는 동사섭행(同事攝行)을 해야 합니다. 따라서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제 15권에서는 보살이 배우지 않으면 안되는 것으로 영농공업(營農工業), 상우공업(商佑工業 : 상업), 사왕공업(事王工業 : 정치학), 서산(書算 : 수리학), 계탁(計度 : 산수), 수인공업(數印工業 : 경리), 점상공업(占相工業 : 점술), 주술공업(呪術工業), 영조공업(營造工業 : 경영학), 생성공업(生成工業 : 축산업), 방나공업(防那工業 : 방직업), 화합공업(和合工業 : 재판, 법률학), 성숙공업(成熟工業 : 조리술), 음악공업(音樂工業) 등을 들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기술은 재가보살에게 합당한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요컨대 정명은 뭇 생명있는 자들을 나의 몸과 같이 생각하며 동사섭의 차원에서 이해해야 할 생활법입니다. 남을 살리는 생활, 남을 살아나게 하는 생활, 한 마디로 요약하면 활명(活命)이 바로 정명인 것입니다.
인과업보가 너무나 명백하거늘, 보살이 되어 삿된 생활로써 묵숨을 유지해서야 되겠습니까? 마땅히 정명의 생활, 활명의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뭇 생명있는 자들을 살리는 활명의 생활을 할 수 있는 이라면 인과의 도리라도 철저히 믿고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 어느것 하나 인과 업보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우리 마음자리의 근본바탕은 불생불멸(不生不滅)이지만, 이 세상의 삼라만유는 모두 인과업보 속에서 전개되고 윤회합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갈고 닦아 도인의 경지에 가까이 나아갈수록 인과를 철저히 믿어 더욱 열심히 정진하고 선행을 닦으며 나아가야 합니다. 어떤 이가 나쁜 약을 만들거나 그릇된 운명판단법으로 남을 속여 눈앞의 몇푼 수입을 취하였다고 잘된 일이라 생각한다면, 이 이상으로 어리석은 일은 다시 없을 것입니다. 만일 그가 인과의 도리를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다면, 이와 같은 무서운 죄업을 저지르지 않을 것입니다.
3) 윤회에 대한 믿음과 바른 삶
불기 2496년(1952) 3월 2일, 경사암도 고성군 개천면 옥천사(玉泉寺)에서는 인과와 윤회가 있다는 것을 입증해 보인 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 절에서 나무를 하던 부목(負木) 진재열이 몇 사람의 일꾼들과 함께 산에 나무를 베러 갔다가, 굴러내리는 통나무에 치어 질식사를 하였습니다. 시체는 즉시 옥천사로 옮겨졌으나, 진재열의 영혼은 옛 고향 집으로 갔습니다. 배가 많이 고픈 상태에서 죽었기 때문에, 그의 혼은 집에 오자마자 길쌈을 하고 있는 누나의 등을 짚으며 밥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어머니와 함께 길쌈을 짓던 누나가 갑자기 펄펄 뛰며 머리가 아파 죽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누나가 아프다고 하자 면목이 없어진 그는 한 쪽에 우두커니 서 있었는데, 어머니가 보리밥과 풋나물을 된장국에 풀어 바가지에 담아 와서, 시퍼런 칼을 들고 이리저리 내두르며 벼락같이 고함을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어서 먹고 물러가라." 기겁을 한재열은 "그래도 절 인심이 좋구나" 생각하며 옥천사로 올라왔습니다. 얼마를 오다 보니 아리따운 기생들이 녹색 옷에 홍색 띠를 두르고 장구를 치며 노는 모습이 가히 볼 만하였습니다. 재열은 배고픈 것도 잊고 구경을 하다가 "환락에 빠진 여인들을 가까이 하지 말라"는 경구가 떠올라 다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절문 앞에 이르렀을 때, 평소와는 달리 수건을 머리에 질끈 동여맨 수십명의 무인들이 활을 쏘며 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재열은 구경할 여가도 없이 자기 방으로 들어왔고, 그와 동시에 죽었던 재열은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런데 조금 전에 집에서 보았던 누나와 어머니는 물론 여러 조객들이 자기를 앞에 놓고 슬피 울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영문을 알수가 없었던 재열은 울다 말고 기절초풍을 하는 어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어머니, 왜 여기 와서 울고 계십니까?"
"네 놈이 어제 오후 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죽었지 않았느냐! 그래서 지금 초상을 치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세상은 진정 일장춘몽이었습니다. 하도 어이가 없어 재열은 다시 어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어제 집에서 누나가 아픈 일이 있었습니까?" "그럼, 멀쩡하던 년이 갑자기 죽는다고 하여 밥을 풀어 버렸더니 다시 살아나더구나." 재열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기생들이 놀던 곳을 가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개구리들이 물장구를 치며 놀고 있지 않겠습니까? 또 절 문 앞의 무인들이 활 쏘던 곳으로 가 보니 벌들이 집을 짓느라고 날아다니고 있었습니다. 그제서야 비로소 무릎을 쳤습니다. "윤회생사(輪廻生死)가 바로 이러한 것이로구나. 내가 만일 그 기생 틈에 끼었으면 벌 새끼가 되고 말았을 게 아닌가?" 이 때 재열은 윤회전생(輪廻轉生)을 분명히 깨달았고, 그 뒤 열심히 불도를 닦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지금도 옥천사에 가면 들을 수가 있습니다. 인과윤회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것을 아는 불자라면, 더구나 발심한 대승불자라면 남을 해쳐서 자기를 이롭게 하는 죄업을 지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4) 살려 가는 묘를 살려라
그리고 어느 계에서나 예외는 있을 수 있습니다. 설사 독약이라 하여도 쓸 곳이 있는데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요컨대 남을 이롭게 하는 이타(利他)인가 남을 해롭게 하는 해인(害人)인가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이와 관련된 고사(故事) 한 편을 소개합니다.
조선시대에 당파싸움이 심했던 것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효종, 현종, 숙종 등 이조 중엽에 서인의 거장(巨匠) 인 송시열(宋時烈), 남인의 거두인 허미수(許眉叟)가 쌍벽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이 두사람은 뛰어난 대학자들로서 그들 사이에 있었던 재미있는 이야기가 널리 전해지고 있습니다.
어느 날 조정에 국상(國喪)이 발생하였으므로 조정의 시임(時任) 대신들은 물론 전임 대신들도 모두 입궐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입궐하는 길에서 송시열과 허미수가 마주치게 된 것입니다. 송시열은 흰 갓을 쓰고 있는 허미수를 보고 글을 지어 건드렸습니다. "흰 갓을 감추어 두고 국상 나기를 기다리는구먼." 이 시가 끝나기 무섭게 허미수가 웅수했습니다. "안은 검고 겉은 희니 그 마음을 가히 알겠도다." 송시열이 평소에 쓰고 다니는 검은 갓에 흰 헝겊을 싸서 상중(喪中)에 쓰는 모자로 만든 것을 보고 즉각 쏘아붙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어느 순간에도 두 사람은 정적(政敵)의 관계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뒤 송시열이 병이 났습니다. 그러나 의원의 약으로는 좀처럼 차도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송시열은 아들을 시켜 허미수에게 화제(和劑 : 처방)을 얻어 오게 하였습니다. 아들은 평소 사이가 좋지 않은 그에게 가서 화제를 얻는다는 것이 마음으로 내키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명이라 어쩔 수 없이 허미수에게 갔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허미수는 화제 가운데 비상(砒霜)을 다량 넣도록 하였습니다. 비상은 극약인만큼 아들은 자기 아버지 우암을 해치려는 음모로 생각하고 쓰지 않으려 하였으나, 허미수의 인품을 믿은 송시열은 그 처방대로 약을 써서 병을 치유하였습니다. 송시열 선생은 평소 속병이 있어 자기 소변을 받아 잡수셨는데, 오랜 세월 동안 소화기가 소변에 절어 체한 것이므로, 그것을 뚫으려면 비상을 써야 한다고 판단하여 그와 같은 처방을 준 것입니다. 이런 경우의 비상은 독약이 아니라 좋은 치료제가 되므로 나쁜 행위라고 할 수 없습니다.
계에는 이와 같은 지범개차(持犯開遮)의 뜻이 있음을 아울러 알아야 합니다. 모름지기 모든 일을 함에 있어
살리는 데로 초점을 모으고, 함께 살려 가는 묘(妙)를 살려야 합니다. 나쁜 직업은 이 마음이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스스로의 능력과 함께 보살은 마땅히 이타(利他)를 생각하며 생업을 택하여야 할 것입니다.
출처 : 일타스님의 "법망경보살계"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석가모니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