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적경(大寶積經)

대보적경-1485-297

근와(槿瓦) 2017. 6. 17. 00:44

대보적경-1485-297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1481 / 3476]

사리자야, 이 보살마하살이 지닌 모든 공덕은 다른 이를 따르지도 않고 자기의 공덕에 뛰어난 체[增上慢]하지도 않으며, 다른 이의 공덕에 대하여 질투하거나 헐뜯지도 않으며 지은 업을 잘 닦고 업보(業報)를 가벼이 여기지도 않나니, 이렇게 하기 때문에 업의 깨끗한 지혜를 구족히 성취하여 원만하게 되느니라.
사리자야, 이와 같은 모양이 완전히 갖추어지고 원만해지면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지덕의 자량으로써 선교한 행이라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은 다시 지덕의 자량선교가 있나니, 네 가지 베푸는 법을 완전히 갖추면 곧 지덕의 자량을 성취하게 되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보살마하살이 만일 이와 같은 경전을 베끼는 것을 보게 되면 종이와 붓과 먹 등의 여러 가지 물건을 공급해 주는 것이요, 둘째는 보살마하살이 설법하는 이에게 깊고 묘한 이치를 연설해 주기를 청하는 것이며, 셋째는 보살마하살이 모든 이익과 공경과 명문(名聞)과 찬송과 칭양으로써 설법하는 이를 받드는 것이요, 넷째는 보살마하살은 설법하는 법사에게서 바른 법을 받아들이고 아첨하거나 왜곡된 마음이 없이 그의 뜻을 찬양하고 즐겁게 해주기 위하여 '잘 하셨습니다, 잘 하셨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니라.
사리자야, 만일 어떤 보살마하살이 이 네 가지 깨끗한 보시를 행하면 지덕의 자량선교를 잘 쌓아 모으는 것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은 다시 네 가지로 쌓아 모은 한량없는 지덕의 자량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보살마하살은 설법하는 이의 몸을 잘 보호하는 것이요, 둘째는 많은 선()을 잘 수호하는 것이며, 셋째는 그가 머무는 곳을 잘 수호하는 것이요, 넷째는 저 설법하는 이가 거느린 모든 도중(徒衆)들을 잘 수호하는 것이니라.
사리자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네 가지 쌓고 모은 지덕의 자량이라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에게 다시 네 가지로 맡아 지니는[任持] 지덕의 자량 선교가 있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하면, 보살마하살이 설법하는 이에게서 법()을 맡아 지니고 지혜[]를 맡아 지니고 재물[]을 맡아


                                                                            [1482 / 3476]

지니고 보리의 공덕[菩提功德]을 맡아 지니는 것이니라.
사리자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네 가지로 맡아 지니는 지덕의 자량이라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에게 다시 다섯 가지 뛰어난 힘으로써 능히 행하는 지덕의 자량선교가 있느니라.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이냐 하면, 보살마하살이 믿는 힘[信力]을 완전히 갖추어서 믿고 이해하는 마음을 성취하려고 하기 때문이요, 정진하는 힘[進力]을 완전히 갖추어서 선지식을 구하여 많은 견문(見聞)을 이루기 때문이며, 생각하는 힘[念力]을 완전히 갖추어서 보리의 마음을 잊어버리지 않기 때문이요, 선정의 힘[定力]을 완전히 갖추어서 평등한 깨달음을 자세히 관찰하기 때문이며, 지혜의 힘[慧力]을 완전히 갖추어서 오래도록 견문이 많은 힘을 닦아 익히기 때문이니라.
사리자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다섯 가지 힘의 지덕의 자량선교의 행이라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에게 다시 지덕의 자량선교가 있나니, 네 가지 깨끗한 시라(尸羅)를 갖춤으로써 지덕의 자량을 잘 쌓아 모으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하면, 보살마하살이 법을 좋아하는[樂法] 시라요, 법을 구하는[求法] 시라요, 법을 관찰하는[觀法] 시라요, 보리에 회향하는[廻向菩提] 시라이니라.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이 만일 이와 같은 네 가지 깨끗한 시라를 갖추면 지덕의 자량을 잘 쌓아 모으는 선교의 행이니라.
 

또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에게 다시 지덕의 자량선교의 행이 있나니, 네 가지 참는 법을 완전히 갖춤으로써 지덕의 자량선교를 능히 하게 되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보살마하살이 부지런히 법을 구할 때에 모든 추악하고 법답지 않은 말을 잘 참아 받아들이는 것이요, 둘째는 보살마하살이 부지런히 법을 구할 때에 모든 바람과 해와 추위와 더위와 배고픔과 목마름을 잘 참고 견디는 것이며, 셋째는 보살마하살이 부지런히 법을 구할 때에 아차리야(阿遮利耶)와 오파타야(塢波陀耶)의 두 훌륭한 스승께서 가르침이 있을 때마다 머리에 이고 받아들이는 것이요, 넷째는 보살마하살이 부지런히 법을 구할 때에 공하고 모양이 없고 소원이 없는 법을 잘 믿고 이해


                                                                            [1483 / 3476]

하는 것이니라.
사리자야, 이와 같은 네 가지 참고 받아들이는 법으로써 지덕자량의 행을 능히 하게 되느니라.
 

또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에게 다시 지덕자량의 선교가 있나니, 네 가지 정진(精進)을 완전하게 갖춤으로써 지덕자량의 선교를 능히 하게 되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이냐 하면, 보살마하살이 견고하게 정진하며 바른 법을 듣는 것이요, 견고하게 정진하며 바른 법을 맡아 지니는 것이며, 견고하게 정진하며 바른 법을 연설하는 것이요, 견고하게 정진하며 바른 법을 수행하는 것이니라.
사리자야, 이와 같은 네 가지 견고한 정진으로써 지덕자량의 행을 능히 하게 되느니라.
 

또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에게 다시 지덕자량의 선교가 있나니, 네 가지 정려(靜慮)를 완전히 갖춤으로써 법을 닦아 익혀서 지덕자량의 선교를 능히 하게 되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이냐 하면, 첫째는 보살은 언제나 멀리 여의는 법[遠離法]을 행하기 좋아하는 것이요, 둘째는 혼자 전일하게 고요한 산과 숲을 지키기 좋아하는 것이며, 셋째는 언제나 신통한 정려를 찾고 구하기를 좋아하는 것이요, 넷째는 언제나 부지런히 넓고 큰 부처님의 지혜를 수행하는 것이니라.
사리자야, 이와 같은 네 가지 바른 법의 정려로써 지덕자량의 행을 능히 하게 되느니라.
 

또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에게 다시 지덕자량의 선교가 있나니, 네 가지 바른 법의 지혜 광명을 완전히 갖춤으로써 지덕자량의 선교를 능히 하게 되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하면,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지혜의 광명을 수행하여 단견(斷見)에 머무르지 않고, 상견(常見)에 머무르지도 않으며, 연기(緣起)를 어기지도 않고, 나 없음[無我]을 믿고 이해하는 것이니라.
사리자야, 이와 같은 네 가지 모든 지혜의 광명으로써 지덕자량의 바른 행을 능히 하게 되느니라.
또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에게 다시 지덕자량의 선교가 있나니, 네 가지 바른법의 최상의 방편을 성취함으로써 지덕자량의 선교를 능히 하게 되느니라.


                                                                            [1484 / 3476]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하면,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까닭에 세간(世間)을 순하게 따르고[隨順] 경전(經典)을 순하게 따르며, 묘한 법[妙法]을 순하게 따르고 깨끗한 지혜[淨智]를 순하게 따르는 것이니라.
사리자야, 이와 같은 네 가지 바른 법의 방편으로써 지덕자량의 바른 행을 능히 하게 되느니라.
또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에게 다시 지덕자량의 선교가 있나니, 네 가지 법의 도()에 나아감으로써 지덕자량의 선교를 능히 하게 되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하면,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는 까닭에 저 언덕에 이르는[到彼岸] 도와 7각분(覺分)의 도와 8성지(聖支)의 도와 일체지자(一切智者)를 행해 나아가는 지혜의 도를 구족히 수행하는 것이니라.
사리자야, 이와 같은 네 가지 바른 법의 도로써 지덕자량의 바른 행을 능히 하게 되느니라.
 

또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에게 다시 지덕자량의 선교가 있나니, 네 가지 싫증냄이 없는 법[無厭足法]을 갖추면 곧 지덕자량을 잘 쌓게 되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냐 하면,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까닭에 바른 법을 받들어 지니고 한량없이 들어도 싫증냄이 없는 것이요, 대중을 위해 설법을 해도 싫증냄이 없는 것이며, 이치를 관찰하되 싫증을 내지 않는 것이요, 지혜의 방편을 쓰되 싫증을 느끼지 않는 것이니라.
사리자야, 이와 같은 네 가지 싫증을 냄이 없는 법으로써 지덕자량의 바른 행을 잘 쌓게 되느니라.
 

또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은 지덕자량의 선교로써 행하는 모든 곳을 따라 두루 들어가나니, 왜냐 하면 사리자야, 마땅히 알아야 한다. 보시는 지덕자량을 말미암아 성취되기 때문이요, 이와 같이 지계와 인욕과 정진과 선정과 바른 지혜도 지덕자량을 말미암아 성취되며, 나아가 자(((()의 모든 착한 법도 지덕자량으로 인하여 성취되기 때문이니라.
왜냐 하면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이 견고한 바른 행을 일으키는 것도 모두가 바른 지혜에 의지하고 저 모든 행도 지혜가 앞잡이가 되기 때문이니, 이 보살마하살이 큰 지혜를 갖추기 때문에 모든 지혜 없는 이들이 귀의하게 되


                                                                            [1485 / 3476]

고 모든 악마들이 틈[]을 얻지 못하며, 모든 부처님·여래께서 함께 가호(加護)하시고 장차 일체지지(一切智智)에 나아가 들어가게 되는 것이니라.
사리자야, 이것이 보살이 지닌 지덕자량의 선교의 행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복덕과 지덕의 두 가지 자량선교를 성취한다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까닭에 이 자량선교의 힘을 얻게 되는 것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의 염주의 선교[念住善巧]라 하는가 하면,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까닭에 네 가지 염주를 구족히 닦아 익혀서 방편선교를 능히 성취하느니라.
사리자야, 어떤 것이 네 가지 염주냐 하면, 첫째는 몸[]에 대하여 몸을 따라 관찰하며 염주를 닦아 익히는 것이요, 둘째는 느낌[]에 대하여 느낌을 따라 관찰하며 염주를 닦아 익히는 것이며, 셋째는 마음[]에 대하여 마음을 따라 관찰하며 염주를 닦아 익히는 것이요, 넷째는 법()에 대하여 법을 따라 관찰하며 염주를 닦아 익히는 것이니라.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까닭에 어떻게 몸[]에 대하여 몸을 따라 관찰하며 염주를 닦아 익히느냐 하면, 사리자야, 보살은 몸에 대하여 몸을 따르는 생각[隨身念]에 머물러서 이 몸이 과거 세상에서 지은 허물들을 관찰하는 것이니라.
이 보살마하살은 생각하기를 '이와 같은 몸은 뒤바뀐 업()이 일으킨 인연으로 생긴 것이라 본래 주재(主宰)가 없고 섭수(攝受)하는 것도 없다. 마치 저 풀과 나무와 우거진 숲이며 모든 약초(藥草) 등과 같아서 인연으로 생겨난 것이라서 본래 주재가 없고 섭수하는 것도 없다. 이 몸은 또 마치 관사(館舍)가 모든 풀·나무·담장 및 벽 등의 여러 가지 연()과 함께 합해져서 이루어진 것처럼 이 몸도 역시 그러하여서 다만 온(((등에 포섭되어 유지될 뿐이므로 그 본래 성품은 공하여 나도 없고 내 것도 없으며, 항상함도 없고 견고하게 머무름도 없으며 변하지 않는 법도 아니다. 나는 이제 이 몸에 대하여 허망하게 헤아리는 것이 없어야 하리니, 그러므로 나는 이제 마땅히 이와 같이 견고하지 않은 몸을 견고한 몸으로 바꾸어야 한다.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대보적경(大寶積經)'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보적경-1495-299   (0) 2017.06.20
대보적경-1490-298   (0) 2017.06.18
대보적경-1480-296   (0) 2017.06.15
대보적경-1475-295   (0) 2017.06.14
대보적경-1470-294   (0) 2017.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