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섭은 마갈타국의 수도인 왕사성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마을의 부유한 바라문종족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금과옥조로 부모의 사랑을 온몸에 받고 자라났으며, 학문을 배우기 시작하자 뛰어난 수재로서 이름을 날렸다. 다만 매우 이상스러운 일은 어렸을 때부터 세상의 쾌락에 관한 일은 아주 싫어하는 특수한 성질로 욕심부리는 것을 미워하고 부정스러운 것을 증오했으며, 언제나 번뇌를 털어버리고 열반에 들기를 갈망하고 있었다.
결혼기에 접어들자 부모는 아름다운 소녀를 골라서 짝을 지어주려고 했지만 그는 완강히 반대하여 결혼을 승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부모는 강제로 가비라(迦毘羅) 라는 부잣집 딸인 묘현(妙賢)이라는 미인을 골라 결혼시키고 말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신부도 역시 인간의 다섯가지 욕망을 싫어하여 부정스러운 짓을 원하지 않는 것은 남편과 똑같았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 약속해서 표면상으로는 부부인척 하면서도 내용적으로는 부부의 정을 교환하지 않고 깨끗한 생활을 계속하고 있었는데 양친이 사망한 뒤에는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듯이 출가해서 세존의 제자가 돼버렸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대가섭이 출가한 날은 바로 석가모니가 성도(成道)한 날이었다고 한다. 대가섭은 머리를 깎은 뒤에도 종종 유명한 스승을 구하여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석가모니가 바야흐로 도를 통하여 1,250명의 제자와 함께 죽림정사(竹林精舍)에 계신다는 소문을 듣고 출발했다. 세존은 나무 사이에 앉아 있었는데 그 모습은 신령님과도 같고, 상호(相好)는 미묘하며, 제근(諸根)은 조화를 이루고, 마치 금으로 된 산과도 같았다. 그 모습을 목격한 대가섭은 자기도 모르게 합장경례하면서 말했다. 「세존이시여! 소인은 세존의 제자가 되겠나이다.」하고 말하자 세존은 또한 입을 열고, 「가섭이여! 너는 진실한 나의 제자이다. 나는 너의 스승이다. 가섭이여! 나는 지금 청정하고 진실된 마음을 성취했도다.」라고 말하고, 사성제(四聖諦) 12인연 등을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세존의 위신력(威神力)에 의하여 거의 도(道)를 얻은 가섭은 스스로 세존의 가르침을 메마른 땅이 물을 빨아들이듯이 받아들였다.
그는 세존의 제자가 된지 8일만에 즉시 부처의 증명을 얻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대가섭이 여러 사람들보다도 뛰어난 점은 욕소지족(欲小知足), 다시 말해서 욕심을 작게 하여 족(足)함을 알고, 오직 스스로 도를 닦는데 있었던 것이다.
그는 사리불이나 목련들과 같이, 세존을 대표해서 여러 제자들을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만 스스로 수도(修道)하는 것만을 즐기고 설법이나 교화하는데는 아랑곳하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설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너도 여러 사람에게 설법을 통해서 교화시키는 것이 좋아.」하고 말했을때도, 사람을 교화시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임을 말하고 그는 사양해서 그는 여러 비구들과 같이 세존의 설법을 듣는 것을 즐기며 기뻐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닦은 그의 엄정한 실천과 연상자로서의 겸손한 태도와 세존이 그에 대해서 제자라기 보다는 오히려 빈객(賓客)과 같은 대우를 해준데서 자연히 그는 교단(敎團)의 중진(重鎭)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만년의 이야기이지만, 세존이 기원정사(祇園精舍)에 있을때는 오랫동안 다른 지방에서 수도하고 있던 그는 어느날 남루한 의복을 걸치고 수염은 길대로 길며, 두발도 역시 더벅머리 이상의 모양이 되어 거지중에도 왕거지가 된 모습으로 세존에게로 다가갔다. 좌정하고 있던 신참 대중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한결같이 경멸의 눈초리로 그를 쏘아봤다. 세존은 그를 보고, 「가섭아, 잘왔어. 미리 자리를 남겨 뒀지. 자, 어서 저쪽으로 앉아라.」하고 말했다. 대중들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러나 대가섭은 조용히 나아가서 세존에게 공손히 절을 하고나서, 「소승은 여래의 말석의 제자 이옵니다. 미리 마련된 자리는 황송하옵니다.」하고 말하고 한쪽 구석에 앉았다. 세존은 그 때 대중을 향하여 대가섭의 위덕의 관대함을 찬양했다. 그는 가정을 방문하는데 있어서도 부잣집에는 가지 않고, 항상 가난한 집을 골라서 찾아갔다. 부한 자도 가련하지만, 나날의 생활조차도 어려운 가난한 자는 특히 더 가련하다. 그들은 가난 때문에 오욕(五欲)의 즐거움도 맛보지 못하고, 법을 듣고 기뻐하며, 보시(布施)를 한다는 행복도 얻을 수가 없다. 대가섭의 자비심은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이런 가련한 사람들에게 쏠리어졌던 것이다.
그 당시 왕사성에는 매우 가난한 노파가 한 사람 있었다. 아주 더러운 빈민촌에서 살고 있었으며, 병에 걸려서 고통 끝에 그저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심한 굶주림에 시달린 노파는 남이 먹다 남은 음식이나 버려진 쌀뜨물을 깨어진 기왓장에 받아서 겨우 창자를 달래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날 대가섭은 탁발하다가 그 노파의 집 앞에 이르렀다. 노파는 깜짝 놀라, 더러운 집에서 살고, 몸에 걸칠 의복도 없이 이런 꼴로 살아가는 자기의 신세타령을 하면서 아무도 자기의 추위와 배고품과 괴로움을 구해 줄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한탄했다. 「세상에서 가장 자비롭고, 인정이 많으신 분은 세존밖에는 없습니다. 저는 그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제 당신의 고통을 구하기 위하여, 또 당신의 가난을 보고도, 먹을 것을 얻으러 왔소. 당신이 만약에 조그마한 것이라도 나에게 베풀어 주신다면 당신은 반드시 응보(應報)를 받을 것입니다.」이렇게 말하며 노파에게 교(敎)를 설하고 노파가 주는 쌀물을 받아 마시었다. 노파는 눈물을 흘리면서 기뻐했다.
세존이 열반할 때에, 그는 북방의 나라에서 전도(傳道)를 하고 있었는데, 세존의 열반이 가까워짐을 전해 듣고 급히 귀로에 올랐다. 세존이 열반한지 7일만에 제자들과 신자들은 세존의 화장식을 봉행하고 있었는데, 화장하기 위한 장작이 아무리 애를 써도 전연 타지가 않았다. 마침 그 때 총총걸음으로 대가섭이 도착했다. 관은 그대로 장작더미 위에 올려져 있었고, 사람들은 추모의 정에 울먹이고 있었다. 그는 관 앞으로 다가가서 합장해서 절을 하고, 목메어 울었다. 이윽고 그는 게송을 읊고 불덕(佛德)을 찬양했다. 그러자마자 장작은 저절로 불이 붙어서 훨훨 타오르고 성관(聖棺)은 타기 시작했다. 세존이 열반한 후 세존을 대신하는 것은 그 유훈(遺訓)이다. 한시 바삐 그 유훈을 정리해 두지 않으면 아니된다. 대가섭이 계획한 성업(聖業)은 바로 그것이었다. 세존이 열반한지 90일째 되는 날에 결집(結集) 첫날의 막은 열렸던 것이다. 그것은 죽림정사에서 약 10리 떨어진 조용한 석실에서였다. 약 500명의 성중(聖衆)들은 대가섭과 아나율 등을 수석으로 해서 이곳에 모여 들었다. 율장(律藏) 의 송출자(誦出者)에는 우바이(優婆離), 경장(經藏)의 송출자에는 아란(阿難)이 최적임자로 선출되었다. 그래서 그것을 통할(統轄)하는 것은 대가섭이었다. 그는 엄숙한 태도로 상석에 앉아서 대중을 독찰했다. 그 위덕의 준엄함이란 마치 세존과 똑같다고 여러 비구들은 입을 모았다. 뛰어난 재주와 기품으로 이름 높은 사리불과 목련의 이대 제자가 세존의 양쪽 팔 역활을 하는 사이에는 다만 묵묵히 도를 닦으며, 공부만 하고 있다가 두 제자가 세상을 떠나자마자 의젓하게 교단을 양어깨에 짊어지고 일어선 대가섭의 깊은 수양과 크나큰 도량을 엿볼 수가 있다. 그후 20년 고령에 달하고 있던 그는 아란에게 법장(法藏)을 부탁하고, 불탑에 최후의 예배를 드리고 왕사성의 남쪽에 있는 수목이 울창한 계족산(鷄足山) 깊숙히 들어가서 이 세상을 하직했던 것이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석가모니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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