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佛陀,부처님)

무주(無住)의 공덕 73

근와(槿瓦) 2014. 8. 21. 00:38

무주(無住)의 공덕 73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세존이 어느 날 사위성(舍衛城)에서 탁발하고 기원 정사(祇園精舍)에 돌아오시어 의발(衣鉢)을 거두시고 발을 씻으신 뒤 자리를 잡자, 수보리(須菩提)가 대중 가운데에서 일어나 세존께 절하고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부처가 능히 도를 구하는 모든 중생들을 두호하고, 또 그들에게 두드러진 부촉(付囑)을 하시는 일은 희유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중생들이 무상의 도를 구하는 마음을 일으킬 때에 어떻게 하여 그 마음을 억누룰 수가 있겠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착하도다, 수보리여. 보살이 그 마음을 항복시키는 데에는 먼저 세계의 모든 유정(有情)을 완전한 열반에 들게 해야 한다. 게다가 이와 같이 했더라도 실은 한 사람도 열반에 든 중생이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적어도 보살된 자체가「인(人)」,「아(我)」,「수(壽)」등의 상주(常住)를 인정한다면 그는 보살 자체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보리여, 보살은 법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보시를 행함에 있어서도 그러한 것에 가로막혀서는 안 된다. 곧 법의 모양에 구애 받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하면 그 복덕의 무한함은, 예를 들면 동, 서, 남, 북, 사유(四維)의 어느 곳을 향하더라도 마치 허공에 끝이 없어 헤아릴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수보리여, 신상(身相)으로서 부처를 구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부처의 설하신 신상(身相)은 참된 신상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모든 상은 허망한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모든 상이, 상이 아님을 보면 곧 부처를 보게 되는 것이다.“

만약 색으로써 나를 보거나 음성으로써 나를 구한다면 이 사람은 사도(邪道)를 행하는 것이다. 그는 부처를 보지 못하리라.

 

 

 

수보리는 또 묻기를,

“세존이시여, 중생들은 이러한 말씀을 믿고 있는 것이옵니까?”

세존께서 답하시되,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부처가 돌아가신 오백년 뒤에 계율을 지니고 복을 닦는 자는 이 말을 듣고 진실이라고 믿게 될 것이다. 이 사람들은 부처 앞에 34의 선(善)을 심었기 때문에 이러한 일념의 청정한 믿음을 일으킴에 이른 것이다. 이와 같이 하여 그들은 헤아릴 수 없는 복을 얻게 되는 것이다. 곧 그들은 아상(我相), 인상(人相)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보리여, 부처는 이 무상의 도를 증득했다고 믿고 있는가? 또 부처가 설해야 할 법이 과연 있는 것일까. 이 점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수보리가 답하기를,

“저의 깨달은 바에 의하면 따로 무상의 도를 증득할 법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 부처님께서는 이것이다 하고 정한 법이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부처의 설하신 가르침은 붙잡을 수도 설할 수도 없는 것이며, 또 법일 수도 비법일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모든 성자는 다 무위의 시현이기 때문입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수보리여, 여러 성자들은 각각 이른바 도를 증득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수보리가 답하기를,

“저 성자들은 결코 그러한 생각을 하실 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특히 그러한 증득이라 일컫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약 그들 성자들이, 나는 어떠한 도를 증득했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아직 아집을 여의지 못한 것으로, 이는 성자라 이름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부처는 옛날 연등불 밑에 있으면서 그 어떠한 법을 얻었던 것인가?”

“아무 것도 얻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보살이 부처의 국토를 장엄했다고 한다면 그는 실(實)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장엄하되 장엄했다는 생각이 없는 것을 장엄했다고 이름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수보리여, 보살은 여하한 곳이나 여하한 사물에도 마음을 주(住)하는 일이 없음을 마음에 새겨두지 않으면 안 되느니라.”

수보리는 이 심오한 의취(義趣)를 듣고 기쁨의 눈물에 목이 메이면서 세존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까지 이러한 교법을 들은 일이 없습니다. 만약 인연 있는 사람이 있어 이 교법을 듣고 청정한 믿음을 일으킨다면 곧 실상(實相)을 낳을 것입니다. 그 사람은 세간에서 드문 제일의 공덕을 얻을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이 실상은 원래 정함이 없는 상(相)으로 이것을 실상이라 설한 것으로 생각하옵니다.“

 

 

 

세존이 말씀하시기를,

"세상이 무량한 보물을 남에게 베풀었다 하더라도 이 교법(敎法)을 가지고 중생을 설한 공덕에는 멀리 미치지 못한다. 그렇다면 어떤 방편으로 남을 위해 설해야 하는 것일까. 모든 것은 꿈이요, 환상이다. 마치 물거품이나 그림자와 같다. 이슬이나 번갯불처럼 봐야만 옳은 것이다.“

세존께서 설법을 마치자 수보리를 비롯하여 그 자리에 모였던 대중은 법의 기쁨에 젖어 마음이 약동하였다.

 

 

출전 : 불교성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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