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적경(大寶積經)

대보적경-1490-298

근와(槿瓦) 2017. 6. 18. 00:05

대보적경-1490-298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1486 / 3476]

어떤 몸을 견고하고 알찬 몸[堅實身]이라 하느냐 하면, 여래의 몸이 곧 견고하고 알찬 몸이다. 나는 이 몸은 지극히 거짓이라고 관찰하므로 반드시 여래의 몸을 이룩하여야 한다. 왜냐 하면 여래의 몸은 곧 법의 몸[法身]이요, 금강 같은 몸이요, 파괴할 수 없는 몸이요, 견고한 몸이요, 3()를 초월한 가장 뛰어난 몸이기 때문이다'고 하느니라.
또 생각하기를 '나의 이 몸은 한량없는 허물에 뒤섞여 있으므로 나는 마땅히 모든 허물을 여읜 여래의 몸을 증득해야 한다'고 하느니라.
사리자야, 이 보살마하살은 모든 깨닫는 지혜의 간택(簡擇)하는 힘으로써 '이 몸은 네 가지 요소[四大種]에 속한 것이고 모든 수면(隨眠)이 의지하고 있는 굴택(屈宅)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제 이 몸으로써 모든 중생을 위하여 몰아서 부리고 심부름을 해야 된다. 왜냐 하면 마치 세간 바깥의 네 가지 요소인 지계(地界수계(水界화계(火界풍계(風界)가 갖가지 문의 한량없는 뭇 도구와 자재(資財)로써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고 양육하는 것처럼 나도 이제 역시 이 네 가지 요소로 합해져서 이루어진 몸이므로 갖가지 문의 한량없는 차별된 경계와 자재로써 마땅히 중생들이 수용(受用)할 수 있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고 하느니라.
 

사리자야, 이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여 이 몸을 자세히 살펴봄으로 말미암아 이와 같은 대의(大義)의 작용이 있기 때문에 비록 이 몸의 체성(體性)이 괴로운 것임을 관찰한다 하더라도 이와 같은 괴로운 몸을 싫어하거나 걱정하지 않고 비록 이 몸이 마지막에는 다하는 성품임을 관찰한다 하더라도 유전(流轉)하며 받아 나는 것을 싫어하지 않으며, 비록 이 몸의 그 성품에는 나가 없음을 관찰한다 하더라도 중생을 성숙시키는 일에 게으름이 없고, 록 이 몸의 나는 고요히 사라지는 성품임을 관찰한다 하더라도 저 영영 고요히 사라짐[寂滅]을 버리는 데에 떨어지지 않으며, 비록 몸이 공하고 모양이 없고 멀리 떠났음을 관찰한다 하더라도 멀리 여읨의 맨 끝에 떨어지지 않느니라.
사리자야, 이 보살마하살은 이 몸이라는 법에 대하여 몸을 따르는 관[隨身觀]에 머물러서 이 몸은 실제도 없고 견고함도 없음을 관찰하느니라. 또 안[]의 몸에 대하여 몸을 따르는 관에 머물러 안을 따라 수행하여 모든 번뇌


                                                                            [1487 / 3476]

를 다시는 받아들임이 없고, 또 바깥[]의 몸에 대하여 몸을 따르는 관에 머물러 바깥을 따라 수행하며 모든 번뇌와는 함께 머무르지 않느니라.
사리자야, 이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은 신염주(身念住)를 성취하고 나면 그 몸이 청정하여져서 물듦이 없고 온갖 깨끗한 몸의 업[身業]을 완전히 갖추어서 깨끗한 모양[]의 장엄한 몸을 얻으며, 이미 이와 같은 장엄한 몸을 갖춘 까닭에 모든 하늘과 인간이 귀의하여 숭배하는 것이니라.
사리자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까닭에 이 몸이라는 법에 대하여 몸을 따라 관찰하며 염주를 닦아 익힌다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 어떤 것이 느낌[]에 대하여 느낌을 따라 관찰하고 염주를 닦아 익히는 것이냐 하면,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은 생각하기를 '모든 있는 느낌은 모두가 다 괴로운 것이다. 나는 이제 깨닫는 지혜의 힘을 갖추어 이와 같은 느낌을 마땅히 잘 결택(決擇)하고 지()로써 결택하고 혜()로써 결택하고 방편으로 결택해야 한다'고 하느니라.
 

이 보살마하살은 이미 이와 같이 훌륭한 결택의 힘을 갖춘지라 비록 즐거움[]을 느낀다 하더라도 그 즐거움을 접촉할 당시에 곧 온갖 착한 길[善道]의 중생에 대하여 크게 인자한 마음을 일으켜 탐심을 내는 수면(隨眠)에 시달림을 받지 않고, 비록 괴로움[]을 느낀다 하더라도 그 괴로움을 접촉할 당시에 곧 모든 악한 세계[惡道]의 중생에 대하여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일으켜 성을 내는 수면에 시달림을 받지 않으며, 비록 또 모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不苦不樂]을 느낀다 하더라도 그 느낌을 접촉할 당시에 무명(無明)의 수면에 시달림을 받지 않느니라.
사리자야, 이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여 이와 같이 관찰하여 아는 힘[觀解力]을 완전히 갖춘 까닭에 느낌을 따라 행하면서 염주에 있는 바 느낌인 괴로움과 즐거움과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닦고 익혀서 모든 느낌에서 벗어나는 일을 잘 관찰하며, 또 저 모든 중생들이 느낌이 두루한 지혜로써 고요히 사라지는 법을 잘 증득하게 하느니라.
또 생각하기를 '이 모든 중생은 번뇌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지혜가 없어서 모든 느낌에서 벗어남을 분명하게 모르나니, 왜냐 하면 즐거움을 느낄 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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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문득 탐애를 내게 되고, 괴로움을 느낄 때에는 곧 성을 내게 되며,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을 느낄 때에는 문득 어리석음을 내게 되기 때문이다. 하물며 우리들의 모든 보살은 지혜의 행을 따라 느끼는 모든 허물의 법들을 이미 쉬고 없앴거늘 어찌 다시금 번뇌를 일으키겠느냐? 나는 이제 마땅히 방편선교를 구족히 일으키고 크게 가엾이 여기어 모든 중생을 섭수하여 모든 느낌에서 모두 쉬고 없앨 수 있게 해야겠다'고 하느니라.
사리자야, 이와 같은 보살은 어떤 인연으로 모든 느낌에 대하여 따르지 않을 수 있다고 하는가 하면, 사리자야, 모든 느낌에 대하여 지혜로써 간택하여 즐거움은 이끌어 내지만, 괴로움은 이끌어 내지는 않는 것이니라.
사리자야, 또 어떤 지혜로써 간택하는가 하면, 이 보살은 '이 가운데에서 능히 느끼는 이와 나와 유정과 목숨과 보특가라가 없다'고 관찰하나니, 이렇게 관찰하여 마치면 능히 느끼는 이는 없고 오직 느끼는 것이 있을 뿐이니라. 어떤 느낌이 있느냐 하면, 받아들이는 느낌[執受]과 끌어당기는 느낌[攝受]과 취하는 느낌[取受]과 얻음이 있는 느낌[有得受]과 뒤바뀐 느낌[顚到受]과 분별하는 느낌[分別受]과 견의 수면인 느낌[見隨眠受]과 눈으로 인한 생각에서 생겨나는 느낌[眼想所生受] 나아가 뜻으로 생각하여 생겨나는 느낌[意想所生受]과 빛깔로 생각하여 생겨나는 느낌[色想所生受]과 나아가 법으로 인한 생각에서 생겨난 느낌[法想所生受]과 그리고 갖가지의 눈으로 인한 접촉으로 생겨나는 느낌[眼觸所生受]이니, 이와 같이 널리 말하여 안과 바깥에 있는 모든 법과 모든 접촉의 면으로 생기는 느낌[諸觸緣所生受]에 이르기까지 괴롭거나 즐겁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이와 같은 모양을 곧 느낌이라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모든 부처님·여래께서는 모든 느낌의 한량없는 여러 문과 차별된 모양을 분별하시느니라.
 

사리자야, 여래께서 때로 하나의 느낌을 말씀하시기도 하나니, 하나의 마음으로 모든 경계를 따로따로 아는 것이니라. 혹은 두 개의 느낌을 말씀하기도 하나니, 안과 바깥이니라. 혹은 세 개의 느낌을 말씀하기도 하나니, 과거를 따로따로 알고 미래를 따로따로 알며 현재를 따로따로 아는 것이니라. 혹은 네 개의 느낌을 말씀하기도 하나니, 지계(地界수계(水界화계(


                                                                            [1489 / 3476]

풍계(風界)를 구별하는 것이니라.
혹은 다섯 개의 느낌을 말씀하시기도 하나니. 이와 같은 5()을 생각하는 것이니라. 혹은 여섯 개의 느낌을 말씀하시기도 하나니, 이와 같은 6()를 분별하는 것이니라. 혹은 일곱 개의 느낌을 말씀하시기도 하나니, 7식주(識住)가 그것이니라. 혹은 여덟 개의 느낌을 말씀하시기도 하나니, 8() 방편의 모양이 그것이니라. 혹은 아홉 개의 느낌을 말씀하시기도 하나니, 중생들이 살게 되는 아홉 가지의 거처가 그것이니라. 혹은 열 개의 느낌을 말씀하시기도 하나니, 열 가지 착한 업의 길[善業道] 등이 그것이니라.
사리자야, 이와 같이 자세히 설명하여 한량없는 모든 느낌에 이르기까지 반연의 대상인[所緣] 경계를 따르고 지을 바의 뜻을 따라 한정된 양의 분제(分齊)로서 저러한 많은 느낌이 있으나, 그러나 모든 여래께서는 느낌의 한량없음을 말씀하시느니라. 왜냐 하면 중생은 한량없으므로 중생이 있음에 따라 각각 이러한 한량없는 모든 느낌을 갖추기 때문이니라.
사리자야, 이와 같이 보살마하살은 어떻게 느낌에 대하여 느낌을 따르는 관[隨受觀]에 머무르느냐 하면, 사리자야, 모든 보살은 깨끗한 지혜와 방편으로써 모든 중생이 지닌 모든 느낌의 나고 없어지고 머무르고 달라짐[生滅住異]을 잘 포섭하며, 그리고 모든 중생의 착하고 착하지 못한 것 등 소유하고 있는 느낌의 지혜를 분명하게 잘 아나니, 만일 모든 보살이 이와 같이 따라 관찰하면 이것을 느낌에 대하여 구족히 관찰한다 하느니라.
 

사리자야, 이와 같은 것을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까닭에 모든 느낌에 대하여 느낌을 따라 관찰하고 염주를 닦아 익힌다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 어떻게 마음[]에 대하여 마음을 따라 관찰하고 염주를 닦아 익히는가 하면, 사리자야, 이 모든 보살마하살은 생각을 잊어버리지 않고 은밀히 보호하고 막아 지키며, 모든 산란함을 여의고 마음에 대하여 나고 없어지고 흩어지고 무너져서 생각마다 머무르지 않음을 관찰하여 안에서나 밖에서나 머무르지도 않고 옮겨가지도 않으면 이것을 보살이 마음을 바르게 관찰한다 하느니라.
사리자야, 이 보살마하살은 또 생각하기를 '내가 기억하건대 맨 처음에 일으켰던 마음이 있었을 것인데 이러한 모든 마음은 나자마자 곧 소멸되어 떠


                                                                            [1490 / 3476]

나고 흩어지고 변하고 무너져서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다. 또 나는 한량없는 모든 마음으로 선근을 쌓고 보았을 터인데 나자마자 곧 소멸되어 떠나고 흩어지고 변하고 무너져서 그 방위가 없다. 또 나에게 있었던 한량없는 마음의 모양은 보리에 회향하였는데도 마음의 체상(體相)을 스스로 알 수 없거늘 어떻게 이 마음으로 '내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깨달아야 한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겠느냐. 왜냐 하면 이 마음의 본체로써는 마음을 환히 알 수가 없고 마음을 관찰할 수도 없으며 자기 마음을 통달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라고 하느니라.
사리자야, 이 보살마하살은 또 생각하기를 '만일 보리의 마음은 선근의 마음으로 말미암아 상실됨이 없다면 곧 선근의 마음도 회향한 마음으로 말미암아 미혹하거나 상실함이 없을 것이다. 만일 회향하는 마음이 보리를 말미암아 상실됨이 없다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도 상실됨이 없을 것이다'라고 하고, 이 보살마하살은 이렇게 관찰한 뒤에는 미혹하거나 상실하는 것에 대하여 두려워하지도 않고 무서워하지도 않느니라.
 

또 생각하기를 '이 인연으로 생기는 법은 인과(因果)가 파괴되지 않는다. 비록 이 마음의 법 성품에는 제 성품이 없고 작용도 없고 주재(主宰)도 없다 하더라도 그러나 이 모든 법은 인연에 의지하여 생기게 된다. 나는 마땅히 그 하고자 하는 것을 따라 선근을 쌓고 모아야 하고 이미 쌓고 모은 뒤에는 그와 상응하는 행을 닦아서 끝내 이 마음의 법 성품을 버리거나 여의지 않아야 한다'고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은 어떻게 그 가운데서 쌓아 모은 모양을 관찰하느냐 하면, 사리자야, 이 보살마하살은 쌓아 모은 모양을 이렇게 관찰하는 것이니 '이 마음의 본래 성품[本性]은 오히려 허깨비와 같으므로 하나의 법도 보시할 만한 것이 없지만, 이 마음의 법 성품[法性]에서는 모든 중생에게 보시 할 수 있어서 쌓고 모아 장엄한 불국토에 회향하게 된다'고 하나니, 이것을 곧 선근이 쌓여 모인다고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이 마음의 본래 성품은 마치 꿈에서 본 것과 같아서 그 모양은 고요하지만, 이 마음의 법 성품에서는 잘 쌓고 모아 시라(尸羅)를 수호할 수 있어서 모두 신통이 된다'고 하나니, 이것을 곧 선근이 쌓여 모인다고 하...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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