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적경(大寶積經)

대보적경-1495-299

근와(槿瓦) 2017. 6. 20. 00:31

대보적경-1495-299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1491 / 3476]

...느니라.
또 사리자야, '이 마음의 본래 성품은 마치 아지랑이와 같아서 마지막에는 다하여 소멸되지만, 이 마음의 법 성품에서는 온갖 좋아할 만한 인욕(忍辱)의 힘을 닦아 익힐 수 있어서 쌓아서 장엄한 보리에 회향하게 된다'고 하나니, 이것을 곧 선근이 쌓여 모인다고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마음의 본래 성품이란 마치 물 속의 달과 같아서 마지막에는 쌓아 모으는 모양을 멀리 여의지만, 이 마음의 법 성품에서는 온갖 바른 노력을 일으킬 수 있어서 성숙된 한량없는 불법에 회향하게 된다'고 하나니, 이것을 곧 선근이 쌓여 모인다고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마음의 본래 성품이란 취하거나 얻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지만, 이 마음의 법 성품에서는 온갖 정려(靜慮)와 해탈(解脫)과 삼마지(三摩地)와 삼마발저(三摩鉢底)를 닦고 익힐 수 있어서 모든 부처님의 으뜸가는 삼마지에 회향하게 된다'고 하나니, 이것을 곧 선근이 쌓여 모인다고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이 마음의 성품을 관찰하건대 원래 물질[]의 모양이 아니므로 볼 수도 없고 대할 수 없고 분명하게 알 수도 없지만, 이 마음의 법 성품에서는 온갖 지혜의 글 구절로 차별을 두어 말한 지혜를 닦고 익힐 수 있어서 원만한 모든 부처님의 지혜에 회향하게 된다'고 하나니, 이것을 곧 선근이 쌓여 모인다고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마음은 반연할 것이 없고 생김도 없고 일어남도 없지만, 이 마음의 법 성품에서는 한량없는 착한 법을 건립할 수 있어서 물질의 모양을 섭수하게 된다'고 하나니, 이와 같은 것을 선근이 쌓여 모인다고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마음은 원인()으로 하는 것이 없고 또한 생겨나는 것도 없지만, 이 마음의 법 성품에서는 각분(覺分)의 법의 인()을 섭수할 수 있다'고 하나니, 이것을 곧 선근이 쌓여 모인다고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마음의 성품은 여섯 가지 경계를 멀리 여의고 또한 생기지도 않지만 이 마음의 법 성품에서는 보리의 경계와 인()이 되어 생겨나는 마음을 끌어 일으킬 수 있다'고 하나니, 이것을 곧 선근이 쌓여 모인다고 하느니라.


                                                                            [1492 / 3476]

사리자야, 이와 같은 것을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한 까닭에 모든 마음에 대하여 마음을 따라 관찰하며 염주를 닦아 익힌다고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이 보살마하살은 또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는 까닭에 모든 마음에 대하여 마음을 따르는 관[隨心觀]에 머물러서 뛰어난 신통을 증득하기 위하여 그 마음을 묶어 놓고 신통의 지혜를 닦고 배우며, 신통을 얻은 뒤에는 다만 한 마음으로써 모든 마음의 모양을 잘 알 수 있고 이미 환히 안 뒤에는 마음의 자체(自體)에 의지하여 모든 법을 널리 연설할 뿐이니라.
사리자야, 이와 같이 마음을 따르는 관에 머무른 보살마하살은 대비(大悲)의 힘으로써 그 마음을 제어(制御)하면서 중생을 성숙시키되 게으름이 없으며, 이 보살은 마음을 따르는 관에 머무르기 때문에 마음이 다하지도 않고 마음이 소멸하지도 않으며 마음에 편히 머무르나니, 다만 마음으로 하여금 나고 죽음이 상속하는 결박을 멀리 여의게 하며 마음에 편히 머무를 뿐이니라.
또 모든 마음이 기억하는 지혜의 힘으로써 모든 법이 생김도 없고 일어남도 없는 바르게 결정된 성품에 편히 머무르고 2()의 경지에 떨어지지도 않으며, 또 이 힘을 지닌 마음이 상속하여 모든 불법이 원만하게 이루어지기까지 한 찰나의 마음과 상응하는 묘한 지혜로써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깨치게 되느니라.
이와 같아서 사리자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여 모든 마음에 대하여 마음을 따라 관찰하면서 염주를 닦아 익힌다고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 어떻게 법()에 대하여 법을 따라 관찰하며 염주를 닦아 익히느냐 하면, 사리자야, 이 보살마하살은 거룩한 지혜의 눈[慧眼]으로써 모든 법을 자세히 살펴보되 도량(道場)에 앉기까지 그 중간에는 미혹하거나 상실하지 않느니라. 이 보살은 모든 법에 대하여 법을 따르는 관[隨法觀]에 머물러서 조그마한 법도 공을 멀리 여의거나 모양 없음[無相]을 멀리 여의거나 소원 없음[無願]을 멀리 여의거나 생김이 없음[無生]을 멀리 여의거나 일어남이 없음[無起]을 멀리 여의거나 그리고 가행이 없음[無加行]을 멀리 여의는 것을 깨닫지 않으며, 또 거듭 관찰하여 조그마한 법도 연기(緣起)를 멀리 여의는 것을 알지 않느


                                                                            [1493 / 3476]

니라.
사리자야, 이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은 법을 따르는 관에 편히 머무르기 때문에 법과 법이 아님[非法]을 관찰하지 않나니, 여기서 어느 것을 법이라고 규정짓느냐 하면, 나 없음[無我]의 이치를 법의 이치라 하며 유정이 없는 이치와 목숨이 없는 이치와 보특가라가 없는 이치 등 이와 같은 이치를 바로 법이라 하느니라.
또 어떤 것들을 법이 아닌 이치로 삼는가 하면, 나라는 견해[]와 유정이라는 견해와 목숨이라는 견해와 보특가라라는 견해와 아주 없다[]는 견해와 항상하다[]는 견해와 있다는 견해와 없다는 견해 등 이와 같은 견해를 바로 법이 아니라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요점을 들어서 말하건대 모든 법을 혹은 법이라 하기도 하고 혹은 법이 아니라고 하기도 하나니, 왜냐 하면 만일 이와 같은 모든 법은 모두 공하고 모양이 없고 소원이 없다 함을 분명히 알면 곧 모든 법은 다 같이 법이라 하겠지만, 만일 나와 내 것이라는 모든 견해의 수면(隨眠)을 헤아리거나 집착한다면 곧 모든 법은 다 법이 아니라고 하기 때문이니라.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한 까닭에 법을 따르는 관에 머무른 뒤에는 하나의 법도 불법이 아니거나 부처님이 아니거나 도()가 아니거나 해탈이 아니거나 벗어남[出離]이 아닌 것을 알지 못하며, 이 보살마하살은 모든 법을 분명하게 알아서 모두 벗어난 뒤에는 또 장애 없는 대비(大悲)를 획득하여 모든 중생의 번뇌는 거짓되고 허망한 생각에서 나는 것이라고 관찰하여 모든 번뇌의 체성(體性)을 스스로 여의는 것인 줄 아느니라. 왜냐하면 이 모든 번뇌는 모두 요의(了義)에 나아가면 조그마한 번뇌조차도 쌓을 수 있거나 모을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니, 이렇게 따라 깨달으면 그것이 곧 보리요, 번뇌의 성품이 곧 보리의 성품이니라.
보살이 이와 같이 비록 생각에 편히 머무른다 하더라도 머무르는 곳이 없고 기억한 것도 아니고 잊는 것도 아니며 생각에 편히 머무르는 것을 분명하게 아나니, 왜냐 하면 생각에 편히 머무는 것을 곧 법계(法界)라 하기 때문이니라. 만일 법계에 머무른다면 곧 유정계(有情界)에 머무르는 것이요 유정계에 머무르면 곧 허공계(虛空界)에 머무르는 것이니, 이와 같기 때문에


                                                                            [1494 / 3476]

이 모든 법은 허공과도 같다고 말하느니라.
사리자야, 이와 같이 법을 따르는 관에 머무른 보살마하살은 불법에 의지하여 나아가기 때문에 모든 법이 곧 불법임을 믿고 이해하나니, 비록 또 이와 같은 진지(盡智)를 일으킨다. 하더라도 무위(無爲)에서 다하여 없어지는 법을 증득하지 않을 수 있으며, 비록 또 생김이 없는 지혜[無生智]를 일으킨다 하더라도 모든 함식(含識)을 가엾이 여겨 받아 남[受生]을 나타내는 것이요, 또 생김이 없는 실제[無生實際]를 버리거나 여의지도 않느니라.
 

사리자야, 이 보살마하살은 모든 법 가운데서 생각에 편히 머무르기 때문에 2()의 모든 법을 두루 거두어 지닐 수 있고 비록 온갖 거짓으로 세운 모든 법에서 생각을 편히 머무른다 하더라도 이 바른 생각을 흘려버림도 없고 잃어버림도 없으며, 미래의 모든 법에 이르기까지 법을 따라 관찰하면서 염주(念住)를 닦아 익혀 한량없는 언설로 말한 평등하지 않은 경계를 온갖 불법에 평등하게 나아가 들 수도 있고 모든 중생들의 마음을 기쁘게 할 수도 있으며, 온갖 견고한 악마 군사를 꺾을 수도 있나니, 이로 인하여 저절로 큰 지혜[自然大智]를 증득하게 되느니라.
사리자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까닭에 모든 법에 대하여 법을 따라 관찰하면서 염주를 닦아 익힌다 하느니라.
이것을 곧 네 가지 염주로서의 선교한 법이라 하나니, 이와 같이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고자 하면, 마땅히 염주의 선교[念住善巧]를 닦고 익혀야 하느니라.


                                                                            [1495 / 3476]

대보적경 제53

대당 삼장법사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12. 보살장회


11) 반야바라밀다품
 

또 사리자야,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의 네 가지 바르고 훌륭한 도의 선교[正勝道善巧]냐 하면,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까닭에 도()에는 네 가지가 있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이냐 하면, 첫째는 아직 생기지 않은 악()과 착하지 못한 법을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하여 즉시 욕락(欲樂)을 내어 용맹스럽게 책려(策勵)하고 부지런히 정진하여 마음을 가다듬어 지니며 평등하게 편히 머무르는 것이요, 둘째는 이미 생긴 악과 착하지 않은 법을 영원히 끊어지게 하기 위하여 즉시 욕락을 내어 용맹스럽게 책려하고 부지런히 정진하여 마음을 가다듬어 지니며 평등하게 편히 머무르는 것이며, 셋째는 아직 생기지 않은 착한 법을 생기게 하기 위하여 즉시 욕락을 내어 용맹스럽게 책려하고 부지런히 정진하여 마음을 가다듬어 지니며 평등하게 편히 머무르는 것이요, 넷째는 이미 생긴 착한 법을 머무르게 하고 잊지 않고 닦아 익혀 원만하게 하기 위하여 즉시 욕락을 내어 용맹스럽게 책려하고 부지런히
정진을 일으켜 마음을 가다듬어 지니며 평등하게 편히 머무르게 하는 것이니, 사리자야, 이와 같은 네 가지를 바르고 훌륭한 것[正勝]이라고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어떤 것을 아직 생기지 않은 악과 착하지 않은 법을 생기지...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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