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여래장(空如來藏)을 말하다(1.허망한 마음을 밝히다)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아난이 부처님을 뵈옵고 머리를 조아리어 예배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끝없는 옛적부터 불법을 많이 알기만 하고 도를 닦지 못한 일을 한탄하였다. 그리하고 십방 부처님네가 도를 이루시던 묘한 사마타와 삼마제와 선나의 첫 방편(方便)을 정성스럽게 물었다. 그때에 항하사 보살들과 시방(十方)에서 온 아라한들과 벽지불들도 모두 부처님 법문을 듣자오려 하여 조용하게 제자리에 앉아서 부처님 말씀을 기다렸다.
부처님은 아난을 보시면서 법문을 시작하시었다.
부처님 : 너와 내가 사촌이지마는 정리로는 형제나 다름없는 터이다. 네가 처음 출가할 적에 나의 불법에서 무슨 좋은 모양을 보았길래 세상 사람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부모 형제의 은혜와 애정을 끊어 버렸느냐?
아 난 : 부처님의 三十二 거룩한 몸매가 훌륭하고 기묘하고 절승하오며 몸이 수정같이 깨끗하고 맑음을 보옵고, 스스로 생각하기를 이렇게 훌륭한 몸매는 애욕(愛欲)으로 생긴 것이 아니리라 하였나이다. 그 까닭을 말하오면 애욕이란 추하고 흐린 것이어서 비린내 누린내가 어울리고 피와 고름이 뒤섞인 것이오매 저렇게 깨끗하고 묘하고 밝은 금빛 덩어리를 내지 못할 줄 아옵고 간절하게 앙모하여 부처님을 따라 머리를 깎았나이다.
부처님 : 좋은 말이다, 아난아. 온갖 중생들이 끝없는 옛적부터 나고 죽는 일이 끊이지 않는 것은 항상있는 참 마음의 깨끗하고 밝은 본체는 알지 못하고 허망한 생각을 제 마음인줄 아는 탓이니라. 이 허망한 생각이 참된 것이 아니므로 나고 죽는데서 바퀴 돌듯 하는 줄을 알아야 하느니라.
네가 지금 위없는 보리의 참되고 밝은 성품을 연구하려거든 나의 묻는 것을 곧은 마음으로 대답하여라. 시방 부처님네가 모두 같은 걸로 나고 죽음을 여의었나니 그것은 곧은 마음이니라. 마음이 곧고 말이 곧은 탓으로 처음부터 나중까지 조금도 굽은 모양이 없느니라.
아난아, 네가 대답하기를 처음 마음을 낼적에 여래의 三十二 거룩한 몸매를 보고 발심하였노라 하니 무엇으로 보았으며, 무엇이 사랑하였느냐?
아 난 : 세존이시어, 그것은 내 마음과 눈으로 하였나이다. 눈으로는 여래의 삼십이상의 거룩한 몸매를 보옵고 마음으로 사모하는 생각을 내었사옵기에 나고 죽는 일을 여의려는 마음을 내었나이다.
부처님 : 네말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마음과 눈으로 말미암았노라하니 마음과 눈이 어디 있는 지를 알지 못하고는 번뇌를 항복시킬 수 없을 것이다. 마치 임금이 적병의 침략을 받았을 적에 군대를 보내어 토벌하려면 그 군대가 적병 있는 데를 알아야 할 것이다. 너로 하여금 나고 죽게하는 것은 마음과 눈의 허물이니 네 마음과 눈이 어디 있느냐?
아 난 : 세존이시어, 이 세상 열가지 중생들이 마음은 모두 몸속에 있삽고 부처님의 푸른 연잎 같으신 눈은 부처님 얼굴에 있사오며 내 눈은 내 얼굴에 있삽고, 내 마음은 내 몸속에 있나이다.
부처님 : 아난아, 네가 지금 여래의 강당에 앉아서 기타숲을 보나니 강당과 기타숲이 어디 있느냐?
아 난 : 세존이시어, 이 층층으로 된 훌륭한 강당은 외로운 이 돕는 절에 있삽고, 기타숲은 강당 밖에 있나이다.
부처님 : 아난아, 네가 강당안에 앉아서 먼저 무엇을 보느냐?
아 난 : 내가 강당 안에서 먼저 부처님을 뵈옵고 다음에 대중을 보고, 그리고 밖으로 내다 보아야 기타숲과 외로운 이 돕는 절을 보나이다.
부처님 : 아난아, 네가 기타숲과 절을 본다하니 어떻게 보게 되느냐?
아 난 : 세존이시어, 이 훌륭한 강당의 문과 창이 활짝 열렸사옵기에 내가 강당 안에서 멀리 내다볼 수 있나이다.
그때에 부처님이 대중 가운데서 팔을 내밀어 아난의 정수리를 만지시고 아난과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삼마제가 있으니 이름이「크고 부처 정수리 같은 수릉엄왕」이라, 여기에 보살의 온갖 행을 갖추었으며 시방의 여래가 한 문으로 생사를 뛰어나서 묘하게 장엄한 바다에 이르던 길이니 자세히 들어라.
아난이 머리를 조아리어 예배하고 부처님 말씀을 듣잡고 있었다.
부처님 : 아난아, 네 말대로 강당안에 있어서 문과 창이 열린 탓으로 기타숲과 절을 본다하니, 그러면 어느 중생이든지 강당 안에 있어서 여래는 보지 못하면서 강당 밖을 보는 이가 있겠느냐?
아 난 : 세존이시어, 누구든지 강당안에 있으면서 여래는 보지 못하고 기타숲과 냇물을 본다는 것은 될 수 없는 일이겠나이다.
부처님 : 아난아, 너도 그러하니라. 온갖 것을 분명하게 아는 네 마음이 참으로 네 몸안에 있다면 몸안에 있는 것들을 먼저 알아야 할 것 아니냐. 어느 중생이나 몸안엣 것을 먼저 보고 그 다음에 몸 밖에 물건을 보는 이가 있느냐. 설사 몸안에 있는 염통, 간, 지라, 밥통 같은 것은 못본다 하더라도 손톱이 나고, 머리카락이 자라고, 힘줄이 움직이고, 핏대가 뛰는 것 쯤은 잘 알아야 할 것인데 어찌하여 알지 못하느냐. 만일 몸안엣 것을 알지 못한다면 밖엣 것은 어떻게 아느냐. 그러니까 네 말대로 깨닫고 알고 하는 마음이 몸안에 있다는 말이 옳지 아니하니라.
아난이 머리를 조아리고 다시 여쭈었다.
아 난 : 내가 부처님의 법문을 듣삽고 마음이 몸밖에 있는 줄을 알았나이다. 마치 방안에 등을 켜면 그 등불빛이 먼저 방안에 비치고 그 다음에 문을 통하여 뜰과 마당에 비치는 것이온데, 이제 온갖 중생들이 몸안은 보지 못하면서 몸밖엣 것을 보는 것은 역시 방안에 켠 등불이 방안에는 비치지 못하는 것 같사오니 이 이치가 꼭 그러하여 부처님 뜻과 같을 것이옵고 잘못되지 아니하겠나이다.
부처님 : 아난아, 이 비구들이 아까 나를 따라 실라벌성에서 밥을 빌어가지고 기타숲으로 돌아왔다. 나는 벌써 먹었다마는 이 비구들을 보라. 한 사람이 먹어서 여러 사람을 배부르게 할 수 있겠느냐?
아 난 : 세존이시어, 그럴 수 없나이다. 이 비구들이 비록 아라한이오나 몸이 같지 않삽거늘 어떻게 한 사람이 먹어서 여럿의 배를 부르게 하겠나이까.
부처님 : 아난아, 너의 마음이 만일 몸밖에 있다면 너의 몸과 마음이 따로따로 있어서 서로 관계되지 아니할 것이다. 그렇다면 마음의 아는 것을 몸은 깨닫지 못하여야 할 것이요, 몸이 깨닫는 것은 마음이 알지 못하여야 할 것이 아니냐. 네가 지금 도라솜 같은 내 손을 보라. 네 눈이 볼적에 네 마음이 아느냐?
아 난 : 그러하나이다, 세존이시어.
부처님 : 그렇다면 너의 눈과 마음이 서로 아는 터이어늘 어찌하여 네 마음이 몸밖에 있다 하겠느냐. 그러니까 네 말대로 깨닫고 알고 하는 마음이 몸밖에 있다는 말이 옳지 아니하니라.
아 난 : 세존이시어, 부처님 말씀과 같사와 몸속을 보지 못하는 탓으로 마음이 몸안에 있는 것 아니옵고 몸과 마음이 서로 알며 서로 여의치 아니한 탓으로 몸밖에 있는 것도 아니온즉 지금 다시 생각하오니 그 있는 데를 알겠나이다.
부처님 : 그 있는 데가 어디이냐?
아 난 : 이 마음이 몸속을 알지 못하면서도 몸밖엣 것은 잘 보는 터이온즉, 내 생각에는 눈속에 들어 있겠나이다. 마치 사람이 유리쪽을 두 눈에 대면 유리쪽이 비록 두 눈을 가리었을지라도 조금도 장애되지 아니하며 눈이 밖엣 것을 보는대로 마음이 따라 분별하는 것 같겠나이다. 내 마음이 몸속엣 것을 보지 못하는 것은 눈속에 있는 탓이옵고 밖엣 것을 분명히 보되 장애가 없는 것은 유리같이 맑은 눈속에 들어있는 탓이겠나이다.
부처님 : 아난아, 네 말대로 마음이 눈속에 들어 있는 것이 마치 유리를 눈에 댄것 같다면 유리로 눈을 가리운 사람이 산과 강을 볼적에 유리를 보느냐 못보느냐.
아 난 : 그러하니이다, 세존이시어. 그 사람이 유리로 눈을 가리었으므로 산과 강을 볼적에 유리를 보겠나이다.
부처님 : 네 마음이 눈속에 들어 있는 것이 눈에 유리댄 것 같을진댄, 네 마음이 산과 강을 볼 적에 어찌하여 눈을 보지 못하느냐. 만일 눈을 본다면 눈이 밖에 있는 물건과 같은 것 아니냐. 그렇다면 네가 먼저 말한바 ‘눈이 밖엣 것을 보는대로 마음이 따라 분별하는 것 같다’던 말이 맞지 아니하고 또 만일 눈을 보지 못한다면 어찌하여 ‘마음이 눈속에 들어있는 것이 마치 유리를 눈에 댄 것 같다’고 하느냐. 그러니까 마음이 눈속에 들어있는 것이 마치 눈에 유리댄 것 같다는 것이 옳지 아니하다.
아 난 : 세존이시어, 내가 또 이렇게 생각하나이다. 중생의 몸 생긴 것이 내장은 몸안에 있고, 구멍은 겉에 있사오매 내장은 어두운 것이요 구멍이 있으므로 밝은 것이외다. 지금 부처님 앞에서 눈뜨고 밝은 것 보는 것은 몸안에 있는 마음이 밖엣 것을 보는 것이라 하옵고 눈감고 어두운 것 보는 것은 몸안에 있는 마음이 밖엣 것을 보는 것이라 하옵고, 눈감고 어두운 것 보는 것은 몸속을 보는 것이라 하오면 이 이치가 어떠하겠나이까.
부처님 : 아난아, 네가 눈을 감고 어두운 것을 볼적에 그 어두운 것이 눈과 마주 섰느냐 마주서지 않았느냐. 만일 눈과 마주섰다면 그 어두운 것이 눈앞에 있는 것인데 어떻게 몸속을 보는 것이라 하겠느냐. 만일 눈밖에 있는 어두운 것이라도 몸속을 보는 것이라고 할진댄 가령 어두운 방안에서 해와 달과 등불이 없을 적에 그 어두운 방안이 모두 네 내장이겠구나.
만일 어두운 것이 눈과 마주서지 않았다면 네가 어떻게 보느냐. 만일 네가 고집하기를 눈 앞으로 마주선 것만 보는 것이 아니라 눈뒤로 마주선 것도 볼 수 있다고 하여서 눈감고 어두운 것 보는 것을 몸속을 보는 것이라고 할진댄 눈이 돌아서서 보는 수도 있는 것이니 그렇다면 눈뜨고 밝은 것 볼적에는 어찌하여 네 낯을 보지 못하냐. 만일 낯을 보지 못한다면 눈뒤로 마주선 것도 본다는 말이 옳지 아니하니라.
만일 밝은 것을 볼적에 네 낯을 본다면 네 마음과 눈이 네 몸을 떠나서 허공에 있어야 할 것이니 어떻게 마음이 몸안에 있다 하겠느냐. 그리고 또 눈과 마음이 만일 허공에 있다면 그 눈과 마음은 네 것이라 할 수 없느니라.
그래도 네 것이라 한다면 지금 내가 네 얼굴을 보는 것도 역시 너의 눈이라 하겠구나. 또 그리고 네 몸을 떠나서 허공에 있는 눈이 알때에 네 몸은 알지 못하여야 할것이니라. 네가 만일 끝끝내 고집하여 눈도 알고 몸도 안다 할진댄, 네 한 몸에 두 알음알이가 있는 것이니 너 한 사람이 두 부처를 이루어야 하리라. 그러니까 네 말대로 눈감고 어두운 것 보는 것을 몸속을 보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아 난 : 나는 일찍 듣사오니 부처님이 네 갈래 대중에게 말씀하시기를 ‘마음이 나는 탓으로 여러 가지 법이 나고, 법이 나는 탓으로 여러 가지 마음이 난다’고 하시었나이다. 내가 이제 생각하옵나니 이 생각하는 자체가 곧 내 마음일 것이온즉 경계와 마음이 합하는 곳에 마음이 있는 것이옵고 안에도 밖에도 중간에도 있는 것이 아니니이다.
부처님 : 아난아, 법이 나는 탓으로 여러 가지 마음이 난다고 하여 경계와 마음이 합하는 곳에 마음이 있는 것이라 하거니와 그 마음이 만일 자체가 없다면 합할 수가 없을 것이요, 또 자체가 없어도 합할 수가 있다면 그것은 십구계(十九界)가 칠진(七塵)과 합한다는 것과 같을 것이니 그럴 리가 없느니라.
만일 마음 자체가 있다고 할진댄 네 손으로 네 몸을 만질적에 그 아는 마음이 몸속에서 나오느냐, 몸 밖에서 들어오느냐. 만일 몸속에서 나온다면 마음이 몸속에 있던 것이니 내장을 보았어야 할 것이요, 또 밖에서 들어왔다면 마음이 밖에 있던 것이니 네 얼굴을 보았어야 할 것이니라.
아 난 : 보는 것은 눈이 하는 일이옵고, 마음은 알기만 하는 것이온데 보았어야 할 것이란 말씀은 마땅하지 않나이다.
부처님 : 만일 눈만으로도 볼 수가 있다면 네가 방안에 있을 적에 눈만으로도 보아야 할 터인데 그렇지 못한 것 아니냐. 그리고 금방 죽은 이도 눈은 있는 터인즉 물건을 볼 수 있을 터이니 만일 물건을 본다고 하면 어찌하여 죽었다고 하겠느냐.
아난아, 또 네 마음이 반드시 자체가 있을진댄 그 마음의 체(體)가 하나이냐, 여럿이냐. 또 네 몸에 두루하여 있느냐, 두루하지 아니하였느냐. 만일 하나라면 네 손으로 한팔을 찌를적에 네 활개가 모두 깨닫는다면 찌르는 데가 따로 있다고 할 수 없고, 만일 찌르는 데가 따로 있다면 마음의 체가 하나란 말이 될 수 없느니라. 만일 마음의 체가 여럿이라면 여러 사람이 될 것이니 어느 마음을 너라고 하겠느냐.
또 마음이 네 몸에 두루하여 있다면 한팔을 찌를 적과 같을 것이요, 두루하지 아니하였다면 네 머리를 만지면서 발까지 만져 보아라. 머리가 만지는 줄을 안다면 발은 만지는 줄을 몰라야 하련마는 너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그러니까 네 말대로 경계와 마음이 합하는 곳에 마음이 있다는 말이 옳지 아니하니라.
아 난 : 세존이시어, 나도 들었거니와 부처님께서 문수보살과 여러 보살들로 더불어 참된 이치를 말씀하실 적에 ‘마음은 안에도 있지 않고, 밖에도 있지 않다’고 말씀하셨나이다. 지금 생각하오니 안으로는 내장을 보지 못하고 밖으로는 몸과 마음에 서로 아는 터인즉 몸속을 알지 못하므로 몸안에 있다고 할 수 없고, 몸과 마음이 서로 아는 탓으로 밖에 있다고도 할 수 없나이다. 이제 몸과 마음이 서로 알면서도 몸속을 보지 못하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서 마땅히 중간에 있겠나이다.
부처님 : 네가 지금 중간에 있다하니 그 중간이란 것이 막연한 말이 아니고 반드시 일정한 곳이 있을 것이니 네가 중간을 찾아 보거라. 중간이란 데가 어디 있느냐. 딴곳에 있느냐, 네몸에 있느냐. 만일 몸에 있을진댄 곁에 있으면 중간이라 할 수 없고, 몸안에 있으면 내장을 보아야 할 것이니라. 만일 딴곳에 있다면 표시할 수 있느냐, 표시할 수 없느냐. 표시할 수 없다면 중간이란 데가 없는 것이요, 설사 표시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일정하지 아니하니 그 이유를 말하면 어떤 사람이 푯말을 세워 중간을 표시하였을 적에 동에서 보면 서가 되고, 남에서 보면 북이 되어서 표시하는 자체부터가 혼잡한 것이므로 마음도 필시 어지러우리라.
아 난 : 내가 중간이라 하는 것은 이 두 가지를 말한 것이 아니니이다. 세존께서도 말씀하신 것 같이 안근(眼根)과 색진(色塵)이 인연이 되어 안식(眼識)을 낸다 하였나이다. 안근은 분별하는 작용이 있고 색진은 알음이 없는 것이온대, 그 가운데서 식이 생기는 것이온즉 이것을 마음있는 데라 하겠나이다.
부처님 : 네 마음이 만일 근과 진의 중간에 있다면 이 마음의 자체가 근과 진으로 더불어 어울리었느냐, 어울리지 않았느냐. 만일 두 가지와 어울리었다면 물질인 塵과 자체인 根이 섞이었을 것이니 물질은 앎이 없는 것이고, 자체는 아는 것이어서 딴편이 되어 갈라섰을 것이니 어떻게 중간이 있겠느냐.
만일 어울리지 않았다면 근의 아는 것도 아니고 진의 앎이 없는 것도 아니므로 마음이라 할 성질부터가 없겠거늘 중간이란 것이 무슨 모양이 있겠느냐. 그러니까 네 말대로 중간에 있다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아 난 : 세존이시어, 부처님께서 예전에 목건련, 수보리, 부루나, 사리불 네 제자와 함께 교리를 선전하실 적에 항상 말씀하시기를 알고 분별하는 마음이 안에도 있지 않고 밖에도 있지 않고 중간에도 있지 아니하여 아무데도 있는 데가 없다고 하시었나이다. 이것은 온갖 것에 執着한데 없는 것을 마음이라 한 것이오니 내가 이제 집착한데 없는 것으로 마음이라 하리잇가.
부처님 : 아난아, 네 말이 ‘알고 분별하는 마음이 아무데도 있는데가 없다’고 하거니와 이 세간과 허공에서 물에 살고, 육지에 살고, 날아다니는 여러 가지 물건을 온갖 것이라 하나니 네가 말하는 ‘집착(執着)한데 없는것’이란 뜻은 온갖 것은 있는데 집착함이 없다는 것이냐, 온갖 것이 없어서 집착함이 없다는 것이냐.
온갖 것이 없다고 하면 거북의 털, 토끼의 뿔과 같은 것이니 무엇에 집착함이 없다는 것이냐. 만일 온갖 것은 있는데 집착하지 않는다고 하면, 이것은 벌써 온갖 것을 인정하는 것이므로 집착이 없다고 할 수 없느니라. 그 까닭을 말하면 모양이 없다면 아주 없는 것이요, 없는 것이 아니라면 모양이 있는 것이니 모양이 있다면 벌써 집착한 것이라, 어떻게 집착함이 없다고 하겠느냐. 그러니까 네 말대로 ‘온갖 것에 집착한데 없는 것으로 마음이라 한다’는 말이 옳지 아니하니라.
출전 : 수능엄경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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