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수(龍樹)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인도의 대승불교를 연구하여 그 기초를 확립하여 놓아 대승불교를 크게 선양하였다. 인도 제 14조이며, 空宗의 시조이다. 불멸 후 6~7 백년경(B.C. 2~세기)의 남인도(혹은 서인도)사람. 龍猛· 龍勝이라 번역.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일찍이 4베다· 천문· 지리 등 모든 학문에 능통했다. 처음에는 인생의 향락은 정욕을 만족하는 데 있다 하고, 두 벗과 함께 주색에 몸을 맡겼다. 그리고 왕궁에 출입하면서 궁녀들과 통하다가 일이 탄로되어 두 친구는 사형되고, 그는 위험을 간신히 면하였다. 욕락은 괴로움의 근본이 되는 것을 깨닫고 절에 가서 가비마라에게서 소승 3藏을 배우다가 만족하지 못하여 설산지방으로 갔다. 거기서 늙은 비구를 만나 대승 경전을 구하여 깊은 뜻을 잘 통달하였다.
그의 주요저서에는 中論 4권, 大智度論 100권, 十住毘婆沙論 17권, 十二門論 1권, 廻諍論, 라트나바리 등이 있다.
특히 中論에서 확립된 空의 사상은 그 이후의 모든 불교사상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즉, 實體(自性)을 세우고, 실체적인 원리를 想定하기 위한 바람직한 자세를 그는 철두철미한 비판을 가하면서, 일체의 것이 다른 것과의 의존· 相對· 相關· 相依의 관계(緣起) 위에서만이 비로소 성립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그 상관 관계는 긍정적· 부정적· 모순적 상태의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며, 어느 것에서도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으며 空의 상태에 이를 수 없는 반면, 궁극의 절대적 입장(眞諦· 第一義諦)은 우리들의 일상적 진리(俗諦· 世俗諦)에 의해서만이 성립할 수 있으며, 이를 초월해서는 논의의 대상이나 표현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空의 입장에서 본다면 어느 한쪽에 치우침이 없는 중도적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후세에 그의 학파를 中觀派라고 불렀다. 용수는 또 용궁에 들어가 화엄경을 가져 왔다고 하며, 남천축의 철탑을 열고 금강정경을 얻었다 한다. 그는 馬鳴의 뒤에 출세하여 대승법문을 성대히 선양하니, 대승불교가 그로부터 발흥하였으므로 후세에는 그를 제 2의 석가, 8宗의 조사 등으로 일컬었다.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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