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佛陀,부처님)

공(空) 72

근와(槿瓦) 2014. 8. 19. 00:59

공(空) 72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세존은 성도(成道) 제 14년 초에 앙가국(鴦伽國)에서 항하(恒河)를 건너 발기(跋耆)에 들어가 점차 유행하여 비사리(毘舍離)의 대삼림에서 얼마 동안을 체류하셨다. 어느 날 제자들에게 가르치시기를,

"제자들이여, 생사의 작위(作爲)가 없는 무위(無爲)의 경지란 어떠한 것인가? 거기에 이르는 길이란 어떤 것인가?

탐욕과 진에와 우치가 다 멸한 것이 무위인 것이다. 공(空)의 정(定)과 무상(無相)의 정과 무원(無願)의 정이 거기에 이르는 도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너희들은 숲이나 사람이 살지 않는 빈 집에 들어가서 마음을 수습하여야 한다. 방일해서도 안 되고, 후회가 따라서도 안 된다. 이것이 내가 너희들에게 주는 가르침이다."

 

 

어느 날 오후, 아난은 세존께 묻기를,

"세존이시여, 세간을 공(空)이라고도 일컫고 있사온데, 이것은 무슨 뜻이옵니까?"

"아난이여,「아」와「아소」라는 것이 전혀 없는 것이므로, 세간을 공이라고도 일컫는다. 아와 아소가 전혀 없다는 것은, 눈(眼)은 나도 아니요, 내 것도 아니다. 안식(眼識)은 나도 아니요, 내 것도 아니다. 이 근(根)과 경(境)과 식(識)과의 화합에 의하여 생기는 감촉 역시 나도 아니요, 내 것도 아니다. 이와 같이 귀, 코, 혀, 몸, 뜻(意)과 그러한 것의 대경(對境)과 그러한 것의 식(識) 및 그 화합에서 생기는 감촉과 감각도 모름지기 나도 아니요, 내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 아와 아소가 전혀 없다는 이유 때문에 세간을 공이라고 일컫는 것이다.“

 

 

 

 

어느 날 해질 무렵, 사리불(舍利弗)이 선정(禪定)에서 일어나자,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리불이여, 너의 모습은 청정하고 조용하며 살빛은 빛나 보인다. 너는 오늘 어떠한 선정에 들었더란 말인가?”

“세존이시여, 오늘 저는 공(空)의 선정에 들었습니다.”

“착하도다, 사리불이여. 너는 오늘 부처의 선정에 들었다. 실로 공은 부처의 선정인 것이다. 만약 불제자로 하여금 공의 선정에 들겠다고 바란다면 이와 같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리라. ‘나는 오늘 마을에 들어가 탁발(托鉢)을 했지만, 그 오가는 길에서 눈으로 보는 모양, 귀로 듣는 소리, 코로 맡는 냄새, 혀로 음미하는 맛, 피부에 닿는 감촉, 뜻(意)을 아는 법에 있어서의 탐욕, 진에, 우치의 마음에 장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가’를 생각하여, 만약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그 악을 버리기 위해 힘써야 한다. 만약 없었다고 자각한다면 기쁨과 낙으로써 낮이나 밤이나 선을 배우는 것을 계속 해야 한다.

그리고 사리불이여, 그 제자는 이와 같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리라. ‘나는 과연 오욕을 버렸다고 할 것이며, 번뇌를 제거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몸뚱이를 이루고 있는 몸과 마음을 자각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정각의 지혜인 불과(佛果), 즉 보리(菩提)일까’고. 사리불이여, 이와 같이 생각하여 아직도 번뇌를 여의지 못하고 각을 얻지 못하였다면 그것을 위해 힘써야 한다. 또 이미 번뇌를 여의고 각을 얻었다면 기쁨과 즐거움으로 낮이나 밤이나 선(善)을 배우는 일을 계속해야 한다.

사리불이여, 먼 과거의 어떠한 출가자도 또 먼 미래의 출가자도 또 현재의 어떠한 출가자도 모름지기 보시에 의해 얻은 음식을 청정하게 하는 길을 모두 이와 같이 생각해야 하는 데에 있는 것이다. 그러니 사리불이여, 너희들도 모두 나의 가르침과 같이 생각하여 보시에 의해 얻은 음식물을 청정하게 해야 하겠다는 길을 배워야 한다.“

 

 

 

또 어느 날, 저물녘에 아난이 세존께 물었다.

‘세존이시여, 일찍이 석가족이 사는 난가라카라는 조그마한 마을에서 세존께서 저에게 말씀하시기를 ’아난이여, 나는 지금 대부분의 시간을 공의 선정에 머문다‘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만, 이러한 저의 기억은 정확한 것이옵니까?“

“아난이여, 너의 기억은 정확하다. 나는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시간을 공의 선정에 머물고 있다. 비유컨대, 이 대삼림의 중각(重閣) 강당에는 코끼리, 소, 말, 양이 있지 않다는 뜻에서 공인 것이며, 금과 은이 없다는 뜻에서 공인 것이며, 남녀의 모임이 없다는 뜻에서 공인 것이다. 다만 공이 아닌 것은 승가(僧伽)뿐이다. 이와 같이 제자가 마음의 상념을 일으키지 않고, 사회의 상념을 일으키지 않고, 그저 숲속에 대해서만 생각한다면, 그 숲속의 상념으로 마음은 기쁘고, 마을에 따른 괴로움도 사회에 대한 괴로움도 없어져 숲속에 대한 심려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마을 또는 사회라는 상념도 공이 되고 숲속의 상념만이 공이 아닌 것이 된다. 이와 같이 그곳에 없으니까 공으로 보며 그곳에 있으니까 유(有)로 알게 되는 것이다. 나아가서 숲속의 상념을 버리고 단지 땅의 상념을 일으킨다. 산도 강도 숲도 있으며 고저가 있는 대지를, 소가죽을 깐 듯한 주름살 하나 없는 평탄한 땅을 상념한다. 이 상념에 마음은 기쁘고 숲속에 관한 괴로움은 없어지고 그저 땅에 대한 심려가 있을 뿐이다.

이와 같이 하여 차례로 갖가지의 선정을 닦은 뒤 무상정(無想定)으로 나아가 그저 무상정만을 상념하면 무상정으로 마음은 기쁘고 오래 살며, 이 몸에 따라 일어나는 괴로움만이 있는 것으로 된다. 이와 같이 무상정에 들어, 이 무상정도 만들어진 것, 생각한 결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무상(無常)한 것이며, 멸(滅)의 진리를 알고 욕의 번뇌, 유(有)의 번뇌, 무명(無明)의 번뇌에서 해탈되어 내가 이루어야 할 것을 끝내 이루었다. 그런 이후에 망집의 생을 받는 일이 없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모든 번뇌에서 일어나는 괴로움이 있을 뿐이다. 이리하여 모든 것은 공이 되고 공이 아닌 것은 하나의 존재로 생존해 가고 있는 이 몸뚱이만으로 된다. 이와 같이 그곳에 없으니까 공으로 보고 그곳에 남아 있으니까 유(有)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며, 이리하여 공의 선정을 닦고 보면 진실에 계합되고 전도(顚倒)된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아난이여, 이 청정하고 수승한 공의 선정에 머물도록 마음을 닦지 않으면 안 된다.“

 

 

 

출전 : 불교성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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