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반야경-1720-344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1716 / 2116] 쪽
바 있음을 방편으로 삼는 것이기 때문이니라.
교시가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 '원컨대, 제가 얻는 불토에는 무명이라는 이름과 소리가 없고, 지어감 의식 이름과 물질 여섯 감관 접촉 느낌 애욕 취함 존재 태어남 늙음과 죽음과 걱정하고 한탄하고 괴로워하고 근심하고 번민함이라는 이름과 소리도 없게 하소서' 하는 데에 머무르지 말 것이니, 왜냐 하면 얻을 바 있음을 방편으로 삼는 것이기 때문이니라.
교시가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 '원컨대 제가 얻는 불토에는 내공이라는 이름과 소리가 없고, 외공 내외공 공공 대공 승의공 유위공 무위공 필경공 무제공 산공 무변이공 본성공 자상공 공상공 일체법공 불가득공 무성공 자성공 무성자성공이라는 이름과 소리도 없게 하소서' 하는 데에 머무르지 말 것이니, 왜냐 하면 얻을 바 있음을 방편으로 삼는 것이기 때문이니라.
교시가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 '원컨대, 제가 얻는 불토에는 진여라는 이름과 소리가 없고, 법계 법성 불허망성 불변이성 평등성 이생성 법정 법주 실제 허공계 부사의계라는 이름과 소리도 없게 하소서' 하는 데에 머무르지 말 것이니, 왜냐 하면 얻을 바 있음을 방편으로 삼는 것이기 때문이니라.
교시가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 '원컨대, 제가 얻는 불토에는 보시바라밀다라는 이름과 소리가 없고, 정계 안인 정진 정려 반야 바라밀다라는 이름과 소리도 없게 하소서' 하는 데에 머무르지 말 것이니, 왜냐 하면 얻을 바 있음을 방편으로 삼는 것이기 때문이니라.
교시가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 '원컨대, 제가 얻는 불토에는 4정려라는 이름과 소리가 없고, 4무량 4무색정이라는 이름과 소리도 없게 하소서' 하는 데에 머무르지 말 것이니, 왜냐 하면 얻을 바 있음을 방편으로 삼는 것이기 때문이니라.
교시가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 '원컨대, 제가 얻는 불토에는 8해탈이라는 이름과 소리가 없고, 8승처 9차제정 10변처라는 이름과 소리도 없게 하소서' 하는 데에 머무르지 말 것이니, 왜냐 하면 얻을 바
[1717 / 2116] 쪽
있음을 방편으로 삼는 것이기 때문이니라.
교시가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 '원컨대, 제가 얻는 불토에는 4념주라는 이름과 소리가 없고, 4정단 4신족 5근 5력 7등각지 8성도지라는 이름과 소리도 없게 하소서' 하는 데에 머무르지 말 것이니, 왜냐 하면 얻을 바 있음을 방편으로 삼는 것이기 때문이니라.
교시가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 '원컨대, 제가 얻는 불토에는 공해탈문이라는 이름과 소리가 없고, 무상 무원 해탈문이라는 이름과 소리도 없게 하소서' 하는 데에 머무르지 말 것이니, 왜냐 하면 얻을 바 있음을 방편으로 삼는 것이기 때문이니라.
교시가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 '원컨대, 제가 얻는 불토에는 5안이라는 이름과 소리가 없고, 6신통이라는 이름과 소리도 없게 하소서' 하는 데에 머무르지 말 것이니, 왜냐 하면 얻을 바 있음을 방편으로 삼는 것이기 때문이니라.
교시가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 '원컨대, 제가 얻는 불토에는 부처님의 10력이라는 이름과 소리가 없고, 4무소외와 4무애해와 대자 대비 대희 대사와 18불불공법이라는 이름과 소리도 없게 하소서' 하는 데에 머무르지 말 것이니, 왜냐 하면 얻을 바 있음을 방편으로 삼는 것이기 때문이니라.
교시가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 '원컨대, 제가 얻는 불토에는 잊음이 없는 법이라는 이름과 소리가 없고, 항상 평정에 머무는 성품이라는 이름과 소리도 없게 하소서' 하는 데에 머무르지 말 것이니, 왜냐 하면 얻을 바 있음을 방편으로 삼는 것이기 때문이니라.
교시가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 '원컨대, 제가 얻는 불토에는 온갖 다라니문이라는 이름과 소리가 없고, 온갖 삼마지문이라는 이름과 소리도 없게 하소서' 하는 데에 머무르지 말 것이니, 왜냐 하면 얻을 바 있음을 방편으로 삼는 것이기 때문이니라.
교시가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 '원컨대, 제가 얻는 불토에는 일체지라는 이름과 소리가 없고, 도상지와 일체상지라는 이름과 소리도 없게 하소서' 하는 데에 머무르지 말 것이니, 왜냐 하면 얻을 바 있음을
[1718 / 2116] 쪽
방편으로 삼는 것이기 때문이니라.
교시가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 '원컨대, 제가 얻는 불토에는 성문승이라는 이름과 소리가 없고, 독각승과 무상승이라는 이름과 소리도 없게 하소서' 하는 데에 머무르지 말 것이니, 왜냐 하면 얻을 바 있음을 방편으로 삼는 것이기 때문이니라.
교시가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 '원컨대, 제가 얻는 불토에는 예류와 예류의 향(向)과 과(果)라는 이름과 소리가 없고, 일래 불환 아라한과 일래 불환 아라한의 향과 과라는 이름과 소리도 없게 하소서' 하는 데에 머무르지 말 것이니, 왜냐 하면 얻을 바 있음을 방편으로 삼는 것이기 때문이니라.
교시가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 '원컨대, 제가 얻는 불토에는 독각과 독각의 깨달음이라는 이름과 소리가 없고, 보살 여래와 보살 여래의 법이라는 이름과 소리도 없게 하소서' 하는 데에 머무르지 말 것이니, 왜냐 하면 얻을 바 있음을 방편으로 삼는 것이기 때문이니라.
교시가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 '원컨대, 제가 얻는 불토에는 극희지와 그 법이라는 이름과 소리가 없고, 이구지 발광지 염혜지 극난승지 현전지 원행지 부동지 선혜지 법운지와 그 법이라는 이름과 소리도 없게 하소서' 하는 데에 머무르지 말 것이니, 왜냐 하면 얻을 바 있음을 방편으로 삼는 것이기 때문이니라.
교시가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 '원컨대, 제가 얻는 불토에는 이생지와 그 법이라는 이름과 소리가 없고, 종성지 제8지 구견지 박지 이욕지 이판지 독각지 보살지 여래지와 그 법이라는 이름과 소리도 없게 하소서' 하는 데에 머무르지 말 것이니, 왜냐 하면 얻을 바 있음을 방편으로 삼는 것이기 때문이니라.
무슨 까닭인가? 온갖 여래 응 정등각께서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때, 온갖 법은 도무지 있지 않아서 이름과 음성을 모두 얻을 수 없음을 깨닫기 때문이니라.
교시가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다에서 응당 머물러야 할 바에 머무를 것이요, 모양[相]에 머무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니라.
[1719 / 2116] 쪽
교시가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다에서 응당 머물러야 할 바에 머무르고 모양에 머무르지 않아야 하며, 얻을 바 없음을 방편으로 삼아 이와 같이 배워야 하느니라."
이 때 사리자는 '만일 보살마하살은 온갖 법에 머무르지 않아야 한다면 어떻게 반야바라밀다에 머물러야 할까'라고 생각하였다. 그러자 구수 선현은 사리자의 마음 속 생각을 알고 곧바로 말하였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모든 여래의 마음은 어딘가에 머무릅니까?"
사리자가 말하였다.
"모든 부처님의 마음은 도무지 머무는 곳이 없습니다. 그 까닭이 무엇입니까?
선현이여, 여래의 마음은 물질에 머무르지 않고,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에도 머무르지 않나니, 왜냐 하면 물질의 쌓임[色蘊] 등은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선현이여, 여래의 마음은 눈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귀 코 혀 몸 뜻의 영역에도 머무르지 않나니, 왜냐 하면 눈의 영역 등은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선현이여, 여래의 마음은 빛깔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소리 냄새 맛 감촉 법의 영역에도 머무르지 않나니, 왜냐 하면 빛깔의 영역 등은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선현이여, 여래의 마음은 눈의 경계에 머무르지 않고, 빛깔의 경계 안식의 경계 눈의 접촉 및 눈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에도 머무르지 않나니, 왜냐 하면 눈의 경계 등은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선현이여, 여래의 마음은 귀의 경계에 머무르지 않고, 소리의 경계 이식의 경계와 귀의 접촉 및 귀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에도 머무르지 않나니, 왜냐 하면 귀의 경계 등은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선현이여, 여래의 마음은 코의 경계에 머무르지 않고, 냄새의 경계 비식의 경계와 코의 접촉 및 코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에도 머무르지 않나니, 왜냐 하면 코의 경계 등은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선현이여, 여래의 마음은 혀의 경계에 머무르지 않고, 맛의 경계 설식의
[1720 / 2116] 쪽
경계와 혀의 접촉 및 혀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에도 머무르지 않나니, 왜냐 하면 혀의 경계 등은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선현이여, 여래의 마음은 몸의 경계에 머무르지 않고, 감촉의 경계 신식의 경계와 몸의 접촉 및 몸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에도 머무르지 않나니, 왜냐 하면 몸의 경계 등은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선현이여, 여래의 마음은 뜻의 경계에 머무르지 않고, 법의 경계 의식의 경계와 뜻의 접촉 및 뜻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에도 머무르지 않나니, 왜냐 하면 뜻의 경계 등은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선현이여, 여래의 마음은 지계에 머무르지 않고, 수계 화계 풍계 공계 식계에도 머무르지 않나니, 왜냐 하면 지계 등은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선현이여, 여래의 마음은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에 머무르지 않고, 괴로움의 발생 괴로움의 소멸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에도 머무르지 않나니, 왜냐 하면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 등은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선현이여, 여래의 마음은 무명에 머무르지 않고, 지어감 의식 이름과 물질 여섯 감관 접촉 느낌 애욕 취함 존재 태어남 늙음과 죽음과 걱정하고 한탄하고 괴로워하고 근심하고 번민함에도 머무르지 않나니, 왜냐 하면 무명 등은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선현이여, 여래의 마음은 내공에 머무르지 않고, 외공 내외공 공공 대공 승의공 유위공 무위공 필경공 무제공 산공 무변이공 본성공 자상공 공상공 일체법공 불가득공 무성공 자성공 무성자성공에도 머무르지 않나니, 왜냐 하면 내공 등은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선현이여, 여래의 마음은 진여에 머무르지 않고, 법계 법성 불허망성 불변이성 평등성 이생성 법정 법주 실제 허공계 부사의계에도 머무르지 않나니, 왜냐 하면 진여 등은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대반야경(大般若波羅蜜多經)'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반야경-1730-346 (0) | 2017.07.14 |
---|---|
대반야경-1725-345 (0) | 2017.07.13 |
대반야경-1715-343 (0) | 2017.07.10 |
대반야경-1710-342 (0) | 2017.07.08 |
대반야경-1705-341 (0) | 2017.07.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