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元曉)

해동(海東)

근와(槿瓦) 2017. 3. 30. 00:03

해동(海東)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신라의 원효를 가리키는 말. 원효대사가 당나라에 들어가서 배울 때 동쪽 신라의 사람이므로, 중국에서 海東이라 함.

우리 나라를 일컫는 말.

 

참고

원효(元曉) : (617~686) 신라 말기의 고승. 속성은 . 이름은 誓幢. 仍皮公의 손자. 談㮈乃末의 아들. 그의 어머니가 꿈에 유성이 품 속에 드는 것을 보고 원효스님을 배었으며, 만삭이 된 몸으로 押梁郡南佛地村 栗谷 마을을 지나다가 사라수 아래에 이르러 갑자기 낳았는데 삼국유사에 이르기를 그때 오색 구름이 땅을 덮었다 한다. 29세에 출가하여 황룡사에 들어갈 때 집을 희사하여 初開寺를 세우게 했으며, 사라수 옆에도 절을 세워 娑羅寺라 하였다. 指月錄에는 34세 때 의상과 함께 불법을 구하려고 당나라에 가던 길에 어느 날 밤에 무덤가에서 잠을 자다가 목이 말라 물을 찾다가 어떤 구멍에서 물을 얻어 먹었더니 시원하기 비길 데 없었다. 아침에 깨어 본 즉 해골 속의 더러운 물이었음을 알고 급히 토하다가 깨닫기를 마음이 나면 여러 가지 법이 나고, 마음이 없어지면 해골과 둘이 아니다.(心生則種種法生 心滅則髑髏不二) 부처님 말씀에 三界가 오직 마음뿐이라 하셨으니 어찌 나를 속였으랴.하고 바로 본국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 뒤 분황사에 있으면서 독자적으로 通佛敎를 제창하며 민중 속에 불교를 보급하기에 노력했다. 하루는 장안 거리를 다니면서자루 없는 도끼를 빌려주면(誰許沒柯斧), 하늘받칠 기둥을 찍으련다.(我斫支天柱)라고 크게 외치었다. 무열왕이 듣고이는 귀부인을 얻어 훌륭한 아들을 낳겠다는 것이니, 나라에 큰 성현이 있으면 그보다 이로움이 없으리라.하고, 사신을 보내어 원효를 맞아 요석궁에 홀로 된 공주로 짝을 짓게 하기 위하여 요석궁에 들게 하였다. 사신이 스님을 문천의 다리에서 만나 일부러 물에 떠밀어 옷을 젖게 하여 스님을 맞아 궁으로 모시고 젖은 옷을 말리느라고 유숙케 되었다. 과연 공주가 아이를 배어 설총을 낳았다. 그후 파계하였다고 속복으로 바꾸어 입고 小性居士 또는 卜性居士라고 자칭하였다.


우연히 한 광대가 괴상한 박을 가지고 춤과 만담을 벌리는 것을 보고 그와 같은 물건을 만들어 화엄경의 一切無碍人 一道出生死에서無碍를 따다가 박의 이름을 짓고 無碍歌라는 노래를 지어 춤추고 노래하며 민중 속에 파고드니 염불을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또 당나라에서 들여온 금강삼매경을 왕과 고승들 앞에서 강론하여 존경을 받았다. 그 후 절에서 참선과 저술로 만년을 보내다가 68633070세로 穴寺에서 입적하였다. 뒤에 고려 숙종이 大聖和靜國師라는 시호를 내렸다. 불교 사상의 종합과 실천에 힘쓴 淨土敎의 선구자이며, 한국의 불교사상 가장 위대한 고승의 한 사람으로 추앙되고 있다.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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