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승(角乘)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원효의 불교를 말함. 角은 覺과 통한다. 불교를 크게 나누면 소승과 대승으로 구분하며, 또 三乘·二乘으로 구분하는 경우도 있다. 원효는 대승기신론의 사상에 입각하여 중생의 一心의 두 측면, 즉 本覺과 始覺에 중점을 두고, 일체의 교리를 이 두 가지 覺의 이론으로 해석하고 또 실천하였다. 그가 金剛三昧經에 대한 論을 저술할 때에도 그러하였다. 그는 소의 두 뿔(角)위에도 붓과 벼루를 놓고 論을 썼으므로 그 때부터 원효의 불교를 角乘이라 일컬었다고 한다.
참고
원효(元曉) : (617~686) 신라 말기의 고승. 속성은 薛씨. 이름은 誓幢. 仍皮公의 손자. 談㮈乃末의 아들. 그의 어머니가 꿈에 유성이 품 속에 드는 것을 보고 원효스님을 배었으며, 만삭이 된 몸으로 押梁郡의 南佛地村 栗谷 마을을 지나다가 사라수 아래에 이르러 갑자기 낳았는데 삼국유사에 이르기를 그때 오색 구름이 땅을 덮었다 한다. 29세에 출가하여 황룡사에 들어갈 때 집을 희사하여 初開寺를 세우게 했으며, 사라수 옆에도 절을 세워 娑羅寺라 하였다. 指月錄에는 34세 때 의상과 함께 불법을 구하려고 당나라에 가던 길에 어느 날 밤에 무덤가에서 잠을 자다가 목이 말라 물을 찾다가 어떤 구멍에서 물을 얻어 먹었더니 시원하기 비길 데 없었다. 아침에 깨어 본 즉 해골 속의 더러운 물이었음을 알고 급히 토하다가 깨닫기를 「마음이 나면 여러 가지 법이 나고, 마음이 없어지면 해골과 둘이 아니다.(心生則種種法生 心滅則髑髏不二) 부처님 말씀에 三界가 오직 마음뿐이라 하셨으니 어찌 나를 속였으랴.」하고 바로 본국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 뒤 분황사에 있으면서 독자적으로 通佛敎를 제창하며 민중 속에 불교를 보급하기에 노력했다. 하루는 장안 거리를 다니면서「자루 없는 도끼를 빌려주면(誰許沒柯斧), 하늘받칠 기둥을 찍으련다.(我斫支天柱)」라고 크게 외치었다. 무열왕이 듣고「이는 귀부인을 얻어 훌륭한 아들을 낳겠다는 것이니, 나라에 큰 성현이 있으면 그보다 이로움이 없으리라.」하고, 사신을 보내어 원효를 맞아 요석궁에 홀로 된 공주로 짝을 짓게 하기 위하여 요석궁에 들게 하였다. 사신이 스님을 문천의 다리에서 만나 일부러 물에 떠밀어 옷을 젖게 하여 스님을 맞아 궁으로 모시고 젖은 옷을 말리느라고 유숙케 되었다. 과연 공주가 아이를 배어 설총을 낳았다. 그후 파계하였다고 속복으로 바꾸어 입고 小性居士 또는 卜性居士라고 자칭하였다. 우연히 한 광대가 괴상한 박을 가지고 춤과 만담을 벌리는 것을 보고 그와 같은 물건을 만들어 화엄경의 一切無碍人 一道出生死에서「無碍」를 따다가 박의 이름을 짓고 無碍歌라는 노래를 지어 춤추고 노래하며 민중 속에 파고드니 염불을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또 당나라에서 들여온 금강삼매경을 왕과 고승들 앞에서 강론하여 존경을 받았다. 그 후 절에서 참선과 저술로 만년을 보내다가 686년 3월 30일 70세로 穴寺에서 입적하였다. 뒤에 고려 숙종이 大聖和靜國師라는 시호를 내렸다. 불교 사상의 종합과 실천에 힘쓴 淨土敎의 선구자이며, 한국의 불교사상 가장 위대한 고승의 한 사람으로 추앙되고 있다. 저서로는 화엄경소 10권, 화엄경종요 1권, 화엄경강목 1권, 열반경소 5권, 대열반경종요 1권, 법화경종요 1권, 법화경요략 1권, 법화경약술 1권, 법화경방편품요간 1권 등 이외에 수많은 저서가 있다.
소승(小乘) : 범어 hinayana. 乘은 싣고 운반하는 뜻. 일체 중생이 모두 부처가 되기에는 너무나 작고 보잘 것 없는 수레라는 뜻. 대승의 對. 이 교법 중에서 敎 · 理 · 行 · 果가 모두 深遠 광대하고, 따라서 수행하는 사람도 大器利根인 機類를 요하는 것을 대승이라 하고, 이와는 달리 아라한과와 벽지불과를 구하는 것을 소승이라 한다. 소승에는 성문승과 연각승이 있다.
(1) 聲聞乘. 四諦의 이치를 관하여 성문의 四果를 증득하여 열반에 이르는 것을 교리로 한다.
(2) 緣覺乘. 12인연을 觀하여 辟支佛果에 이르는 것을 敎體로 한다. 이것은 모두 몸을 태우고 智를 멸하여 空寂 열반의 깨달음으로 돌아가는 것을 최후 목적으로 생각한다. 부처님이 열반하신 후 100년에 上座部와 大衆部로 분열하였고, 이 대중부는 또 다시 9부로, 上座는 11부로 나뉘어져 결국 도합 20부가 되었다. 스승이나 지역 관계가 분열의 원인이 되었는데, 이와 같은 분열은 한편으로 교세의 확장을 의미하기도 한다. 각 부의 敎義는 서로 영향을 받았으며, 거기다가 이상적 질서를 부여한 것은 중국의 敎判으로, 窺基의 八宗判, 法藏의 十宗判 등이다. 이 이름은 대승이 有部의 煩瑣 연구를 소승이라고 낮추어 부른 데서 비롯한다. 대표적인 부파는 有部 · 經量部 · 正量部 · 大衆部 등이다. 인도의 상좌부·대중부 등의 20분파와 東土의 구사종 ·성실종 · 율종 등이다.
대승(大乘) : 摩訶衍那 · 摩訶衍이라 음역하며, 上衍, 上乘이라고도 한다. 乘은 타는 것이란 뜻이며, 迷惑의 此岸으로부터 깨달음의 彼岸에 이르는 敎法을 가리킨다.
① 阿含經에서는 불타의 가르침을 존중하여 大乘이라 했다.
② 대승 · 소승이란 말은 釋尊의 入滅 후 그 言行의 傳承을 중심으로 불교(原始佛敎)로부터 그 註釋的 硏究의 불교(部派불교)가 전개되는 것과 동시에 따로 보살도를 說하는 불교(대승불교)가 또한 발달되었는데, 이때에 후자의 敎徒가 자신들이 받들고 있는 敎를 殊勝한 것으로 규정하여 대승이라 불렀으며, 전자를 낮추어서 小乘이라 이름하게 된데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전자의 敎徒로부터는 대승은 부처님이 말씀한 敎가 아니라고 非難하는 이른바 大乘非佛說이 주장되었다. 그러나 思想史的으로 보면 小乘은 大乘敎學의 기초 내지 前驅라고 하는 의미를 갖는다.
③ 소승은 자신의 解脫만을 목적으로 하는 自調自度(調는 번뇌를 制伏하여 없애는 것. 度는 깨달음에 이르는 것)의 聲聞 · 緣覺의 道이며, 대승은 涅槃의 적극적인 의미를 인정하여 自利 · 利他의 兩面을 다 갖춘 보살의 도라 할 수 있다.
④ 小乘에는 반야경 · 四分律 · 五分律 등의 律, 婆沙論 · 六足論 · 發智論 · 俱舍論 · 成實論 등이 있고, 대승에는 般若經 · 法華經 · 華嚴經 등의 經과 中論 ·攝大乘論 · 大乘起信論 등의 論이 있다.
⑤ 대승이 殊勝한 이유로서, 菩薩善戒經 卷七등에서는 七을, 世親의 攝大乘論釋 卷六에서는 十一을 들고 있는데, 보살선계경에서 말하는 七大乘이란 十二部經 가운데 最上의 경인 毘佛略의 敎에 기초를 두고(法大), 菩提心을 일으켜서(心大), 그 교를 이해하고(解大), 청정한 마음으로(淨大), 보살의 복덕과 지혜가 몸에 나타나며(莊嚴大), 三大阿僧祗劫의 수행을 쌓아(時大), 마침내 相好를 갖추며 無上菩提를 얻는것(具足大)이라고 했다.
⑥ 印度의 대승에는 대략 中觀 · 瑜伽의 2系統과 밀교가 있다.
⑦ 중국에서는 대승의 諸經論에 기초한 많은 敎派(三論 · 涅槃 · 地論 · 淨土 · 禪 · 攝論 · 天台 · 華嚴 · 法相 · 眞言 등의 諸宗)가 있어서 각각 自宗의 우월한 점을 나타내기 위해 대승에 관한 종종의 구별을 세웠다.
삼승(三乘) : 聲聞 · 緣覺 · 菩薩에 대한 세 가지 敎法을 말하는 것으로 乘은 짐을 실어 나르는 수레를 말한다.
(1) 聲聞乘. 4諦法, 곧 佛說의 소리를 듣고, 이를 觀하여 해탈을 얻음.
(2) 緣覺乘. 12因緣이니, 스승에 의하지 않고, 스스로 잎이 피고, 꽃이 지는 이치를 觀하여 깨닫는 것.
(3) 菩薩乘. 6波羅蜜이니, 菩薩이 이 法에 의하여 스스로 解脫하고, 다른 이도 해탈케 하여 부처가 되는 것.
이승(二乘) : 2종의 敎法이란 뜻. 곧 (1) 大乘과 小乘 (2) 聲聞乘과 緣覺乘 (3) 聲聞乘과 菩薩乘 (4) 別敎一乘과 三乘.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 인도의 馬鳴이 지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오늘날까지 이 책의 原典인 산스크리트 原本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현재 전해오는 것은 眞諦(500~569)와 實叉難陀(652~710)가 번역한 두 가지 漢譯本뿐이다. 이 論은 通論的으로 여러 대승경에 공통된 교리를 말하였으므로 大乘通申論의 하나라 한다. 내용은 5分으로 나누어,
(1) 因緣分. 論을 짓는 까닭을 말하는 부분으로 序分 즉 서론을 말한다.
(2) 立義分. 論의 主題를 提示하는 부분.
(3) 解釋分. 그 주제를 상세하게 풀이하는 부분.
(4) 修行信心分. 어떻게 믿는 마음을 培養하고 修行할 것인가를 말하는 부분이며, 앞의 立儀分 · 解釋分과 함께 正宗分으로 本論을 말한다.
(5) 勸修利益分. 수행을 勸하며 그 利益을 말하는 부분으로 流通分 즉 결론을 말한다. 그중에서 入義分 · 解釋分은 敎理論으로 一心 · 二門 · 三大를 말하고, 修行信心의 一分은 실천론으로 四信 · 五行과 아미타불에 의한 정토 왕생의 길을 말한다. 주석서는 혜원이 지은 義疏 4권, 원효가 지은 疏 2권, 현수가 지은 義記 등이며 이것들을 가리켜 3大疏라 한다.
일심(一心) : ① 우주의 근본원리로서 萬有의 實體인 절대 無二의 心性. 眞如, 如來藏心을 말한다. 舊譯의 화엄경 卷二十五의 十地品에「三界는 허망하여 다만 이 한 마음의 所作이다」라고 說한 것은 이런 뜻에 근거한 것이다. 또 宗密의 화엄경 行願品鈔 卷二에는, 華嚴宗의 五敎에 一心의 說을 배속하고, 小乘에서는 마음 밖에 外境의 존재를 인정하기 때문에 이름은 있어도 實다움이 없고(假說의 一心), 大乘權敎에서는 異熟阿賴耶識(事의 一心), 大乘實敎에서는 如來藏藏識(理事無礙의 一心), 大乘頓敎에서는 染淨을 함께 뛰어넘은 절대적인 一心 別敎一乘에서는 萬有를 다 거두어 들인 萬有總該의 一心을 말한다고 하고, 別敎의 一心은 一眞法界, 一心法界라 함과 같이 우주 그 자체에 지나지 않는, 곧 事事物物이 그대로 서로 장애하지 않고 절대적인 존재, 萬有를 만드는 眞如心에 거두어 一心으로 한다.
천태종에서는 一心三觀, 一念三千의 說이 있어, 범부가 항상 일으키는 미혹의 一心에 우주의 전부가 원만히 갖추어 있다고 한다. 더욱이 一心이라고 하는 때는 主로 보는 자의 마음, 一念이라고 하는 때는 보는 대상에 대해서 말한다.
② 唯一의 根本識의 뜻. 곧 온갖 것을 變現시키는 마음으로서의 阿賴耶識. 成唯識論 卷二에는 이 의미에 따라서 一心이라고 한다.
③ 오로지 하나의 대상에 마음을 集注하여 생각을 어지럽게 하지 않는 마음. 雜念이 섞이지 않고, 一心으로 바르게 불타를 念하는 것을 一心正念, 불타를 念하여 오로지 하는 것을 一心專念이라고 하고, 淨土敎에서는 一心으로 彌陀를 念하는 것을 重視한다. 良忠의 選擇傳弘決疑鈔 卷二에는, 一心에 理 · 事, 定 · 散, 安心 · 起行의 구별이 있다고 하고, 理의 一心은 平等한 心性, 事의 一心은 定心과 散心중의 一心으로, 이것은 다 같이 起行에 속한다. 그리고 安心의 一心이라 함은, 無量壽經에 說하는 至心 · 信樂 · 欲生我國의 三信, 觀無量壽經에 說하는 至誠心 · 深心 · 廻向發願心의 三心, 阿彌陀經에 說하는 一心不亂의 一心을 가리키고, 이것들은 다 本願을 의심하지 않고 오로지 아미타불의 구제를 믿는 마음이다.
본각(本覺) : 無始이래의 迷(煩惱)를 수행에 의해 차례로 쳐부셔 서서히 心源을 깨닫는 것을 始覺이라 하고, 번뇌로 더럽혀진 迷의 모습이지만, 心의 本性은 본래가 淸淨한 覺體인 것을 本覺이라 한다.
① 起信論에서는 萬有는 一心안에 다 들어간다고 하여 그 一心을 心眞如門 · 心生滅門의 두 가지로 크게 나누고 있다.
心眞如門에서 보면 心은 모든 차별을 超脫한 절대적인 것이므로 거기에는 本覺 · 始覺의 구별이 있을 수 없지만 그 心이 無始의 無明으로 더럽혀져서 動的인 差別相을 나타내는 心生滅門에서는 本覺 · 始覺의 구별이 생긴다고 한다. 곧 이 구별은 阿黎耶識 중의 覺의 구별로서, 眞如가 無明의 緣을 만나 迷의 현상을 일으키면 그 心은 아주 昏昧해져서 깨달을 수 없는 마음이 됨으로 不覺이다. 그러나 그 본성의 작용은 곧 念을 여읜 淸淨한 것으로 본래가 깨달음 그것이란 뜻에서 本覺이라고 부른다. 그렇지만 不覺은 本覺안에서의 작용(內熏習力)과 敎法 밖에서 오는 緣(外熏習力)에 의하여 차례로 깨달음을 얻어, 이에 비로소 發心修行의 정도에 따라 智慧를 얻게 된다. 이것을 始覺이라고 한다. 始覺은 수행자의 단계에 따라 不覺(十信 外凡이 惡業의 因에 의하여 苦果를 부름을 알기 때문에 이미 惡業을 떠나지만, 아직 번뇌를 끊을 智가 생기지 않은 位) · 相似覺(二乘과 三賢의 보살이 我執을 여의고 我空의 理를 깨달았지만, 아직 法執을 여의지 못한 位) · 隨分覺(初地이상의 보살이 法執을 여의고 각각 그 地에 따라 眞如의 一分을 깨닫는 位) · 究竟覺(第十地의 보살이 因行을 완성하여 一念에 相應한 慧를 가지고 그 心으로 비로소 일으킨 깨달음)의 네 가지로 나눈다. 그래서 결국 佛果에 도달하면 始本不二 · 絶對平等의 大覺을 이룩한다. 이 四를 始覺의 四位라고도 하고 反流의 四位라고도 한다. 대저 迷惑의 세계에 방황하는 것(流轉)은 중생심의 生住異滅의 相에 지나지 않지만, 이 四相을 역으로 거슬러 깨달은 것이 곧 四位인 까닭이다. 곧 不覺은 중생심의 滅相을 覺知하는 것이며, 내지 究竟覺은 중생심의 生相을 覺知하는 것이다. 그런데 反流란 生死의 흐름에서 거슬러 올라가 깨달음으로 향하는(還滅)것을 의미한다. 또 本覺을 그 작용하는 점에서 보아 隨染本覺, 體德의 입장에서 性淨本覺이라 설명한다. 곧 隨染本覺은 번뇌의 汚染에 대한 本覺의 작용을 뚜렷하게 하는 것으로 여기에 둘이 있다. 始覺의 智慧에 의하여 不覺의 妄染을 다 없애고 본래 청정한 本覺의 相으로 돌아가는 것을 智淨相, 始覺을 완전히 얻어 妄染을 다 없애고 本覺의 性德이 나타나서 利他의 功能을 보이는 것을 不思議業相이라고 한다. 또 性淨本覺이란 本覺의 體相이 본래 청정하여 무한한 기능이 있는 것을 나타냄으로 거울에 비유하여 如實空鏡 · 因熏習鏡 · 法出離鏡 · 緣熏習鏡의 四鏡을 말한다. 이 가운데서 앞의 二鏡은 티끌 속에 있는 本覺이 번뇌에 의해 迷惑되더라도 그 自性은 청정한 것이므로 眞如의 如)實空과 如實不空의 두 가지 뜻이 있는 것처럼 在纒의 本覺에도 空(相을 여읜 쪽) · 不空(모든 功德을 갖추고 있는 쪽)의 두 가지 뜻이 있음이 명백하고, 뒤의 二鏡은 出纒의 本覺이 번뇌의 때를 여의어 청정한 것임을 나타낸다. 이는 隨染本覺에 智淨相과 不思議業相의 둘이 있는 것과 같다. 여기서 因熏 · 緣熏의 二鏡으로 나눈 것은 本覺이 깨달음에 이르는 데 있어서의 內因 · 外緣을 뜻한다. 곧 本覺의 內的 작용으로 淨熏이 됨으로 그것이 因이 되어 始覺이 생긴다(因熏). 또 本覺이 始覺을 일으키게 하는 外緣의 熏力이 되기도 한다(緣熏).
② 釋摩訶衍論卷三에는 覺에 本覺 · 始覺 · 眞如 · 虛空의 네 가지 뜻이 있다 하여 四無爲라 부른다. 또 이 四門을 각각 淸淨과 染淨의 두 가지로 분류한다
시각(始覺) : 일체 有情과 非情에 통하여 그 自性 본체로서 갖추어 있는 如來藏眞如에 대하여, 다시 그 本覺이 修行의 功에 의하여 覺證한 覺을 始覺이라 한다. 그러므로 始覺과 本覺이 覺體는 다르지 아니하나, 다만 그 地位가 같지 않으므로 本覺과 始覺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비유하면 땅속 깊이 묻힌 금덩이를 本覺이라 하면, 광부의 노력에 의해 파낸 금덩이는 始覺인 셈이다.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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