增一아함경, 雜아함경

잡아함경-1775-355

근와(槿瓦) 2017. 8. 18. 00:45

잡아함경-1775-355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1771 / 2145] 쪽
같으니라. 칼을 뺀 다섯 원수라고 한 것은, 5수음(受陰)을 비유한 것이며, 몸 안의 여섯 도적이라고 한 것은 여섯 가지 사랑과 기쁨을 비유한 것이며, 빈 마을이라고 한 것은, 6내입(內入)을 비유한 것이다. 선남자들아, 안입처(眼入處)를 관찰해보면 그것은 다 덧없는 것이어서 변하고 무너지는 것이며, 눈을 고집하는 자도 또한 덧없고 거짓된 법이다. 이입처(耳入處) · 비입처(鼻入處) · 설입처(舌入處) · 신입처(身入處) · 의입처(意入處)도 그와 같으니라. 빈 마을의 떼도적이라고 한 것은 6외입처(外入處)를 비유한 것이니, 곧 눈은 마음에 들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빛깔의 해침을 받는다. 귀가 소리에게, 코가 냄새에, 혀가 맛에게, 몸이 감촉에 해침을 받는 것도 마찬가지며, 뜻은 마음에 들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법의 해침을 받는다. 사나운 흐름이라고 한 것은 네 가지 흐름인 애욕의 흐름[欲流], 존재의 흐름[有流], 소견의 흐름[見流], 무명의 흐름[無明流]을 비유한 것이다. 강이라고 한 것은 세 가지 욕망인 욕애(欲愛), 색애(色愛), 무색애(無色愛)를 비유한 것이다.


두려움이 많은 이쪽 언덕이라고 한 것은 존재하는 몸을 비유한 것이며, 맑고 시원하고 편안하고 즐거운 저쪽 언덕이라고 한 것은 무여열반(無餘涅槃)을 비유한 것이다. 뗏목이라고 한 것은 8정도(正道)를 비유한 것이며, 손발을 방편 삼아 흐름을 끊고 건넌다고 한 것은 열심히 노력하여 용맹하게 저쪽 언덕에 이르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바라문이 사는 곳이라고 한 것은 여래 · 응공 · 등정각을 비유한 것이다. 이와 같이 비구들아, 스승은 자비로써 제자들을 안위시키는 것을 의무로 삼는다. 내가 할 일은 이미 다 마쳤다. 너희들도 이제 그 할 일을 해야 한다. 즉, 비고 고요한 곳이나 나무 밑이나 깨끗한 방에 풀을 깔아 자리를 만들고, 한데나 무덤 사이 같은 외진 곳에 앉아 부지런히 선정을 닦고, 부디 방일하게 행동함으로써 뒷날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이것이 곧 내가 가르치는 법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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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3. 고법경(苦法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섬미국 구사라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일체 괴로운 법과 괴로움의 발생 · 소멸 · 맛들임 ·재 앙 · 벗어남을 사실 그대로 알고 본다. 그래서 다섯 가지 욕망 보기를 마치 불구덩이처럼 본다. 이와 같이 다섯 가지 욕망에 대하여 관찰하고 나서는 다섯 가지 욕탐(欲貪) · 욕애(欲愛) · 욕염(欲念) · 욕착(欲着)으로 영원히 그 마음을 가리지 않는다. 그는 그 욕심을 알기 때문에 가는 곳이나 머무르는 곳에서 스스로 그 욕심을 막고 닫는다. 가는 곳이나 머무르는 곳에서 미리 막고 닫으면 가고 머무르는 어느 곳에서도 세상의 탐욕과 근심과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이 그 마음에서 새어나가지 않느니라.


어떤 것을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가 일체 괴로운 법과 그 발생 · 소멸 · 맛들임 · 재앙 · 벗어남을 사실 그대로 알고 보는 것이라고 하는가?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이것은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다라고 사실 그대로 알고, 이것은 괴로움의 발생이요,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며,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다라고 사실 그대로 안다. 이것을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가 일체 괴로운 법과 그 발생 · 소멸 · 맛들임 · 재앙 · 벗어남을 사실 그대로 알고 보는 것이라고 하느니라. 어떤 것을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가 다섯 가지 욕망 보기를 불구덩이처럼 보고 세상의 탐욕과 근심과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으로 다시는 그 마음을 가리지 않는 것이라고 하는가? 비유하면 어떤 촌락 끝에 깊은 구덩이가 있고, 그 구덩이 속에 이글거리는 불이 가득히 담겨져 있으나 연기나 불꽃이 없는 것과 같다. 그 때 어리석지도 미련하지 않고 총명하고 지혜로우며, 즐거운 것을 좋아하고 괴로운 것을 싫어하며, 사는 것을 좋아하고 죽는 것을 싫어하는 어떤 사람이 있다.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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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각한다.  '이 불구덩이 속에는 이글거리는 불이 있다. 만일 내가 저 속에 떨어지면 죽을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래서 그곳을 멀리 하려는 마음을 내고, 멀리 하기를 생각하고 멀리 하기를 원한다. 이와 같이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다섯 가지 욕망 보기를 불구덩이처럼 보고 세상의 탐욕과 근심과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으로 다시는 그 마음을 가리지 않느니라. 만일 가는 곳이나 머무르는 곳에서 미리 막고 미리 알면 세상의 탐욕과 근심과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이 그 마음에서 새어나가지 않는다. 비유하면 촌락 끝에 있는 가시덤불로 가득찬 내림(▩林)과 같다. 어떤 장부가 할 일이 있어 그 숲 속에 들어갔는데 전후 · 좌우 ·상하에 모두 가시뿐이었다. 그 때 그 장부는 바른 생각으로 다니고 바른 생각으로 오고가며, 바른 생각으로 단정히 보고 바른 생각으로 몸을 굽혔다. 왜냐하면, 날카로운 가시가 많아 몸을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도 그와 같다.


혹 촌락이나 도시를 의지해 살면서, 이른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마을에 들어가 걸식할 때에는, 그 몸을 잘 단속하고 그 마음을 잘 다잡아, 바른 생각으로 편안히 머물고 바른 생각으로 다니며, 바른 생각으로 눈을 뜨고 바른 생각으로 관찰한다. 왜냐하면 날카로운 가시에 거룩한 법(法)과 율(律)을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어떤 것을 날카로운 가시가 거룩한 법과 율을 다치게 하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마음에 들고 사랑스러워 기억할만한 빛깔을 말하니, 이것을 날카로운 가시가 거룩한 법과 율을 다치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마음에 들고 사랑하고 기억할만한 빛깔이 거룩한 법과 율을 다치게 하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다섯 가지 욕망[五欲功德]을 일컫는 말이니, 눈으로 빛깔을 분별하고는 사랑하는 생각을 일으켜 욕락(欲樂)을 자라게 한다. 귀로 소리를 분별하고, 코로 냄새를 분별하며, 혀로 맛을 분별하고, 몸으로 감촉을 분별하고는 사랑하는 생각을 일으켜 욕락을 자라게 한다. 이것을 사랑하고 기억할 만한 빛깔이 거룩한 법과 율을 다치게 하는 것이라고 하고,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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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을 또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가 가는 곳이나 머무르는 곳에서 미리 막고 미리 알아 세상의 탐욕과 근심과 착하지 않은 법이 그 마음에서 새어나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혹 때로는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도 바른 생각을 잃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생각을 일으켜 탐욕을 키우고 성냄과 어리석음을 키우기도 하니, 그들은 우둔한 근기(根器)이다.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로서 비록 발생을 소멸하려는 생각을 내었다가도 욕심으로 마음을 가리고 만다. 마치 쇠구슬을 불에 달구어 몹시 뜨겁게 한 뒤에 물을 조금 뿌리면 물이 이내 말라 없어지는 것처럼,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로서 우둔한 근기가 생각을 내었다가 이내 사 라지는 것도 그와 같으니라.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가 그렇게 머무를 때, 혹 왕이나 대신이나 친족이 그에게 찾아가 봉록(俸祿)을 주겠노라고 청하며 말하기를 '장부여, 무엇 때문에 머리를 깎고 발우를 들고 몸에는 가사를 입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걸식하는가? 편안하게 다섯 가지 향락을 누리면서 보시를 행해 복을 짓는 것만 못하다'라고 한다면, 어떤가? 비구들아, 그런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가 국왕이나 대신이나 여러 친족이나 시주가 봉록을 빌미로 청한다고 해서 그가 속세로 돌아가 계율에서 물러나리라고 생각하느냐?"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일체 괴로운 법과 그 발생 · 소멸 · 맛들임 · 재앙 · 벗어남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고 보기 때문입니다. 불구덩이를 보고는 다섯 가지 욕망에 비유하고,……(내지)……세상의 탐욕과 근심과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이 다시는 그 마음을 가리지 못할 것입니다. 또 가는 곳이나 머무르는 곳에서 미리 막고 미리 알아……(내지)……세상의 탐욕과 근심과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이 그 마음에서 새어나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설사 국왕이나 대신이나 친족이 봉록을 내세워 청한다고 해도 속세로 돌아가 계율에서 물러날 리는 없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그 마음이 오랫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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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여러 세계에 흘러 들어가고 윤회하면서도 멀리 여읨을 향하였고, 욕심 여읨을 향해 나아갔기 때문에 열반의 경지에서 고요하게 버리고, 열반을 좋아하여 번뇌에서 나와 지극히 고요하고 맑고 시원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국왕이나 장자나 친족이 청한다고 해도 속세로 돌아가 계율에서 물러날 리가 없다. 그렇게 하려는 다른 사람들만 큰 고통을 받을 것이다.


비유하면 항하의 물은 오랜 세월동안 치달려 동방으로 쏟아져 흘러든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끊어 서방으로 쏟아져 흘러들게 하려고 한다면 과연 그렇게 될 수 있겠느냐?" 대답하였다. "불가능한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항하의 물은 오랫동안 동방으로 흘렀으므로 갑자기 서방으로 흐르게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 대중들은 부질없이 고달프기만 할 뿐입니다."  "그렇다.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오랜 세월동안 멀리 여읨으로 향해 나아갔고 흘러들었으므로……(내지)……갑자기 물러나게 하려고 해도 그리될 수 없다. 다만 괴로울 뿐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1174. 유수경(流樹經)[이 소경은 『증일아함경』 제38권 제43 「마혈천자문팔정품(馬穴天子問八政品)」의 3번째 소경과 그 내용이 비슷하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아비사(阿毘闍)의 항수(恒水 : 갠지스강) 가에 계셨다. 그 때 어떤 비구가 부처님께서 계신 곳으로 찾아와 부처님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리고 한쪽에 물러나 앉아서 여쭈었다.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저를 위해 설법해 주십시오. 저는 그 법을 듣고 나서 혼자 고요한 곳에서 정신을 집중하여 사유(思惟)하며 방일하게 지...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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