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아함경-1370-274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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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0. 기특경(奇特經)[소경은 『별역잡아함경』 제10권 5번째 소경과 그 내용이 비슷하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다죽원에 계셨다. 그 때 출가한 어떤 바차 종족이 부처님께 찾아와 합장하고 문안인사를 드렸다. 문안인사를 다 드리고 나서 한쪽에 물러나 앉아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구담이시여, 여쭐 말씀이 있는데 혹 한가하시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출가한 바차 종족에게 말씀하셨다. 마음대로 물어보아라. 너를 위해 설명해주리라. 출가한 바차 종족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구담이시여, 무슨 까닭에 혹 누가 와서 '여래는 후생이 있습니까, 후생이 없습니까, 후생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합니까, 후생이 없지도 않고 있지도 않습니까?' 하고 질문을 해도 무슨 이유로 확실하게 대답해주시지 않으십니까?
부처님께서 출가한 바차 종족에게 말씀하셨다. ……(이 사이의 자세한 내용들은 앞의 선타가전연경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후생이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은 것이라고 말하지 않느니라. 출가한 바차 종족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기이한 일입니다. 구담이시여, 스승과 제자는 뜻과 뜻이 같고 문구와 문구가 같으며, 맛과 맛이 같고 그 이치가 다 같습니다. 이른바 제일구(第一句)의 말씀이십니다. 구담이시여, 저는 조그마한 일이 있어서 나리가(那利迦)라는 마을로 가서 일을 마치고 나서 잠깐 사문 가전연에게 들려 이러한 뜻 · 이러한 문구 · 이러한 맛으로 사문 가전연에게 질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 역시 이러한 뜻 · 이러한 문구 · 이러한 맛으로 저에게 대답하였습니다. 그 때 그 대답이 지 금 사문 구담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았습니다. 그런 까닭에 스승과 제자 사이에 뜻과 문구와 맛과 이치가 똑 같은 것이 참으로 이상한 일임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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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출가한 바차 종족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물러갔다.
961. 유아경(有我經)[소경은 『별역잡아함경』 제10권 여섯 번째 소경과 같은 내용이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다죽원에 계셨다. 그 때 출가한 어떤 바차 종족이 부처님께 찾아와 합장하고 문안인사를 드렸다. 문안인사를 다 드리고 나서 한쪽에 물러나 앉아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떻습니까? 세존이시여, 나라고 하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세존께서는 잠자코 아무 대답이 없으셨다. 이렇게 두 번 세 번 물었으나 세존께서는 여전히 두 번 세 번 다 대답하시지 않으셨다. 그 때 출가한 바차 종족이 이렇게 생각하였다. '내가 이미 세 번이나 사문 구담에게 여쭈어 보았으나 대답을 듣지 못했다. 나는 그만 돌아가야겠다.' 그 때 존자 아난이 부처님의 뒤에서 부채로 부처님을 부쳐드리고 있었다.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 출가한 바차 종족이 세 번씩이나 질문했는데도 세존께서는 왜 대답하지 않으셨습니까? 그것은 저 출가한 바차 종족으로 하여금 '사문은 내가 묻는 것에 대답하지 못한다'고 하는 잘못된 생각을 더하게 하지 않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만일 나라고 하는 것이 있다고 대답한다면 그가 이전부터 가지고 있던 삿된 견해를 더 늘어나게 할 것이요, 만일 내가 나라고 하는 것은 없다고 대답한다면, 이전부터 가지고 있던 의혹이 어찌 더 늘어나지 않겠느냐? 그렇다면 그에게 본래는 나라고 하는 것이 있었는데 지금 끊어 없앴다고 말해야 하겠느냐? 만일 본래부터 나라고 하는 것이 있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곧 상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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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常見)이요, 지금 끊어 없앴다고 한다면 그것은 곧 단견(斷見)이다. 여래는 그 두 극단을 여의고 중도에 서서 다음과 같이 설법한다. '이 일이 있기 때문에 이 일이 있고, 이 일이 일어나기 때문에 이 일이 생기는 것이다. 즉 무명(無明)을 연(緣)하여 행(行)이 있고,……(내지)……태어남 · 늙음 · 병듦 · 죽음 · 근심 · 슬픔 · 괴로움의 번민이 멸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존자 아난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962. 견경(見經)[소경은 『별역잡아함경』 제10권 일곱 번째 소경과 그 내용이 비슷하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다죽원에 계셨다. 그 때 출가한 어떤 바차 종족이 부처님께 찾아와 합장하고 문안인사를 드렸다. 문안인사를 다 드리고 나서 한쪽에 물러나 앉아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구담이시여, 어째서 구담께서는 이와 같이 보셨으며,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까? 즉 '세간은 영원하다. 이것이 곧 진실이요 다른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부처님께서 출가한 바차 종족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그와 같이 보고 그와 같이 말하지 않았다. 즉 '세상은 영원하다. 이것이 곧 진실이요 다른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다'라고 말이니라. 구담이시여, 어째서 구담께서는 그와 같이 보셨으며, 그와 같이 말씀하셨습니까? 즉 '세간은 영원하지 않다, 영원하기도 하고 영원하지 않기도 하며 영원한 것도 아니요 영원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끝이 있다, 끝이 없다, 끝이 있기도 하고 끝이 없기도 하며 끝이 있는 것도 아니요 끝이 없는 것도 아니다. 목숨은 곧 몸이다, 목숨과 몸은 다르다, 여래는 후생이 있다, 후생이 없다, 후생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며 후생이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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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출가한 바차 종족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그와 같이 보고 그와 같이 말하지 않았다.……(내지)……'후생이란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이니라. 그 때 출가한 바차 종족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구담께서는 이런 견해에 대해서 어떤 잘못을 보셨기에 이러한 여러 견해에 대하여 전혀 말씀하시지 않으십니까? 부처님께서 출가한 바차 종족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이러한 견해, 즉 '세상은 영원하다. 이것은 진실이요 다른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뒤바뀐 견해이고, 이것은 곧 관찰한다는 견해이며, 이것은 곧 흔들리는 견해이고, 이것은 곧 더러운 견해이며, 이것은 곧 결박하는 견해이다. 이것은 괴로움이고, 이것은 걸리는 것이며, 이것은 번뇌이고, 이것은 열(熱)로서 견해가 얽매이는 것이다. 그래서 어리석고 들은 게 없는 무식한 범부는 미래 세상에서 남 · 늙음 · 병듦 · 죽음 · 근심 · 슬픔 · 괴로움 의 번민이 생기느니라. 바차 종족아, 만약 '세간은 영원하지 않다, 영원하기도 하고 영원하지 않기도 하다, 영원한 것도 아니요 영원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끝이 있다, 끝이 없다, 끝이 있기도 하고 끝이 없기도 하다, 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끝이 없는 것도 아니다, 목숨은 곧 몸이다, 목숨과 몸은 다르다, 여래는 후생이 있다, 후생이 없다, 후생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후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뒤바뀐 견해이며,……(내지)… … 근심 · 슬픔 · 괴로움의 번민이 생기느니라. 출가한 바차 종족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구담께서는 어떻게 보시나이까? 부처님께서 출가한 바차 종족에게 말씀하셨다. 여래는 이미 다 보았다. 출가한 바차 종족아, 여래의 견해는 이른바 '이것은 괴로움의 거룩한 진리다, 이것은 괴로움의 발생에 대한 거룩한 진리이다, 이것은 괴로움이 사라짐에 대한 거룩한 진리이다, 이것은 괴로움이 사라지는 길에 대한 거룩한 진리이다'라고 본 것이다.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았기 때문에, 일체의 견해 · 일체의 감정 · 일체의 출생 · 일체의 나 · 내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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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견해 · 잘난 체하는 거만 등으로 인해 얽매이고 집착하는 번뇌를 끊고, 그것들을 고요하고 시원하고 진실하게 한다. 이와 같이 해탈한 비구에게는 태어난다고 해도 옳지 않고, 태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옳지 않다. 바차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구담이시여, 어째서 태어난다고 해도 옳지 않다고 말씀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바차 종족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지금 너에게 물으리니 네 생각나는 대로 대답하라.
바차야,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네 앞에서 불을 사르는 것과 같다. 너는 그 때 그 불이 타는 것을 보겠느냐? 또 네 앞에서 불이 꺼지면 너는 불이 꺼지는 것을 보겠느냐? 바차 종족이 부처님께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구담이시여. 부처님께서 바차 종족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사람이 너에게 묻기를 '아까는 불이 탔었는데 지금은 그 불이 어디에 있는가? 동쪽으로 갔는가, 아니면 서쪽 · 남쪽 · 북쪽으로 갔는가?'라고 한다면, 너는 어떻게 대답하겠느냐? 바차 종족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구담이시여, 만일 누가 저에게 와서 그렇게 묻는다면 저는 '내 앞에서 불이 탄 것은 섶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섶을 계속해서 대주지 않으면 불은 곧 아주 꺼져버리고 다시는 타지 않을 것이다. 동쪽이나 서쪽 · 남쪽 · 북쪽으로 갔다는 것은 옳지 않다'라고 대답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바차 종족에게 말씀하셨다. 나도 또한 그와 같이 말했다. 즉 '색(色)이 이미 끊어진 줄을 벌써 알았고, 수(受) · 상(想) · 행(行) · 식(識)도 이미 끊어진 줄을 벌써부터 알고 있다. 그래서 그 근본을 끊는 것이 마치 다라나무 밑동을 끊은 것과 같아서 다시는 움이 틀 거리가 없으니, 앞으로는 영원히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만일 동쪽 · 서쪽 · 남쪽 · 북쪽으로 갔다고 하면 그것은 옳지 않다. 그것은 매우 깊고 넓고 크며, 한량없고 헤아릴 수도 없어 영원히 사라진 것이니라. 바차 종족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제가 지금 비유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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